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식 재개발, 기술 장인 쫓아낼까

[이슈_ 힙지로의 속사정]


‘협업’ 한다면서 ‘협업’ 무너뜨린 박원순 식 도시재생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의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 2017년 6월, 서울시가 고시한 ‘세운상가일대 도시재생 활성화계획’에는 도시의 산업과 공동체를 육성하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도심 창의제조 산업 중심으로의 육성(산업재생) △보행중심공간으로 도심 내 대표 명소 공간 조성(보행재생) △주민 삶의 방식과 역사를 존중하는 도시재생 추진(공동체 재생) 등을 내세웠다.

서울시는 창의적 제조 산업 육성과 공동체 재생을 위해 ‘다시 세운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벌다. 낡고 오래된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는 대신, 이곳을 재생시켜 창의적 제조 산업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시는 세운 지역 일대의 기술 장인들과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결합하는 ‘협업’을 강조했다. 세운상가 내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는 청년 스타트업과 예술가 등 10여개의 팀이 입주했다.

사실 기술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시스템은, 기존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상인들이 수십 년 간 다져온 생산 방식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청년들과 기술을 공유하며 협업해야 하는 기술 장인들이 재개발 광풍에 밀려 세운 지역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운3-1,4,5 구역에서는 350여 개 점포가 모두 쫓겨났고, 그곳에서 협업 시스템을 이루며 작업을 하던 기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운3-2,6,7 구역도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이며, 시행사가 토지 소유권을 이전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세운4구역은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져, 조만간 철거를 앞두고 있다. 철거된 세운3-4구역에는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 호텔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같은 세운 지역의 재개발 광풍은 서울시가 사업시행인가를 내 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서울시는 세운상가군 일대의 산업적 잠재력을 취합·공유하고, 기술 장인들과 청년의 협업을 지원하겠다며 ‘세운상가산업지도’도 만들었다.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이 인터넷 플랫폼에는 지난해 세운3-1구역(입정동)에서 쫓겨난 공장이 버젓이 소개돼 있다. 철거와 재개발에 반대하며 지자체 및 시행사와 싸우고 있는 세운3구역의 공구상점들도 ‘산업적 잠재력’이 있는 업체로 등록돼 있다.

중구청도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구청은 지난 7월, 세운3-6,7구역에 토지수용재결을 위한 열람과 의견 청취를 진행했다. 토지수용재결은 개발구역 내 토지 보상 가격을 정하는 재개발 절차다. 한편으로는 지난 2016년 4월부터 관광객과 시민을 상대로 을지로 골목길 투어인 ‘을지유람’을 진행하고 있다. 을지로 3가에서 출발해 철거 예정지던 을지면옥, 양미옥 등의 노포와 철거 후 쫓겨난 3-1,4,5구역, 현재 철거 예정인 3-2,6,7구역도 을지유람의 코스다. 중구청은 철거를 앞두고도 해당 지역에서 을지유람을 진행했으며, 그곳의 기술자들을 게스트로 내세우기도 했다. 철거 예정 지역인 신아주물 김학률 사장은 “재개발을 진행하면서도 중구청은 신아주물이 서울의 문화유산이라고 이야기하며 을지유람 관광을 진행했고, 취재를 해 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청계천 을지로 일대에서 활동하는 청년 기술자, 예술가, 기술 장인 등은 재개발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상인·장인·예술가들로 조직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우리나라 제조업을 이끌어온 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장인들이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고 일터가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는 재개발을 전면 중단하고 청계천 을지로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해 산업생태계를 보존하고 활성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원순 시장의 도시 재개발, 오세훈 이명박과 무엇이 다를까?

역대 서울시장들은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 철거와 도심 재개발 사업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 이주대책으로 서울 장지동에 ‘가든파이브’ 건물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가 1조3천억 원을 들여 건립한 가든파이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통·상업 시설 단지다. 이주대책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서울시는 상가를 7000~8000만 원에 분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입주 시기가 되자 분양가가 1억5천만 원 수준으로 뛰었다. 2007년 당시 청계천 상인 6만여 명 중 이주 의사가 있던 상인은 6,097명이었지만 실제 계약한 상인은 1,028명에 불과했다.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 같은 건물에는 칠·주물·프레스 종목의 입주가 불가능해 실효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09년에는 세운 지역 일대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세운상가 등 8개 상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1km 길이의 세운초록띠공원을 조성하는 동시에 122m(36층) 높이의 업무·도심활성화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오 전 서울시장은 2009년 세운 1구역에 세운초록띠공원(과거 현대상가)을 조성했지만, 이 밖의 계획들은 더 이상 추진하지 못했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로 1구역과 연계해 시행하려 했던 세운4구역의 개발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 전 시장의 사업은 968억 원을 쏟아 부은 3748㎡ 규모의 텃밭 조성으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이들과 다를까. 그동안 박 시장은 세운상가군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며 노점, 상인들의 강제퇴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이전 시장들의 막가파 식 철거와 개발이 아닌 ‘시민 참여와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박 시장은 2012년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해 뉴타운 해제 지역에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세운상가군은 뉴타운 지역에서 해제돼,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이 됐다. 2014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세운상가군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면 철거하려던 세운상가군을 세운촉진구역에서 분리 조치하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세운상가군을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주변 상가들은 재정비촉진 대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사실 재정비촉진사업은 이명박 전 시장의 뉴타운 사업에 뿌리를 둔 것이기도 했다. 2005년 이명박 전 시장이 뉴타운 사업을 위해 제정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재정비촉진사업의 근거 법령이었다. 결국 뉴타운 개발 구역에서 해제되지 않은 세운정비촉진구역은 전면철거와 재개발 대상으로 남게 됐다. 박원순 시장은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통해 해당 구역에 도심형 주거를 공급할 계획이라 밝혔고, 시행사에 사업시행인가를 내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철거가 완료된 세운3-1,4,5 구역과 6구역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박원순 시장은 아직까지 철거 대상 상인들에 대한 이주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3구역 재개발 사업은 도심주거환경법에 따른 절차”라며 “(보상관련 기준을) 정책에 정해져 있는 내용 이상으로 요구하니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연초에 상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얘기를 했었다. 대책 방향은 공표했던 대로 산업생태계를 보존하는 방향이고 상인 비대위에서 제시한 내용도 같이 검토 중에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 중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각종 재개발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이 지금까지 주택 공급과 같은 물리적인 개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삶과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노후된 지역을 방치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재생하는 방식은 거주자들이 우선 유지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