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 히어로가 되는 법…디도스 공격부터 데이터 탈취까지

[이슈① | 우리를 가난하게 하는 혁명] 배달앱 시장 몰려든 자본의 진흙탕 싸움


최근 딜리버리 히어로(DH)가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인수했다. 과연 세계적 음식 배달 서비스 회사인 DH는 그 이름처럼 영웅적인 길을 걸어왔을까? 독일 음식 배달앱 리퍼란도 사건을 시작으로 이들의 성장 신화 이면을 추적해봤다.

영웅적이지 않은 딜리버리 히어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둔 일요일 오후 5시. 주문이 폭주할 시간이었다. 독일 배달앱 리퍼란도와 계약을 맺은 음식점들은 배달 재료와 박스를 쌓아두고 앱을 주시했다. 라이더들도 동선을 확인하며 배달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분 만에 100건, 그리곤 1000건, 배달앱에 고객이 로그인했다는 신호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리퍼란도 경영진이 ‘올해는 정말 대박이구나’라며 손을 비비고 있던 찰나, 갑자기 앱이 마비돼 버렸다. 대목 장사를 망친 리퍼란도는 조사에 착수했다. IT 전문업체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서버가 다운된 이유는 원인 모를 로그인 시도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이 계정들이 앱 내에서 의도적으로 모의 계산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이용해 서버 과부하로 다운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공격자의 아이피(IP) 주소 중 하나는 경쟁사 리퍼헬드가 임대한 서버와 직접 연결돼 있었다. 리퍼란도 측은 리퍼헬드가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경쟁사를 고소했다. 2012년 독일 언론 〈슈피겔〉은 ‘피자배달업체들의 사이버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경쟁사에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리퍼헬드는 바로 DH가 소유한 독일 현지 배달업체였다. 이 때문에 리퍼헬드 베를린 본사는 2012년 4월 18일 베를린 검찰당국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플랫폼 기업으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리퍼헬드 측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자사는 오로지 탐색 프로그램 크롤러를 사용해 경쟁자가 광고하고 있는 식당 수가 사실인지 여부를 조사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 조사는 리퍼란도를 포함해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다가 이런 조사에도 앱이 버티지 못한다면 오히려 리퍼란도 측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리퍼란도는 경쟁사의 이 같은 입장이 거짓이라고 되받아쳤다. 리퍼란도 앱은 평상시에도 시간당 2500개의 주문을 처리했고, 연방은행 서버 보안 전문가의 승인을 받았을 만큼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러퍼란도 측은 형사 고발 외에도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바쁜 시간에 앱 서버가 마비되면서 광고를 내지 못했고, 고객과 판매량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이유였다. 리퍼란도 측은 최소 7만5000유로(약 1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사건은 어떻게 해결됐을까? 수 시간 동안 진행된 압수수색 후 리퍼헬드 경영진은 리퍼란도에 전화를 걸었다.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리퍼헬드는 리퍼란도 측에 수백만 규모의 인수 협상을 제안했다. 결국 업계에는 경쟁업체를 사들이기 위해 괴롭힌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리퍼란도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테이크어웨이(Takeaway.com)의 자회사로 독일에선 가장 먼저 성공한 3대 플랫폼 배달앱 중 하나였다. DH 입장에선 군침 도는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뒤늦게 배달앱 시장에 뛰어든 DH가 경쟁사를 장악하기 위해 자금을 동원해 불법적인 디도스 공격을 행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DH는 2012년 11월에도 또 다른 배달앱 피자닷데(www.pizza.de)를 디도스 공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때 리퍼란도와 피자닷데는 경찰을 찾는 대신 범인을 잡기 위해 1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걸었다. 2013년 1월에는 리퍼헬드 경영진과 직원 등 7명이 피자닷데에서 정보를 탈취한 혐의로 약 6만 유로의 벌금을 선고 받기도 했다. 2010년 10∼11월 피자닷데에 등록된 파트너 식당 약 1000개의 전화와 팩스 번호, 메뉴 등의 데이터를 최대 100%까지 무단으로 복사해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도 DH는 피자닷데를 인수하려 했고, 그로부터 4년 뒤 이는 현실화됐다.

이 같은 방식으로 몸집을 불린 DH는 다시 수지타산을 이유로 2018년 12월, 자사가 소유한 리퍼헬드와 푸도라, 피자닷데 3사를 테이크어웨이에 매각했다. DH의 배민 인수를 두고 배민이 ‘게르만 민족’이 됐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사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DH 본사는 현지에선 어떤 배달사업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지원했던 DH 최대 주주

DH 뒤에는 ‘내스퍼스’라는 거대 투자자본이 있다. DH는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디어그룹 내스퍼스로부터 3억87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거대 플랫폼 업체 대열에 올랐다. 현재 내스퍼스는 DH의 최대주주로 22.3%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내스퍼스는 해외에선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원했다는 논란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15년, 이 기업은 자사 소속인 〈미디어24〉에 간단한 사과문만 발표했을 뿐이다.

애초 내스퍼스는 1915년 남아공 스텔렌보스에서 네덜란드어 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됐다. 1960년대 서적출판에 이어 1980년대 TV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대 초에는 현재 내스퍼스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인 쿠스 베커가 주 사업을 투자와 케이블 티비로 전환했다. 그 후 중국 인터넷과 미디어 회사 텐센트에 투자해 1,500배의 수익을 낸 뒤 인터넷과 플랫폼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최근에는 내스퍼스가 인터넷사업부문 ‘프로서스’를 분사해 유럽 암스테르담 증시에 상장한 뒤 주가가 25% 이상이 올라 약 1,330억 달러(약 155조3440억 원)의 시장가치를 냈다. 프로서스는 텐센트 지분 31%와 음식 배달 서비스업체인 딜리버리 히어로,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렛고, 러시아 소셜미디어 기업 메일루 그룹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브라질 아이푸드(54.8%)와 인도 최대 배달앱 스위기(38.8%)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그 덕에 투자자본 운영자들의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베커의 자산은 2015년 17억 달러(약 2조70억 원)에서 2019년 23억 달러(약 2조7천억 원)로 껑충 뛰었다.

배달앱 시장을 독점하려는 내스퍼스 프로서스의 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프로서스는 지난해부터 테이크어웨이와 영국의 온라인 음식배달회사 저스트잇을 두고 매각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저스트잇은 테이크어웨이와의 합병이 유력한데, 프로서스는 지난해 12월 67억 달러(8조 원)까지 인수 총액을 계속 높이며 주가조작을 시도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최대주주인 DH가 가지고 있던 테이크어웨이 주식 지분 13%를 매각했다. 이후 프로서스가 ‘저스트 잇’을 장악하기 위해 테이크어웨이의 주가를 끌어내리려 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실제로 DH가 테이크어웨이 주식을 매각한 후, 테이크어웨이 주가는 731펜스에서 594펜스로 폭락했다. 프로서스나 DH 모두 공식 성명을 통해 이를 부인했지만 그들을 믿는 이는 드물다.

배달앱 시장을 독점하려는 자본은 내스퍼스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윤율 하락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초국적 투자자본이 배달앱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배달앱 업체는 중국의 메이퇀이며, 미국의 우버이츠, 저스트잇, DH가 그 뒤를 쫓고 있다. 최근에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내스퍼스, 골드만삭스 등이 시장에 뛰어들며 현재 850억 달러에 이르는 시장가치는 향후 5년 안에 두 배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달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결성된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플랫폼 산업은 우선 데이터 수집과 기술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 목표이고, 궁극적으로는 주식 상장 등을 통한 금융적인 실현을 통해서 이윤을 내는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생산수단이나 노동자에 대한 제약 없이 이윤을 낼 수 있는 배달앱에 초국적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더들의 투쟁…노동자 인정 판결 잇따라

투기자본들이 배달앱 시장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미흡하다. 배달업체들은 배달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라고 주장하며 위탁계약 맺는다. 이에 따라 배달기사들은 오토바이나 스마트폰 등 배달 장비 일체를 손수 마련해야 하며 최저임금이나 고용보험, 병가 등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배달앱을 둘러싼 투자자본들의 경쟁도 노동자들의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노동자들은 계약 업체가 바뀌면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노동권을 보호할 제도가 미비해 신규 업체가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일 DH가 푸도라를 테이크어웨이에 매각하면서 푸도라와 정규 계약을 맺었던 상당수 배달기사들은 임시 계약자로 밀려나야 했다. 2018년 4월 독일법원은 DH가 2000명 이상의 사업체가 지켜야 하는 독일공동결정법을 위반했다며 경영 이사회에 배달기사를 포함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 또한 DH가 테이크어웨이에 배달 업체를 매각하면서 흐지부지됐다.

반면 배달앱 시장에 맞선 라이더들의 투쟁성과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요기요 자회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기사를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대법원은 근로관계 인정을 요구한 배달원들에 대해 “운전자 위치 추적과 완료된 작업에 대한 보너스 제도와 같이 고용주가 설정한 기술이 고용관계를 구성한다”고 판결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사회법원도 2019년 7월 전국노동연합(CNT)이 낸 소송에서 500명 이상의 배달원이 ‘가짜 자영업자’로 고용됐다고 판결했다. 2018년 11월 호주 법원도 DH 소속 푸도라 배달기사가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영국에선 영국독립노동자연합(IWGB)이 플랫폼 배달업체 딜리버루(Deliveroo)와 노동조합 인정을 둘러싼 법정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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