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도로공사에서 대구 가스공사까지, 3박4일의 투쟁

[기고]톨게이트노동자 투쟁승리와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투쟁 기행문

지난 11월 5일부터 나흘간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승리·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투쟁이 진행됐습니다. 순회투쟁은 톨게이트 직접고용 시민대책위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참여했습니다. 지난 3박4일간 기록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톨게이트 노동자는 기운이 세다

투쟁사업장 순회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나절 고민했다. 내가 따라나서도 되는 자리인지 알 수 없었고,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으로 긴 시간을 떠난다는 것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투쟁사업장을 찾아다닐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만은 확실했다. 단풍놀이 하듯 가을여행 삼아 3박 4일간의 여정을 즐기리라 마음먹고 짐을 쌌다. 잠잘 때 깔고 자는 매트와 담요를 다 싸들고 따라나섰다.

톨게이트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이하 공사)는 김천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성주읍에서 거리가 멀지만 사드가 배치된 골짜기마을 소성리에서 꾸불꾸불한 산길로 난 도로를 따라 달리면 2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서울고속도로 캐노피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찾아가보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컸던 터였다.

대법원은 공사가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문을 냈다. 하지만 공사는 대법원 판결문을 이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노조탄압과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말았다. 마침내 9월 9일 성난 황소같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기습적으로 공사 김천본사로 쳐들어왔다.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 날로부터 김천본사 건물 안에서 300여명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건물 바깥으로도 농성 텐트촌이 형성됐다.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투쟁을 시작하는 날, 김천본사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공사 정문 부터 후문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텐트가 각양각색의 색깔과 모양으로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마침 순회투쟁을 시작하는 날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서울로 오체투지를 하러 떠났다. 건물의 정원은 빈 텐트촌으로 휑한 감도 있었지만, 순회투쟁을 떠나기 위해 멀리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발대식을 위해 몸자보를 나눠 입고, 건물 농성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에 대열을 정비했다. 사회자가 인사를 나눌 때마다 톨게이트 농성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공사 건물을 들썩였다. 노동자들의 기세가 대단하다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정원의 비어있는 텐트촌이 외롭게 느껴진 건 싸늘한 가을 날씨 탓이었나보다.

두 달 가까이 김천본사 건물 안에 갇혀있음에도,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어디서 자꾸만 솟아나는지 신기했다. 버스에 탑승할 시간이 다가와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응원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보라물결 순회투쟁단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 창원공장에서 올라온 지엠비정규직 노동자들, 기아차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철도공사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서 참여했다. 사회운동 활동가들까지 30여명 정도가 버스에 짐과 몸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회투쟁단은 모두 보라색 몸자보를 입었다. 몸자보 가슴에는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적혀있었고, 등판에는 ‘톨게이트 투쟁승리, 자회사폐기, 직접고용쟁취! 노동개악저지’ 라고 적혀있었다. 내 몸에 걸칠 때만 해도 투박스럽게 보이던 몸자보는 사진을 찍을 때면 화사하고 때깔이 좋아보였다. 화사한 봄날을 맞이한 것 마냥 밝고 아름다웠다.

처음 순회버스가 도착한 곳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천막농성장이 있는 공장 앞이다. 널찍한 주방과 잠자는 공간을 구분하고 짐을 쌓아둘 수 있는 창고까지 겸비된 짜임새 있는 농성장이다. 천막농성장을 마치 박물관 구경하듯 꼼꼼히 돌아보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입에서 연신 감탄이 터진다.

그러나 더 감탄 할 일은 아사히글라스에 근무하는 정규직 800여명과 비정규직 200여명이 연간 벌어들인 돈이 1조 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이 5년 째 투쟁하면서 5-6천억으로 줄었다는 소문도 있다. 남기웅 수석부지회장은 회사의 사내유보금이 9000억 원에서 최근 8000억 원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4년을 넘어서 5년을 바라보는 투쟁에도 희망은 있다. 검찰은 아사히의 불법파견을 기소했고,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는 이미 노조가 이겼다. 그러나 긴 싸움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희생에만 의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재정사업을 해야 하는 고충이 크다. 남기웅 수석은 당장 다음 달 해고노동자에게 생계비로 지원되는 돈 100만 원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수줍게 고백했다. 11월 22일 생계비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을 열 계획이라는 깨알 같은 홍보도 잊지 않는다.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떠나기 전에 아사히글라스 공장 정문으로 올라갔다. 보라색 몸자보를 입고 우르르 몰려오는 우리를 본 경비는 당황한 듯 바쁘게 문을 닫았지만, 우리가 쳐들어갈 기세가 아니란 것을 눈치 채고는 다시 문을 열어두었다. 공장 앞에서 전범기업 아사히를 규탄하고 공장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3박 4일 간 장소를 바꿔서 단체사진을 찍는 여정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순회투쟁은 저항의 크기를 키우는 여행

경산시청 앞 천막농성장, 경산환경지회가 늘 천막농성을 했던 자리는 대림택시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140일 넘는 시간동안 악질사용자 처벌과 노조인정을 요구해왔다. 택시월급제도 뜨거운 감자였다. 택시노동자도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사납금 제도가 철폐되지 않는 이상 최저 수준의 월급제 시행마저도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더 무서운 것은 거대한 자본이 택시사업에 뛰어드는 추세이며, 작고 영세한 택시회사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택시업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려는 조짐이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경산지역의 택시노동자 투쟁집회에는 늘 함께 하는 지역의 연대가 있었다. 그곳에는 환경미화원과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버스는 서른 명의 순회투쟁단을 싣고 거제를 향해 달려갔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줄여서 거통고)에서 마중을 나왔다. 돼지국밥집에서 따뜻한 국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다.

순회투쟁에 나선 톨게이트 노동자 해옥 씨는 사람들 앞에서 말 하는 게 떨리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려내기 위해서 용기를 냈다.

“저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6500명가량 됐어요. 2013년부터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해 2015년에 1심과 2심에서 승소했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도로공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5000여명이 자회사로 간 거예요. 저희 사업장 직원 수는 180명이었는데 하이패스가 들어오면서 사람이 잘렸고, 저희가 그만두기 전까지 86명 정도가 남았어요. 저희는 사람이 많으니까 괜찮지만, 지방 같은 작은 곳은 사람이 적으니까 일 대 일로 협박하고 윽박질러서 자회사로 보내진 거예요.

저희가 올해 6월 말로 해고가 됐는데 5월부터 해고 작업이 시작됐어요. 공식적으로 자회사로 가지 않은 1500명은 7월 1일부로 해고를 당했습니다. 투쟁이 뭔지도 모른 채, 처음 시작을 서울고속도로 캐노피에 오르는 걸로 시작을 했어요. 캐노피에 올라가서 농성하다가 8월29일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어요. 아 우리가 이겼다. 대법원 승소를 했으니까, 우리는 이제 도로공사의 직고용이 될 것이라면서, 대법원 앞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그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우리가 좋아서 덩실 덩실 춤을 춘거예요. 그 감동은 말로 할 수가 없어요. 기뻤어요.

그런데 대법원 승소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9월9일 도로공사 이강래가 입장발표를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자들 한해서만 직접고용을 받아주겠다고, 그 외에는 각자 법원 판결을 받고 와야지만, 직접고용을 시켜준다고 한 거예요. 대법원판결 승소자가 300여명이었거든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9월 9일 날 김천본사로 250여명이 점거농성을 들어간 거예요.

저희는 사실 한국노총 소속이었어요. 그런데 한국노총의 협상내용이 얼토당토않아서 저희는 그 협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70여명이 한국노총을 탈퇴 하고 민주노총 소속 민주연합노조로 온 거에요.

오늘 저희가 순회투쟁에 많이 참여했어야 했는데, 서울에서 6킬로미터 오체투지를 해야 해서 많이 오진 못했어요. 저희는 진짜 이런 걸 잘 몰랐어요. 저만 힘든 줄 알았어요. 막상 아사히와 경산 택시노동자들 천막농성장 가보니까,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우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희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직접고용이 되더라도 연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해옥 씨의 이야기를 듣던 조선하청 노동자 한분이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긍정적으로 말씀하지만, 자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분들 보면 부럽지 않냐?”고 질문을 했다. 해옥 씨도 처음엔 자회사로 가길 희망한다는 사인을 했었다. 남편도 젊지 않은 나이에 얼마나 다니겠냐면서 자회사로 가길 원했다. 그러던 해옥 씨가 자회사로 가겠다는 사인을 무효화하기 위해, 한국도로공사로 직접고용이 되길 원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비정규직문제가 심각했고, 자식이 대를 이어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고용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러다가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상한 협상을 하고 말았다. 대법원 승소판결과 2심판결을 받은 사람은 직접고용하고, 1심 대기자는 임시직으로 고용한다는 협상이었다. 해옥 씨도 1심 재판을 진행 중에 있지만 아직 판결을 받지 못해 대기상태다. 지금까지 직접고용을 쟁취하겠다고 활동했는데 임시직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해옥 씨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으로 일한지가 13년이 넘었다. 정규직이 되고도 호봉이 십 수 호봉 올라갔을 시간이다. 임시직이라고 하는 순간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해옥 씨는 한국노총톨게이트노동조합 조합원 시절, 노조에 답답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정보교환이 없었다. 궁금해서 물어보면 대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조합밴드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올리면 오히려 찍혀서 행동에 제약을 당하기도 했다. 해옥 씨는 탈퇴한 게 아니라 밴드에서 제명을 당하고 말았다. 민주노총으로 옮겨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할 때라서 옮겨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노총톨게이트노조 위원장이 을지로위원회가 내놓은 안으로 이강래와 야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투쟁의 현장을 떠나버렸다. 직접고용을 열망했던 70여명의 조합원은 한국노총을 따라나서지 않고 탈퇴를 선택했다. 김천본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옥 씨는 일찍 제명을 당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곧바로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로 옮겨와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거통고조선하청노동자들의 현실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에서 초과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강제하면서 주 52시간제라는 말은 우리사회에서 기본근로시간을 부르듯이 자연스러워졌다. 조선소는 일용직노동자들이 용접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일당이 셀 것이라 기대하지만 포괄임금형식으로 받는 일당에는 각종 초과근로와 수당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최저임금 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거리가 있으면 무조건 해야 하고,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회간부는 3박4일 순회투쟁단과 간담회가 있다고 조합원들에게 알려도 잔업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조선소 일용노동자들의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거기다 조선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재은폐의 증언들도 생생하다. 그들은 사람이 다쳐도 119에 실려 나가지 못하고 트럭에 실려 나가는 비참한 상황을 날마다 보고 들어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조선소는 아직도 산업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아 거대한 쓰나미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거제에서 마련해준 청소년문화센터에서 하룻밤을 편히 묵고 새벽 5시30분에 기상했다. 새벽 6시30분, 선전전을 위해 대우조선소 서문으로 연결된 다리위에 섰다. 발밑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듯 하더니 짜릿한 어지럼증이 올라왔다. 길 건너에 작업복을 입은 대우조선소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왔다. 여기저기서 건네주는 선전지를 한 손에 받아들고 출근하기 바쁘다. 현수막을 쥐고 있던 우리는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안녕하세요. 저희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입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한국도로공사는 저희를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판결문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탄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싸워서 직접고용을 쟁취할 겁니다. 권리를 되찾을 겁니다. 여러분도 노동조합에 가입하세요. 여러분의 노동 권리를 찾으십시오.”

순회버스는 대우조선 노동조합 사무실로 향했다. 대우조선 경비실과 배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지나 노조 건물 앞에서 내렸다. 대우조선의 어마어마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입에서 옛날에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투쟁의 망치로 노동자의 하늘을 보라.
마침내 전노협 전선에 우뚝 서다.
투쟁은 가슴속에 살아 심장으로 뛰고
동지는 가슴속에 살아 해방을 노래하네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
눈보라 날리는 서울 철로위로


언제였던가, 소나기 퍼붓던 옥포의 조선소가 바로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대우조선소가 아닌가? 30년도 더 됐을 법한 노래를 이 곳에서 부르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그 당시의 총파업은 본 적 없지만, 상상해보았다. 저 거대한 크레인 위로 민주노조의 깃발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그 아래 수만의 노동자들의 팔뚝질과 우렁찬 구호가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를.

어깨를 맞대고 노동자의 꿈과 힘 모아
잡은 손 놓지 못하는 놓지 못하는
노동해방의 약속으로
전노협 전선으로


30년 전엔 노동자 총단결로 총파업으로 노동해방세상을 건설하자고 외쳤다. 노동해방 깃발 아래에만 서면 가슴이 뜨거웠다. 운동의 전망은 새 세상,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노동해방세상이라고 불렀다. 분명 꿈같은 이야기였을지라도 결코 꿈이 아니었고, 언젠가는 우리가 건설하고야 말 역사라고 믿어왔다. 기나긴 여정을 걸어오면서 꿈꾸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어찌 견뎌내면서 걸어올 수 있었을까?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으나 옥포의 조선소에서 서울철로까지 노동해방 깃발 휘날리면서 총파업 하는 날에 다시 조선소의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순회버스는 창원을 향해서 달렸다.

자본은 망하지 않는 손쉬운 폐업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9월 9일 공사로 들어갔을때 다섯 개 노조가 공동투쟁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일반연맹 소속의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와 인천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있었고,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있었다. 다섯 개 노조가 협력해 서울고속도로 캐노피에서 80일 넘는 시간동안 공동투쟁을 한 것도 신기하지만, 공사 건물 안을 점거할 때 바깥 마당 구석구석에 텐트촌을 형성해 노숙농성을 하는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있었다. 김천본사 건물 안 농성은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인천일반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골고루 모여서 9월 9일부터 두 달여 기간을 넘기면서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일반노조의 거점은 창원지역이다. 창원지역의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민주당 경남도당에서 톨게이트 사태를 악화시키는 집권여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틈새 시간이 남았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건물 강당에 모인 우리는 순회투쟁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도로공사 김천본사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순회투쟁단의 해단식과 더불어 멋진 문화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는데, 의욕 넘치는 톨게이트 노동자 주영 씨가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몸짓선언에게 한창 배우고 연습할 때여서 우리더러 비정규직철폐연대가 몸짓을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뒤에서 따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막상 한 소절씩 손동작과 발동작을 배웠더니 손을 쭉쭉 뻗더라도 각이 나와 줘야 하는 동작이었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 도저히 초보자들이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없는 레벨이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전체 집단몸짓은 ‘내일의 노래’를 따라 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사회에선 알아주는 몸짓패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허공’ 과 창원지역 노동자 몸짓패 ‘세모단’ 구성원이 함께 하고 있어서 초보자들은 뒤에서 잘 따라 하기만 해도 괜찮았다. 거기다 이제 갓 민주노총으로 옮겨온 신출내기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제일 잘 싸우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김천본사에서 날마다 몸짓연습을 하면서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문화공연 한 파트를 뚝딱 해결하고는 한국지엠창원공장으로 이동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10월24일 하청업체 7개사에 대해 12월말까지 계약해지 통보를 한 상태였다. 주간 2교대 근무를 1교대 주간근무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공정을 정규직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려온 것이었다. 생산물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조치라면서, 사내하청 노동자 650여명의 대량해고를 예고했다. 지엠은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한국정부로부터 8100억 원을 지원 받았다. 그러나 지엠의 구조조정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정부는 국민혈세로 8100억 원을 지원한 기업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해도 재제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해고 이후의 대책으로 취업알선을 이야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엠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올 연말에 벌어질 일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손 놓고 당할 수만 없어 노조는 해고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화와 투쟁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순회투쟁단은 오후반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맞춰서 지엠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 문 앞에서 한참동안 선전전을 했다. 퇴근하고 나오는 노동자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리가 들고 있는 현수막 사이사이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지나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선전지를 나눠주었다. 방송차에서 마이크를 집고 목청껏 이야기 했다.

평범한 사람이 담대하게 투쟁하다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청와대로 올라갔던 톨게이트 노동자 100여명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진격투쟁 하던 중 경찰폭력에 실신하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톨게이트 노동자 일부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무실로 점거농성에 들어갔고, 또 다른 일부는 세종시 국토부 김현미 장관실로 점거농성을 들어갔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천본사에서 점거농성하는 대오는 여전히 거점을 사수하고 있었다. 버스 안은 다친 동료의 소식을 듣고 침울해지기도 했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과감하게 투쟁하면서 자신의 투쟁을 확대하고 있었다.

울산에서의 간담회 장소는 북구비정규직센터였다. 널찍한 공간에 순회투쟁단과 우리를 맞이한 울산 노동자들이 모여 앉았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현장조직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울산지역의 노동자들은 톨게이트 노동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웠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눴다.

“저는 노조활동 시작한 지가 일 년 정도, 해고 되서 투쟁한지는 겨우 5개월 정도 됐기 때문에, 투쟁이니, 동지니 이런 말이 엄청 낯설었어요. 우리 영업소에서 직원이 18명인데, 저 빼고 다 자회사를 선택했어요. 누가 뭐라든 나는 직고용 갈 거야, 그런 생각만 했어요. 아까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공사 직원들이 밤 12시에도 찾아오고, 주말, 휴일에도 찾아와서는 자회사로 가라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 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끝까지 자회사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제가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올해는 왜 그렇게 비도 많이 오고, 태풍도 많이 오는지, 새벽 3-4시가 되면 자다가 비가 쏟아져서 이불이 젖어서 울면서 빗물을 털어내고, 태풍이 오면 천막이 날아 갈까봐 막 붙들고 있었어요. 제일 힘든 건 화장실 문제였어요. 어떻게든 다 살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노총 톨노 위원장이 먼저 내려갔고요.

저 같은 사람은 판결을 못 받았어요. 지방은 노조가입한지 얼마 안 되고, 직고와 자회사 가르면서 노조를 시작해서, 노조가 뭔지도 모른 상태로 소송을 하면서, 진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2박 3일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되겠지 했는데, 81일을 캐노피에서 살게 됐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한국노총의 야합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 합의문에 동의한다는 것이 저에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임시직 기간제 갈려고 그렇게 싸운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민주노총으로 와서 끝까지 투쟁해서 직접고용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기회가 될 때마다 순회투쟁하는 것처럼 연대하면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은 평범한 주부였다고 소개한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명선 씨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에서 81일을 살아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담대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투쟁은 연대로서 지속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5시가 되자 물이 쏟아지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6시 10분까지 버스로 탑승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순회투쟁단을 실은 버스는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준비한 선전지를 챙기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내렸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아침 선전전을 시작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새벽 6시 30분인데도 오토바이 군대가 지나갔다. 신호등 건널목에 서있는 인파들 사이로 선전전을 하는 순회투쟁단이 보였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현대중공업 정문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현대중공업의 출근시간은 몇 시인지 궁금해 물어보니 8시라고 한다.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이유야 알 길 없지만, 사내에서 아침식사도 해결하고, 헬스클럽이 있어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밥 먹고 작업장으로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규직이거나 사무직원이라면 가능할 텐데, 현장직이라면 가능할까? 미처 중공업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전전을 마치고 현대중공업노조에서 마련해준 아침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은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이동했다.

톨게이트 노동자 갑순 씨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살림만 해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일이 첫 사회경험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에 들어갔다가 민주노총으로 옮겨왔는데,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경산의 택시노동자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들은 서울고속도로 캐노피고공농성과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보기도 했고, 지금은 공사를 점거하고 있지만, 자신들보다 더 열악하게 농성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순회투쟁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갑순 씨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오래되고 낡은 천막농성장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울산과학대 김순자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면서 순회투쟁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성장은 오래 되어 닳고 낡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농성투쟁을 대비하듯 벽 한 켠에는 생수병이 가득 쌓여있었다.

장구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노래 1000곡은 부를 수 있다는 김순자 지부장은 입담도 대단하다. 사회자가 말을 짧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면 두 시간 동안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투쟁 6년의 사연이 술술 나온다. 노조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싸웠던 이야기를 다 들으려면 두 시간으로 부족하다.

최근에 울산과학대와 협상이 있었나보다. 울산과학대 측에서 다른 좋은 곳으로 취업을 알선해주겠다는 안을 낸 모양인데 단칼에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2007년에 투쟁하다 해고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싸워서 일하던 곳으로 복직을 한 경험이 있다. 조합원을 쫓아내고 새로 채용한 청소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은 이겨서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 측이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원직복직이 가능하다. 자리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 측 제안을 거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지난 6년의 투쟁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한 싸움이 아니다. 지역의 여러 노동조합과 전국의 수많은 연대자들의 후원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다. 그들이 후원하고 연대한 건 좋은 곳에 취직하라는 뜻이 아니다. 권리를 박탈당한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지고 현장에 복직할 것을 소원했었다.

청소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67세다. 익숙하게 일해 왔던 곳으로 돌아가서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맞이하겠다는 소원이 무리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김순자 지부장은 학교측에 경고했다.

“내 당장 복직 안 돼도 괜찮다. 나는 이 자리에서 늙어죽을 때까지 울산과학대 괴롭히면서 계속 투쟁할끼니까, 괴롭힘 당하고 싶으면 너거 마음대로 해라. 좋은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한테 주고 우리는 학교에 청소하면 된다.”

지난 6년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해고를 당한 건 청소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소노동자가 최저임금만 받으란 법도 없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일하러 나온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생활임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하고 거리로 내쫓은 울산과학대의 야만적인 노무관리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청소노동자들이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뜻은 노동자의 자존심을 세우는 아주 중요한 의미다.

역시 가을여행은 바다다. 울산까지 와서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순회투쟁단은 바다를 향해 달렸다. 주전이라는 곳이다. 모래 대신 몽돌이 몽글몽글 모여 있는 해변가에 보라물결 순회투쟁단이 내렸다. 울산에서 후원금 봉투를 두둑이 만들어주셨다는 기쁜 소식과 바닷가에 온 김에 회는 못 먹어도 회덮밥과 물회 중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다.

가짜 정규직화 포장지를 벗긴 목소리 “자회사 꺼져!”

대구로 향했다. 한국가스공사 퇴근선전전을 하기 위해서다. 어둑어둑해지는 대구의 동구혁신도시로 들어서자 휘황찬란한 가스공사 건물이 윤곽을 드러냈다. 김천에 위치한 한국도로공사는 마치 거대한 성처럼 높고 웅장했었다. 가스공사는 낮지만 굴곡 있는 선을 가진 화려하고 사치스런 건물이었다. 공공기관 본사건물의 규모에 순회버스를 탄 탑승자들은 저마다 혀를 내두르며 놀랐고, 비난이 쏟아졌다. 저 성은 누구의 피땀으로 지은 것인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성문 앞에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자회사정책 폐기, 직접고용 요구’를 적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시작했다.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용역업체에 소속되어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지만, 노조를 만들고 나서는 그런 불안은 좀 가신 듯 보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을 때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감언이설로 기대를 키워준 거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규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정규직화가 아니었다. 가스공사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회사로 밀어 넣으려고 움직인다. 아직은 말만 무성한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문 정권이 들어서고 지금까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고 1500명 직접고용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분발하게 됐다고 한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한 전선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어 큰 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순회투쟁의 마지막 밤은 대구에서 보냈다. 잠자리는 전교조대구지부에서 마련했다. 마지막 밤을 보내기 전에 순회투쟁 중간평가 시간을 가졌다. 넓은 대강당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른 명의 순회단이 3박4일간 소감을 들어보기로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3박 4일을 돌아다녀보니까, 저희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면서도 해옥 씨는 “저희가 투쟁하면서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서운 게 발언이라 했거든요. 3박 4일 순회투쟁이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따라나섰는데, 가는 곳마다 마이크 잡고 발언하라고 해서 엄청 부담스러웠고, 주최 측에서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어요.”라고 말한다.

가는 곳마다 낯선 노동자들 앞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다.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서운 발언을 용기 있게 해냈다. 고충도 있었지만 해옥 씨는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너무 감동적인 것은 저희 일이잖아요. 물론 크게 보면 비정규직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 톨게이트 문제로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는 것이고, 저희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분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해주시는 걸 보고는 아주 큰 감동을 받았어요.”

순회투쟁단에 참가자들은 돌아가면서 소감 한마디씩을 발표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도 들렸다. 보성에서 토종씨앗을 보존하고 농사짓는 농부는 톨게이트 투쟁 중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에서 승소한 판결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일했던 요금수납이 아닌 곳으로 발령을 받아 복귀를 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2심 재판 승소자들이 현장을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분명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1500명 직접고용을 쟁취하겠다고 투쟁에 나섰고, 연대는 조직됐다. 오늘까지 2박 3일 동안 반드시 직접고용 쟁취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그 이유는 우리가 옳다고 믿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사람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사측의 갈라치기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문제이고, 연대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정리를 한번 해야 한다.”

필자는 울산 숙소에서 잠들기 전에 SNS를 통해 김천본사에 점거농성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 중 2심 판결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톨게이트 노동자 6500명 중 1500여명이 자회사로 전환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스스로 쟁취하겠다며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을, 청와대 노숙농성을 하며 지금껏 지켜왔던 원칙은 ‘자회사 꺼져! 직접고용 쟁취!’ 였다.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이 먼저 굴욕적인 야합으로 투쟁이 좌절할 위기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원칙을 고수하며 현장을 지켰던 민주노총 소속의 조합원들과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넘어온 사람들로 투쟁은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자들 중 대법원 승소자들이 현장복귀를 했다. 현장으로 들어가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애초부터 대법원 승소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요금수납원 업무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조업무에 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은 요금수납원 업무가 아닌 졸음쉼터에서 청소를 하거나 잡초 뽑기 등의 온갖 험한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순회투쟁을 시작한 날도 현장 복귀한 노동자가 풀을 베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였다는 소식이 올라왔었다. 다치자마자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다음날 손가락을 꿰맸다는 소식도 들렸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위원장이 산재처리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분명 공사의 현장복귀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불이익이 있고, 해고에 대한 위협과 부담이 존재한다. 노조 지도부는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싸움의 과정을 통해 투쟁은 더욱 단결하고 확장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해왔다.

이미 1500여 명 중 한국노총의 조합원 수백 명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이강래 사장의 간교한 술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파업참가자 수는 이전에 비해 턱없이 줄어든 상황이다. 노조지도부가 나서서 대법원 승소자를 뚝 떨어뜨려 현장으로 밀어 넣는다면 매 순간 어떤 법적인 결정이 발생할 때마다 투쟁대오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게 될 것이다. 투쟁대오는 점점 줄어들고 약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사측이 갈라치기 하는 방식을 모르지 않는 노조가 사측의 의도한 대로 따라간다면 백전백패의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문제는 노동자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혼신을 다해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이 좌절하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순회투쟁단이 3박4일간 투쟁사업장 순회투쟁을 하고 있을 때,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 8동을 쳤고, 오후 2시면 문재인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를 향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무실 점거농성과 국토부 김현미 장관 사무실 점거농성을 이어갔다.

순회투쟁단은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민주당 김부겸사무실로 항의방문을 했다. 보라색 비정규직 이제그만 조끼를 입은 순회투쟁단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유히 김부겸 사무실을 찾아올라갔다. 민주당사로 들어갔을 때, 당직자는 경멸과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가 자신도 한 때 민주노총이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을 때, 나는 순간 머리꼭대기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그를 향해 배신자 그 입 다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이내 부끄러웠다. 그는 뭘 배신한 걸까?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천오백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민주노조로 표상됐던 민주노총의 전 위원장 출신 이 씨는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민주당 송의원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았고,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 엄격하지 않았다. 야합은 아니어도 거래는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들은 민주당으로 스스럼없이 건너가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앞장서고도 민주노총 출신이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민주노총 대구본부장 출신 권 씨가 민주당으로 옮겨갔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를 할 겨를도 없이 집권여당 민주당은 노동법을 개악하기 위해서 칼을 빼들고 칼춤을 추고 있다. 이미 최저임금은 밥값과 방값을 삭감할 수 있게 됐고, 노동시간은 고무줄처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게 됐다. 근로기준법은 걸레가 돼 너덜너덜해져버렸지만, 노조 할 권리는 땅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한다. 과연 누가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런 민주당의 일개 의원에게 톨게이트 직접고용에 관한 입장을 묻는 것도 넌센스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순회투쟁단은 영대병원으로 향했다.

우리의 투쟁이 민주노조운동의 나침반이 되길

영대병원 옥상에서 박문진 씨가 양팔을 힘껏 벌려 순회투쟁단을 환영한다. 너무 멀어서 사람의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은 몸짓도 그녀로선 최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더 가까이서 그녀를 볼 수 있는 4층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에 휘청거리는 작은 몸으로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힘내라 박문진!”을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한 때는 천명도 넘는 조합원을 거느렸던 위원장이었다. 영대병원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희생당한 해고 13년 차 간호사이자 노동자다. 그녀는 완강하게 뜻을 굽히지 않으며 고공농성을 버텨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현장으로 복직해야겠지만 그 보다 해고의 원인이 됐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실행했던 자의 책임자 처벌을 원하고 있다. 병원 꼭대기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녀는 민주노조운동이 어디서부터 무너져왔고, 무엇을 복원해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출처: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황상윤]

3박 4일간의 순회투쟁 일정은 끝을 달린다. 처음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 행선지는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다. 공사의 너른 마당 텐트촌은 쓸쓸해보였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쓸쓸한 자리는 투쟁사업장 3박4일 순회투쟁단이 채웠다. 순회투쟁하면서 만났던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와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 화약을 만드는 노동자들, 그리고 철도공사, 가스공사, 병원 등의 공공기관의 노동자들, 세상을 움직이는 주역들이 속속 한국도로공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새 투쟁문화제가 개최되는 도로공사 후문의 너른 마당은 연대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건물 안에서 농성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우리를 떠나보낼 때 보다 더 활기차고 기운 넘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순회투쟁하는 가운데 짬짬이 연습한 ‘내일의 노래’ 집단 몸짓도 무사히 마쳤다. 무대에 선 3박4일 순회투쟁단을 대표해서 톨게이트 투쟁하는 노동자 주영 씨의 발언으로 이 글을 갈무리 한다.

“동지여러분, 저희 8명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비롯해 35명으로 구성된 순회투쟁단은 빠듯했던 3박 4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복귀했습니다.

우리는 해고되고 나서 살을 녹이는 여름날 뙤약볕조차 어떻게 이겨냈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정말 가열차게 투쟁하면서 우리만큼 억울하고 우리만큼 힘든 사람은 세상에 다시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까 도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이요. 대한민국이 온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우성으로 몸살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어느 현장 할 것 없이 한 곳도 가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한 달에 27, 28일을 근무하고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으로 팍팍하게 살아가야 하는 대림택시 노조 동지들을 보며 가슴이 아렸고,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어도 모든 책임을 노동자의 부주의로 돌리면서 사장 놈들한테 내려지는 처벌이라고는 고작 벌금 30만 원으로 면책시키고 부상당한 노동자를 트럭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한다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동지들을 보며 입이 있으되,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갖은 고초 다 겪으며 복직 투쟁하시는 평균연령 66세의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조 동지들을 보면서 겨우 3개월 싸우고 힘들다고 회사의 회유에 맥없이 나가 떨어져 나간 수납원동지들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이 몹쓸 놈의 비정규직이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22년 전 무능한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무리하게 OECD에 가입했다가 국가를 부도직전까지 몰고 갔었고, 위기극복을 핑계 삼아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냈던 거 아니겠습니까? 위기를 졸업했으면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하는데, 기업들에겐 산업용 전기료 공짜 수준에 법인세 할인 등 각종 특혜를 베풀어 배를 불려주고, 대한민국 전체노동자의 절반가량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사회를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진 자들은 배 터져 죽고, 서민들은 배고파 죽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본가들 이렇게 착취한 우리의 피와 눈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구개발 등 건전한 곳에 재투자 하지 않고, 유보금이란 이름으로 곳간에 쌓아놓은 채 부동산 투기 등으로 오로지 자기네들 재산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약 8년 전 현대그룹에서 시가 3조5천억 원짜리 강남의 한국전력 부지를 무려 세배에 달하는 10조5천억 원에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라면 그렇게 물 쓰듯 펑펑 쓸 수 있겠습니까? 이 괴물같은 비정규직을 이제 우리들의 손으로 끊어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의 중심에 우리 수납원들이 있습니다. 우리 수납원들의 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드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가고, 열심히 일하면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는 이번에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노동법 개악, 이것은 우리가 필사적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노조를 무력화하고 노동자를 노예화시키려는 이 악법이야 말로 원청, 하청,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거 없이 이 땅의 노동자라면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로 결집하여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합니다.

어제 청와대 앞 경찰들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부상당한 동지가 발생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길 없었는데요.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는 이제 어떤 부당한 처우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그야말로 정말 개 돼지처럼 살아야만 합니다.

제발 바라건데 주위 동료들 가족 친지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 내일 우리 전국노동자대회 10만 아니 100만 대군이 결집하여 우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고 비로소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투쟁하는 톨게이트노동자 윤주영 11월8일 투쟁문화제 발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