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회사’만 고집하는 한국가스공사

2년간의 정규직 전환 협의, ‘직접고용’ 언급 회피...노조 11월 파업 나설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 남발로 이어지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자회사 노동자들이 기존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고용조건에 시달리고 있어,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반대 및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1월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2년간의 정규직 전환 협의, ‘직접고용’ 논의조차 안 돼...노조 투쟁수위 높이나

한국가스공사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의를 위해 지난 2017년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꾸렸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총 14차례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노사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공사 측이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자회사 설립’만을 고집하고 있는 까닭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앞서 노사전협의체는 10차에 걸친 회의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 선정을 논의했다. 그 결과, 소방업무와 CAD(설계)업무 등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 대상에서 제외됐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에서 정규직 전환을 권고한 전산직종까지 전환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홍종표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공사는 1200여 명의 비정규직 중 시설, 미화, 특수경비 등 1100명에 달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를 자회사로 보낸다는 계획”이라며 “전산직종은 직접고용이 원칙이라는 고용노동부 중앙컨설팅의 권고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협의 과정에서는 직접고용의 타당성 여부조차 논의되지 않았다. 노조는 지난해 3일간의 파업을 진행했지만 이후에도 공사 사장이 공석이라는 이유로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노사전협의체 논의는 2018년 9월 중단됐다가, 10개월 만인 지난 7월 재개됐다. 홍종표 지부장은 “공사는 왜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여야 하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노조는 꾸준히 직접고용을 요구해 왔으나 지난해에는 사장이 공석이라는 이유로, 최근에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그저 침묵하거나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지난 22일 열린 14차 협의에서 노조는 공사 사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박유리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은 “공사 측은 한 번도 직접고용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14차 회의 때 직접고용이 불가한 이유를 물었더니 ‘직원들이 반대한다’, ‘권한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결국 권한이 있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면담을 신청했지만, 사장은 ‘나눌 이야기가 없다’며 면담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노사전협의체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노조는 11월 총파업을 포함한 수위 높은 투쟁도 고려중이다. 노조는 지난 3일 운영위원회를 투쟁본부체계로 전환해, 18일부터 오늘(31일)까지 17곳의 한국가스공사 본사 및 지역본부를 돌며 전국 순회투쟁을 벌였다. 11월에는 파업찬반투표를 거쳐 농성과 파업 등에 나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 무분별한 자회사 남발로 퇴색

이들이 자회사를 거부하는 까닭은, 최근 ‘정규직화 방안’이라는 명목으로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조건의 자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8월 기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등에서 42개의 자회사가 설립됐다. 홍종표 지부장은 “자회사에 공사 퇴직자를 포함해 낙하산 인사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반관리비가 늘어나 사실상 노동자 처우개선이 어렵고, 정권에 따라 공기업 정책도 달라지기 때문에 고용도 불안정해진다”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회사는 모회사에 더욱 종속적 관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지난 6월 공공운수노조가 개최한 국회 토론회에서도,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임금과 고용불안, 노동조건 등을 개선시키지 못한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자회사에서 노사분규가 발생했을 시 수탁해지를 명시한 독소조항이 존재하거나, 수의계약에도 불구하고 낙찰률을 적용해 노동자 처우개선을 가로막는 사례도 존재했다. 용역업체보다 오히려 일반관리비 및 이윤이 증가하거나, 인건비 비중이 오히려 줄어든 회사들도 있었다.

중소기업벤처기업진흥공단 자회사의 경우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으로 정부 가이드라인조차 지키지 않고 있으며, 한국잡월드 자회사의 경우 복리후생이 용역회사 시절보다 후퇴하기도 했다. 모회사가 자회사와 용역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경영합리화나 사업 축소, 기타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할 시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을 넣는 등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사례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각 기관의 ‘노사전협의체’는 별다른 근거 없이 자회사 전환 방식만을 밀어붙이며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사측은 논의 처음부터 자회사가 합리적이며 당사자에게도 좋다는 식으로 노조를 압박한다. 직접고용은 정년연장이 불가하고 경쟁채용을 거쳐야 하지만, 자회사는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되고 경쟁채용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구도를 만든다”며 “가스공사의 사례처럼, 자회사를 거부할 경우 노동자들이 지칠 때 까지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끌기도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