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주거는 페미니즘 이슈”

[워커스 이슈] 주거권부터 여성주의적 도시 디자인까지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도 관련 대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여성안심마을이나 여성안심구역, 여성안심귀가 서비스 등 이름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2013년 ‘여성안심특별시’라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안심귀가스카우트, 여성안심택배, 여성안심보안관, 여성안심지킴이집 등의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여성안심택배를 제외한 모든 사업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

신림동에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지난 6월부터는 관악구와 양천구를 중심으로 ‘여성안심 홈 4종 세트’를 지원하고 있다. 여성 1인 가구 250곳에 디지털 비디오 창, 문 열림 센서, 휴대용 비상벨, 현관문 보조키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외에도 몇몇 구청과 경찰서가 ‘여성안심마을’을 조성하거나 조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외에도 광주광역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유사한 여성 안전 대책을 도입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여성 안전 대책이 ‘헛발질’이라는 비판은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의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성에 대한 범죄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나 지자체가 시행한 여성 안전 대책의 실효성은 그리 크지 않다. 장진희의 <1인 가구와 범죄발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CCTV 설치 수가 1% 증가해도 5대 범죄 감소율은 0.08%에 그쳤다. 치안시설비 항목 역시 감소율은 0.03%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 여성범죄예방정책 중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고, 여성안심택배는 이용자가 1% 늘어나도 5대 범죄율은 0.007% 줄어들었을 뿐이었다.(1)

오히려 여성 1인 가구에 대한 범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여성 1인 가구를 향한 관심이 최근에야 대두되면서 이의 상관관계나 증감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자료는 보기 드물다. 그러나 다양한 연관 자료를 통해 이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우선,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들은 ‘사회의 주된 불안 요인’ 1순위로 범죄 발생(26.1%)을 지목했다. 이는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한 37.3%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조사가 시작된 2008년에 비하면 4.0%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2008년 14.4%에서 2018년 15.0%로 0.6%포인트 증가했을 뿐이다. 여성의 성폭력 피해는 2007년 10,780건에서 2017년 29,272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또 2017년 강지현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가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2)에 따르면, 33세 이하 여성 1인 가구는 남성보다 주거침입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무려 11.2배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외에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1인 취약가구 위험분석 및 맞춤형 정책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 지역일수록 주변 방범 상태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여성 안전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선 치안 대책을 넘어 주거 여건과 환경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1인가구의 범죄위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3)을 연구한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조사연구실 부연구위원도 “주거 불평등 문제로부터 여성 가구에 대한 범죄를 야기하는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한 여성들은 정부의 안전 대책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특히 여성 1인 가구의 불안감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여성들은 부담이 되더라도 안전을 위해 주거비를 많이 들인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취업 전 20대 여성들은 열악한 월세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범죄에 더욱 취약하다. 또한 직장 여성들은 월세방을 탈출해 초역세권에 안전한 주택을 임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높은 주거비를 계속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거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여성 안전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대책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여성들은 직접 민간 안전 서비스 등으로 안전을 스스로 구매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주거 불평등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성 안전은 생존권...주거 불평등 해결해야

그럼에도 여성 안전 대책에 주거권 문제가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2년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중앙정부로서는 처음으로 잠실에 ‘여성안심주택’ 사업을 추진하다가 역차별 논란이 일자 꽁무니를 뺐다. 지난 1월 재추진 계획을 밝혔지만 조성 규모는 250가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도 2014년 처음으로 ‘여성안심주택’ 입주자를 모집했지만 고작 96가구뿐이었다.

그러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대표적으로 OECD 가입국 중 주택비에 공공지출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영국(1.4%, 2015년)(4)에서도 여성 주거 안전 문제가 관심을 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말 창립한 영국 ‘여성주거포럼(WHF)’은 “주거는 의심 없이, 페미니즘 이슈”라며 여성 주거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포럼은 폭력과 학대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여성의 능력은 대개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저렴하고 적절한 집이 없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학대를 당한다고 고발했다. 이들에 따르면, 특히 안전하지 않은 주택이나 임시 거주지에서 사는 세입자 다수는 여성 1인 가구였다.

영국의 여성주거포럼의 시각처럼, 여성 주거 환경은 남성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지난해 발표된 ‘영국 주거 조사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임대주택 세입자의 55%, 민간임대자의 40%, 자가주택 소유자의 38%를 구성할 만큼 남성에 비해 주거 환경이 열악했다. 또 영국에서 여성이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선 12년 어치의 연봉이 필요한데, 남성의 연봉은 8년에 그쳤다. 잉글랜드의 평균 임대료는 여성 중간 소득의 43%, 남성의 28%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도 여성 주거 문제에 대한 관심은 낮다. 한국여성민우회가 2014년 ‘비혼여성 세입자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소수 여성단체들이 여성 주거권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만큼 주거 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절박함도 커지고 있다.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2017년 2월 트위터에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며 “1인 가구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한 텀블벅 프로젝트에 대한 반발이었는데 당시 자취하는 여성들은 특히 안전을 위한 팁을 많이 공유했다. 여성 1인 가구에게 안전이란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각주]
(1) 《서울도시연구》 제19권 제4호 2018. 12
(2) 《형사정책연구》 제28권 제2호 2017. 여름
(3) 《피해자학연구》 제26권 제2호 2018. 8
(4) 한국은 0.1%를 간신히 넘겼다.

여성주의 도시 디자인 운동 집단, ‘콜렉티브 포인트 6’

안전한 주택에서 살 권리가 여성의 생명에 필수적이지만 안전한 도시 환경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않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처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설계된 도시는 보기 드물다. 그런 면에서,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활동하는 ‘콜렉티브 포인트 6’의 여성주의 도시 디자인 운동은 눈여겨볼만하다.

이 여성주의 집단은 페미니스트 건축가와 사회학자, 도시 설계자들이 결성한 모임으로, 지난 10년 동안 바르셀로나에 성평등을 건설하기 위해 활동해 왔다. 이들이 여성주의적 도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셀로나의 경험 때문이다. 바로셀로나에선 1960-70년대 재개발 붐이 일면서 상업적으로 돋보이는 디자인이 유행했지만 이후 여성들이 오히려 이 공간들을 기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지역 여성들은 여성주의적 재개발 방식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노력 끝에 지금은 여성들에 보다 안전한 개방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콜렉티브 포인트 6은 몇 가지 원칙을 만들어왔다. 우선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시에서의 ‘가시성’이다.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는 상업적인 공간의 가시성은 높지만 공공 공간은 이에 비하면 크게 뒤쳐졌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이 집단이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리의 배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닫힌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모퉁이, 계단, 골목길, 현관 등의 시설물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높은 담과 터널과 같은 거리의 부유촌은 오히려 최악의 범죄 현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거리에 배치된 식물은 1미터를 넘지 않아야 하며 나무는 조명을 차단하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들의 노력에 의해, 스페인 바스크 지방 기푸스코아 주도 산세바스티안은 지방법으로 신축 건물의 모든 출입구 높이를 거리 수준에 맞추도록 하고 후미진 공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했다.

이외에도 콜렉티브 포인트 6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스페인 여성단체들은 이러한 도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여성 또는 여성관련 명사들의 이름을 거리명으로 쓰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또 벽화나 공공예술, 특히 여성들의 기여를 환기시키는 페미니즘 작업을 지원하는 운동도 활발하다. 콜렉티브 포인트 6에서 활동하는 사라 오르티스는 “(이들 사업을 통해) 바르셀로나는 공공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