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미터 철탑 위, 삼성 해고자 김용희와 손을 잡았다

15일이면 땅을 밟을 줄 알았는데 324일째...“아직 강남역 철탑에 사람이 있다”

15일이면 땅을 밟을 줄 알았던 그가 324일째 강남역 사거리 CCTV 관제 철탑 쇠 바구니 안에 있다. 삼성 피해자 김용희 씨가 철탑에 올라갈 당시 동료들 누구도 그가 1년 가까이 고공에서 지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324일째가 되던 28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김용희 씨의 손을 잡았다.


“내가 올라갈게. 장사나 잘 지내라”

김용희 씨 인터뷰를 하기 위해 스카이크레인에 올랐다. 땅과 멀어지며 하늘로 오르는 30초의 시간, 손이 떨리고 땀이 났다. 그 높이에서도 자동차 소음은 어찌나 큰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철탑으로 몸을 가까이 밀어 넣어야 했다. 키 180cm의 김용희 씨가 두 팔을 벌리면 쇠 바구니가 가득찼다. 그는 지름 120cm의 그곳에서 위태롭게 상체를 숙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지난 4일 최규진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질문을 하는 기자 쪽으로 몸을 자꾸만 밖으로 뺀다. 사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식을 병행하며 매일 위태롭게 잠을 청했을 그의 건강은 모두가 예측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매연과 먼지로 뿌옇게 덮인 안경알 속 김용희 씨의 눈은 삼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로 초롱초롱하다. “아직 삼성에 맞서 싸울 힘이 있습니다. 제가 깡다구가 세거든요” 건강 상태를 물어본 기자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단호한 답변이었다.

무려 25년 동안의 해고자 복직 투쟁 기간 동안 5번의 단식을 했다. 25m 철탑에 올라가기 전, 김용희 씨는 삼성 해고자들과 함께 앞으로의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올라갈 사람. 이제 마지막은 저거(철탑)밖에 없다” 아무도 못 하겠다는 철탑에 김용희 씨가 올라가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올라갈게. 장사나 잘 지내라” 수십 년을 싸웠고 단식도 해봤지만 해결되지 않으니 죽겠다는 결의로 올라간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아무리 삼성이라도 15일이면 내려올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김용희 씨는 왜 삼성에 맞서 이렇게까지 싸우는 걸까. ‘납치, 감금, 회유, 공갈, 협박, 간첩과 성폭행 누명’ 그는 1990년도 3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돼 노조 활동을 하던 중 밤중에 미상 불명 다수로부터 목각테러를 당해 20일간 입원을 했다. 부서장과 과장이 회사 차량으로 납치해 15일간 노조 활동 포기와 온갖 회유, 협박 등을 하기도 했다. 결국 1982년부터 창원공단 삼성항공 1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1991년 노동조합총회 당일 해고당했다. 투쟁 끝에 1994년 삼성건설 러시아지점에 복직했지만, 이번에는 간첩으로 누명을 썼다. 조사 결과는 ‘간첩 혐의 없음’이었다. 이후 부서 전환배치 통보에 맞서 단식 투쟁을 진행한 끝에 1995년 국내로 입국할 수 있었다. 창원공단 삼성항공에 또다시 입사했지만 노조 활동 포기 각서를 쓰지 않으면 복직할 수 없다는 사측의 해고 통보에 해고통지서도 없이 쫓겨났다.

가끔 김용희 씨는 떠나간 열사들을 떠올린다. “그 동지들은 노예적 삶과 그 굴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을 던졌죠. 저도 수십 차례 죽으려 했어요. 근데 대한민국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악독한 삼성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어요” 삼성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했을 것이었다. 여느 투쟁이 그렇듯 사람들은 김용희 씨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하곤 했다.


건설노조, 김용희 씨와 손잡다...“건강한 모습으로 땅을 밟을 수 있길”

건설노조는 경기건설기계지부 스카이크레인지회 조합원의 차를 끌고 김용희 씨를 만났다. 28일 오전 10시경 강남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에 모인 20여 명의 사람이 차례대로 스카이크레인에 올랐다. “이재용을 구속시키고 삼성그룹 박살 내자” 건설노조 중서부건설지부, 경인본부 전차선지부 등 건설노동자 15여 명은 수도권 투쟁지원단 사업의 일환으로 약식집회를 열었다.

“이 투쟁이 단지 김용희 동지의 투쟁으로 머물러선 안 됩니다. 건설노조가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한 마음이예요. 그럼에도 김용희 동지와 함께 승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함께할 것입니다. 동지들, 김용희 동지의 투쟁이 개인의 투쟁으로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조합원들한테도 설명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투쟁에 승리하고 김용희 동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힘차게 같이합시다.”(최명숙 건설노조 경인본부 사무국장)

김용희 씨를 직접 만나고 온 건설노조 조합원은 김용희 씨 걱정에 낯빛이 어둡다. 그는 15분가량 스카이크레인에 올랐다. “강한 정신력이 있기에 이렇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종철 중서부건설노조 소속 목수노동자는 거대 삼성 그룹과 개인이 싸우고 있음에도 아직 힘이 넘쳐 보인다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김용희 씨지지 방문을 준비한 최태영 건설노조 조직국장도 착잡한 심정을 전했다. “품앗이 하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저희처럼 조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삼성 피해자분들, 참 많이 힘들고 어렵지만, 삼성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그 어떤 범죄 행각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반드시 받아낼 것입니다. 그동안의 배상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니 조금만 더 참고 투쟁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용희 씨)

김용희 씨 혼자 철탑 위에 올랐지만, 땅에서는 그와 연대하기 위한 방문과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공대위’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또 오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맞아 오후 1시 30분 김용희 씨가 있는 철탑 아래에서 사전집회를 진행하고 오후 3시 30분에는 삼성전자서비스(보신각 종로타워)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관련 집회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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