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불평등을 계급투쟁으로!

[신간안내] 『진보평론』 가을호, 메이데이, 2019.

2019년 여름 내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조국사태’가 가을에 접어들면서도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더니 급기야 ‘서초동과 광화문’이라는 흉물스런 구도를 만들었다. 정치적 불신과 정치적 관심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현상에 대한 파시즘, 입진보 등의 다양한 평가가 나오자 이를 둘러싸고 내부 분할과 단절이 심화·확장되는 광경은 이제 흔하다. 시작은 단순했으나 전선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의도적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현재의 정치지형이 자유한국당-적폐 세력 vs. 민주진보 세력의 이항대립적 구도는 아니다. 여기에는 세대갈등, 젠더 대립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내부 분할 등이 중첩되어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에서 진보진영이 두 동강났다는 의도적·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은 항상 다양한 입장을 갖고 태도를 달리했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세력과의 연대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손을 잡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한국 사회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와 정치세력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는 뜨겁고도 중요한 쟁점이다. 진보의 개념이 바뀌어서 민주-진보세력으로 집합화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조국사태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내놔도 각오는 해야 한다. 그것이 양비론이든 양시론이든 아무 관계가 없다. 나름의 원칙이 있지만 객관화된 기준이나 척도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 조국사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지배계급 내부의 분파 대 분파의 투쟁이다. 윤석열을 칭송하다 극단적 반대로 돌아선 입장이나 윤석열을 극렬 반대하다 극찬으로 돌아선 자유한국당이나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분파끼리의 주도권 다툼에 다름 아니다. 자칫 향후 한국 정치가 비기득권층인 비강남에 대한 강남의 지배체제로 규정되거나 비화될 수도 있다.

둘째, 보수수구 세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광화문 집회에 그토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가한 것은 근래에 처음 있는 일이다.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대타격을 받아 지리멸렬해졌던 보수가 다시 활력을 찾으면서 재집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정치의 핵심은 참여하는 숫자인데, 서초동 촛불보다 광화문 집회의 숫자가 더 많고 지지가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의 문제를 전면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서초동 집회에 조국수호보다 검찰개혁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가한 이유다. 검찰이란 조직은 자기 자신과 조직 보위를 위해서 자본 및 정치권력과 끊임없이 결탁하고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해온 대표적인 반동집단이다. 검찰개혁은 재벌개혁의 디딤돌인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사법기관이 정치과정을 대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많은 갈등과 분쟁들을 모두 사법적 판단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기관이 아닌 사회현상을 겨냥한 표현이다.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기관에 주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가장 대표적인 사법과잉 사건이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이 사건은 진보진영에게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 우려로 이어진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사법의 우위는 부지불식간 일어난다. 정치가 사법화하면서 재판관 구성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정치의 사법화와 달리 사법의 정치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넷째, 언론개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론의 기능은 신속·정확보도인데 신속함이 정확함을 너무 앞질러 버리다 보니 사실 관계에 입각한 보도행태가 실종된 지 오래다. 이들 언론은 86세대, 386세대, 586세대 등의 언어 사용을 바탕으로 세대갈등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기사를 자주 보도한다. 처음 386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대학을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학생운동을 했든 하지 않았든 모두 386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들 세대를 동일한 공간과 시간 속에 동일한 경험이라는 공통점으로 분석하는 고유명사가 된 거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이나 세력이 같은 세대를 대표해서는 안 되는 대표의 과잉이며, 본질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하다. 언론의 역할에 따라 담론 형성과 사회 문제가 다르게 나타난다. 언론개혁의 절실함을 다시 느낀다. 또한 이번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일부 진보좌파가 무의식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믿으려고 한다. 이른바 반복학습효과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이성에 의해서 규정된다.

다섯째, 조국사태의 핵심은 계급 문제가 본질이다. 학벌주의로 인해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는 부유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혜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를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계급적 박탈감이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빈부 격차가 교육 격차로, 교육 격차가 직업 격차와 소득 격차로 이어져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소위 2030세대는 이 문제를 세대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부유한 기득권층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매우 다르다. 광주항쟁을 경험했거나 87년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기성세대 중에 지금도 빈곤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입도선매하는 것은 현실의 반만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2030세대를 공정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이 인식하고 있는 공정성은 예전의 공정성과는 그 개념과 정의가 전혀 다르다. 고려대 서울캠퍼스에서 조국사퇴를 내세우는 촛불집회 현장에 고려대 조치원 캠퍼스 학생이 참여한 것을 놓고 자격을 운운하는 일부 학생의 차별적 발언은 전혀 공정하지 못한 행위이다. 소위 스카이를 중심으로 일부 대학에서의 촛불 시위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보다는 자신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이해당사자주의에 불과하다. 이들로 인해 대다수의 2030세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세대 갈등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존재하고 더 심화될 수도 있다. 세대 갈등으로 사회 문제를 진단하거나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대 갈등은 사회 갈등을 유발한 다양한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본질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대중들이 계급적 주체로 계급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계급투쟁으로 계급불평등을 넘어서자. 그럼에도 현재의 헬조선은 기성세대에게 그 책임이 크기 때문에 현재 세대에게 사과하는 태도는 항상 필요하다.

마지막 특징으로 자본주의 윤리와 타락의 경계선을 들 수 있다. 인사정책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서 개입할 여지는 없다. 다만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그렇고, 한국사회가 예전부터 지배세력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해 있다 보니 노동자민중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권력을 획득한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인물로 인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니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조국이 적임자인지의 여부는 대중들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서 임명하는 것이 가장 최상이기에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을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이 관문을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어려운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민주-진보 세력이 스스로 내세워온 보편 가치 등을 내팽개치다보니 그들 자신이 도덕적-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있고, 더 타락한 보수수구 세력이 오히려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가치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진보좌파 역시 그러한 도덕적-윤리적 헤게모니를 차지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런 과정을 한층 더 촉진시키는 요인이다. 따라서 전사회적 수준에서 도덕적-윤리적 헤게모니가 자유주의 세력으로부터 보수세력에게로 이전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자유주의 세력의 미래가 보수수구 세력의 헛발질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는 대중들의 동의와 지지가 핵심이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조국사태로 촉발된 한국 사회 문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심층적으로 다룰 것을 약속한다. 어떻게 끝을 맺던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흔을 남겼다. 쌍방 모두 증오가 담겨있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진보좌파가 대중들의 역동성을 견인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만 늘어간다.

조국사태는 광풍이 되어 한국 사회의 모든 이슈를 쓸어버려서 다른 쟁점과 이슈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갈 때 잠깐 이슈가 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요란하고 첨예했던 한일갈등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돼지 열병도 피해갔다.

이번 『진보평론』 81호의 <특집> 주제는 <신중국 70년>으로 정했다. 금년이 중국 혁명 70주년이라 이를 평가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역시 조국사태로 인하여 사회적 관심이 저조하다. 그래도 괜찮다. 진보평론 구독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홍규는 「중국 ‘개혁개방’ 40년: 정리와 평가」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40년을 총론 수준에서 정리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신자유주의 모델’을 수용했지만 계획체제가 급속히 붕괴하면서 전폭적으로 신자유주의 모델을 수용했던 러시아 및 동유럽의 체제전환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점증적이며 우회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개혁개방 2.0 시대는 서방의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해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새로운 체제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의 일인 권력이 강화되는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 구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산당 통치 하의 새로운 권위주의가 시장경제하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킨다면, 사회주의현대화 초강국이 되려는 중국의 꿈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장윤미는 「중국 체제의 ‘특이성’ 이해하기」에서 두 개의 극단적인 ‘특수주의’에서 벗어나 중국체제의 특이성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시도로 중국사회에서 형성되고 통용되어온 주요 정치 개념을 다시 성찰해봄으로써 중국 정치의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로 삼고 있다. 중국체제 안에서 맥락화된 현대정치의 개념, 대표적으로 ‘정치’와 ‘권력’, ‘법치’의 의미가 우리의 민주사회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있다. 중국 체제는 근대 시기 이후에도 관념(문화)과 제도가 합일되는 ‘일원적 통합을 지향하는 정치’의 방향으로 조직되어왔다. 이러한 경로와 방식으로 형성되어온 정치적 특성이 오늘날 중국정치의 ‘특수성’이라 일컬어진다. 향후 중국체제에 관한 분석은 중국 사상과 문화와 역사를 포괄하는 시야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체제를 장기적 과도기로 보거나 혹은 체제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중국이 가진 조건을 특수화하는 이른바 ‘특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중국체제의 특이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 사회를 더욱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줄 뿐 아니라, 중국과의 장기적인 공존관계를 모색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정구의 「국가자본주의론으로 본 중국 사회」는 국가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 신중국의 등장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성립이었음을 지적하고 이후 개혁개방을 거치며 지금까지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본다. 시진핑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투쟁하는 자스커지 노동자와 이에 연대하는 학생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 중국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모종의 자본주의 체제임을 보여 준다.

다음으로 피경훈은 「‘문화대혁명’과 그 ‘기원’의 몇 가지 축선(軸線)에 관하여」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문화대혁명을 다루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20세기에 발생한 최대 규모의 급진적 정치 운동으로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세계를 관통한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현대 정치 사유의 임계점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피경훈은 그 동안 한국에서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를 간략하게 살핀 후 잡지 <홍기>, 특히 그 중에서도 문화대혁명이 발발했던 1966년에 출간된 <홍기>에 대한 독해를 중심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본 과정을 통해 문화대혁명의 핵심인 '사회주의적 주체성'의 탐구가 어떠한 인식론적 구조 속에서 배태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살펴보고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다음으로 박철현은 「개혁기 중국의 사회적 변화」를 주제로 하였다. 이 글은 중국사회의 변화를 농촌농업, 국유기업, 향진기업, 단위체제, 도농이원구조, 호구제도 등의 제도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건국 초기 이러한 제도들 형성의 조건과 그 이후의 전개과정을 해명한 후, 사회주의 시기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개혁기에 들어선 이후 제도들의 변화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특히 사회주의 시기에서 개혁기로 이행과정에서 이러한 제도들이 어떠한 (불)연속성을 보이는가에 주목하여 서술하는 역사적 접근법을 견지한다.

활동가인 홍명교는 「중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다루고 있다. 그는 2010년을 전후하여 폭발한 신세대 농민공의 파업 물결은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의 계급투쟁 주체의 출현을 알렸다. 하지만 당-국가에 의한 철저한 포섭 전략과 노동자운동 활동가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난관에 부딪혀 있다. 2018년 제이식 투쟁은 우발적인 경제투쟁의 틀에 갇혀 있던 노동자운동에 개입하고자 하는 정치적 시도였다. 신세대 농민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계급적인 주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들의 사상적 혁신을 통한 대중적 지지 획득 여부가 이후 노동자운동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집 마지막 주제는 이재현의 「중국의 부상과 미중 패권 경쟁」이다. 중국 부상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라 민중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단지 ‘중국 특색의 축적 체계’를 만드는 데 기여를 했을 뿐이다. 트럼프 등장 이래 미국은 일방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강압적으로 중국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는 중국의 탓이 아니며 또한 중국이 미국에 굴복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미중 간의 패권 대립을 두 제국주의 국가의 충돌로 봐야 한다. 중국의 경우, 하이테크에 의한 민중에 대한 감시 및 통제 체제를 만들었는데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는 <기획>으로 <한일갈등과 제국주의>를 구성했다. 특집과 기획을 동시에 구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슈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선택했다.

먼저 남기정은 「평화를 화해에 연결하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관계」에서 2018년 이른 봄에 개시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한일관계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남북한의 화해가 한일관계를 매개로 북일간 접근을 이끌어낸다면 이로써 구축되는 남북일 평화삼각형은 다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특히 북일 국교정상화는 한일공동선언의 재확인과 판문점선언과 함께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을 완성하는 기초가 된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역사화해와 한반도의 두 당사자 사이의 평화구축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들 사이의 세 양자관계는 동북아시아에서 다자주의 신 안보질서를 만들어내는 기초이다.

두 번째 기획 주제는 배성인의 「한일갈등의 정치경제학과 제국주의」이다. 그는 아베에 의해서 촉발된 한일갈등은 무역전쟁, 경제전쟁, 역사전쟁이 분명하지만,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이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래 자본주의 쇠퇴가 가속화되면서 격화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패권쟁투다. 몇 가지 투쟁 방향을 제시하면 첫째, 한일 노동자연대는 필요조건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셋째, 반제국주의 반전평화의 관점에 선 동아시아 민중 연대가 필요하다. 미중 갈등,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를 핵심으로 한 동아시아 긴장격화 맞선 동아시아 민중 연대는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기획> 마지막 주제는 고민택의 「일본 아베정권의 제국주의 발호와 노동자민중의 과제」다. 일본에 의해 촉발된 한일갈등은 미·중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세계패권전쟁 정세 아래에서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부상하게 되면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약화되자 일본이 일본 제국주의를 더욱 확실히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천명했다고 본다. 아베는 과거사 문제 해결 뒤에 제국주의로 전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국주의 발호를 통해 그 결과로 과거사를 덮으려는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반제국주의 기치를 걸고 최대한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펼쳐 나가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은 반제국주의 기치를 걸고 최대한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펼쳐 나가야 한다. 일본 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을 지도부 차원의 교류를 넘어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투쟁계획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노동자민중 연대를 앞장서 제시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번 호 발언대는 박희은의 「영남대의료원 본관 70m 건물 꼭대기에 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있습니다」를 실었다. 13년 동안 해고자로 기나긴 투쟁을 이어왔던 박문진, 송영숙 두 여성노동자가 지난 7월1일 70m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의료봉사 하는 나이팅게일이 참 멋있어 보여 영남대의료원에 입사했던 그들이 마주한 의료원의 현실은 끔찍했다. 박근혜가 주인으로 있던 영남대의료원은 오로지 돈벌이 중심으로 운영되는 의료원은 노동자들이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그런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의료봉사의 꿈은 잠시 접어둔 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과 두 해고자들은 지난 13년 동안 안 해 본 투쟁이 없다고 한다. 이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자신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불법적으로 파괴한 범죄행위를 철저히 조사해서 처벌하고 노조파괴를 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철폐이다. 영남대의료원 투쟁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 드린다. 연대가 승리의 원동력이다.

이번 호는 일반논문도 한 편이다. 김정주는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과 구조개혁의 과제」에서 집권 3년차에 들어선 문재인정부의 집권기 동안 ‘소득주도성장론’과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몇 가지 논쟁들을 검토하면서 문재인정부가 천명하고 있는 경제개혁의 과제들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김정주는 한국사회 내에서 심화되어 온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불평등을 재생산하면서 정당화 해온 기존의 산업구조 자체를 새로운 산업구조와 산업생태계로 대체하는 문제야 말로 한국경제 구조개혁의 핵심과제임을 밝히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개혁정부’가 아닌 ‘개혁정당’의 존재가 구조개혁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김정주는 ‘개혁정당’의 존재란 측면에서 한국의 진보정치가 해결해야 할 대중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번호 서평은 김미정이 「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그린비, 2019)을 다루고 있다. 마침 이 책의 저자인 최진석은 올해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자이다. 서평과 수상소감을 연이어 읽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김미정은 ‘감응’의 문제의식을 통해 혁명과 코뮨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개인들의 이념이나 신념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던 혁명과 코뮨의 문제를 발본적으로 다시 보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마음, 감정, 정서, 감응 등 무엇이라고 표현되든 그것은 저자가 가지는 affect의 문제의식 속에 놓여 있는 문제들임이 분명하다. 과거의 전위-지도 모델이 더 이상 불가능한 오늘날, 다르게 혁명을 상상해야한다면 그것은 마음, 감정, 정확히 말해 감응(affect)이라는 문제계를 경유해야만 한다. 우리는 21세기 혁명에 대해 어떤 감응을 갖고 있을까?

올해는 세계체계 분석으로 사회과학계를 크게 뒤흔든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가 사망했다. 이로써 세계체계 분석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월러스틴은 보편과 특수라는 근대 세계 이해의 이 이분대립이야말로 허구적이며,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새로운 접근은 이 허구적 이분 구도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그의 주장을 보면, 서유럽을 중심부로 16-18세기에 확립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1750년 이후의 산업혁명과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확대되어 19세기 말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포괄하는 말 그대로의 '세계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없으므로 약 50년을 주기로 팽창과 정체를 되풀이하는 경기변동을 맞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가 재정비되며 더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동력이 프롤레타리아화하여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데까지 착취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본가들이 더 이상 이윤을 낼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세계질서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의 대저작인 <근대세계체계>는 그의 사망으로 인해 제6권 발간이라는 대기획은 미완인 채 중단되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목차

<특집: 신중국 70년>
이홍규 중국 ‘개혁개방’ 40년: 정리와 평가
장윤미 중국 체제의 ‘특이성’ 이해하기
이정구 국가자본주의론으로 본 중국 사회
피경훈 ‘문화대혁명’과 그 ‘기원’의 몇 가지 축선(軸線)에 관하여
박철현 개혁기 중국의 사회적 변화
홍명교 중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이재현 중국의 부상과 미중 패권 경쟁

<기획: 한일갈등과 제국주의>
남기정 평화를 화해에 연결하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관계
배성인 한일갈등의 정치경제학과 제국주의
고민택 일본 아베정권의 제국주의 발호와 노동자민중의 과제

<발언대>
박희은 영남대의료원 본관 70m 건물 꼭대기에 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있습니다

<일반논문>
김정주 문재인정부 2년 경제정책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과 구조개혁의 과제

<서평>
김미정 미래의 혁명과 코뮨을 상상하는 방법

<제12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최진석 다 부르지 못한 노래를 다 부르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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