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메리칸 퍼스트’에 노동자는 없었다

[INTERNATIONAL] 노동조합 ‘패싱’하고 노동자계급에 애국심 호소

[출처: Jacobi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잇따라 해외 파병 방침을 발표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로 오르내리고 있다. 10월 초에도 시리아 철군 방침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신 트럼프는 국내에서의 ‘계급전쟁’에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닌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자본가에 대한 내전에 나서자고 말했듯, 트럼프는 기업 편에서 노동자에 맞선 내전에 나선 셈이다.

미국 대선을 1년 앞둔 현재에도, 트럼프는 친기업 인물로 알려진 인사를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할 만큼 더욱 노골적인 반노동 행보를 걷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말 자신의 3번째 노동부 장관으로 유진 스칼리아를 지명했는데, 그는 기업 편에서 금융이나 노동 규제 소송을 주도해온 변호사로 최악의 반노동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6년에는 월마트 편에서 노동자 최소 1만 명에 대한 건강보험료 8%를 삭감하는 소송을 해 승소한 적도 있다.

트럼프는 애초 2016년 대선 운동 기간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이유로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 바 있다. 제조업 및 석탄 등과 같이 노동자 밀도가 높은 지역의 산업을 다시 부흥시킬 것이며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의 여파에 직면해온 노동자 계급은 그런 트럼프를 적극 지지했다. 그의 승리에 러스트 벨트 지지율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노동자 계급의 지지는 중요했다. 그뿐 아니라 트럼프는 조직 노동자 표도 쓸어 담았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2016년 11월 보도에 따르면, 노조원 1명 이상 가구의 트럼프 지지율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받은 득표율의 약 8% 가량 뒤처질 뿐이었다. 이 수치는 1984년 레이건 이래로 그 어떤 공화당 대선 후보가 받은 표보다 높은 것이었다. 이에 화답해 트럼프는 임기 첫 주 동안 여러 노조 지도자를 백악관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현재, 트럼프의 ‘아메리칸 퍼스트’에 노동자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규제 완화 등으로 노동권을 후퇴시켰으며 노조를 공격하는 다양한 조치를 강행했다. 미국의 노동유연성은 매년 세계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열악하지만, 트럼프는 이 노동조건을 더욱 후퇴시켰다.


노동을 혐오한 대통령...규제 완화와 삭감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를 뺏어 왔을까? 최근 미국 좌파지 〈자코뱅〉에 ‘노동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폴 프리 스커드에 따르면, 트럼프의 반노동 조치는 규제 완화와 노조 할 권리를 침해하는 행정 명령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트럼프의 대표적인 규제완화는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할 수 있는 임금 기준을 연간 2만3천 달러에서 3만5천 달러로 인상한 것이었다. 이는 공공 및 민간 부문 노동자 40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그 후과가 컸다. 또 2017년 산재사망자는 5,147명으로 5년 전에 비해 519명이나 증가했지만, 미국연방직업안전보건국(OSHA) 인력을 기관 설립 이후 가장 낮은 규모로 축소했다. 공식 산업재해 기록을 보관해야 하는 규정도 폐지했다. 매년 약 1100만 달러를 절약한다는 이유로 건설이나 조선소 노동자에 대한 발암 물질 대응 훈련 요건도 삭제했다.

노조 할 권리도 행정명령을 통해 후퇴시켰다. 미국 노동운동가들은 노조 조직률이 비교적 높은 공공부문이 트럼프의 최전선이 됐으며, 그가 이를 표적으로 일련의 행정 명령을 내렸다고 지적한다. 우선, 공공부문 노동조합 등이 실시하는 사업 기회를 축소하고 이를 이유로 해고를 더욱 쉽게 했다. 활동가들은 이 행정명령으로 노조원을 더욱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됐다고 보고 있다. 또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노조 활동 시간도 축소했다. 트럼프가 위원 전원을 임명한 노사분규 중재 기관 연방서비스조정패널(FSIP)도 12건의 분쟁 중 10건에서 사측 편에 설 만큼 친 기업 인사로 구성됐다. 연방 공공기관 일자리를 계약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민영화하는 기관도 늘었다. 산업인준견습제도(IRAPs)를 개정해 기업이 주도하는 자체 인증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면서 노조의 주도권을 약화하기도 했다.

노동 관계 공공기관 예산안도 기업의 편의를 위해 조정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 노동운동을 감독하는 연방정부의 기관은 원칙적으로 2개가 존재하는데 이 기관 예산안을 반노조 기조에 따라 수정한 것이다. 첫 번째 기관은 노동부의 노사표준국(OLMS)으로, 노조 선거 절차나 예산을 감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로, 노동자들의 단체협상권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며 노조 결성 과정에서의 선거를 감독한다. OLMS가 노조의 책임을 중시한다면, NLRB는 기업의 책임을 우선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취임 뒤 바로 2017년 책정된 OLMS의 예산을 20% 늘린 반면, NLRB는 6% 삭감했다. 올 초 트럼프가 유발한 셧다운으로 80만 연방노동자들이 1개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하고 저소득층이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은 계속됐다. 이를테면, 랜달 스티븐슨 AT&T 대표는 세금 감면을 받게 된다면 일자리 7천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금 220억 달러를 받은 뒤에는 일자리 2만3328개를 없애고 자본 투자를 12억 달러 줄였다. 이 기업에서 세금 감면을 받은 뒤 급여 인상 등의 보너스를 받은 노동자는 4%에 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전국 34개 공장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돌입한 GM도 5개 공장 운영을 중단하여 1만40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없앨 예정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공약도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시간당 최저임금 10달러 도입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인프라 건설 사업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노동자의 일자리를 앗아간다고 날을 세웠던 자유무역협정의 경우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탈퇴했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신해 TPP와 유사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추진하고 있다. USMCA는 나프타보다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더욱 강화하며 특히 바이오의약품에 10년 동안 독점권을 부여해 기업의 권리를 강화한다. 또 비시장국가와의 무역을 제한하여 국제 무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노동이나 환경, 기업분쟁 부문이 개선됐다는 평도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노동조합 ‘패싱’과 이간질

트럼프는 행정 명령을 통해 반노동 조치를 강행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조를 비방하는 선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트럼프는 노조를 정기적으로 비난하면서 ‘노조비를 받지만,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매년 미국 노동절이면 노조를 비난하는 트윗을 빠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난해 리차드 트럼카 AFL-CIO(미국노동총연맹 - 산별노조협의회) 의장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비판하자,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그가 말한 것 중 일부는 우리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미국 자체의 성공이며 미국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잘 해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대신 자신은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나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사람들은 트럼프가 노조를 아예 ‘패싱’하고 노동계급 유권자를 겨냥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사회단체 ROKK Solutions의 정치분석가 론 본진은 미국 공영방송망 PBS에 지난 7월 “트럼프는 실제로 버려졌거나 잊혀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있다”며 “이것은 노조의 메시지였어야 했지만, 트럼프가 그것을 가로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칸 퍼스트’ 3년이 경과한 현재, 미국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했다. 미국 언론 〈비지니스인사이더〉 9월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 경제 여건이 지속적으로 나아졌지만, 미국 소득불평등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2018년 지니계수는 전년도 대비 0.003 악화한 0.485로 드러났다.

노동조합들은 단체행동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10월 19일 〈뉴욕타임즈〉가 “경제 여건이 좋은데도, 왜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파업에 나서는 것일까”라고 보도한 것처럼, 노조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파업 등 단체행동으로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청이 지난 2월 12일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파업이나 노동쟁의에 나선 노동자들의 수가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모두 48만5000명이 지난해 노동쟁의에 참여했는데, 이 수는 198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고 미국 온라인 뉴스 VOX가 보도했다. 최근에도 GM에서는 전미 4만6천 노동자가 34개 공장에서 파업에 돌입했고, 시카고 교육노동자 2만5천 명이 교육예산과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 중이다. 2년 전 수천 명이 참가한 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병원노조 유나이트 히어(UNITE HERE) 의장 D. 테일러는 “정부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기업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돌봐야만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