철거 명령 떨어진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마을 ‘와디 알 홈무스’

7월 18일까지 불이행 시 이스라엘 군이 집행 후 막대한 철거 비용 청구

  동예루살렘 남동쪽 수르 바히르의 외곽 마을 와디 알 홈무스. 베들레헴에서 바라본 철거 예정인 건물들. 2 개의 철조망 울타리를 기준으로 왼쪽은 예루살렘, 오른쪽은 서안지구에 속하는 베들레헴이다. 서안지구 내 건물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관할이지만 이스라엘 군 당국은 철조망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이 곳에도 철거 명령을 내린 상태다 .© WAFA Images / Ahmad Mizher

  예루살렘 쪽에서 바라본 울타리. 이스라엘은 2005년 보안을 명분으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허술한 수준의 분리벽을 설치했다.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

지난 6월 18일, 동예루살렘 수르 바헤르Sur Bahir의 외곽 마을 와디 알 홈모스Wadi Al Hummus의 13개 건물 및 부지가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철거 명령을 통보받았습니다. 기한은 한 달. 가구 수로 따지면 총 100여 채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 중 20%는 현재 입주자가 살고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공사 중입니다. 해당 건물들은 이미 10년 전에 적법한 건축 허가증을 발급 받았습니다.

이 지역은 예루살렘의 가장 외곽으로 서안지구 베들레헴과 맞닿아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예루살렘 경계선 탓에 지리상으로는 예루살렘에 속하나, 행정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관할 지역입니다. 건축 허가증도 당연히 PA가 발급합니다. 이스라엘은 2009년부터 건축 허가증을 문제 삼아 여러 차례 주변 건물을 철거하거나 철거 위협을 가해왔고 이번에는 ‘보안상의 위협’을 들어 철거 명령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다른 방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와디 알 홈무스의 주민들이 자비를 충당해 현존하는 철조망 울타리가 아닌, (불법 분리 장벽으로 불리는)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 보안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겠다는 해결안을 제시하기까지 했지만 이스라엘 군측은 거절했습니다.

주민들이 이스라엘 최고 법원에 철거 명령 취소 진정을 내자 군측은 선심을 베풀듯 몇몇 건물에 대해서는 ‘1층은 제외한 채 위층만 철거하겠다’며 부분적으로 철거 명령을 ‘타협’하는 기만적인 태도마저 보였습니다. 과연 어떤 계산법에 따르면 같은 건물의 1층은 보안상 위협적이지 않고, 2층부터는 위협적일 수 있을까요? ’보안상의 위협’은 결국 또하나의 단계적 추방을 위한 면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7월 12일 방문한 이 지역의 경계 지점에는 기존의 철조망 조차 잘 관리 되지 않은 채 뜯겨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쪽 허물어진 철조망에서 바라본 서안지구쪽 울타리.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보안상의 위협'을 타개하고자했다면, 최첨단 기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실한 철조망을 손보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

이번 철거 명령은 지난 2019년 6월 11일 이스라엘 최고법원이 수르 바헤르의 주민들이 제출한 진정서를 기각시킨 데 따른 최종 결과입니다. 2017년 제출한 진정서에서 주민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공사 중단 및 건물 철거 명령을 취소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진정서가 기각된 지 일주일 뒤인 6월 18일, 이스라엘 군인들은 30일 기한의 철거 명령을 고지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주민들은 7월 18일까지 자체적인 수단과 비용으로 건축물을 부수어 부지를 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 군인이 ‘대신’ 철거를 감행한 뒤 막대한 철거 비용을 주민에게 청구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철거 대행’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인에게 청구되는 비용은 3만 달러(약 3000만원) 수준입니다.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위원회(ICAHD)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인이 직접 불도저로 가옥을 파괴하는 대신 선택권을 주듯 주민들에게 ‘셀프 철거’를 명령하는 것은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철거 트렌드’ 이기도 합니다.

이번 명령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건물은 총 10개,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주민은 1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이 지정한 철거 대상은 부지와 건물을 포함한 총 13개이나 이 중 3곳은 아직 건물을 짓지 않은 부지이고, 나머지 10개 건물에는 총 70여 채를 아우르는 아파트를 짓고 있습니다. 특히 철거 예정 건물에는 총 3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수로 따지면 총 17명,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9명이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10개 건물 중 9개가 모두 분리 철조망 기준 예루살렘 쪽에 있는 집들이며, 1개 건물만이 철조망 건너편 서안지구 B지역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 10개 건물들에 대해 6개는 완전히, 4개는 부분적으로 철거를 하라고 명령한 상태입니다. 부분적인 철거, 부분적인 ‘삶’을 팔레스타인인 주민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꼬불꼬불한 빨간선이 ‘베리어'라고 부르는 분리 철조망이 쳐진 곳이다. 수르 바히르 아래 위로 분홍색 면적이 유대 정착촌이고, 그 사이에 찍힌 다수의 빨간 점은 최근 2년 간 철거된 건물들, A,B,C구역으로 쪼개진 가장 외곽의 노란점은 현재 퇴거 명령 위기를 맞딱드린 건물들이다. 파란점선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예루살렘 시의 관할 구역으로 병합시킨 기준선이며, 검은선은 완충 지대라고 지정해 그 어떤 물리적 접근이나 농업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구간이다. © OCHA

문제의 복잡성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외곽에 내 임의로 설치한 ‘보안’ 철조망이 서안지구 내 A,B,C 구역을 관통하는 지점이라는 데 있습니다. 수르 바헤르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있으나 위기에 처한 와디 알 홈무스 마을의 가장 외곽에 있는 건물들은 서안 지구 내 A,B,C 구역에 복잡하게 걸쳐있습니다. 즉, 이 건물들은 철조망의 예루살렘 쪽 땅에 세워졌으나, 오슬로협정에 따른 A,B,C 구역 기준 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행정 관할 구역에 있습니다.

수르 바헤르는 인구 2만 40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 마을입니다. 마을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행정상 동예루살렘으로 병합된 상태이나 4000더넘dunum(단위)의 면적이 A구역, B구역에 속해 이 곳에 사는 6000명 정도의 주민들은 극도의 행정적 불편과 혼란에 시달립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오슬로협정에 입각해 A, B구역에 대해 건축 허가증 발급을 비롯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지만 분리 철조망으로 인해 쓰레기 수거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지역에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로 정비, 하수구 연결, 물 공급 등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당국은 모든 책임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떠넘기면서도 PA가 손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예루살렘 신분증’이 있는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세금을 내지만 땅과 집에 대한 건축 허가증은 (철조망을 기준으로 예루살렘이 아닌 서안지구 쪽 방면에 있는) 베들레헴에 위치한 다르 살라 Dar Salah 마을 자치회에서 받게 돼있습니다.

주민들은 또한 이스라엘 정부에 소득세를 내지만 소득세를 내는 다른 이스라엘 시민들이 누리는 (군인을 제외한 18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시민들이 내고 혜택을 받는, 우리나라의 국민 연금과 비슷한 개념의), 이스라엘 국민 보험 Bituah Leumi의 대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신분마저 박탈당할까봐, 팔레스타인인 주민들은 이 차별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합니다.

  철조망을 기준으로 예루살렘 내에 있는 9개 건물, 서안지구 방면의 1개 건물이 철거 명령을 통보받았다 ©OCHA

이스라엘 당국이 A,B,C지역을 아우르는 수르 바히르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해당 지역에 팔레스타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지역을 통제할 계획을 세우면서였습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루살렘 시에서 건축 허가증을 받는 것은 이미 하늘의 별 따기 였고, 수르 바히르 중에서 와디 알 홈무스에 속하는 A구역의 집 값은 수르 바히르 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저렴했기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확장된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이 곳에 집을 짓고 증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A구역의 아파트 한 채는 7만~10만 셰켈, 수르 바히르 시의 다른 지역은 30만~ 35만 셰켈 수준으로, 여건상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연스레 이 곳에 몰려들게 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2009년 이래로 이스라엘 당국은 이 지역 69개 건물들에 대해 건축 허가증을 문제 삼아 부수거나 지속적인 위협을 가해왔습니다. 이 중 46개 건물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30가구가, 400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야했습니다. 이중 절반은 18살 미만의 아이들입니다.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짓기 어려워진 것은 2011년, 이스라엘이 ‘버퍼존’이라는 완충 지대 개념을 도입하면서부터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임의로 설치한 철조망을 기준으로 100 ~ 300m에는 아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로 건축 허가증을 발급받은 A, B지역의 건물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내용의 ‘법적 명령’을 공표했다고 주장하는데, 현지 주민들은 그 내용을 공공연하게 전달받은 적이 없으며 혹여 전달 받았다 하더라도 건축 허가 문제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관할이라고 반박합니다. 2016년 들어 처음으로 A구역의 건물에마저 철거가 진행됐고 최근 2017년 1월에서 2019년 6월 사이에만 24개 건물이 철거 됐습니다. ‘버퍼존’에는 총 200개 넘는 건물이 있었으나, 2011년 이후로 100개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철거 명령이 떨어진 건물들 중 하나의 주인인 모하메드 아부 티르Mohammed Abu Teir. 그는 2009년부터 여러 차례의 법적 공방을 이어오며 공사를 중단하고 재개하기를 반복해왔다.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

모하메드 아부 티르Mohammed Abu Teir씨는 철거 명령이 내려진 한 건물의 주인입니다. 2009년 이 곳에 땅을 산 뒤, 수년간에 걸쳐 40가구를 수용하는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2010년에도 한번 제지 명령을 받았었는데, 고액의 변호사를 선임한 뒤 법적 효력 다툼 끝에 계속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이스라엘이 그의 건물이 있는 지역을 3년간 보안 구역 완충 지대로 지정한 탓에 3년 간 공사를 중단해야 했고, 이후 별다른 통보가 없어 2014년 재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다시 철거 명령을 받았고, 다시 변호사를 고용한 뒤 4년이 지나서야 최종 판결을 받은 것인데 그것이 바로 지난 6월 11일, 한 달 철거 유예 기간을 통보한 최고법원의 최종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을 주민들은 자비를 털어 1인당 1만 5000셰켈(약 500만원)을 지불하며 전직 군부대 고위 인사 출신의 보안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조언에 따라, 주민들은 감시카메라나 철조망 등의 ‘보안 시설’ 설치비용 부담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이스라엘 군 당국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모하메드씨는 말합니다.


  두 개의 정착촌을 잇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인 수르 바히르의 또다른 외곽.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

마을 끝에는 현대중공업 소유를 비롯한 수십 대의 굴삭기가 모여 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수르 바히르 남쪽의 하르 홈마Har Homa와 동쪽의 동 타피욧East Talpiyot 정착촌을 잇는 도로, 이름 하여 ‘아메리칸 하이웨이American Highway’ 를 공사 중입니다.

모하메드씨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수흐 바히르Sur Bahir, 움 투바Um Tuba 지역을 몰수하는 이유는 주변에 하르 홈마Har Homa 정착촌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인구 또한 자꾸 늘어나는데,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팔레스타인인이 건물을 지을 땅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해서 이 곳을 떠나라는 이야기입니다.”

7월 16일 저녁 6시 반, 철거에 대항하는 집회가 현장에서 열렸습니다. 3일 뒤면 삶의 터전을 잃고 자기 집을 직접 부수지 않은 대가로 빚더미에 않을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인 주민들이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21일, 이스라엘 고등법원이 6월 18일 한달 기한 내로 마을 내 수십개의 건물 철거 명령을 내린 데 대해 와디 알 홈무스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야외에 모여 금요 기도회를 지냈다. © Wadi al-Hummus Services Committee

  2019년 7월 11일, OCHA(유엔인도적지원조정실) 통솔 아래 호주, 벨기에, 영국, 덴마크, 프랑스, 멕시코,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영사관 및 협력 단체, Human Rights Watch, USAID 등이 현장을 방문해 현지 주민과 상황을 공유했다. © Wadi al-Hummus Services Committee


  2019년 7월 11일, 와디 알 홈무스와 멀지않은 예루살렘의 메인 도로 하반김Habankim 교차로에서 마을 주민을 비롯해 이스라엘 내 안티-점령 NGO와 일반 시민들, 국제 활동가들 100여 명의 거리 피켓 시위가 있었다. © Palestine Peace Solidarity 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