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불평등, 기술혁신 속에서 2020년대를 생존하기

[기술문화비평]

국제앰네스티가 일명 Z세대라 불리는 22개국의 청년(18세25세) 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를 물었다. 해당 조사에서 가장 최우선의 당면과제로 꼽힌 것은 응답자 41%가 선택한 ‘기후변화’다. 굳이 이들의 목소리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중대한 관심사가 됐다. 하물며 20세기를 지나 산업화 시대 이후에 태어난 청년들에게 ‘기후변화’는 테러리즘, 인종 및 젠더 불평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증오범죄, 경제적 불안정과 소득 불평등 같은 당면한 과제들과 함께 인류 미래의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인류세’라는 화두는 21세기가 도래하며 과학적 이론의 지평에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의 20년이 지난 현재,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담론과 운동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저 나타났다기보다는 매서운 칼바람과 빙하를 녹이는 기온 상승, 숨 막히는 대기, 그리고 산더미 같은 플라스틱을 몰고 나타나 우리의 몸과 정신을 강타하고 있다. 당신의 집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는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년 환경운동가의 외침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가속도로 진행되는 지구시스템의 위기를 우리가 멈추거나, 적어도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에 발표한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 에 따르면 지금 전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약 1℃가 높아졌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이 온난화의 온도를 1.5℃ 정도로 억제하는 것과 2℃까지 치솟게 하는 것 사이에는 확고한 차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지구온난화가 1.5℃ 상승을 넘어 2℃까지 이를 경우, 호우나 극한 기온, 가뭄과 해수면 상승, 생물종의 감소와 멸종과 같은 환경적 위기뿐 아니라 빈곤층 및 사회적 소외 계층의 증가, 질병과 사망률의 증가, 곡물과 물 부족 같은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리스크가 동시에 높아진다. 특히 2030년 까지 탄소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 상승 온도를 1.5℃로 제한하지 못할 경우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나 저개발 지역의 피해가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무엇보다 계급적 혹은 계급 차별적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지구상 모든 인간의 위기라기보다는 경제적 불평등 심화에 따른 저소득 계층 및 저개발 지역 인구의 위기다. 또한 기후위기의 문제는 단지 현재의 모호한 진단이나 단편적인 환경 보호 슬로건으로 대체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현재 청년 세대의 다가오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 자초해 인간 종의 절멸을 향해 나아가는 초특급 열차에 올라 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당장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거나 자동차를 덜 타고, 에코백을 메는 소극적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저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당장 10년 이내에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지구온난화를 제한할 방법은 묘연하기만 하다. 게다가 앞으로 기후위기의 영향을 가장 혹독하게 받을 계층과 세대는 이 위기를 이해하거나 염려할 여유도, 경제적 여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무엇을 탓해야 할지,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호하기만 하다.

이 시대에는 일하고 소비하고 생활하며 창작하고 놀고 살아가는 모든 자본주의적 활동들이 기후위기의 원인이다. 누군가가 생존하고 또 발전하기 위한 도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평등을 낳는 원천이다. 그래서 ‘인류세’라는 용어 대신 어쩌면 ‘자본세’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이다. 인류 전체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혹은 자본의 욕망이 지구 표면상의 지질학적 수준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역진 불가능한 지구시스템상의 위기가 우리 앞에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기후위기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는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서로 밀접한 조건들로 얽혀있다. 단지 기후와 환경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기후 변화가 아닌, 그것을 가속화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변화가 당면한 목표로 설정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부상한 ‘그린뉴딜’ 정책은 환경과 경제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다. 전 세계적 경제 불평등의 심화와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고조가 서로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사태의 두 가지 현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일단 그린뉴딜 정책의 방향은 올바르게 설정됐다. 한편으로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영역 투자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 그리고 개발도상국에 기후전환을 위한 지원도 동시에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린뉴딜이라는 정책 설정이 구체화되기는커녕 선진 사회의 정치권에서도 그 영향력과 정당성을 획득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첨단 기술의 힘으로 지금의 양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인터넷,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같은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기술들도 사실은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의 일부다. 웹 검색, 고화질 동영상 스트리밍, SNS와 같은 개인적 용도에서부터 5G 무선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기반 네트워크 사용에 이르기까지. 2030년 이후 에는 인터넷 사용이 전 세계 전기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지구온난화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오래전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집중된 권력 없이 분산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컴퓨터에 의한 채굴, 즉 연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열을 식힐 최적의 장소로 아이슬란드와 같은 곳을 선호한다. 아이슬란드의 고유한 자연환경과 지질학적 특성 덕분에 생산된 클린 에너지를 이용하는 블록체인 채굴 시설의 난립은 이제 아이슬란드 가정 전체 사용 전력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기술발전이라는 것도 아직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새로운 지구적 상황에 대비할 만큼 우리의 집은 활활 불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그린뉴딜 정책이 우리 사회와 정치의 영역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진정 위기가 도래했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절멸의 시기에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도, 그럴 자격도 우리에게는 없다. 청년들의 ‘멸종저항운동’이 정치권력화되고, 의회와 공장과 일상을 장악할 때에나 기후위기에 대한 총체적 대응이 시작될 수 있을까? 사회학자이자 건축이론가인 벤저민 브래튼은 인류세라는 환경위기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혁신은 2030년을 거치며 어떤 변곡점을 지나 인간의 종말(혹은 대체)로 나아간다고 본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구에서의 생존은 일종의 새로운 행성 건설이라는 차원에서 사유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30년까지 남은 10년은 인간이 만들어 낸 위기의 가속도를 견디면서 인간의 생존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들 행성적 차원의 인위적 계획이 불가피하다. 그 계획이 누구의 손에 맡겨지는가가 중요할 것이고 이것은 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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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언가

    기후위기와 계급적 갈등 어느 쪽에 더 중심을 두어야겠습니까. 학자는 나약하고 참세상과 같은 언론은 이를테면 노동정론을 펴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