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진조위, “삼성전자서비스 비공개 교섭 사과” 권고

“노조가 블라인드 교섭…비민주적, 주체 배제했다”

금속노조가 과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사건에서 발생했던 ‘블라인드 교섭’이 주체인 조합원을 배제했고,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훼손했다며 이에 노조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내놨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126쪽’ 진상조사 보고서, 9가지 권고 사항 채택
‘노조파괴’ 삼성·정부에 사과 요구, ‘비공개 교섭’ 노조도 사과


<참세상>은 지난 13일 금속노조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련 진상조사보고서’(아래 보고서)를 입수했다. 3월 3일 노조 중앙집행위원회에 발표된 이 보고서는 삼성 노조파괴 사건의 진상, 블라인드 교섭 과정, 관련자 대면조사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금속노조는 조사 결과로 9가지 권고 사항을 채택했다.

권고 사항은 △삼성에게 노조파괴의 직접 피해자인 우리 노조와 조합원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피해회복 방안, 무노조 전략 폐기를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정책 수립을 요구 △정부에 삼성 노조파괴에 공권력 및 행정 권력이 동원됐음을 인정하고, 정부 차원의 사과 및 삼성 노조파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감사 및 징계 등의 조속한 조치와 노조파괴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을 촉구 △금속노조는 2014년 진행된 비민주적이고 주체를 배제시킨 비공개 교섭에 대해 공개 사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핫라인 운영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과문 게재 △노조는 노동자의 단결력을 훼손하고 단체교섭권을 부정한 해당자의 징계 여부를 판단해 처리한다 등이다. 삼성 노조파괴 사건에서 노조가 비민주적 교섭을 진행했다는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삼성 노조파괴 사건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정점으로 한 조직적인 체계에서 이뤄졌다. 삼성 노조파괴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2010년부터 미전실을 통해 ‘노조 고사화’ 등 대응 전략을 만들고 노조파괴를 시도했다. 2014년 5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염호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삼성은 공권력과 함께 시신을 탈취하고, 경총을 통해 교섭을 지연하는 등 노조파괴 전략을 실행했다. 같은 시기 금속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와 교섭을 벌였는데, 노조 간부 극히 일부만 교섭에 참여하고, 교섭 내용이 모두 비밀리에 부쳐져 ‘블라인드 교섭’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블라인드 교섭, 노조 간부 제안으로 시작”
조합원들, 교섭 궁금해 노측 간사 미행까지


보고서에 따르면 블라인드 교섭은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의 참여를 요구한 노조 경기지부 간부 A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노조가 재판 과정에서 나온 피의자신문조서를 확인한 결과, A씨가 2014년 5월 정보경찰 김정환을 통해 당시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최소한도의 내용으로 단협을 체결하자고 요구하고 교섭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원청 사용자성’이 드러나지 않길 원하던 삼성 측에서도 자문단의 보고를 받아 교섭에 참여하게 됐다.

금속노조는 보고서를 통해 “노조는 교섭 간사(A씨)의 철저한 비밀 유지에 근거해 노조 교섭 간사가 말해주는 내용만으로 교섭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노조 중앙 역시 A씨의 블라인드 교섭 진행으로 전체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노조가 A씨의 블라인드 교섭을 막지 못했던 이유로는 삼성 자본이 교섭에 나왔고, 교섭이 중단될 경우 장기투쟁으로 돌입해야 한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노조 전체가 블라인드 교섭을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 일각에서는 블라인드 교섭이 갖는 문제를 의식하고 “사측 제시안은 문서로 가져올 것”, “조합원에게 설명할 때는 (사측이 누구인지) 구체적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같은 해 5월 24일 노조 상무집행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실무교섭단이 구성되기도 했다. 5월 23일 사측의 교섭 재개 요청으로 꾸려진 교섭팀이었다. 당시 실무교섭단 총괄 책임자는 “교섭단을 구성해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으나 노측 간사 혼자만 들어가야 된다고 해서 추진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블라인드 교섭으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 역시 교섭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지회는 “노조가 누구와 교섭하는지 알고 싶어 노측 간사에게 여러 차례 물었으나 알려주지 않았으며, 어디서 교섭하는지 궁금해서 미행하기도 했으나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노조에 출석한 대면조사자들은 정보경찰이 교섭 장소에 배석해 안을 조율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A씨는 노조 진상조사위원회 측에 입장문을 통해 “원청 사용자성이 걸린 특수한 상황, 통상적 노사 교섭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다양한 접촉과 교섭형태가 나타난다”며 “노조에서도 여러 상황에서 이런 사례가 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노조의 관행’은 아니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블라인드가 문제고 없애야 한다면, 먼저 이런 사례를 밝히는 것이 우선 아닐까”라고 밝혔다.

  2014년 염호석 노동자 시신 탈취 사건 당시 [출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사 결과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 재정립해야”
노조, 권고 따라 오늘 삼성·정부에 사과 요구


노조는 진상조사를 통해 삼성 노조파괴에 대한 노조의 공세적 대응이 필요하고, 동시에 노조의 조직 내 민주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남겼다. 노조는 “비공개 교섭은 지회 주체들이 교섭 석상에서 배제되므로 자주성을 탈각시켰다. 2014년 6월 28일 합의한 안이 센터에 적용되는 시점인 10월에는 ‘월급 대란’이 일어났다. 합의안 해석이 센터와 조합원마다 달랐다. 주체들이 참석하지 않은 교섭은 좁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주체화되지 못하고 토론되지 못한 교섭과 투쟁에서 조합원은 그저 동원체로 전락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어 “진상조사위원회는 노조가 2014년 블라인드 교섭이 문제의 시작이자 핵심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조합원들에게 이를 묵인한 잘못이 있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핫라인이 실질적인 교섭라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통렬한 반성과 책임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주교 금속노조 부위원장(진상조사위원회 단장)은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진실에 접근하자는 게 진상조사의 첫 번째 목표였다”며 “2019년 들어 많은 조합원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 대두됐다. 우리는 삼성 재벌과 열심히 싸웠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경우 간부 개인이 경찰 공무원과 개별 교섭을 했다. 교섭 공개,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이 훼손됐다. 금속노조도 앞으로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 권고에 따라 금속노조는 16일 성명을 통해 삼성과 정부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는 “삼성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직원을 사찰하고 감시했다. 노조 탈퇴를 거부하면 원하청 관계를 이용해 해고했다. 모든 작전은 삼성그룹 심장부(미래전략실)가 나섰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전직, 현직 경찰, 고용노동부 관료, 정보 브로커를 동원하고 협력했다. 삼성 재벌과 정부에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와 책임에 대한 사과를 공개 요구한다”고 했다.

한편 노조는 오는 17일 중집에서 향후 삼성, 정부에 대한 노조파괴 손해배상 청구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손배 청구 소장 발표 시점에 블라인드 교섭에 대한 공개 사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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