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했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새노조로 투쟁에 나선 이유

[이슈] 연봉 차이 1천만 원, 심각한 초과 노동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기만에 한마디로 당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 전환에 동의한 요금수납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정년 1년 연장, 처우 개선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 전국 요금수납노동자 6500명 중 5000명이 자회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반면 직접고용을 주장한 1500명은 집단해고돼 현재(12월 말)까지 김천 도로공사 본사서 점거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자회사를 선택한 노동자들이 자회사와 공사의 처사에 항의하며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자회사 전환에도 임금과 노동조건 등이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들도 사실상 공사의 직원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은 지난 8월 새로운 노조(exservice 새노동조합, 이하 새노조)를 만들고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했다. 약 3개월 만에 새노조에 200명 넘는 노동자가 모였다. ≪워커스≫가 자회사 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금 인상? 초과노동수당으로 올랐다

[출처: 김한주 기자]

전북의 A영업소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하는 박선태(가명) 씨. 기자를 만난 박 씨는 임금명세서부터 보여줬다. 기본급 212만3천 원, 상여수당 17만6910원, 연장수당 13만2050원, 야간수당 40만1660원으로 지급합계는 283만3620원. 보험 등 공제금액 31만9160원을 빼면 실지급액은 251만4460원이다. 박 씨는 이 명세서를 두고 “여기서 초과 수당만 빼도 200만 원이 채 안 된다”며 “지금 우리는 주어진 것보다 일을 많이 해서 과거보다 조금 더 돈을 받는 것일 뿐, 자회사 전환으로 임금이 크게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외주 용역업체 시절에도 급여는 200만 원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용역 시절엔 식대와 교통비도 따로 나왔는데, 지금은 기본급에 녹였다. 상여금도 월할로 지급돼 향후 최저임금 인상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자회사 설립 전 도로공사가 매일 자신에게 전화해 ‘다시는 이런 조건에서 일할 기회가 없다’며 자회사 전적을 강요할 때를 떠올렸다. 그는 “사실 도로공사가 많은 정책과 복지를 내놓아 혹했다”며 “나와 동료들이 생각한 기대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부터 자회사를 인정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회사 전환 이후 높아진 노동 강도도 문제다. A영업소의 이기환(가명) 씨는 11년째 요금수납 노동을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일이 많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A영업소는 현재 인력이 과거보다 3명 줄었다.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해고됐기 때문이다. 이 씨만 하더라도 기본급이 200만 원 수준인데 야간수당과 연장수당만 합한 게 50만 원에 육박한다. 이 씨는 “근무 인원이 3명이나 줄어 초번(오전 6시~오후 3시)과 중번(오후 3시~오후 11시), 중번과 말번(오후 10시~익일 오전 7시)을 연이어 18시간씩 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요금수납 노동자의 노동 강도가 높아진 건 단지 인원 감축 때문만이 아니다. 도로공사는 2016년부터 원톨링시스템(무정차 톨게이트)을 도입했는데, 이로 인한 업무 증가가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씨는 “원톨링에서 번호판 인식이나 카메라 등에 오류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럴 때마다 차량 입구 조회 등 업무량이 쌓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원톨링시스템 도입 이후 오류가 총 40만 건, 잘못 정산된 통행료가 13억8179만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전남의 B영업소에서 일하는 박선희(가명) 씨도 “자회사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불만”이라고 말했다. 박 씨의 지난 11월 급여는 약 220만 원. 기자가 만난 다른 요금수납원 노동자보다 현저히 적었다. B영업소에는 자회사 전환 거부로 해고된 노동자가 없었고, 따라서 하루 8시간보다 더 일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금 급여 또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부분이라며, 자회사가 특히 더 많은 돈을 쥐여 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박 씨는 노동조건과 노동자를 대하는 사용자의 태도 역시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는 여전히 10년째 식당에서 스스로 밥을 해 먹고, 설거지하며, 영업소 곳곳을 걸레로 청소하고 있었다. 또 요금수납 업무 민원 발생 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부의 질책도 달라진 게 없었다. 여성 노동자로서 요금수납 업무 도중 남성 운전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 행위, 폭언, 성희롱 등의 문제 해결을 바랐지만, 사측은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자신이 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의 화풀이 대상은 아닌지 서운함을 감출 수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도로공사가 자회사 노동자에게 ‘공무원 수준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라’던 말이 궤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아 직접고용을 선택하지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자회사, 도로공사 무기계약직 임금 비교했더니

새노조로부터 자회사 노동자와 도로공사 무기계약직 호봉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자회사 노동자의 연봉이 도로공사 무기계약직보다 많게는 1500만 원 더 적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회사 노동자 임금 상승 단계는 1단계 200만3천 원(1~2년 차), 2단계 204만3천 원(3~5년 차), 3단계 208만3천 원(6~8년 차), 4단계 212만3천 원(9~12년 차), 5단계 216만3천 원(13~16년 차) 마지막 6단계 220만3천 원(17년 차 이상)으로 이뤄진다. 수십 년 동안 자회사에 몸을 담아도 고작 20만 원의 기본급이 오르는 셈이다.

반면 도로공사 무기계약직 1년 차는 173만7천 원으로 시작해, 10년 차에 217만1천 원에 도달하며 같은 연차의 자회사 노동자 급여를 넘어선다. 20년 차 262만 원, 33년 차엔 312만 6천 원에 이른다. 새노조 김종명 사무처장은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에 직무급제를 만들어 임금 상승을 묶었다. 우리는 일반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수준의 임금 테이블로 맞춰달라고 했지만, 자회사 상생협의회는 지난 5월 임금 체계를 확정했다. 이로 인해 자회사 노동자는 도로공사 무기직보다 연 1000~1500만 원가량 손해를 본다. 도로공사 직원과 자회사 노동자의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집단해고 빈자리에 채워진 기간제 노동자

자회사는 집단해고 된 1500명 요금수납 노동자 자리를 기간제 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새노조는 사측이 기간제 노동자 약 900명을 채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전의 C영업소에서 일하는 최기욱(가명) 씨도 지난 7월 1일 기간제로 입사했다. C영업소의 경우 24명 중 절반가량이 기간제 노동자다. 최 씨는 과거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을 하다가 2012년 성과를 보채는 용역업체 사장과 싸우고 자진 퇴사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으로서 생계를 이어가기 막막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됐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요금수납 노동자의 장애인 비율은 25.1%다.)

최 씨 역시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었다. 그의 기본급은 208만 원. 초과 노동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인력 부족으로 주임까지 부스를 지킬 때가 많다고 했다. 또 C영업소는 과적 차량이 많은 탓에 수납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동료가 연차라도 쓰는 날에는 주 52시간 노동을 초과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공공기관이 노동자를 더 뽑아야 하는데, 오히려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집단해고 노동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마음 쓰인다고 했다.

그는 “고공(캐노피) 올라가고, 청와대 앞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면 나는 그만둬야 마땅하다. 내가 아무리 생활이 곤궁해도 이곳은 원래 그들의 자리이지 않은가”라며 “어쨌든 도로공사가 만든 자회사의 민낯이 드러났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상황을 만든 데 거대노조(한국도로공사영업소노동조합) 책임도 있다. 도로공사와 제대로 싸울 노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여기서 일하는 나는 새노조에 가입했고, 그 투쟁에 힘을 싣고자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새노조를 만든 이유

새노조는 지난 8월 19일 설립총회를 열었다. 12월 기준 새노조 조합원은 200명으로 금새 불어났다. 기존노조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기존노조는 한국도로공사서비스노동조합(서비스노조)과 한국고속도로영업소노동조합(영업소노조)이다. 이 두 노조는 지난 10월 서비스노조란 이름으로 통합했다. 원래 영업소노조는 수천 명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었다. 영업소노조는 전국고속도로영업소비노조근로자협의회(전영비)에서 출발했다. 2013년 전영비는 3800명 영업소 노동자를 모집해 불법파견 및 임금차액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도로공사와의 다툼에서 더 강한 협상력을 가지려 영업소노조로 전환했다. 영업소노조와 서비스노조는 자회사 설립안에 동의해 회사와 발을 맞췄다. 현재 약 4000명의 노동자가 통합된 서비스노조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노조의 상급 단체는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이다.

노동자들은 기존노조의 행태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새노조에 따르면 영업소노조는 도로공사가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약속한 것들을 이행하라며 지난 5월 7일 집회를 예정했는데, 5월 17일 김천지원 변론기일을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또 8월에는 영업소노조 밴드에서 한 조합원이 ‘왜 노조 활동을 알려주지 않느냐’고 물으니 ‘재판부의 빠른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짤막한 공지가 올라왔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 이후 노동 환경이 더 열악해졌는데도 노조가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았다. 당시 하루 24시간을 3교대로 나눠 8시간씩 노동했는데 지금은 9시간 노동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직접고용 희망 노동자가 해고되며 발생한 인원 부족으로 노동 강도도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지난 8월 대법원, 12월 김천지원의 불법파견 연쇄 판결로 직접고용을 향한 자회사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커졌다.

새노조 간부이기도 한 이기환 씨는 “서비스노조는 비밀리에 운영하고 협상에만 집중한다”며 “자회사 전환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는데 영업소노조는 수수방관했다. 조합비를 2만 원씩 내면서 조합원들은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새노조가 9월에 분노한 자회사 노동자들과 함께 과업 인원을 충원하라는 집회를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따로 연 것이다. 아직은 적지만 조합원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 노동자는 도로공사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새노조는 11월 18일 도로공사를 상대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도로공사 요금수납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소장을 통해 “자회사는 지배구조, 경영진 구성 측면에서 경영 사항에 관한 독자적인 결정 권한이 없고, 모든 것은 도로공사가 결정한다”며 “자회사는 공사가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공사의 (이강래 전) 사장이 자회사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나아가 자회사의 주요 경영진 역시 100% 공사에서 파견된 인원으로 구성돼 있다”며 자회사 노동자와 공사의 관계를 설명했다. 이어 △자회사가 독자적인 채용 권한이 없는 점 △공사가 자회사에 전적된 요금수납노동자에게 상당한 정도의 업무상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점 △요금수납 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공사인 점 △자회사가 요금수납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독자적인 설비를 보유하지 않은 점을 소송 이유로 들었다.

김 사무처장은 “운영 구조를 보면 자회사는 도로공사의 ‘인력 보급소’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제 요금수납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은 도로공사에서 파견 나온 대리급 노동자이며, 영업소에서도 팀장이나 주임급들은 도로공사 사번으로 도로공사 사내망에 접속, 관리한다. 일단 도로공사와 자회사의 대표이사가 같은데 그 둘이 거래 계약을 한다는 것부터 코미디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새노조는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 소송에 129명이 참여했고 새노조 조합원이 다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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