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죽어가는 생중계가 하루빨리 끝났으면...”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01)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단식농성 55일 고공농성 48일 차 이야기

내하고 바꾸자, 내가 올라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삼성중공업 해고자 이재용 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름이 똑같아서 날마다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이름이 같아서는 아니고 나쁜 놈하고 이름이 같아서 억울합니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단식농성 55일, 20미터 높이의 강남역사거리 CCTV 철탑 고공농성 48일이 되는 7월 27일 오후, 삼성 본관이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간급 규탄집회 ‘삼성은 죽일 셈인가?’에서 이재용 씨가 투쟁경과 보고를 한다.

그 역시 삼성중공업의 해고자이자 삼성 무노조 경영의 피해자다.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삼성 측은 이재용 씨에게 각목테러와 공갈·협박·폭행·연행을 하고 해고했다. 이 씨는 2013년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해당 위원회는 삼성중공업에 원직 복직을 권고했으나 삼성중공업은 경영난을 이유로 복직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재용 씨는 김용희 씨에게 물을 올려주며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소통하면서 그가 하루빨리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밑에서 투쟁 하고 있다. 집회 때, 경과보고도 늘 이 씨의 몫이다. 고공 단식농성이 길어질수록 이재용 씨의 얼굴도 검게 타들어가고 야위어 가고 있다.

  단식농성 55일 고공농성 48일 차를 보내고 있는 김용희 씨 [출처: 연정]

“오늘 제가 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차라리 내하고 바꾸자. 내가 올라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고, 도저히 지켜보지 못하겠다고 내려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내려와야 안 되겠습니까? 내려와야 되는데, 그냥은 죽어도 못 내려오겠답니다. 올라가기 이틀 전에도 죽음을 각오했다는 얘기를 세 번 네 번 강조 하고 올라갔습니다.”

이재용 씨는 이렇게 오래 가리라고는 김용희 씨도 생각 못했을 거라고 했다. 이 씨를 정말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삼성의 태도였다.

“삼성이 인간이라면 무슨 대책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삼성에서 직업병으로 죽어나가고 테러를 하고 이런 못된 짓을 저지르고도 삼성은 자기가 안했노라고 직접 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무리 그런 악랄한 삼성이라도 고공 철탑 위에서 빼짝 말라 비틀어지고 살이 다 빠지고 죽어가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서 아직까지 일말의 말이 없고 대응이 없습니다. 사람이기를 거부한 것을 지나서 쟤네들은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이 씨는 삼성을 사람이 아닌 취급을 해서라도 삼성을 바꾸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용희 씨가 복직합의서를 갖고 땅에 발을 딛기 전에는 자신도 여기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하루에 한 번씩 계속 경과보고를 하는데, 경과보고를 하다보면 죽어가는 김용희의 생중계를 하는 거 같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 더 말을 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김용희 죽어가는 생중계가 하루빨리 끝났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경과보고를 하고 있는 이재용 씨 [출처: 연정]

정의를 세우는 투쟁, 민주노총이 함께 하겠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도 3백 명이 넘는 노동자와 시민이 집회에 참여했다.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하고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날이다. 멀리 대구에서 한 달 가까이 박문진·송영숙 두 해고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조합원들도 올라와 함께 하고 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도 참석해 발언을 한다. 김 위원장은 삼성 건물이 올라가고 삼성의 부가 쌓일 때마다 많은 노동자들이 감금당하고 납치당하고 노동조합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로 발언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반노동 반인륜적인 행태를 끊어내는 것에 함께 해달라는 김용희 씨의 곡기를 끊은 울부짖음이 50일을 넘어 생사의 기로에 서있음에도 삼성은 그 어떤 응답과 참회도 하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그리고 이 투쟁에 민주노총이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우리 민주노총은 김용희 동지와 함께 다시 운동화 끈을 묶고 머리끈을 질끈 묶고 함께 싸우겠습니다.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단죄하고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한국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김용희 동지의 투쟁을 함께 하겠습니다. 정의를 세우는 투쟁, 삼성의 반인륜적 작태를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투쟁을 민주노총이 받아내 함께 싸우겠습니다.”

  김용희 씨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집회 참여자들 [출처: 연정]

오래된 해고노동자들은 늘 외로웠습니다

이날 집회는 삼성을 규탄하는 집회이기도 했지만, 장기간 고공 단식농성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김용희 씨를 살리기 위해 땅에 내려와 함께 싸우자고 설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것은 최근에 만들어진 ‘삼성해고자 고공단식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이하 ‘삼성해고자대책위’)의 공식 결정사항이다. 김용희 씨는 며칠 전부터 물도 먹지 않고 있다. 김 씨는 다리를 다 뻗을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 때문에 다리를 밖에 내놓고 앉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집회 중에 김소연(삼성해고자대책위), 윤택근(민주노총 부위원장), 이덕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하 민변), 전진한(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하 인의협) 씨가 김용희 씨를 설득하기 위해 소방 사다리차로 고공농성장에 올라갔다.

“오늘 같은 날 삼성으로 쳐들어가야 되는 게 맞는데요. 저희가 그러지 못하고 고공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김용희 동지를 살리겠다고 땅에서 함께 싸우자고 설득하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싸우겠다는 사람 더 잘 싸우도록 하는 게 그동안 우리의 운동이고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소연 씨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고공 단식농성이 55일이 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 내려와서 싸우자고 설득하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김 씨 자신이 기륭전자분회 투쟁 당시 94일 간의 단식농성을 하면서 단식중단을 요청하는 많은 목소리를 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용희 동지를 비롯한 우리 오래된 해고노동자들은 늘 외로웠습니다. 그동안 외롭게 싸운 이 노동자들에게는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김소연 씨는 김용희 씨가 내려오면 함께 끝까지 싸워달라고 호소했다.

  고공농성장에 오르기 전에 발언을 하고 있는 대표단 [출처: 연정]

사람 몸에서 가장 소중한 부위는 아픈 곳

김용희 씨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하여 2년 뒤 삼성시계로 전보발령이 나서 근무했다. 1990년 김용희 씨가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설립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자 삼성은 김 씨를 납치해 노조포기 협박과 폭행을 하고 가족들에게까지 회유협박 했다.

그럼에도 김 씨가 노조 설립을 포기하지 않자 삼성은 사건을 조작해 성추행 혐의로 그를 징계해고 한다. 1993년 해고무효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에서 당시 문재인 변호사(현 대통령)가 성추행 사실이 없다는 공증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패소하게 된다. 그 뒤에 삼성은 대법원 공판 15일 전에 상고 취하서 작성을 조건으로 김용희 씨와 계열사에 1년 근무 후 원직복직 합의를 했다. 그리고 김씨를 삼성건설(삼성물산 건설지부 러시아 스몰롄스키 지부)로 발령을 냈다.

하지만, 삼성은 계속해서 김용희 씨에게 노조포기를 강요하며 폭력과 복직합의서 갈취, 간첩 누명을 씌워 고발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다가 해고했다. 그 과정에서 김용희 씨의 아버지는 유언장을 남기고 행방불명이 됐고, 그의 아내는 삼성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에게 큰 고통을 당했다. 삼성이 그의 가족에게 가한 고통은 20년이 넘어도 그의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결국 김용희 씨는 정년을 한 달 앞둔 6월 10일 단식농성 8일 차의 몸으로 삼성에 복직과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고공에 오르는 선택을 하게 된다.

고공농성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삼성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교섭 요구를 했지만, 삼성 측은 김용희 씨가 근무했던 회사가 현재 삼성그룹 소속이 아니며 당시 관련 직원이 삼성에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덕우 변호사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민변에서 이재용 구속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천막을 쳤을 때,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위해 대법원 앞에서 천막 노숙투쟁을 할 때, 창살 안에 있는 이재용 조형물을 끌고 왔었던 이가 김용희 씨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사람 몸에서 제일 소중한 부위가 어디 입니까? 심장 입니까? 폐 입니까? 위 입니까? 뇌 입니까? 아닙니다. 사람 몸에서 가장 소중한 부위는 아픈 곳이라고 합니다. 김용희는 우리의 아픈 손, 아픈 발, 우리의 아픈 심장,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손가락입니다.”

이덕우 씨는 감옥에서 한 사람이 칼잠을 자면서 쓰는 면적이 1.06m² 인데, 그 절반도 되지 않는, 누울 수조차 없는 공간에 더 이상 김용희 씨를 둘 수 없다며 내려와서 같이 싸우자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 진행 마지막에는 ‘김용희 동지 맞이하기’가 기재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내려오지 못할 경우 하게 될 프로그램도 함께 적혀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네 사람이 순서대로 사다리차를 타고 고공에 올라가 김용희 씨를 마주한다. 김용희 씨가 한 사람 한 사람 올라올 때마다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김용희 씨의 손을 꼭 잡고 설득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다. 더운 날씨에 네 차례나 사다리차로 오르내린 소방노동자들에게 대표단이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건네자 한 소방노동자는 자신들은 괜찮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사다리차에서 내려오며 너무 위험해 보이는 이 투쟁을 왜 하는지 소방노동자가 궁금해 해 김소연 씨가 설명해주었단다.

  김용희 씨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올라간 대표단이 이야기 나누고 있는 장면 [출처: 연정]

삼성이 사죄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해야 합니다

“원래 79kg까지 나가셨는데, 지금은 50kg도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셨는데, 관련해서 이야기하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오른쪽 반신마비도 호소 하셨었는데, 그 부분 관련해서도 현재 말씀이 없으십니다. 여쭤봤는데, 대답해주지 않으셔서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그때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인 거는 분명합니다.“

인의협 전진한 씨가 김용희 씨 만난 이야기를 한다. 7월 23일부터 의료진의 방문도 거부해온 김용희 씨는 의료지원보다 투쟁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많이 전해 달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삼성이 자신에게 해온 악랄한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전진한 씨는 김 씨가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라 걱정이 많이 된다며 밑에서 좀 더 노력해서 희망을 많이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인의협은 김 씨의 의료진 방문 거부와 관련해 성명서를 통해 ‘단식투쟁자에 대한 몰타선언’(세계의사회, 1991년)에 입각하여 의사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의료 개입은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바 있다.

“저희들 투쟁이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 생각이 돼서 많은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김용희 동지는 이렇게 매일매일 삼성 재벌에 맞서 큰 함성을 질러주는 동지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싸울 때는 정말 외로웠었는데, 이제는 같이 하는 많은 분들이 모여 즐겁다는 표현까지 쓰는 마음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계시니까 삼성 재벌이 무릎 꿇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버티겠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김용희 씨를 만나고 온 윤택근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김용희 씨의 무사 귀환과 삼성의 사과, 이재용 부회장 재구속을 위해 더 큰 투쟁을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본인이 정말 작은 불씨 하나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땅에 내려오면 유야무야되는 거 아닌가. 장기화되면 더 극단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얘기 하셨어요. 정말로 지금이 자신의 마지막 싸움이라고 생각하셔서 이대로 그냥 내려올 수 없다는 게 너무나 강경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땅을 밟게 하는 방법은 김용희 동지를 설득해야겠지만, 결국은 삼성이 사죄하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해야 합니다.“

김소연 씨는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이후 지속적인 연대를 호소한다.

  집회를 마무리하며 김용희 씨를 바라보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참가자들 [출처: 연정]

동지 여러분이 빛이 되고 생명이 되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철탑 밑에서 대기하는데 목이 타고 갈증이 났다. 땅에서 잠시의 더위와 갈증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데, 저 높은 곳에서 곡기를 끊고 이제 물마저 끊은 김용희 씨는 어떤 심정으로 견디는 것일까?

“동지 여러분 정말로 눈물 나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도 노조를 포기하지 못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탄압들을 받아왔습니다. 여기서 삼성 옥상 위에 나무를 보면서 옥상 위에 나무 한그루보다 못한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했습니다. 삼성의 윤리의식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삼성이 초인류 기업이라는 명판을 달고 있는 이게 나라인가 싶네요. 7월 10일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정년퇴임일 이었습니다. 여기 올라올 때, 그 안에 삼성의 문제가 해고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는 죽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동지 여러분이 우리 삼성 해고노동자들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서 다시 마음을 바꾸고 살아서 끝까지 싸우기로 했습니다.”

김용희 씨는 대표단 방문이 끝난 후에 전화 연결을 통해 삼성에 건강하게 노동조합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 바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섬성이 자신이 목숨 끊는 걸 바라는 것 같다며, 오기로 보란 듯이 살아 삼성이 저질렀던 부당한 노동탄압과 범죄행각을 사회에 알려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휘몰아치는 거셈 바람에도 부딪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 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집회 참석자들은 김용희 씨를 바라보며 “삼성은 사과하고 김용희를 복직시켜라!”, “이재용은 감옥으로 김용희는 땅으로!”, “끈질긴 투쟁으로 삼성을 바꾸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동지가>를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김용희 씨는 단식농성을 중단하고 하루에 미음 한 컵을 먹으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인의협 의사들은 김용희 씨가 지금 무사히 내려온다 해도 주요 장기에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오늘도 이재용 씨는 강남역 사거리에서 속울음을 삼키며 김용희 씨가 죽어가는 생중계를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