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화의 그림자, 새로운 지배계급의 탄생

[워커스] 이종회 칼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이 톨게이트 캐노피 농성에 이어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 농성에 나섰다. 대법원은 그들을 정규직이라고 판시했지만 한국도로공사는 소송 당사자만 받아들이겠다며 약은 수를 쓰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경찰의 침탈에 상의탈의로 맞서며 저항했고 단전단수를 무릅쓰며 끝장투쟁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사장 이강래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정무수석을 역임했고 국회의원과 원내대표까지 지낸 민주당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3일에는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 총파업을 벌였다. 첫날 5만 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차별해소, 처우개선’을 내걸고 동맹 총파업을 시작해 4, 5일에는 지역별 파업대회로 투쟁을 지속했다. 2003년 노무현 정권 시절 열사정국에서 분신한 이용석 열사가 외친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구호가 마침내 비정규직 총파업으로 되살아난 듯하다.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도 함께 연대했지만 총파업의 중심에는 학교비정규직과 공무직 노동자, 민간위탁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1997년 IMF와 합의한 정리해고와 파견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의 희생자들이다.

금융자본의 거대한 정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소득분배 집중도는 증가해왔다. 이 격차는 경제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9월 21일 자 <뉴스1>의 ‘지니계수 20년 만에 IMF수준’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1995년 2분기까지 지니계수는 25~27 사이에 머물다가 IMF 외환위기 이듬해 30선을 넘어 1999년 30.83를 찍는다. 2000년 들어 다시 진정되는 모양을 보이지만 2008년 외환위기와 함께 다시 29.87로 오른다. 지니계수는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여 2015년 26.93으로 IMF 직전 수준까지 떨어지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2018년 다시 30선을 깨고 30.69를 찍는다. 2019년에는 30.64로 0.05%포인트 떨어져 소폭 개선됐지만 2분기 기준으로 30선을 넘은 것은 IMF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

소득불평등은 일차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 주요 원인은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무차별적 양산, 고용 없는 성장, 낮은 임금, 압도적으로 높은 연간 노동시간을 들 수 있다.¹ 외환위기 이후 재벌은 독점자본 위주의 구조조정을 거쳐 급성장했고 자본 집중력은 더욱 높아졌다. 그 결과 재벌의 사내유보금 1500조, 가계부채 1500조 시대에 접어들었다. 노동소득은 줄고 자본소득은 그만큼 더 늘어난 결과가 낳은 현상에 대해 이태형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민간저축은 주로 가계저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저축이 민간저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계저축은 극히 왜소해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나타났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민간저축에서 가계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55.7%였으나, 2009년에는 그 비중이 21%로 급격히 추락했다. 민간저축의 빈자리를 기업저축이 채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보다 가계를 상대로 한 부동산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영업 전략을 바꾼 결과, 가계의 채무가 급증하여 가계가 금융자금의 공급자 역할을 하는 대신 금융자금에 대한 수요자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벌어진 현상이다.”²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변동환율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5개 은행 퇴출을 포함해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이후 방카슈랑스³를 개시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한다. 그러면서 은행과 주식 그리고 보험을 하나로 통합한 이후 세계 최대급 액수인 연기금을 시장에 투입하면서 금융부문의 덩치를 키운다. 아울러 몇 차례의 외환자유화 조치 등으로 대폭적인 자본자유화와 개방정책을 시행했다. 결국 한국은 자본의 유출입이 자유로운 세계금융의 ATM기라는 비아냥을 듣기에 이르렀고, 이 과정을 거쳐 김대중 정부는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선진금융기법’을 한국에 이식했다. 마르크스의 언급대로 “아무런 (생산)과정 없이 화폐를 생산하는 화폐, 스스로 가치 증식하는 가치를 가지게 되는” 금융적 수탈구조가 구축되고 확대되면서 한국사회는 거대한 정글이 됐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그들의 축재

문재인 정권과 함께 등장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고 재산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93억1962만 원이라는 재산의 크기도 크기지만 본인과 배우자의 주식보유 금액이 54억 원에 가깝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2001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해온 장본인이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운동으로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 저격수’, ‘삼성 저격수’ 역할을 해왔고 이름을 알려왔다. 애초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신재벌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⁴ “11위 이하 재벌에 대한 여신 제한을 풀고 6대 이하 재벌이 보험회사 주식을 인수하거나 보유할 수 있게 한 반면,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제, 소액주주권 강화, 외부감사제도의 도입은 모두 연기하는” 조치였다. 이후 외환위기가 닥쳤고, 그로부터 소액주주운동은 재벌개혁의 대명사가 됐다.

장하성은 소액주주운동에 이어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이른바 장하성펀드)를 만들어 투기자본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각종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할 몫”이지만 “시민단체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운동”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함께했던 김상조는 소액주주운동과 법·제도 개선운동을 더욱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한편 장하성은 김기환이 회장으로 있던 서울파이낸셜포럼의 회원으로도 있었다. 김기환은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협력 대사로 미국을 방문해 ‘IMF 플러스’⁵ 합의를 주선한 인물이다. 그 직후에는 1999년 골드만삭스 고문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서울파이낸셜포럼은 주요 은행, 증권사, 보험사, 전·현직 관료, 교수 등과 외국계 은행 최고경영자 등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그들이 “한국을 금융시스템의 선진화와 자유화, 금융시장의 국제화, 금융회사의 국제화를 통해 세계금융자본을 유치하고 금융산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북아금융허브”를 추진해왔다.⁶

그러나 경제민주화운동으로서의 소액주주운동을 포함한 종업원지주제 등은 ‘양날의 칼’이었다. 재벌 계열사의 순환출자 및 제왕적 족벌경영 금지와 주주권리 보호 그리고 재벌의 지주회사 자격요건 강화 등을 목표로 하지만, 당시에도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체제로의 전환’을 꾀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최근 2012년 새 케인스주의자 장하준을 비롯해 정승일, 이종태와 함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펴내고 소액주주운동 등 경제민주화운동을 비판한 바 있다. 이태정 또한 “기업들이 비정상적인 규모로 사내유보금을 쌓는 표면적인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불확실성이 증가하여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유동성 자산을 비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기업에 대한 지분보유율이 매우 낮은 재벌 일가가 기업에 대한 경영권과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동성 자산을 비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⁷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초기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을, 공정거래위원장에는 김상조를 임명했다. 지금은 김상조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지만 정책기조가 변한 것은 없다. 재벌체제는 유지되고 경제 집중력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최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성을 애처롭게 감싸기까지⁸ 했다.

얼마 전 진보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재산으로 35억의 주식을 신고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돈의 흐름이나 무엇이 문제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펀드를 신고하면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던 검찰을 둘러싼 정치적 몸싸움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금융화가 그 주도진영의 금융적 축재와 함께 심화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운 계급전선

노동자들이 컨베이어에서 급하게 부품을 조립한 후 남는 시간 틈틈이, 유인물이나 신문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많은 노동자는 그 시간에 핸드폰으로 주식거래를 한다. 그리고 임금단체협상에서 주식을 받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노동자들이 생긴 지도 오래다. 반면, 또 다른 노동자들은 삶의 끝자락에 내몰려 2019년에 1970년대의 민주노조투쟁을 되풀이하며 가파른 벼랑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유럽에선 1994년 유럽연합(EU)이 출범하면서,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규제가 완화되면서 임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폐기됐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과 상품은 ‘단일시장’ 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고 국가 간 지역 간 격차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지형에서 형성된 불안정노동자들은 2008년 세계공황 이후 집중된 광장투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고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만들어나갔다. 미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의 불안정노동자와 같이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총파업을 구축해낸 사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서구 불안정노동자의 정치적 좌표 역시 불안정했지만, 한국 불안정노동자의 계급성은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체제, 특히 금융화에 의해 탄생한 지배계급과 불안정노동자의 투쟁은 지니계수만큼이나 대조적이다. 현재 제도정치권의 보수와 자유주의 진영의 긴장과 총파업이라는 비대칭적 상황을 넘어 새로운 계급전선으로의 재편이 눈앞에 있다.

1. 재벌의 사내유보금 원래 ‘네’ 것이 아니야!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준)
2. 이태정, <통계지표로 본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변화>,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 한울아카데미, 2014, 38-39쪽
3. Bancassurance. 증권,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보험회사와 제휴해 보험상품을 개발, 판매하는
서비스
4. 지주형, 《한국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150쪽
5. ‘합의’라고 쓰고 ‘착취’하는 끈질긴 신자유주의, 경사노위, 참세상
6. 지주형, 《한국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앞의 책
7. 이태정, 앞의 책
8. 김상조 “4년 전 삼성 발언, 엄살 아니었다…한국 경제 역동성 떨어져”, 중앙일보, 2019.09.19.


[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