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Be Water

[워커스]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②

[워커스 이슈]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

①거리에 나선 홍콩 청년의 목소리
②홍콩 시위, Be Water
③홍콩 경제 불평등이 키운 청년의 ‘엔드게임’
④모두의 홍콩, 우리의 이야기



시위대는 물처럼 흘렀다. 6월 홍콩 시위 발발 이후 정부청사로, 공항으로, 경찰서로, 대형 쇼핑몰로 시위대는 흐르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시위대는 어디로도 갈 수 있었고, 또 어디에나 있었다. 《워커스》는 9월 초, 홍콩 시위를 현지 취재했다.

‘시대 혁명’으로 발전한 홍콩 시위…
9월 시위는 경찰서를 거점으로


시작은 송환법 철회였다. 100일을 넘긴 지금의 홍콩 시위 구호는 ‘송환법 철회’에서 ‘5대 핵심 요구 전면 수용’으로 발전했다. 5대 요구는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폭력 독립적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연행자 무조건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다. 정치적 요구를 확대한 것이다. 또한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을 주요 구호로 삼고 있다. 홍콩 사회 전반을 바꾸라는 목소리가 커진 셈이다.

앞서 홍콩 시위는 6월 9일 103만 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집회를 시작으로, 6월 16일 200만 명, 8월 18일 17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의 동력을 이어갔다. 아울러 대중 집회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인 현금 인출 행동이나 총파업, 공항 점거와 쇼핑몰 시위 등 홍콩 경제를 공격하는 전술도 선보였다. 8월 5일 총파업에는 홍콩 노동자 50만 명이 참여해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키는 등 도심 기능을 멈췄고, 8월 12일과 13일엔 공항 점거 시위에 나서 항공편 수백 편을 결항시켰다.

9월 들어 시위대는 이전과 달리 경찰서 앞을 주요 투쟁 거점으로 삼았다. 경찰이 진압 수위를 높여가며 많은 희생자를 낸 까닭이다. 특히 8월 31일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유혈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사건이 시위대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경찰이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 승강장과 전동차 내부에서 시민들을 곤봉과 최루액으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3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등 중상을 입었고, 63명이 연행됐다. 9월 시위에서 번진 ‘시위자 3명 실종·사망설’ 또한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부터 시위 흐름은 ‘경찰 타격’으로 쏠렸다. 9월 4일 홍콩 당국의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에도 시위자들은 매일 밤 몽콕 경찰서 앞으로 몰려갔다. 당시 몽콕 경찰서 앞 시위 규모는 송환법 철회 전보다 줄지 않았다. 시위대는 종종 경찰서 앞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그 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또 이곳에 희생자를 기리는 헌화대도 만들어 시민의 발걸음을 모았다. 반면 경찰도 9월 6일 시위대를 향해 고무총과 최루탄을 난사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외에도 시위대는 홍콩 경찰의 감시카메라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테이프를 붙이며 감시에 저항하고 있다. 또 8월 말에는 연행된 여성 시위 참여자에게 알몸 수색을 강요하거나 여성 시위대에 성적 모욕감을 준 경찰 등을 상대로 공권력의 젠더 폭력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를 끄거나 방독면을 가지고 다니는 건 일상이다.

‘Be Water’ 시위 전략
초 단위 속보 ‘텔레그램 채널’이 기반


경찰의 무력 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위대는 SNS에 집중했다. 시위대는 쉴 새 없이 텔레그램 채널을 확인했고, 정보를 수집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기자가 확인한 텔레그램 채널만 70여 개에 달한다. 각 채널에 많게는 18만 명, 적게는 수천 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 채널들은 분, 초 간격으로 각종 시위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지역별로 경찰 배치, 충돌, 연행 상황을 전하는 채널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역 운행 정보만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채널도 있었다. 아예 실시간 시위 정보를 온라인 지도에서 확인하는 ‘라이브맵’도 있었다. 경찰은 진압에 나서거나 무기를 사용할 때 각종 ‘경고 깃발’ 펼치는데, 채널들은 이를 ‘스티커’로 만들어 시위대에 즉각 전파하기도 했다. (파란색 깃발은 ‘무력을 사용하겠다’, 노란색은 ‘연행하겠다’, 주황색은 ‘총을 발포하겠다’, 검은색은 ‘최루 가스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9월 3일 오후 8시경 홍콩 시위대가 애드미럴티역에서 목적지인 프린스에드워드역으로 이동할 때 그들이 텔레그램을 시시각각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로 약 30분 떨어진 거리인데 이들은 경찰 배치 정보를 확인하고 승차와 하차 지점을 정했다. 도보 시에는 도로 상황을 SNS로 파악하고 우회하는 장면도 보였다. 9월 6일 몽콕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의 경고 깃발 정보를 확인하고 빌딩 숲으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홍콩 시위대가 흔히 말하는 ‘Be Water’. 물처럼 흘러가는 시위에 SNS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현금 인출, 작은 가게 가기, 쇼핑몰 ‘합창 시위’도

이렇듯 용무파(勇武派)가 거리에서 무력 시위를 하는 한편, 일부 화이비(和理非, 평화·이성·비폭력) 시위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됐다. 현금 인출 시위, 불매 운동, 작은 가게 가기 운동, 대형 쇼핑몰 점거 시위가 그렇다. 특히 불매(罷買) 운동은 총파업(罷工)과 수업 거부(罷課)와 함께 ‘3파(三罷) 운동’으로 발전해 투쟁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불매 운동은 8월 18일부터 매주 일요일과 금요일 ‘Bye Buy Day’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9월 중순 이후부터는 대형 쇼핑몰 시위가 많아지는 추세다. 홍콩은 세계 최고의 쇼핑 도시로 대형 쇼핑몰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또 대부분 쇼핑몰 내부는 중앙 홀이 비어있고, 각 층이 중앙을 둘러싼 구조를 지닌다. 이런 구조를 활용해 시위대는 홀과 층 난간에 모여 음악회와 합창, 구호를 외치는 장관을 연출했다. 9월 11일에는 1천 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이 샤틴 지역의 뉴타운플라자에 모여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이란 민중가요를 불렀다. 또한 이들은 쇼핑몰에 입점한 중국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의 운영을 방해하기도 했다. 유명 중국 프랜차이즈인 ‘베스트마트 360’이나 ‘북경루’, ‘제이드가든’ 등에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을 뜻하는 ‘777(당선 득표 수)’ 스티커로 도배하거나, 키오스크를 무차별적으로 눌러 매장 운영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홍콩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는 지난 8월이 마지막이었지만, 여전히 수만 명이 도심 곳곳을 점거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시위대 약 1만 명이 센트럴 전철역을 방화한 사건이 있었다. 시민사회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이 시위를 취소한 지난 15일에도 시위대 수만 명이 나와 완차이 지역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경찰도 최루탄에 이어 물대포까지 쏘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9월 28일은 홍콩 우산혁명 5주년, 10월 1일은 중국 국경절로 지금 홍콩 시위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