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음의 증언...“유보된 해결, 지연된 정의”

한국마사회, 청주방송, 중증장애인 취업지원사업, 병원, 유성기업 등

매년 4천 명이 넘는 취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사회. 하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노동현장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고 문중원 경마 기수의 일터였던 한국마사회를 비롯해,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현장’에 대해 증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는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을 증언한다 : 유보된 해결, 지연된 정의가 불러온 죽음’이란 제목으로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회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노동자들이 분노를 표현할 방법이 왜 죽음뿐이었을까. 왜 표현 수단이 죽음뿐이었을까. 그것은 자살을 행한 ‘개인’이 아닌 그 사람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현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들의) 공통점을 찾고 풀어나가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전했다.

증언대회에서 발표된 현장은 한국마사회, CJB청주방송,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병원(간호사의 현장), 노조탄압 기업(유성기업) 등이었다.

현대판 노예, 마사회의 노예였던 경마 기수

고 문중원 기수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취득하고, 자비를 들여 해외 연수까지 다녀오는 등 조교사를 준비 중이었다. 조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사회가 주관하는 마사대부 심사에 합격해 마방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심사가 진행되기 전, 최종합격자는 김00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고광용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 지부장은 “이 심사는 열사의 노력과 무관한 것이었다. 그가 심사를 받을 당시 감독관이 누구며, 합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며 “또 민주노총 조합원 혹은 기수는 절대 합격시키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렸다. 안타깝게도 열사는 기수이면서 조합원이었다. 이 소문은 현실이 돼 열사에게 감독관 중 마사회 직원 5명은 모두 불합격, 외부 인원 2명은 합격을 줬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올해도 마사대부 합격 예정자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사회는 순위상금(1~5위)에 대한 기수 배분율, 기승료 및 기타 입상인센티브 등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고, 조교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아 수행한 경주기승 업무의 대가로 기승료와 상금 등을 지급받는다. 고광용 지부장에 따르면 마방(조) 5명이 상금으로 천만 원을 벌어도 조교사가 배분의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기수도 존재했다. 조교사의 눈 밖에 난 기수의 수입은 최저임금 정도였다.

고 지부장은 “기수들의 나이는 40대 정도지만, 몸 상태는 60대로 잠을 자기도 어렵다. 우리의 삶은 말 그대로 현대판 노예라고 볼 수 있다”며 “조교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옆 동료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동료가 다치면 속으로 웃었다. 고참이 조교사랑 트러블이 생겨 잘려나가면 행복하고 기뻤다”며 “너무나 비참한 삶이다”고 토로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29일 새벽, 한국마사회 문중원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가 세 장의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부산경마공원에서만 총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 중 4명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 사망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언급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마사회의 제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사회는 민주노총 열사대책위와의 집중교섭이 결렬된 지난 1월 30일, 법적 책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청주방송 정규직 보다 두 배 일한 프리랜서 PD

2018년 말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는 동료 프리랜서 스태프 등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된 후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 당시 소송은 동료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행한 ‘공익소송’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22일 고인은 패소했고, 항소장을 접수한 1월 30일로부터 5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이재학 PD는 과연 프리랜서였을까. 고인의 변호를 맡았던 이용우 변호사는 고인이 청주방송에서 14년 동안 일한 내용이 법률적으로 ‘청주방송의 노동자’라는 증거라고 전했다. 그는 고인이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연출이나 조연출 업무는 물론 보조금 관련 업무와 상당한 양의 행정업무와 대외업무 등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도 방송사 특성상 국장-CP-PD-AD 등의 위계에 따라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 방향이 정해진 후 고인의 업무가 정해졌고, 그가 조연출일 경우에는 PD 등에 의해 업무가 정해졌다. 또한 이 변호사는 그의 근로제공에 있어 계속성과 전속성이 있었다고 전했다. 청주방송이 배정한 프로그램과 지시한 업무를 수행했을 뿐 자율적으로 담당 프로그램이나 업무내용을 정하여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담당한 많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매일 청주방송에 출근해 업무를 수행했기에 타 방송사 업무를 수행할 여지도 없었다. 근무시간도 회의, 촬영, 편집, 송출 등의 업무로 인해 고정적·반복적이었다.

이용우 변호사는 “고인은 동료들과 관계도 좋고 일도 잘했다. 그래서 정규직 PD보다 두 배 가까이 일을 수행했고, 끝나면 특집방송을 맡았다. 때문에 재직 중인 프리랜서들이 진술서를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27일 유족 및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 청주방송노사는 고 이재학 PD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합의했고 출범했다. 그러나 지난 3일 1차 진생조사위에서 회사는 회사 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노동자 얘기하는 자리에 중증장애인 얘기는 나오지 않아”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노동자 얘기를 하는 자리에 중증장애인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늘에서야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중증장애인 취업 사업)’에 참여했던 고 설요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활동가는 실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월 60시간을 일해 65만9650원을 받았다. 그의 업무는 월 4명의 중증장애인 사업 참여자를 발굴하고 참여자 1명을 월 5회씩 만나야 했다.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소속 기관에 임금을 반납해야 했다.

앞서 장애인단체들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 정책에서 중증장애인의 일자리가 포함돼있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아울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7년 11월부터 85일 간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요구하며 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했다. 투쟁 끝에 지난해 중증장애인 취업 사업이 시작했다.

문애린 상임대표는 “장애인은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돼있다. 또 고용노동부는 장애인의 환경을 사업에 반영하지 않았다. 또 기획재정부는 중증장애인에게 투여될 시범사업 예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중증장애인 일자리 사업의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효율, 실적, 기동성을 중증장애인에게 강요한다면 어느 장애인도 노동자로 살아갈 수 없다. 중증장애인 취업 사업은 권리중심의 공공일자리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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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여야 한다. 모든 국민은 노동을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의무를 지키기위해 노동을 하는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후 쉬쉬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또한 노동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취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다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화를 죽음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정부가 노동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