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이슈2]노동 탄압 방지 대책 전무, 위원은 자본 편향 일색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재벌 범죄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삼성 노동자는 재벌 범죄의 최대 피해자다. 삼성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돈은 박근혜 정권과 비선 실세에 흘러 들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해서다. 삼성의 경영원칙인 ‘무노조 경영 철학’으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조직적인 노조파괴 범죄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열사가 나왔다. 지금도 삼성 해고자 김용희 씨는 7개월 넘게 강남역 사거리에서 고공농성을 이어오고 있고, 삼성전자가 시공사인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총 5억 원의 임금을 체불 당했다며 투쟁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노조파괴 사건 대법원 최종 선고 이후 “과거 회사 내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노조파괴에 관한 방지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피해 노동자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반면 이들은 이재용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며 최근 ‘준법감시위’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재용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노조파괴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 모두 유죄가 인정됐는데, 어째서 삼성의 대응은 이렇게 다를까. 두 사건의 차이는 바로 ‘피고인 이재용’의 유무다.

[출처: 김한주 기자]

노동자 위한 준법 감시는 없다

준법감시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는 지난 1월 9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 변호사는 ‘삼성 비노조 전략에 대한 권고를 예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위원회의 공식 출범은 2월 이후에야 가능하다. 나머지 위원과 함께 논의해 구체적인 것을 마련해 나가겠다”고만 답했다. 삼성 부당노동행위 문제에 대한 준법감시위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노동 문제 역시 삼성전자서비스 재판 절차를 통해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노동 문제 역시 예외 없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면서 사회적경제 기구로서의 역할을 같이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구체적인 대책은 없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준법감시위 전반의 실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먼저 김 변호사에 따르면, 준법감시위는 기구 설립 이후의 사안을 다루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재용 국정농단, 노조파괴 사건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이것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준법감시제도 수립 주문’의 취지인데도, 과거 사건은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권한도 모호하다. 준법감시위는 권한과 관련해 △계열사 준법지원인 등에게 자료 제출 및 조치 요구 △준법감시 프로그램 관련 이사회에 직접 권고 및 의견 제시 △위원회 권고 미수용 시 위원회 홈페이지에 직접 게시 △법 위반 사안 직접 조사 정도의 내용만 밝혔다.

우선 준법감시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겠다고 한 대상은 계열사 준법지원인이다. 삼성은 2010년 전체 계열사에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삼성물산이 대형 건설사 중 가장 많은 준법지원인(17명)을 두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다수의 준법 담당자가 있는데도 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 절차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준법지원인 제도뿐일까. 감사위원회는 경영 및 재무 상황에 대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상법이라는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감사위원회는 한 인물이 2014년부터 지금껏 역임하고 있다. 삼성물산 사태에도 6년째 문제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이미 법무실 내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팀을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감시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또 다른 제도 수립으로 ‘돌려막기’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월 17일 이재용 국정농단 4회 공판에서 삼성 측 변호인단은 PPT 발표를 통해 준법감시제도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내놨다. △10억 원 이상 대외 후원 시 준법감시위의 사전 승인 △이사회에 대한 준법감시위의 직간접적 접근권 보장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계열사 임원에게 자료 제출 요구 권한 부여 △계열사의 자료 제공 의무 부담 △일감 몰아주기 모니터링 △법 위반 직접 신고 체계 구축 등이다.

그렇다면 이사회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노동자를 겨냥한 재벌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는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범죄 행위에 이른 게 아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고 했던 이병철부터 이건희, 이재용에 이르기까지 삼성 총수 일가의 ‘비노조 경영 철학’을 임직원들이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역시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구매본부가 노조파괴를 지휘했다. 현대차 구매본부가 유성기업을 비롯한 협력업체의 납품 관리를 도맡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노조 정책은 재벌 대기업의 경영철학 및 경영방식과 맞닿아 있어, 이사회에 제동을 거는 수준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준법감시위가 자료 제출 요구 권한을 갖고, 계열사나 임직원들이 자료 제공에 대한 의무 부담을 진다고 해도, 삼성은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발의하고 국회가 처리한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오는 2월 21일에 시행된다. 산업기술, 국가 핵심기술을 포함한 정보를 유출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삼성 청부입법’이라는 주장이 거셌다. 당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산업기술보호법이 노동자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정보의 접근을 원천 차단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김지형 변호사는 기자간담회에서 산업기술보호법과 준법감시위 권한이 충돌하는 문제를 두고 “위원회 규정이 확정되면 깊게 논의해볼 것”이라고만 말했다.

노조파괴, 전교조 공안수사, 김앤장이 준법?

준법감시위 위원 구성도 논란거리다. 먼저 준법감시위 위원장인 김지형 변호사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에서 사측을 변호했던 인물이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유성기업 직장폐쇄 기간 임금청구 소송, 어용노조 설립무효 소송, 해고무효 소송 등 최소 4건에서 사측을 법률 대리했다. 동시에 김 변호사는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등에서 진상조사 등의 역할을 해 오며 진보 인사로 이름을 알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는 9일 지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지형 변호사의 삼성 준법감시위 위원장 내정을 규탄했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장은 “진보의 탈을 쓰고 뒤에서는 사측과 결탁해 노동자를 억압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왼손으로 살인하고는 오른손으로 선행해서 잘못이 감춰지는가. 이게 인권이고 진보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김한주 기자]

유성기업뿐만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사건과 현대위아 비정규직 불법파견 사건에서도 현대기아 자본을 대리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유성 노조파괴 사측 변호 논란을 두고 “(사측) 대리인에서 철회했다”며 “내가 미처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규탄한다고 표현하지만, 문자 그대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준법감시 일을 더 충실히 하라는 말로 이해하겠다”고 했다. 현대기아 불법파견 사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고민해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뿐 아니라 김 변호사는 2009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무죄를 선고했던 대법관이다. 이 사건은 삼성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낮은 가격으로 발행한 후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해 에버랜드가 임의로 이재용에게 배당한 것으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이재용은 전환사채 배당으로 당시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의 1대 주주를 차지했다. 사실상 삼성 경영 승계 작업의 시초이자 국정농단을 촉발한 사건이었다. 당시 재판관들은 무죄 6, 유죄 5의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는데 김지형 대법관은 ‘무죄’에 손을 들었다.

또 다른 준법감시 위원 봉욱 변호사는 2009년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으로 전교조 시국선언 공안수사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교사 17,147명은 그해 6월 18일 △촛불 집회 관련자에 대한 무리한 수사 중단 △용산 참사 등 정부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사과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설립 중단 등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정부는 전교조 위원장 등 88명을 고발하고 16명을 연행했으며, 전교조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무리한 공안 수사를 펼쳤다. 당시 봉욱은 언론에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직무와 관련이 없는 정치 활동”이라며 “공무원노조의 시국 대회 역시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해 직무 기강을 저해한 행위로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에서 금지하는 집단행위에 해당한다”고 반노조 정서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서 교사들이 끝내 승소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당시 사건을 “국민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있는 일을 교육과학기술부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사회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고, 검찰이 이에 적극 부응한 것”이라며 “비록 법원에 의해 검찰이 기소한 내용이 받아들여졌지만, 검찰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평가되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노동, 사회단체는 2012년 봉욱을 포함한 ‘정치 검사’ 리스트를 발표하며 이들의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반면 김지형 변호사는 봉욱 변호사를 소개하며 “유수한 대기업의 부패 범죄를 수사한 경험이 아주 많다. 이를 계기로 기업의 준법 경영에 많은 관심과 풍부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공적을 추켜세웠다.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력으로 발탁된 심인숙은 ‘악질 자본’ 전문 변호로 유명한 김앤장의 변호사였다. 심 변호사가 김앤장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 당시 시민사회는 론스타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심 변호사를 지목했다. 2003년 9월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승인했는데, 이때 론스타를 법률 대리했던 김앤장이 대정부 로비에 나섰다는 의혹이 나온 까닭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당시 박준 김앤장 변호사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승인을 요청했고, 심 변호사가 박준 변호사와 한 팀으로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심 변호사는 2011년 금융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후 금융위에서 본인이 변호했던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여부를 심사하게 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재용 면죄를 위한 재판

이처럼 삼성 준법감시위는 인물 구성을 비롯해 권한과 기능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논란을 낳고 있다. 결국 준법감시위 설치 목적이 ‘이재용 형량 감형’이 아니냐는 비판도 높다. 실제로 그동안의 공판 과정을 살펴보면 사법부의 작량감경 시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출처: 김한주 기자]

우선 준법감시위원회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주문으로 꾸려진 기구다.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25일 1회 공판기일에서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둔다”며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 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 씨도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해서는 미국 양형기준 제8장과 그에 따른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 감시제도를 참고하라”고 말했다. 이어 12월 6일 3회 공판에서는 “정치 권력자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을 경우 또 뇌물을 공여할 건지, 그런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해 달라”고도 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 설립을 연이어 강조하고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1월 2일 준법감시위원회 첫 보도가 나왔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위원장에 진보성향 전 대법관’이라는 <조선일보> 기사다. 1월 17일로 예정된 공판 기일을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언론의 관심이 쏠렸고,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는 1월 9일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100명에 이르는 취재진이 몰렸다. 당일 포털에 등록된 기자간담회 기사만 444건에 달한다. 언론들은 대부분 삼성이 진보 인사를 영입하며 변화를 택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1월 9일부터 1월 16일까지의 기사는 무려 764건. 삼성은 17일 공판까지 준법감시위를 알리는 데 충분한 효과를 봤다.

17일 재판부는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제도는 기업범죄 양형 기준의 핵심적 내용으로 1991년 제정된 미 연방 양형기준 제8장에 언급된 양형 사유”라며 “이 제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고 밝힌 말을 번복하고, 삼성의 준법감시위 설치를 양형 반영으로 화답한 것이다. 특검은 공판에서 “재판부는 첫 공판에서 준법제도 말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편도 언급했다. 지배구조 개편 없이 준법위만 도입한다면 그 자체로 실효성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오너 마음에 따라 언제든지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이 가능하다. 대상과 조직이 삼성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돼 있는 조직이 얼마나 강력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아가 재판부는 특검의 이재용 불법 승계 관련 증거 채택도 기각했다. 특검이 가져온 증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수사 자료다. 특검은 “재판부 결정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재판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도대체 재판부가 목을 매는 미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무엇일까? 제8장의 제목은 ‘조직에 대한 선고(Sentencing of Organizations)’다. 조직에 대한 양형기준이지, 개인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국정농단 사건은 ‘피고 이재용’에 대한 양형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8장에는 “범행 당시 준법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면 회사의 과실 점수를 감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후적으로 준법제도를 도입하면 과실 점수를 감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장현술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은 “재판부가 이재용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꼼수를 국내 법체계에서 찾지 못해 미국 기준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며 “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다시 1심의 5년 징역형을 유지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 입장을 께름칙하게 여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5년 형량을 어떻게든 줄이려 법과 원칙을 저버리고 있다. 반면 이런 사법부가 건설노조 위원장, 유성기업 노동자는 다시 법정 구속시키고 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사법 농단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이재용 국정농단 범죄와 관련해 한국의 법과 원칙을 엄정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1월 22일 국회의원회관 ‘삼성 공화국으로의 회귀’ 토론회에서 이재용 범죄에 대한 한국의 양형기준 적용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대법원이 인정한 이재용의 업무상 횡력 금액은 86억 원. 해당 혐의에 대한 양형기준은 4년에서 7년(50억 원 이상 300억 원 미만)이다. 양형기준에 감경요소와 가중요소가 있는데, 이재용 범죄의 경우 △공범으로서 주도적 역할 △범죄를 통해 지배권 강화나 기업 내 지위 보전의 목적 △범행 후 증거은폐의 시도로 볼 수 있는 일련의 행동들이 가중요소에 속한다. 집행유예 기준에서 이재용이 적용받을 수 있는 조항은 전과가 없고 피해액을 변제했다는 정도다. 따라서 최 교수는 최종적으로 이 부회장의 선고형은 5년에서 8년이라며, 이 경우 집행유예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최 교수는 재판부가 줄기차게 외쳐왔던 미 연방 양형기준을 적용해도 최소 징역 5년 10개월에서 최대 9년의 실형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범죄의 뇌물액 86억 원, 주범으로서의 형사책임, 법 집행의 고의적 방해 등 미 양형기준 조항을 따졌을 때의 결과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법원은 범죄자 개인에 대한 엄중 처벌보다 기업에 대한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이 미국 형사사법 절차의 기업 범죄에 대한 기본적인 대처 방식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거나, 이를 부정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 편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현재처럼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해 재판을 편파적으로 진행할 경우 이는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공화국’으로의 회귀…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은 어디에

삼성전자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삼성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과거 복잡한 순환출자 형식에서 지주회사 체계로 재편한 것이다. 2019년 10월 말 기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17.23%의 지분을 가진 이재용이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로 넓혀 보면 지분은 33.23%에 달한다. 우호주주 KCC지분은 8.97%다. 사실상 이재용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지분구조다. 이재용이 장악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전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언론은 이재용의 경영권 위기를 점쳤는데,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작량감경 시도로 더 강력한 ‘이재용 체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삼성그룹뿐일까. 다른 재벌 대기업들도 삼성과 같이 지주회사를 통한 지배구조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을 시도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최대주주로 23.2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지분은 6.71%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지주회사를 통한 재벌 3세들의 지배력 강화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통해 지주회사의 지분율 요건을 상향하며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길을 터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신년회에서 4대 그룹 총수와 만나 ‘상생 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외쳤던 ‘재벌 체제 청산’ 구호는 공염불로 남았다. 국가기관조차 온갖 재벌 범죄 속에서 피해를 입었던 노동자와 국민의 목소리를 잊은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