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고용 돼서 사람대접 한 번 받으면서 일해보고 싶어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04)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의 본사 농성 이야기

9월 9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하던 2백 여 명의 노동자들(민주노총 경남일반노동조합공공연대노동조합·민주연합노동조합·인천지역일반노동조합 소속)이 경북 김천 율곡동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20여 년 근무해온 이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석 달 째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에서 이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사장 이강래)는 입장 발표를 미루다가 9월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요금수납노동자들에게만 자회사 전환 의사를 확인한 뒤에 직접고용 인원을 확정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또한 직접고용을 원하는 노동자의 경우 고속도로 환경정비나 졸음쉼터 업무 등 현장 조무 업무를 맡길 계획이라며 사실상 자회사 전환을 강요했습니다.

이 소식에 분노한 해고된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이 날 즉시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로 달려와 1500명 직접고용과 이행 방안 마련 논의를 위한 이강래 사장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미흡하나마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 소식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추후에 취재한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필자 주>


단전 4일차, 직접고용이 중요하니 견뎌야죠

9월 15일, 경북 김천시 율곡동 한국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 1500명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본사 농성 7일 차다.

[출처: 연정 작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고된 수납노동자들은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아 한 명 두 명 일어나 침낭을 개고 칫솔과 수건을 들고 씻으러 간다.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이 기상을 한다. 이곳에는 보통 농성장에 1번 2번 번호를 매겨 써 붙이는 규칙이나 규율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세요”를 외치는 사람 한 명 없고, 알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느냐 묻자 옆에 있던 서안산톨게이트 요금소에서 19년 근무하다 해고된 김소현 씨가 대답해준다.

“3교대 초번(새벽 6시 출근) 근무할 때 새벽 4시에 일어나던 습관 때문에 눈이 저절로 떠져요.”

아침에 화장실이 붐비는 것도 이른 기상의 이유가 될 테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1500명 직접고용 투쟁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씻고 와서 커피나 라면을 먹고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콤팩트를 두드릴 때 쯤 되면 경찰들이 일어난다.

농성 4일차가 되던 추석날 아침, 눈물 속에 합동차례를 마치고 나니 일부 중요한 공간의 전기가 끊겨 있었다. 조합원들이 씻는 공간으로 사용하던 3~4층 화장실 전기가 끊겼고, 핸드폰 충전을 하던 2층 일부 공간의 전기가 끊겼다. 2층 남성 화장실 소변기는 센서 미작동으로 물이 나오지 않아 악취가 진동한다고 했다. 창문 없는 단전된 화장실은 암흑이다.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빨래를 많이 해서 누전이 됐다며, 추석 연휴가 끝나야 조치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자가 밖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그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봤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 공간을 함께 이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농성 중인 로비를 매일 청소하고, 화장실에서 씻고 나서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 청소까지 하던 요금수납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농성하는 와중에도 종이·플라스틱·캔·음식물까지 꼼꼼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경찰에게도 분리수거 제안을 했다. 화장지도 비누도 다 노동조합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는데 왜 누전이 되죠? 거기 두꺼비집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요. 바닥에 있는 수도 호스로 물 틀어서 빨래를 하는데, 왜 누전이 되겠어요? 말도 안 되죠.”


한국도로공사 서안산톨게이트에서 8년 근무하다가 해고된 김지숙 씨는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왜 하필 이 건물 안에서 요근수납노동자들이 이용하던 중요한 공간만 누전이 된 것일까?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하게 연락을 취했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사측의 이야기가 괘씸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가 답답하다. 하지만, 그 불편으로 짜증을 내는 노동자를 보지 못했다. 여성노동자들은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해 대소변을 보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한다. 그곳마저 줄을 서야 이용할 수 있다.

농성장에 들어온 지 5일 차 밤, 필자는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바깥에서 진행하는 당일 집회만 보고 가려하다가 얼떨결에 들어와 ‘오늘까지만’ ‘내일까지만’ 한 게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일 갈 건데 하루만 참자’를 되뇌다가 내일 가더라도 한 번이라도 씻고 편하게 자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러 가기 전에 농성장 이웃집 서안산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에게 세부적인 샤워 전술을 전수받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성공했다.

“새로 태어난 거 같죠?”

“맞아요. 딱 그 느낌이에요!”


무에서 유를 만들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정신으로 2백 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많이 불편하죠. 핸드폰 손전등을 켜도 어두워서 앞이 잘 안보이니 옷 입을 때도 불편하고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면 비눗물이 다 빠졌는지 확인도 안 되고.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김지숙 씨는 그래도 짜증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짜증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청와대에서 노숙농성 할 때는 천장이 없었는데, 여기는 천장이 있어 비도 안 맞고 좋아요. 청와대도 좋았어요. 천장 없으면 시원하잖아요.(웃음) 우린 직접고용 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괜찮아요. 다 참고 견디어야죠.”

처음에 투쟁을 시작할 때 그러했듯이 지숙 씨는 이번 본사 농성 역시 하루 이틀이면 문제가 해결돼 추석을 집에서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집에서도 상황을 알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죠. 원래 내가 차례를 지내는데, 애기아빠한테 하라니까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대학입시 준비 하는 고3 짜리 딸이 통화하면서 아프다고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나 있냐?’며 우는데, 속이 좀 상했어요. 그래도 명절이야 한번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이게 더 중요하니까 견디어야죠. 차례 지낼 때 엄청 울었어요.”

오늘 한 번 잘 지내 봅시다

“안녕하세요.”
“추운데 어떻게 잤어?”
“비옷 껴입고 잤어. 너무 추워. 입 돌아가려고 해.”
“장에 가서 잠바 하나씩 사 입어.”
“웬 장?”


오전 9시. 밖에서 텐트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안에 있는 노동자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면회’ 하는 시간이다. 매일 이렇게 만나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면회가 끝나고 조직 별로 회의가 진행된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불편한 점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눈다.

“경찰 계속 바뀌어요. 경기도, 강원도, 부산... 오늘은 대전이래요. 대전 조합원 있어요? 충남 대전 인근?”

“논산, 청주 있어요.”

“고향 분들 있으니 오늘 한 번 잘 지내봅시다.”


민주일반노조 톨게이트지부 박순향 부지부장이 경찰들을 보며 이야기한다.

10시가 되자 배식이 시작된다. 아침 메뉴는 어묵국밥이다. 배식 담당노동자들이 국밥 위에 김치를 한 젓가락 씩 올려준다. 반찬은 따로 없다. 이렇게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임금피크제 한 번 겪어보고 싶어요

영광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원으로 일한 지 17년이 된 김미애(가명) 씨는 내년 6월에 정년을 맞이한다. 미애 씨는 요금수납원으로 일하면서 ‘인간 취급’ 못 받는 게 가장 힘들고 상처 가 됐다고 한다. 17년 동안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했지만, 일하다가 민원이 생기면 무조건 모든 게 수납원 잘못이 됐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억지를 쓰며 욕 하고 소리 지르는 고객들 때문에 수납 노동자들이 돈을 물어주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미납금을 많이 받으라고 해서 죽어라 받으면 모든 혜택은 용역업체 사장과 한국도로공사에 돌아갔다.

올해 6월, 자회사 설립을 앞두고 한국도로공사 관리자들이 열 번 이상 미애 씨를 찾아와 자회사 전적을 강요·회유 했지만, 미애 씨는 거부했다. 내년 6월에 정년을 맞이하는 미애 씨에게 고단한 직접고용 투쟁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자회사에 가면 정년이 일 년 연장되고, 급여도 30퍼센트 올려준다고 가라고 했어요. 직접고용 되면 임금피크제에 걸려 임금이 삭감 된다면서 자회사 가래요. 제가 그랬어요. 나도 사람대접 한 번 받으면서 일해보고 싶어서 직접고용 갈 거라고. 나처럼 최저임금 받는 사람이 임금피크제를 꿈꿔 보기나 했겠냐고 나도 임금피크제 한 번 겪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찾아오더라고요.”

미애 씨는 현재 자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말과 달리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도로공사가 얘기하는 임금 인상도 실제로는 인원이 줄어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근무해서 받는 수당이라고 했다.

9월 9일 이곳에 들어오던 날, 미애 씨는 이강래 사장에게 1500명 직접고용 교섭을 요구하기 위해 사장실이 있는 20층에 올라갔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응급조치만 하고 바로 다시 농성장에 와서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얼마나 힘이 되겠어요? 같이 힘 보태서 우리 모두 흔들리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해보자는 거죠. 나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투쟁 시작하고 내가 이렇게 잘 견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돼요. 어디 이 나이에 노동조합을 해보겠어요?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필자가 이곳에 처음 온 날 밤. 아무 것도 덮지 못하고 자고 있는데, 새벽 무렵 누군가 침낭을 덮어주었다. 미애 씨였다. 미애 씨가 지금 하고 있는 투쟁은 미애 씨의 후배 노동자들이 살아갈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초석이 될 것이다.

경찰 침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농성장에서는 6일차 밤부터 2차 진압에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진압이 시작되었을 때 있을 위치와 자세, 구호도 정했다. 누가 어느 위치에 있을 것이며, 팔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다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공유하고 ‘실전에 대비한 트레이닝’도 했다. 이 날 세 차례 트레이닝을 했다.

[출처: 연정 작가]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정과 함께 바깥에서 진행되는 오후 집회와 문화제까지 하루가 정신없이,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다.

“경찰들이 갑자기 많아지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아까는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요.”

“8시에 민주노총 집회 있어서 그럴 거야.”


저녁 7시 20분. 8시 민주노총 문화제를 앞두고 잠시 주어진 휴식 시간에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다. 갑자기 방송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경찰 침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체 조합원들은 지금 즉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경찰 침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체 조합원들은 지금 즉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던 조합원, 씻고 있던 조합원, 누워서 쉬고 있던 조합원들이 일제히 2층 로비의 약속했던 집결지를 향해 우르르 달려간다. “★◇△□” “★◇△□” 일부 노동자들은 침탈을 의미하는 암호를 외치기도 한다. 순식간에 로비 농성장에 전체 노동자가 모여 대열을 갖춘다. 필자도 급하게 취재 장비 정리를 하고 농성장으로 달려갔다.

“팔짱!”
“팔짱!”
“눕자!”
“눕자!”


팔짱을 낀 2백 여 명의 요금수납노동자들이 눕는다. 9월 14일, 농성 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조별 토론을 통해 경찰 진압 시 전체 여성노동자들이 상의 탈의로 저항하겠다는 결의를 모았다.

“직접고용 쟁취하자! 대법판결 이행하라! 이강래를 파면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직접고용 쟁취하자! 대법판결 이행하라! 이강래를 파면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추석 연휴가 끝나는 오늘 밤 이후 곧바로 진행될지도 모를 연습이었다. 긴장감에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우리 빨리 가던가요?”

“네. 빛의 속도로 달려가시더라고요.”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조합원들이 웃으면서 다시 하던 일을 하러 간다.

밤 10 반, 긴 문화제가 끝나고 노동자들이 한 명 두 명 자리에 눕기 시작한다. 자정이 되자 적막한 농성장을 코고는 소리가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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