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경찰이 ‘핫라인’으로 노조를 ‘길들인’ 방식

삼성, 노조 편제 문제까지 개입…“노조 간부에 500만원 지급”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련 진상조서보고서(아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교섭이 ‘핫라인’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핫라인’에 참여한 정보경찰은 삼성에 대리 교섭 대가로 돈을 받는가 하면, 삼성 또한 금품으로 ‘핫라인’에 참여한 노조 간부를 지속적으로 포섭하려 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삼성, 노조 편제·선거까지 전략 세워
핫라인으로 삼성에 흘러간 노조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정보경찰 김정환을 통해 노조 간부와 ‘핫라인’을 운영했다. 2014년 염호석 열사 투쟁 당시 노조 경기지역 간부가 김정환과 교섭을 했다면, 2015년 2월부터 2018년 직접고용 합의 전까지는 당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이 김정환과 만남을 지속했다.

경찰과 노조 간부의 ‘핫라인’은 각종 노사 문제에 개입했다. 2015년 3월 사측은 ‘전자인사지원그룹 작성 자료’를 통해 “노조원들이 장기 투쟁에 회의적인 상황이므로 지회장이 임금교섭 조기 타결을 금속노조에 전달할 것이고, 금속노조는 이를 승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비선을 지속 가동하고 노사 7명의 교섭은 ‘약속대련’으로 진행하고, 실제 교섭은 핫라인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실질적인 교섭권이 노사교섭단이 아닌, 삼성의 교섭 대리를 자임한 경찰과 노조 간부의 ‘핫라인’에 있었던 것이다.

삼성은 핫라인을 통해 임금교섭뿐만 아니라 노조가 결정할 조직 편제 문제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현재 지회는 전국을 아우르는 ‘통합지회’ 체계다. 금속노조는 단일산별노조로 아래에 지역지부(대기업 단위 지부), 지부 아래에 지회를 두고 있다. 노조 체계상 삼성전자서비스통합지회는 이례적인 조직이다. 때문에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지역지부로 편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삼성은 노조가 지역지부로 편제되면 노무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공작을 세웠다. 2015년 7월 23일 사측이 작성한 ‘지역지부 편제 영향 분석 및 대책수립’ 자료에는 “핫라인을 통해 지회 집행부 대상 15년 지역지부 편제 안건 반대를 지속 유도”한다고 쓰였고, 2015년 7월 27일 ‘핫라인 논의 결과’에는 “지회가 지역지부 편제 반대 이견 제출 경우 반대파 이슈화, 역작용 예상. 8월 17일 중집(노조 중앙집행위원회) 때까지 묵묵부답 태도로 시간 끌 예정”이라고 적혔다. 삼성이 지회 간부의 행동 전략까지 짜 놓은 셈이다.

같은 해 이뤄진 임금체계개선위(임개위)에서도 삼성은 소위 ‘백도어’, 비공개 논의 방식을 택했다. 사측은 임개위를 두고 ‘백도어(B-door K-R, K는 경찰, R은 지회 간부)’ 논의한 뒤, 공식적 합의 절차로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내부 문건에 남겼다. 또 진조위가 확인한 8월 26일 사측 문건을 보면, 김정환과 당시 지회장이 만나 임개위 진행 방식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회장 선거 지원까지도 핫라인에서 다뤄졌다. 8월 28일 사측 문건엔 “지회장 선거에 물질적 지원을 요구한 상태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노조가 선거를 치르는 데 삼성의 지원을 바라고, 자본은 이에 따른 전략과 계획을 세운 셈이다. 하지만 진조위는 이 선거는 결국 노조 모금을 통해 진행됐고 삼성의 지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핫라인은 2016년과 2017년에도 이어졌다.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를 지낸 최평석은 재판 과정서 2016년 1월경부터 핫라인을 가동했다고 밝혔다. 2017년 8월 ‘외부관계자를 활용해 물밑협상’ 계획을 담은 사측의 기획 문건도 존재한다고 진조위는 전했다.

당시 지회장은 진조위 측에 “금속노조도 직접 교섭을 못 뚫었던 것이고, 이후 경찰을 통한 블라인드 교섭이 관행이 됐”다며 따라서 “자신도 블라인드교섭을 한 것으로 경찰 김정환을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을 만나러) 갈지 말지 지회와 논의했으며 특히 ○○○와 모든 것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대면조사들은 진조위 측에 “지회장이 경찰 김정환과 만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다만 삼성 측 누군가를 만나는 것으로 추측”했다며 “이는 지회장이 교섭 과정에서 늘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기 때문. 정회시간에 (지회장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를 역할을 분담해 확인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위험했던 ‘핫라인’, 돈 봉투 불러
진조위 “당사자가 부인…금품수령 확인 못 해”


‘핫라인’은 돈 봉투가 오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선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최평석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는 2014년 7월 8일 경총의 황용연, 노조 간부 A씨에게 각 500만 원을 지급했다. 경총 황용연은 다음 날 아침 최평석에게 “상무님 인품에 ○○이(A씨)가 탐복한 듯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특히 경찰 김정환은 ‘핫라인’ 운영 대가로 최평석 등으로부터 9차례에 걸쳐 31,883,250원을 수수했다. 반면 A씨는 진조위 측에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도 계좌 추적 결과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경찰 김정환은 2015년 3월 16일 핫라인 운영비용, 즉 식사와 술값 300만 원을 삼성 최평석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삼성에게 돈을 요구한 이유는 “경찰청과 국정원에서 받은 금액은 영수처리를 해야 하므로, 단란주점 이용비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경찰 김정환은 재판 과정에서 당시 지회장에게 여러 차례 금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회장은 진조위 측에 김정환이 택시비를 준 적이 있으나 택시기사에게 다 줬고, 액수를 확인해 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금품을 지급했다는 김정환의 주장은 자신이 받은 금액을 축소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피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라고 전했다.

진조위 “공개의 원칙, 자본의 포섭 맞서는 방법”
금속노조 “교섭 투명성, 민주성 지키지 못했다” 사과


진조위는 ‘핫라인’ 사건을 두고 “자본과 경찰, 정부 관리들과 ‘개인 만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학연, 지연, 동호회 등 온갖 인연을 내세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데 그들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 자본의 회유와 포섭에 맞서기 위한 방법은 동지들에게 모든 만남을 보고하고 공유하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조위는 삼성이 핫라인을 통해 노조의 정보를 입수하고 전략을 세웠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밀 만남은 노조 요구를 관철할 공간이 아닌, 삼성이 대책을 세우는 조력의 공간, 삼성 자본의 입장이 제시되는 공간”이라고 평했다. 또 “조합원이 주체에서 배제되고 조직 활동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요구안을 누군가가 사측에 ‘따오는 것’이라면 노조는 필요 없는 조직일 것이다. 민주노조를 위해 목숨마저 바친 이유는 자본의 통제 관리를 거부하고 노동자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결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속노조는 진조위 권고에 따라 지난 16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삼성을 상대로 교섭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며 “2014년의 비정상적 교섭은 2015년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임단협 교섭에서 정규 교섭라인이 의미를 잃은 ‘핫라인 교섭’이라는 더욱 왜곡된 형태의 비밀교섭으로 이어졌다. 삼성 자본의 투쟁 과정에서 이뤄진 교섭 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이에 대해 전국의 동지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금속노조는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거쳐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우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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