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비정규직을 사람으로 봐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12)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의 직접고용 투쟁 이야기 ②

지난 2월 7일부터 대구 한국가스공사 본사에서 근무하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이 20일 간의 파업 투쟁을 했다. 3일 동안 채희봉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장실 농성도 진행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노동자들은 201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에 대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2년 넘게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전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한국가스공사 측은 자회사 전환을 주장하다가 지난해 연말에는 전 직종 직접고용 안을 냈다. 하지만 정년을 60세로 단축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 ‘청년선호 일자리’라며 공개채용을 하겠다고 했다. 단서들에 관한 의견을 좁혀볼 틈도 없이 한국가스공사 측은 최근 다시 소방·파견을 제외한 전 직종에 대한 자회사 전환을 주장했다. 직접 고용 안은 ‘개인의 안’이었다고 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는 대구지역 코로나 19 확산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조합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20일 만에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한국가스공사는 파업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물 출입을 막고, 화장실에서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손 씻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역 경영 안정을 위해 200억 원의 ‘상생펀드 특별 지원’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2억 3천만 원 상당의 마스크와 살균소독제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한국가스공사 안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 한 장, 손소독제 한 통 지급하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5일차 파업투쟁 이야기를 통해 이들의 삶과 직접고용 투쟁 과정을 두 차례에 걸쳐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 주>


가장 힘든 건 물건 취급당하는 것

“저희도 살면서 세상이 주는 대로 받고 세상이 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모인 거 같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이 불문하고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불문하고 지금 현재 투쟁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경 업무를 하고 있는 곽민석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민석 씨는 올해 서른다섯 살로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막내 그룹에 속한다. 민석 씨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휴대폰 수리 업무를 하다가 3년 전에 한국가스공사 용역회사 소속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일을 배우면서 조경 자격증도 땄다.

“거기(삼성전자 서비스센터)는 고객 갑질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모든 갑질의 최고봉이에요. 세상에서 진짜 내놓으라 하는 갑질들은 다 있는 곳이죠.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지고 못 버티겠더라고요. 우울증이 오고 사람도 싫어지고.”

으리으리한 한국가스공사 건물을 처음 보고 가졌던 기대감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살, 6살 아이를 키우는 민석 씨는 한국가스공사에서 일 하면서 마이너스 생활을 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는 건당 받아가는 수수료 차이라도 있었는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는 몇 년을 일하건 급여가 늘 신입직원과 같았다. 호봉이나 근속수당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민석 씨는 한국가스공사 만 4천 평 되는 공간에 있는 나무와 풀, 꽃을 관리한다. 계절에 맞게 비료와 물을 주고, 가지치기와 월동작업을 한다. 건물 안과 테라스, 숙소동에 있는 나무와 화분도 민석 씨가 관리한다. 연못 관리와 연못에 사는 물고기 배설물 치우기도 민석 씨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이 넓은 곳의 조경 업무를 용역회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다 하고 있다. 민석 씨는 이 일을 정규직 3명에게 하라고 하면 난리가 날 거라고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기존에 용역을 주던 전정 업무를 지난해 갑자기 세 명의 비정규직 조경 근무자에게 하라고 했다,

“건너편 소나무 밑에 보면 나무가 일자로 되어있지요? 전기톱으로 그렇게 깨끗하게 자르는 걸 전정이라고 해요. 제가 그 전정을 하다가 왼쪽 어깨가 나가가지고 산재신청 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는 용역이니까 비정규직이니까 그렇게 일을 시키는 거예요. 우린 시켜도 아무 말 못 하니까. 그래서 정규직 꼭 돼야 돼요.”

민석 씨가 한국가스공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당하는 거였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경 노동자들에게 약으로 쓰는 나무 열매를 따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술 담궈서 그걸 로비하는데 쓰더라고요. 처음에는 씻어서 주다가 재작년에는 그냥 따서 줬어요. 노조가 생겨도 따 달라고 그래요. 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다르게 화살이 돌아오겠죠. 헬스장도 있는데, 잘 안 가요. 운동하다 보면 무시 한다 캐야 되나. ‘왜 왔니?’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니까.”

민석 씨가 정규직이 돼도 나무 열매 따는 일을 하게 될지, 그 일은 누가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갑의 권리처럼 요구했던 일들을 해줄 사람이 없어진다는 불안감도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이유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파업투쟁 15일차 다 함께 율동을 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연정]

청년이 없는데 무슨 청년 일자리?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는 사람처럼 유령취급 하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우리 도움이 필요할 때만 우리를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지나가요. 자기가 가는데 앞에 장애물이 있는 것 마냥 피해가는 거죠. 그게 더 비참해요.”

공공부문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 민석 씨는 정규직이 바로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역시 세상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자회사가 용역보다 안 좋다는 건 먼저 자회사 간 다른 공기업들에서 다 판단이 됐잖아요. 먼저 자회사 간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데, 우리가 굳이 거기를 갈 필요가 없잖아요? 청년선호 일자리요? 청년이 있어야 청년 일자리지. 지금 여기 청년이 없는데 무슨 청년 일자리에요? 지금 청년들 뭐하고 있어요? 공부하고 있잖아요. 스펙 쌓고.”

청년선호 일자리 공개채용 이야기가 나오자 민석 씨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민석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년 계약서 쓰지 않아도 해고되지 않게, 고용을 안정시키라는 것이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의 취지라고 했다. 또한 정규직 전환 방식의 선택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고 그렇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집 공고를 내면 우리 쪽 하고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업급여 때문에 넣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넣더라고요. 60% 이상은 다 의미가 없어요. 두 단계 필터링해서 면접을 보는데, 적격자가 없어서 다시 공고를 내기도 하고. 두 번 면접을 본적도 있어요. 어떤 때는 지원자가 아예 없고, 또 어떤 때는 왕창 들어옵니다. 그리고 면접 통보를 하면 기가 막히게 반밖에 안 옵니다.”

한국가스공사 시설파트 용역회사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홍종표 지부장(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은 지원서가 여름 휴가철에는 안 들어오고, 명절 전이나 불경기 문제가 이슈화 될 때는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럴 때는 이른바 스펙 좋은 사람들이 지원을 많이 한다. 2017년 공공부문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전혀 없다. 스펙이 좋은 청년들은 이곳을 잠시 머물러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4년제 대학 나오고 각종 자격증 다 딴 사람인데, 스펙이 좋아요. 면접 때 보니까 일을 안 해 본 손이에요. 그래도 우리는 같이 일을 하자 해서 채용을 했는데, 지속적으로 다른데 응시하다가 떠나더라고요. 그건 우릴 이용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도 조직인데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하면 힘들죠. 아파트 시설관리 했던 사람들도 왔다가 많이 나가요. 여기가 거기보다 근무조건은 좋은 편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되냐고 해요.”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공구 챙겨 오라 그래서 갔더니...

홍 지부장에게 한국가스공사의 비정규직에 대한 갑질과 차별 사례를 묻자 책 두세 권은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노동자들은 보통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시켰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인데 갑자기 정규직이 차에 태워서 어디를 가요. 가스공사 직원의 집도 아니고, 직원이 세놓은 집에 물이 세니까 거기 가서 집수리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십여 년 전 일 입니다. 제가 직접 갔죠.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공구 챙겨갖고 오라 그랬는데, 나중에 가서 알고 보니까...셀 수도 없습니다.”

홍종표 씨가 한국가스공사에서 2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제일 스트레스 받았던 것은 책임전가라고 했다.

“보통 저희 쪽에 담당 과장이나 대리한테 업무지시를 받아요. 일을 다 만들어놨는데, 위에서 가스공사 부장이 지시를 변경해요. 그럼 그게 다시 또 계통 밟아서 내려와야 되는데, 자기들끼리(정규직들끼리) 전달이 안 된 겁니다. 그 화살이 우리한테 옵니다. 쌍욕을 들은 적도 있어요. 자기 직원들한테는 사업 평가를 받고 진급해야 되니까 그런 욕을 못하고 그 스트레스를 우리한테 푸는 거죠.”

홍 지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 평가가 가스공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의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책임감 있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돈이나 빼먹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어떤 반론을 제기해도 통하지가 않습니다. 문제가 되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본사 건물을 지을 때 미리 내려와서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 시설 일이 좀 많았어요. 보통 새벽 한두 시에 들어가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하는 때가 많이 있었죠. 그 당시에는 고생했다고 나중에 완공되고 나면 표창장을 줘야 된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갑(한국가스공사) 측에 담당 부장이 한 명 바뀌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하느냐면 낮에 할 수 있는 일인데, 평일 날 할 수 있는 일인데, 일부러 돈을 더 받으려고 밤에 하고 휴일 날 한다. 이런 식으로 매도를 해버리는 거예요.”

현재 한국가스공사에서 시설과 미화, 전산, 특수경비 업무 등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험한 갑질과 차별의 시간을 견디며 한국가스공사를 일구어 온 사람들이다. 궂은 일 모진 일 마다하지 않고 한국가스공사를 위해 성실하게 묵묵히 일해 온 사람들이다. 시설과 전산 쪽에는 경기도 성남 시절부터 가스공사에서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선배들의 업무 노하우를 존중하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다. 홍 지부장은 이렇게 한국가스공사를 위해 묵묵히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하라는 게 공공부문 정규직전환 가이드라인의 취지 아니겠냐고 했다. 그런데 한국가스공사는 정규직 전환은커녕 사장을 만나러 사장실에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부인’ ‘불법’이라 운운하며 나가라고만 했다.
  한국가스공사 앞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 [출처: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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