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게만 혁명적인 ‘4차산업혁명’

[이슈①] 우리를 가난하게 하는 혁명


“정부가 기득권을 국내시장의 틀에서 이리저리 조정하려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막강한 자금력과 경쟁력을 앞세운 해외 신생기업이 갑자기 출현해 시장을 과점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을 지닌 소수의 창업자들은 새로운 회사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며, 스스로 탐구하는 각 분야의 장인들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요체다.”

-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대정부 권고안 중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는 지난해 10월,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시장 규제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로막아 해외 자본의 독과점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해외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동안 국내 기업은 도태되고, 도산하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상실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드러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통적 생산요소가 무너지고, 소수의 창업가가 새로운 회사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며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이라는 나름의 예언도 담았다.

결과적으로 권고안의 핵심은 해외 자본에 먹히지 않으려면 규제를 풀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국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4차위는 2017년 말부터 ‘규제·제도혁신 해커톤’ 회의를 개최하며 규제 완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이들이 요구하는 ‘규제완화’는 어떤 신산업과 소수의 창업가들을 지원하게 될까. 과연 규제를 완화하면 독과점은 나타나지 않을까. 《워커스》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을 짚어봤다.

삼성의 4차산업혁명-디지털 사이니지

대정부 권고안 발표 17일 후인 지난해 11월 11일. 4차위는 ‘제6차 규제·제도혁신 해커톤’ 회의를 개최했다. 해커톤 회의는 4차위가 주도하는 규제개혁 관련 사회적 합의기구다. 민간과 정부 관계자가 참석해 규제완화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곳이다. 이날 해커톤 회의 의제 중 하나는 ‘디지털 사이니지 활성화를 위한 옥외광고물 관련 제도 개선방안’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디지털광고물 활성화를 위해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중심상업지역과 관광특구지역은 최소한의 운영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규제를 완화하자는 내용이었다. 중소 사업자의 진입을 유연하게 하고, 디지털광고물 발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에도 의견을 모았다.

‘디지털 사이니지’란 ICT(정보통신기술)와 광고를 접목해 동영상 등을 제공하는 옥외 동영상 광고물이다. 4차위는 이 같은 디지털광고물이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산업이라며 의제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디지털광고물 규제 완화는 어떤 기업에게 ‘기회’가 될까. 현재 디지털광고물 시장에서 그야말로 ‘격전’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다. 기술력과 점유율은 이 두 대기업을 따라올 자가 없다.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장장 10년 넘게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25.8%를 차지했다. 2위는 LG전자다. 2018년 점유율 12.5%를 기록했다. 그 해 삼성과 LG가 차지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3분의 1이다.

디지털광고물 규제완화로 수혜를 보는 또 다른 기업은 디지털광고 콘텐츠와 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광고대행사들이다. 현재 국내 제1의 광고대행사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이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2018년 디지털 광고비가 전년대비 14.4% 성장해 최초로 방송 광고비를 역전했다고 밝혔다. 성장 가능성 있는 광고 분야로 ‘디지털 옥외 매체’를 꼽기도 했다. 제일기획은 이미 2009년 후반부터 디지털 옥외광고물 사업에 눈독을 들여왔다. 앞서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40억 원을 들여 강남역 거리에 디지털 사이니지 형태의 가로시설물을 설치한 바 있다. 곧바로 강남구가 제일기획에 이를 3년간 무상으로 임대하는 위탁운영을 체결해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사실 디지털 사이니지 활성화는 2013년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 문화융성 사업’ 일환으로 추진돼 왔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시대의 방송 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통해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육성을 정책 과제로 꼽았다. 2014년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일기획, 이노션 등 광고업계 관계자들과 ‘스마트 광고 발전 협의회’를 발족했다. 2016년 7월에는 행정자치부가 규제완화를 통해 디지털 사이니지를 합법화하고, 건물과 벽, 옥상, 거리, 기둥, 공공시설물, 창문 등에 디지털 광고를 허용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삼성의 4차산업혁명-헬스케어

의료산업도 주요한 규제완화 대상으로 꼽힌다. 4차위는 2017년 12월, 아예 ‘헬스케어특별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여러 규제완화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헬스케어특위는 그동안 정부에 의료 빅데이터 규제 완화와 원격의료 등 ‘의료민영화’라고 불려온 정책들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체외 진단 의료기기의 ‘선 진입, 후 평가’ 제도를 관철시켰고, 국내 출시가 불가능했던 융복합 의료기기의 인허가 및 유통도 이끌어냈다. 2018년 12월에는 헬스케어특위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보건의료 빅데이터와 바이오 의약품 및 융복합 의료기기 지원과 규제완화 등의 계획이 담겼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차산업혁명 기반의 ‘헬스케어 발전전략’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의료민영화’의 복사판이다. 그리고 의료산업의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가장 바라왔던 기업 역시 삼성이다. 삼성은 이미 2010년부터 의료산업의 ‘4차산업혁명’을 주도해 왔다. 당시 삼성은 바이오제약과 의료기기 분야 등을 향후 10년의 먹거리 사업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명박 정부에 제출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방안’ 보고서에서는 바이오 의약품과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을 상업화하고 원격진료, 보건의료 빅데이터인 개인의료정보 DB화를 추진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삼성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2018년 8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당시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바이오 제약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며 약값이 시장 자율로 책정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3일 뒤 김동연 전 장관은 규제혁신 리스트에 ‘의료 관련 규제’가 우선순위에 있다는 뜻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나치게 의료 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바이오 헬스 기술 개발 및 사업화 지원 등에 1조3000억 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은 계열사와의 협업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의료원을 중심으로, 삼성SDS가 원격의료 플랫폼을,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과 각종 전자칩 기술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의약품 생산을, 삼성생명이 보험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추진은 삼성생명이 이를 수익 창출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물론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든 건 삼성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플랫폼 기업인 구글도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를 늘리며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해 9월, 구글은 범 현대가 그룹이 설립한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를 발표하고, 원격의료, 유전자 검사 등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산업이 미국, 중국 대비 뒤쳐진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며 “규제 유예보다는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한 근본적인 규제 해소가 시행돼야,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에 대한 활발한 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를 지우는 4차산업혁명

“인재는 전통적인 노동자와 달리 시간이 아닌 오직 성과만으로 평가받고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중략)...기업 뿐 아니라 인재도 일자리를 선택한다. 해고와 이직은 일상이다.”

“주52시간제의 일률적 적용에 개별 기업, 노동자가 주도적·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자동화되는 영역이 확장되고 이·전직이 일상화되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는 평생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현재의 4차산업혁명 논의는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정부 지원 등으로 국한된다. 여기서 노동자의 역할은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노동자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성과를 내는 것으로 한정된다. 실제로 4차위는 대정부 권고안에서 4차산업혁명에서의 노동자는 ‘전통적 노동자’가 아닌 ‘인재’이며, 이들은 “시간이 아닌 오직 성과만으로 평가받고, 해고와 이직은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통적인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벗어난 유연한 고용형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플랫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본에 종속된 채, 관리 및 통제를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플랫폼 노동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권에서 배제된 채 통상의 임금노동자와 같은 전업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8개 플랫폼 직종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전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일주일 평균 5.2일, 하루 평균 8.22시간 일하고 있었다. 플랫폼 직종 종사자의 노동시간이 임금노동자의 법정 근로시간보다 결코 적지 않은 셈이다. 심지어 ‘일감을 기다리는 시간’ 혹은 ‘일에 신경 쓰는 시간’ 등의 무급 노동시간도 존재했다.

흔히 플랫폼 노동은 부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을 전업으로 하는 비율은 64.0%에 달한다. 개인 총소득에서 플랫폼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4.0%다. 가구 총소득에서 플랫폼 노동자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도 78.9%였다. 플랫폼 노동이 전업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월 소득은 평균 152.7만 원에 그쳤다.

플랫폼은 형식적으로 사용자가 아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수단 여부’에 53.2%가 ‘있다’고 답했다. 일감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도 절반(50.7%)이 ‘그렇다’고 답했다. ‘일하고 싶지 않은 날에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항의 척도는 3.47점(5점 척도)이었지만, 일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종속된 노동을 하는 셈이다.

지난 1월 16일 열린 ‘기술과 노동의 변화, 그리고 노동권’ 토론회에서 김철식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은 “현재 진행되는 기술변화와 미래사회에 대한 논의들은 노동자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가운데 기업(주로 재벌 대기업) 주도,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노동의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4차산업혁명’이 논의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역시 “한국의 플랫폼 산업의 현실은 기업이나 일부 학자들이 얘기하는 것과 동떨어져 있다. 실제 지휘감독이 강력하고, 여러 복잡한 구조의 중간 착취가 있다”며 “플랫폼 산업에서 노동자는 업주와 위탁계약을 하지만, 업주는 이들을 노동자로 부리고 있다. 노동자 중심의 산업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위장된 플랫폼 산업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