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만났다면 그이가 살아있을까?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09)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명예회복 투쟁 이야기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11월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 공무원노동조합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이하 ‘회복투’)가 주최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해가 떴다가 찬바람이 불었다가 다시 해가 떴다가,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이날 집회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공무원 해고노동자 복직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집회 사회를 맡은 공무원 해고노동자 김민호 씨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이야기한다.

“시민여러분, 우리는 공무원 해고자 입니다. 우리는 범죄를 저질러서 해고 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좀 더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세계적 기준에 맞는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단 하루 결근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었습니다. 해고자 136명 중에 5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공무원노조 해고자들은 길게는 18년, 평균 15년을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집회 장소를 지나가는 시민들 중에는 수고한다며 인사와 음료수를 건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짜고짜 욕을 하는 이들도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에 가서 하지 왜 여기서 하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왜 집회를 하는지, 왜 해고가 되었는지 물어보면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피켓도 읽어보지 않고 “해고 당할만해서 해고된 거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민호 씨는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된 이유를 짧은 집회 내내 틈이 날 때마다 이야기했다.

민호 씨는 서울시청 교통정책과와 복지정책과, 주택정책과 등에서 22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2015년 말에 해고가 됐다. 일반 주택에 살기 어려운 시민들이 임대주택 작은 평수에서 넓은 평수로 옮길 수 있도록 임대주택 평형을 다양하게 만드는 사업이 민호 씨가 했던 일 중 하나였다. 2014년 민호 씨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여 당시 ‘박근혜 정부가 마녀정권’이라는 내용과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개인 SNS에 두 차례 올렸다. 그 개인적인 글로 인해 민호 씨는 ‘공직선거법위반’과 ‘대통령 명예훼손’ 등으로 공무원 신분을 박탈당했다. 민호 씨는 공무원노조 136번 째 해고노동자가 돼 5년 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나경원 원대대표 지역구 사무실 앞 회복투 집회 장면 [출처: 연정]

평균 나이 58세, 2021년에는 절반이 정년을 맞아

공무원노조가 출범한 2002년 이후 공무원노조에 가입한 2,969명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졌고, 530명의 징계해고자가 발생했다. 그중에 136명은 아직도 복직하지 못하고 5년~18년 동안 명예회복과 원직복직 등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투쟁을 해왔다. 해고노동자들은 공무원노조 건설과 노동3권 보장 요구(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 시국선언 참여, 근무조건 개선 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들 중 90%에 해당하는 123명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해고됐으며, 이들의 해고 시기는 공무원노조 출범 초기인 2004~2005년에 집중돼 있다. 3년이면 복직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2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의 평균 해고 기간은 15년이다.

회복투 김은환 위원장이 집회 여는 발언을 한다. 과천시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했던 김은환 씨 역시 2004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136명의 동지들 중 42명은 오늘 당장 법(해고노동자 복직법)이 만들어지더라도 단 하루도 근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정년을 맞게 되는 해고노동자는 37명이다. 그사이 5명의 해고노동자는 세상을 떠났다. 암으로 3명이 사망했고, 교통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한 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지난 6월에 정년을 맞은 전대곤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동지들 곁을 떠났다.

현재 해고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58세이며, 지금 바로 복직이 될 경우 단 하루라도 근무할 수 있는 노동자는 96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평균 잔여 근무기간도 3~4년에 불과하다. 2021년이 되면 해고노동자들의 절반이 정년이 되어 복직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에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과 명예회복을 수차례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 해고노동자의 SNS 프로필 사진에 있던 “노무현은 해고시켰고, 문재인은 죽였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자유한국당만 찬성하면 조금의 명예라도 되찾을 수 있어

2017년 ‘노동조합관련 해직공무원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등 24인 발의)이 발의됐으나 20대 국회가 마무리되어 가는 현재까지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해고노동자들은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을 만나 해당 법안을 설명하고 동의를 요청했고, 현재 국회의원 179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11월 14일에는 해당 법률을 심의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136명의 해고자 대부분이 참여정부 때 해고됐습니다. 그래서 참여정부를 이어받은 현 정권을 상대로 원직복직 투쟁을 했고, 주로 민주당과 청와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조차도 해직자 원직복직 특별법에 반드시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만 찬성하면 비록 우리가 만족할 수 없는 법이지만, 조금이라도 명예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은환 위원장은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속해있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자유한국당 지도부에서 반대하고 있어 자신들도 11월 14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반대 입장을 밝히겠다고 이야기한 것과 관련해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확인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집회가 끝난 후, 해고노동자들이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찰들이 막았다. 경찰과의 실랑이 끝에 올라갔지만, 나경원 의원 사무실은 굳게 잠겨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결국 이들은 나경원 대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야 했다.

  문이 잠긴 나경원 의원 사무실 앞에 서있는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우리가 가깝게 있었으면 이야기하면 되는데...

“나는 장례식장에 갔어도 실감이 안 났어요. 안 믿기는 거죠.”

이날 나경원 의원 사무실 앞에서 만난 이창화 씨는 故전대곤 씨의 죽음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창화 씨는 고령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으로 해고를 당해 故전대곤 씨와 함께 대구경북 지역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회복투 활동을 해왔다. 창화 씨는 전재곤 씨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회복투 성원 중 한 명이다.

“해직 상태가 고립되다보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이 올수 있어서 수시로 현직자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만나 밥도 먹고 술이나 차도 마셔요. 10월 1일 날 만났을 때 아무 낌새도 없었어요. 그때 (고인이)조국 이야기하고 검찰개혁 이야기하고 열변을 토하고 갔으니까 우린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죠.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실감이 안 나죠.”

이 일을 생각하면 창화 씨는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10월 10일 날 대구경북 지역 해고노동자들과 현직자들이 함께 모여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계획이 보류돼 故전대곤 씨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월 10일 공교롭게 세종시에 갑작스레 회복투 집회가 잡혀 갔다 왔어요. 그러면서 그 모임이 보류된 거죠.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우리가 서울 농성장에 올라왔어요. 우리가 다 빠져버리니까 그 계획(모임)이 진행이 안 되잖아요.”

창화 씨는 서울 농성장에 와있을 때, 故전대곤 씨에게 카톡을 받았다고 했다. “밥 잘 먹고, 감기조심하고, 건강 잘 챙기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안부와 격려가 담긴 내용이었다. 그리고 10월 14일 주말 농성조를 남겨두고 절반의 대구경북 해고노동자들이 내려온 다음날 故전대곤 씨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이들이 내려오던 10월 14일에 故전대곤 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해고노동자들은 故전대곤 씨가 해고를 당한 이후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때서야 알게 된다.

“우리가 가깝게 있었으면 그때 답답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면 되는데... 늘 그런 상태(힘든 상태)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했으면 무사히 넘길 수도 있지 않았겠나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 다음날부터 집에 오면 그 생각이 자꾸 나는 거예요. 세월 가면 무뎌지겠지...”

창화 씨는 그날 이후 계속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우리가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창화 씨 뿐만 아니라 많은 해고노동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부가 한 부당징계, 정부가 잘못 인정하고 결심해야

“차라리 퇴직 이런 거 없이 사람들(해고자들)이 계속 모여서 움직였다면 갈 때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게 아쉽고.”

이창화 씨는 故전대곤 씨가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故전대곤 씨는 남구청 인사계에 근무하다 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 투쟁으로 해고를 당했다. 당시 故전대곤 씨는 공무원노조 대구경북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 뒤에도 대구경북지역 회복투 위원장, 공무원노조 4기 교육국장과 총무국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정년을 맞이하기 직전인 2017년 말까지 대구 김부겸 의원 사무실 농성을 하는 등 원직복직에 대한 끈도 놓지 않았다.

“해직되기 전에 인사 주무 담당자였어요. 그런 자리는 통상 바로 진급하는 자리에요. 상식이 풍부하고. 업무적인 능력도 대단했던 사람이에요. 그때 노동조합 안했으면 바로 진급해서 승승장구 했을 사람인데, 이족으로 와서... 더 안타깝죠.”

이창화 씨는 故전대곤 씨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등 복직 투쟁을 위해 건강관리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감정이 좀 모라 카나. 순박하다 해야 되나. 감정이 억수로 풍부했어요. 세월호 때 집회를 저랑 같이 갔다 왔어요. 그날 세월호 아이들 영상이 공개 되서 그거를 보는데, 이 사람이 막 통곡을 하는 거예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통곡을 했었어요. 물을 떠다주니 물마시고 한참 뒤에 진정되고 그랬어요.”

창화 씨는 故전대곤 씨가 선거운동 때문에 대구에 내려왔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크게 호통을 쳤던 유명한 일화도 들려준다. 창화 씨는 고인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했다.

“해고자 복직문제는 정부가 결심하면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안하고 있다고 했어요. 정부가 추진한 부당징계로 우리가 해직된 건데. 정부가 결정하고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면 해결 되는 거잖아요. (고인은)정치권이 계속 핑계만 대는 게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창화 씨는 고인이 현직들(현재 근무 중인 공무원들)이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분리되는 정서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도 없지 돈도 없지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지난 2016년 공무원노조에서 공무원 해고노동자들의 우울증과 관련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비율이 약 53%로 상당히 높게 나왔다. 이 비율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증가한다. 51세 이상에서 절반이, 56세 이상에서는 63%까지 높게 나타났다.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과 원직복직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그 이유일 것이다.

김은환 위원장은 해고노동자들이 정년이 되면 그나마 노조에서 받던 생계비가 끊길 뿐 아니라, 대부분이 연금 수급 자격도 안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관계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직장에서 퇴직을 해도 관계가 멀어지는데, 이거는 더하죠. 동료가 없잖아요. 십여 년 동안 해고자로 살았으니 친구관계도 소원해지고. 어떤 가족들이 이걸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어요? 자기 혼자 남는 거죠. 연금은 고사하고 사람도 없지 돈도 없지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내가 괜히 했나?’ 사람들이 힘들죠.”

공무원 해고노동자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너무 많이 힘들다”거나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또는 “나는 괜찮은데, 다른 동지들이 힘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김은환 위원장은 본인도 그렇고 해고노동자 대부분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 벽이 무너졌던 순간이 한 번 있었다고 했다. 작년에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집단 심리 상담을 진행했을 때였다. 일인시위를 하고 있던 양성윤 씨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성윤 씨는 양천구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2010년 공무원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지 4일 만에 해고를 당했다. 쉬는 토요일 날,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주최하는 노조탄압 규탄대회를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어 진행된 야4당이 하는 집회에 앉아있었다는 것이 해고 사유였다.

“나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쓰라고 했는데, 그거 할 때까지도 웃고 했던 사람들이 발표가 시작되고 다 울었어요. 첫 번째 발표한 사람이 울고, 그 다음 발표한 사람도 울고...”

해고노동자들이 과거의 자신을 생각할 때는 가족과 공무원을 하게 된 이유, 잘못된 공무원 사회 관행을 바꾸기 위한 노조 설립 등이 있었다. 노동조합 깃발만 꽂으면 80~90%가 조합원 가입을 할 만큼 큰 지지를 받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자신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나경원 의원 사무실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공무원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호소하거나 부탁할 일이 아니에요

“길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랑하는 가족이 복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사례도 있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북받쳐 온 거 같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나의 미래가 없어요. 거의 다 미래가 비어 있었어요. 그 미래는 공무원 조직사회에서 뭔가 하고 싶고 우리 동료와 후배들에게 훌륭한 공무원 선배가 되는 것인데, 지금 내가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그 동료들은 이미 다 퇴직을 했고, 복직을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라는 현실적 문제들이 다가오는 거죠. 복직을 하더라도 큰 미래가 없는 상황이 심각한 거예요. 노동조합 활동하고 해고당한 뒤에 훌쩍 커 비린 아이들과의 추억이 하나도 없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다시 뒤돌아보게 되고...”

성윤 씨는 해고 기간 동안에 쌓인 그러한 감정들이 우울증이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애써 자기를 뒤돌아보지 않는 거예요. 이 동지들이 뿔뿔이 떨어지고 나면 정말 모든 걸 자기 혼자 감내해야 되잖아요. 그게 큰 비극인 거죠. 저는 공무원노조 위원장도 했고, 민주노총에서 부위원장도 했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랄까, 그런 게 돼요. 꾸준히 뭔가 일을 만들려고 하죠. 작년에는 구청장 선거에 나가기도 했고.”

이제 곧 해고 10년 차가 되는 성윤 씨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목적의식을 갖고 여러 일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또한 편안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료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자신의 목소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약속한 사항임에도 2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이렇게 추운 거리에 나오게 하는 게 슬픈 상황이죠.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희생이 나올지. 그게 제가 될지 또 누가 될지 모르겠어요. 호소하거나 부탁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바로 대답해야 할 일이에요. 그게 올바른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명의 해고노동자 이야기를 듣고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다” 또는 “내가 괜찮지 않다”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다고 해서 힘들고 괜찮지 않은 걸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은데 괜찮지 않은데, 왜 5천일 넘도록 18년 동안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투쟁을 하겠는가? 설사 당사자들이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해도 힘들고 괜찮지 않음을 알아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이야기하면서 아픔을 보듬어주는 마음이 절실한 때다. 11월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