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더라도 복직하고 싶어”

[르포]거리에서 18년, 공무원 해고노동자들의 명예회복·원직복직 투쟁 이야기

노동3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이들이 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8년 동안 거리에서 명예회복과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이들은 공무원노동조합 해고노동자들이다.

2002년 공무원노조가 출범한 이후 공무원노조에 가입한 2,969명을 상대로 징계가 이루어졌다. 당시 530명의 징계해고자가 발생했고, 그중에 136명은 아직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 90%에 해당하는 124명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해고됐으며, 이들의 해고 시기는 공무원노조 출범 초기인 2004~2005년에 집중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공무원노조 총회에 참석해 “참여정부의 공과를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그때 잘 맺어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며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사면복권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당선 이후 2년 반이 넘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잇다.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에 관한 법이 지난 18대 국회(2009년)와 19대 국회(2012년)에서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없이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2017년 ‘노동조합관련 해직공무원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등 24인 발의)이 발의돼 있으나 20대 국회가 마무리되어 가는 현재까지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14일에는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렸지만, 해당 법안 논의 직전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회의장을 이탈해 정족수 미달로 논의되지 못했다.

현재 해고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58세, 지금 바로 복직이 될 경우 단 하루라도 근무할 수 있는 노동자는 96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평균 잔여 근무기간은 3~4년에 불과하며, 2021년이 되면 해고노동자들의 절반이 정년이 되어 복직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사이 5명의 해고노동자가 복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암으로 3명이 사망했고, 교통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지난 6월에는 정년을 맞은 전대곤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명의 해고노동자는 암과 뇌졸중 등의 중병으로 투병 중이다. 부당한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와 복직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라고 해고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현재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이하 ‘회복투’)는 ‘마지막 투쟁’이라는 심정으로 투쟁하고 있다. 이들의 간절한 투쟁이 올해가 가기 전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필자 주>

빨리 복직시키라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11월 7일 오전 6시 50분. 서울 삼청동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앞. ‘공무원노조 해직자 원직복직’이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이다.

  11월 8일 오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앞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피켓팅을 진행한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따라붙은 경찰들은 피켓팅이 시작되자 일인시위자 주변에서 감시하듯이 지켜본다. 얼마 전에 해고노동자들이 차를 타고 나가는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얘기 좀 합시다”라고 얘기했던 일 때문에 경찰이 예민한 구는 것이라 했다. 한 해고노동자는 노영민 비서실장의 차량번호가 ’***1‘ 이고, 7시 20분~7시 30분 사이에 나간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7시 25분, 경찰들이 일제히 일인시위 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을 에워싼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탄 차가 공관에서 내려오고 있다.

“막지 마! 막지 말라고! 밀었잖아! 가만 내버려두면 돼지, 왜 막아?”

도로가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던 이규삼 씨가 경찰들에게 거센 항의를 한다. 비서실장의 차가 해고노동자들 앞을 지나가고 나서야 경찰들이 규삼 씨에게서 떨어진다.

“일상이에요. 우리를 빨리 복직시키라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노무현 정권이 해고를 했는데, 그 정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죠. 복직 약속도 했잖아요. 마음이 착잡하고 조급하죠. 빨리 복직해서 하루라도 근무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복직하고 싶어요.”

2004년 원주시청에서 6급 공무원으로 회계업무를 하다가 공무원노조 총파업 참여로 해고를 당한 규삼 씨는 정년을 1년 남겨두고 있다.

비서실장 공관과 총리공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마친 해고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 있는 농성장으로 이동하려는데, 경찰이 통제를 한다. 지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가 나누어서 가라고 한다.

“어떤 시민이 지나갈 때 그렇게 통제를 해요? 나 여기 계속 서있을래.”

조끼를 벗어야 지나갈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자 규삼 씨가 항의한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앞에 가던 해고노동자 한 명이 노래를 부르자 뒤에 오던 이들도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른다. 공무원노조 회복투의 하루가 시작된다.

횡령한 사람들은 잘리는 거 보지 못 했어

강릉, 동해, 원주, 춘천, 태백에서 올라온 해고노동자들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간다. 5천 원짜리 콩나물국밥을 파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식당이다. 춘천시청 공무원으로 면사무소에서 총무계장을 하다가 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으로 해고를 당한 박재규 씨가 이야기한다.

“대부분 해직됐다가 상당부분 복직하고 지금 남은 136명 해직자들은 법에서조차 구제를 못 받은 사람들이에요. 아주 악질적인 사람이죠. 횡령을 한 놈들은 잘린 놈 보지를 못했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 살아남는데, 집회 가서 어물쩡 어물쩡 하다가 재판 받은 우린 악질이지.”

“어물쩡 하진 않았지~”

“화염병은 안 던졌잖아.”

“그땐 화염병 나오지도 않았어.”

“악질은 악질이지. 어디 국가를 상대로 감히? 역모지. 역적. 우리는 삼족이 멸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기관 입장에서 보면 환장하는 거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눈도 못 마주치던 것들이 갑자기 머리에 빨간 띠 매고 와서 어쩌고 저쩌고 하니 환장하는 거지.”

재규 씨가 공무원으로 처음 근무하던 1980년에 9급 1호봉의 본봉은 8만 9천원이었다. 수당이라고는 오지에 근무할 때 받는 벽지수당 밖에 없을 때였다. 그 급여를 받아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는 하숙집 하숙비로 8만 원을 냈다는 이규삼 씨가 “그래도 9천 원은 남았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재규 씨의 공무원 동기들 중에는 급여가 너무 적어 삼양라면 같은 일반 회사로 옮긴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공무원 조직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상명하복과 군사문화가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요구에 불응하거나 ‘바른말’을 하면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징계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들이 비일비재 할 때였다.

공무원사회 비리와 시스템을 아는 사람들이 만든 공무원노조

“그때 내가 위원장 나간다고 할 때 자격이 안 된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나가서... 그때 제가 잘 나가고 있었어요. 안 잘렸으면...”

“부시장 할 거야. 아마.”

“초창기 공무원노조 했던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공무원 내부에서 가장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공무원 내부의 비리와 운영 시스템을 가장 잘 알면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

2011년 공무원노조 위원장을 했다가 해고된 김중남 씨는 공무원 사회 내부 상황을 많이 봤거나 본인이 직접 시스템을 작동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람들 중 노동조합에 참여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저는 행정과, 여기 계신 분도 총무과 행정과, 여기도 그전에 시청에서 그랬고, 여기는 감사실, 기획실. 초기 멤버 잘린 사람들 대부분이 그래요. 서울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사람이 많아.”

“옛날에 이 사람들은 행정과에 있으면서 부정선거에 다 참여했던 사람들이에요. 예전 관권선거에서 돈 돌리고. 주민 성향 분석하고.”

김중남 씨는 1980년 즈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그런 일(관권선거와 부정부패)에 ‘쩔은’ 사람들이고, 86년에 들어온 자신 같은 사람들은 그런 일의 말년이라고 했다.

“(전두환 대통령 후보에 대해) 친(親)이면 동그라미, 아닌 사람은 가위표,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세모. 이런 걸 다 만들었잖아. 노태우 대통령 선거가 87년이지? 그때 노란봉투에다 5만 원 이상 받았어요. 면으로 내려와서 직원들한테 내려줬는데, 비자금이겠지. 그때 본봉 8만 9천 원인 말단한테 5만 원이면 큰 돈이었지” (박재규)

공무원노조 설립에 주축이 됐던 이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시군 단위 또는 행정조직 안에서 과장급을 제외하고 실제 일을 했던 당시에 ‘차석’이라 불리던 7급 상당의 실무 핵심들이었다.

“실제 자기 밑에 있는 8급 9급들을 움직일 수 있고 계장 과장들하고는 중간에서 그들의 얘기를 진행시키고 했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이 위에서는 잘못된 것을 볼 수 있고 밑에 있는 사람들의 불만도 들을 수 있는 그런 위치였거든요.” (김중남)

우리가 사회의 독버섯 역할을 한 역사의 죄인이구나

개인적으로는 이제 좀 편하게 살 수 있고,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이들이 선택한 것은 개인의 안위와 승진이 아닌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었다. IMF구제금융 시기 이후 취업난 속에 국가직 9급 공무원 경쟁률이 36.2대 1이 되던 해였다.

권력과 가진 자들에 의하여 흔들려온 공직사회를 곧추 세우고, 오랜 세월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온 공직사회를 내부로부터 혁신함으로써 올바른 나라, 상식과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를 만드는 데 주체가 될 것이다. (2002년 3월 23일 공무원노조 창립선언문 중에서)

  11월 14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앞두고 피켓팅을 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그때 눈 찔끔 감고 잘 좀 하지. 보고도 못 본 척 했으면 노후가 편할 텐데. 뭐 그리 잘났다고. 하려면 혼자만 하지 옆에까지 다 꼬셔갖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재규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했다.

“단순히 먹고 살려고 공무원 하다가 노조 만들어지고 교육 받으면서 역사에 대한 걸 배웠는데, 대단한 쇼크였어요.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인식들이 다 깨진 거지. 공무원이 공무원조직이 그동안 사회의 독버섯 역할을 했다. 우리가 역사의 죄인이구나.”

역사도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많이 달랐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학생들은 원래 그러는 거다. 얘들이 이번에는 시위를 좀 세게 하네. 이 정도였지.”

하지만, 재규 씨는 지금 자신들의 활동을 '공직사회 개혁'이나 '부정부패 척결' 등의 내용으로만 너무 애써 포장하는 것은 편치 않다고 했다.

"공무원이든 판사든 내 권리가 침해되었다면 권리투쟁을 하는 거죠. 그 권리 투쟁이 지역사회나 사회에 도움이 안 되고 어떤 공익에 저해가 된다면 당연히 지지를 못 받는 거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권리나 사회에 대한 것도 생각해야 내 것을 찾을 수 있는 거니까 전체적인 사회나 시민의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는 거예요.“

재규 씨는 공무원노조 활동이 사회 전체에 도움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자신의 밥그릇만을 위해서 했다면 그렇게 긴 세월 투쟁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정부는 헌법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 조항 등을 들어 공무원들의 노동자성과 노동3권을 부정해왔다. 반면, 공무원노조는 같은 법 제33조 2항에 의거해 공무원이 노동자이며, 그러기 때문에 노동3권이 있다는 선언을 한다.

“(파업 참여한 걸 후회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어떤 상황이 오면 또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한 행동이 잘못 평가되고 있는데, 원직복직이 되는 것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들 보기도 그렇고...” (박재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거죠

식사를 마친 해고노동자들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 피켓팅을 위해 이동한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춘천에서 보건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04년 파업 참여로 해고된 최원자 씨가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다. 발이 아픈 상황임에도 아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11월 13일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하루 전날 원직복안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처음에 우리가 노조를 만들겠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에 정부가 부추겨서 일반직 공무원 직장협의회를 만든 거예요.”

정부는 1991년에 ILO에 가입하고,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공무원노조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1998년 노사정위원회 2.6 사회협약에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1단계로 공무원직장협의회를 허용하고 제2단계로 공무원노조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헌법에 근거도 없는 ‘공무원 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1999년 1월부터 공무원직장협의회 제도를 시행했다.1) 하지만, 정작 공무원 노동자들이 2002년 3월 공무원노조를 만들자 정부는 강경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직장협의회를 만든 후에 정부에서 공무원노조에 관한 법을 만든다고 해서 우리는 일반 근로기준법에 준해서 하라고 했는데, 노무현 정부 때 특별법을 만들었어요. 결국에는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건 진정으로 공무원 노동자를 위하는 게 아니잖아요.” (최원자)

2004년 정부는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부정하고, 공무원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해 ‘공무원노조 특별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일방적으로 제정하려고 했다. 이에 공무원노조는 2004년 11월 15일 3일 간의 총파업으로 대응한다. 그 과정에서 구속과 해고 등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파업으로 간부 34명이 구속되고, 2,600여 명이 징계를 받았으며, 500여명이 해고(최종 136명 해고)를 당했다.

과태료 부과 대상에 사형 집행, 문재인 대통령이 풀어야

이날 일정에 참여한 왕준연 씨(상주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04년 파업으로 해고)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과태료 부과 대상에 사형 집행을 한 것”이라며 억울하다고 했다.

“저는 그때 지부장이었는데, 파업 사흘 전에 이미 수배가 떨어지고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었어요. (파업에 들어가는)11월 15일 아침 9시 땡 하자마자 9시까지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단결근이라고 징계의결을 다 올렸어요. 공무원 규정에 보면 공무원이 9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지각이고, 근무시간 중에 출근하면 지참, 근무시간 안에 출근하지 않으면 결근이에요. 그런데 행정자치부가 9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징계 의결하고, 당일 직위해제하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내려 보낸 거예요.”

정년을 2년 남겨두고 있는 준연 씨는 이것이 정부의 월권행위이자 상위법령 위반이며, 국가폭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지자체는 다 혈연 학연 이러다보니 진행을 못 할 거 같으니까 아예 행정자치부에서 두세 명 씩 지자체로 파견을 보내서 중징계를 하게 했어요. 감봉이나 견책 정도는 다들 감수를 했었는데, 총파업 주도했던 사람들은 다 파면해임 쪽으로 아예 정부 방침을 정해놓고 진행을 한 거죠.” (최원자)

행정자치부는 ‘소위 전공노가 주도하고 있는 파업참가자 등 불법집단행동에 참여,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 신속하고 엄정한 징계처리를 이행’한다는 목적으로 ‘파업참가자 등 관련자 징계처리절차 지침’을 각 지자체에 내려 보냈다. 행정자치부가 작성한 이 지침에는 파업 6일차까지 각 일자 별로 신속한 징계처리를 위한 세부적인 내용이 기재돼 있다.

  2004년 행정자치부가 각 지자체에 내려보낸 파업참가자 징계처리 절차 [출처: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최원자 씨는 공무원노조 해고 문제가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권한을 넘는 과도한 개입으로 발생한 부당해고이기 때문에 그 정부를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문재인 대통령만이 풀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힘들 때는 접을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접는 순간에 내가 한 것이 다 부정되고 잘못된 것이 되는데, 그러기 쉽지 않죠. 접는 것도 사실 쉽지 않고, 가는 것도 사실 쉽지 않고 그런 마음이에요. 언젠가는 억울함 밝히고, 잘못된 것도 밝힐 수가 있겠죠. 대통령이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사과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라도... 그러고 난 뒤에 희생자들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 그런 얘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15년 세월의 그 고통이, 희생자들과 그 가족이 받은 상처가 다 치유되진 않겠지만, 조금의 위로는 될 것 같아요.” (왕준연)

<각주>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국가폭력에 의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탄압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