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분이 패닉에 빠지길 바랍니다”

[워커스 인터] 기후 재앙: 거대한 위기, 거대한 운동, 거대한 전환

“저는 여러분의 희망은 필요치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패닉에 빠지길 바랍니다. 제가 매일 매일 느끼는 공포를 함께 느끼길 바랍니다. 진짜로 위기 상황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길 바랍니다.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불이 났으니까요.”

16살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지금 기후 위기에 맞서는 전 세계적 투쟁의 핵심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떠올라 있다. 위의 이야기는 툰베리가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 참가해 ‘당신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정치·경제 거물들에게 되돌려 준 말이라고 한다.

우울증, 과잉충동장애 등을 앓았고 자폐증 진단까지 받은 툰베리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놀랍고 고무적인 일이다. ‘정신장애인의 헛소리’라는 편견과 낙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툰베리가 반복해서 말하는 내용은 명확하다. 우리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하고, 이제는 행동할 때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가 ‘당신들의 패닉과 공포를 원한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www.popularresistance.org/]

그만큼 기후 위기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지구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참가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현재 지구를 망치지 않으면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최대량은 420Gt(기가톤)이다. (이것을 ‘탄소예산’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지금 세계적으로 해마다 42G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즉 10년 정도면 탄소예산은 모두 사라진다.

이것을 피하려면 우리는 10년 안에 탄소 배출을 절반 이상 줄여야 한다. 이를 통해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 실패한다면 기후 변화는 임계점(티핑 포인트)을 넘어설 것이다. 그 때부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지구 스스로 온난화에 파괴적인 가속도를 내게 될 것이다. 이른바 되먹임이라고 부르는 자기 증폭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해수면 상승과 기상이변 등 때문에 2040년경부터 지구 면적의 35% 정도(인류의 절반이 거주하는 지역)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것은 지난 10만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변화가 될 것이다. 이미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UN IPBES)는 100만 종 이상의 동식물종(현존 동식물종의 8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혹한과 폭염, 폭우 같은 기상이변이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된 지 오래다. 전 세계적 자연재해 건수는 1970년대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 자연재해의 규모나 피해면적도 급격히 증가했고, 장애인과 노약자 등이 가장 심각한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인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은 기후 위기가 결국 엄청난 야만을 불러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폭주하는 기후 변화의 순간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올 때, 그것은 떠돌아다니는 소수의 장발 폭주족 같은 형태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리에 서 있는 탱크들과 군부나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올 것이다. (…) 그들은 우리가 왜 벽 반대편에 있는 굶주린 노숙자들의 무리를 막아야 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 왜 이쪽 벽의 사람들과 같아 보이는 저쪽 벽의 사람들이 우리의 적인지. 왜 우리가 전쟁을 해야 하는지. (…) 절대 순수한 기후변화의 공포를 기대하지 마라. 항상 그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피와 오물로 가득 차서 도착할 것이다.” 1)

물론 현재 일부 선진국들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석탄발전소들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굴뚝산업들은 사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칭찬만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오염 산업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중국과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의 가난한 나라들로 이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2011)는 선진국의 탄소 배출량이 감소 추세로 돌아선 이유는 오염물질 배출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이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소비자들이 소비하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증가량은 선진국 탄소 감축량의 6배에 달한다고 한다.2)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엄청나게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물질적 풍요를 거둔 선진국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피해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정의로운 일도 아니다.

결국 이처럼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던 그동안의 기후변화 대처 방안들은 총체적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 1992년 리우 기후정상회담부터 2018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까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상회의만 24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탄소 배출량은 줄기는커녕 60%나 늘어났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 기후변화 위험마저 시장에서 사고 파는 상품으로 만들자고 했던 기만, 각국 정부의 자율적 배출 감축을 기다리자던 방관의 최종적 파탄이다.

자본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들은 기후 위기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어디서나 언제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재생 에너지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에 대한 수탈과 파괴는 자본주의 시초축적의 핵심 기둥이었다. 그리고 두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자본주의와 탄소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버렸다. 탄소경제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자본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 같은 이들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많은 주류언론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기후 침묵). “어떤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덕분에 봉급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이해시키기는 어렵다”(소설가 업튼 싱클레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요구해야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트럼프라도 절벽에서 떨어지면 중력의 법칙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설득이 아니다. 지구를 망치며 엄청난 수익을 독차지해 온 책임자들에게, 이것이 더 실리적이고 비용도 줄이는 선택이라고 말할 때는 지났다. 탄소경제에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신들의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타이를 때도 지났다.

탄소경제에 집착하며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을 위해서 많은 나라가 물에 잠기도록 방치하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삶의 터전을 잃도록 내모는 것이, 후세대들에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빼앗는 것이, 지구 생명체들에게 멸종 위기를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역사적 범죄인지를 폭로해야 할 때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거대한 위기에 걸맞는 거대한 운동과 대안을 건설해야 할 때다. 그 운동은 이미 시작됐다.

특히 ‘우리가 왜 존재하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학교에 가야 하느냐’면서 청소년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다.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기후파업’은 두 차례의 국제적 공동 행동을 거치면서 이제 100여 개 나라에서 수백만 명이 함께하는 행동으로 발전했다. 영국에서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져 수천 명의 체포와 연행도 무릅쓰며 도로 봉쇄와 의회 점거 등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은 9.20~27 국제 기후 공동행동이라는 메아리를 낳았고 노동자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영국노총(TUC)은 최근 정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9월 20일 학생들의 기후파업에 연대해 일시 조업 중단을 결정했다. 이제, 노동운동은 그것이 어떤 산업이든 일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막다른 길을 벗어나, 지구환경을 지키는 넓은 길로 나서야 한다. 기후 위기의 피해자가 아니라, 지구를 망친 기후 위기의 가해자들이 비용을 대면서 사라지는 일자리를 더 많은 녹색 일자리로 대체하자는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이런 정치적 방향을 담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가 제시하고 있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 있다. 부자 과세 등을 통해 민중예산을 마련하고 대규모 공적 투자를 해서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이룬다는 게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1천만 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불평등도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급격한 대전환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19세기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했던 것과 비교한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직후에 몇 년 연속으로 탄소배출량이 감소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전시체제가 되면서 산업구조가 전환됐던 경험도 이야기 된다. 1991년 소련·동유럽이 붕괴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탄소 배출량이 감소됐던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와는 다른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과제 앞에 서 있다. 노예제 폐지 때처럼 노예 소유주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하지는 않으면서, 1930년대 대공황과 전쟁 때처럼 대량실업과 대량살육을 가져오진 않으면서, 소련·동유럽 몰락 때처럼 국가의 억압을 시장의 착취라는 또 다른 야만으로 대체하지 않으면서 해야 하는 대전환 말이다.

세계 7위의 탄소 배출국이면서도 기후변화 대응은 너무 부족한 ‘세계 4대 기후악당’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과제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이 과제를 향해 나가는 필사적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워커스 59호]

<각주>
1) https://www.anotherworld.kr/717
2)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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