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재참사 한달, 청와대 찾은 유가족

“사고 한 달, 진상 조사도 깜깜이…재발 방지 대책도 없어”

지난 4월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업재해 참사가 터지고 한 달이 지났다. 사망자 38명을 포함해 모두 48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산업재해였지만, 한 달째 중간 수사 결과조차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뒤늦게 만들어진 범정부TF는 내달 건설현장 안전에 대한 최종 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이 또한 산재 참사 당사자나 관계자를 철저히 배제한 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유가족들 100여 명이 직접 청와대 앞에 나와 정부와 원청의 책임을 촉구했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 유가족’ 100여 명은 2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여, 이번 산재참사의 원청이자 책임자인 한익스프레스 처벌을 촉구하며 반복되는 산재를 막을 수 있는 특별법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과 대표자들은 지연되고 있는 수사 결과 발표나 법제도의 문제, 또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밝히며 정부에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했다.

박강재 유가족 대표는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불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만이 아니다. 왜 노동자들은 대피하지 못했는지, 왜 산재참사가 이어지는지가 궁금한 것”이라며 “대통령비서실장, 여·야당대표, 국회의원 등이 왔다 가고 총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주문했는데 왜 아직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냐”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실제로 경찰 중간 수사 결과는 한 달이 넘게 나오지 않았다. 유족 등이 경찰에 수사 결과를 독촉하자 6월 초에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경찰은 사고 직후인 지난달 30일 ㈜한익스프레스와 ㈜건우 본사, 주요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 후 지난 16일 유족들을 상대로 수사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경찰은 “화재 원인을 명백하게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화재 원인에 따라 잘못을 물을 대상도 달라지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박강재 대표는 “‘건설현장 화재안전 범정부TF’가 다음 달까지 최종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한다고 하는데 지켜보겠다”라며 “21대 국회 역시 정쟁을 끝내고 망자들의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는 (산업안전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안전의 외주화 구조를 지적하며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발주처 ‘한익스프레스’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물러나 있다. 감리업체 ‘전인’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건우’와 하청업체들은 자신은 책임이 없다, 심지어 피해자라고 한다”라며 “(그러나) 이들 모두는 ‘위험의 외주화’에만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08년 이천냉동 물류창고 화재 사건 당시 발행된 소방백서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현재 매스컴을 통해 나오는 보도자료와 정부개선안, 법안 등의 내용들이 거의 같다”라며 “정부 부처들은 약속으로 끝내지 말고 법제화까지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유족들의 법률 대리인 김용준 변호사(마중)는 이번 참사와 거리를 두는 한익스프레스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매주 한익스프레스 상무와 건우 사장, 협력업체 임원이 모여 다 함께 공정회의를 했다. 사고 당일에도 공정회의가 있는 날이었고, 사건 현장에 이들이 모두 있었다”라며 “6월 30일 준공을 앞두고 무리한 작업을 지시하는 바람에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매주 있던 공정 조율에 한익스프레스가 관여했다는 녹취 증거도 있다.

유가족, 사고 후 한달…잊혀질까 두려웠다


한편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은 가족, 친인척. 친구 등으로 엮여 고통은 배가 됐다. 한 가족에 두 명의 희생자도 나왔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민경원 씨는 사고 당시 현장을 증언하며 사망한 동생에게 쓴 편지를 낭송하기도 했다. 민경원 씨는 산재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민 씨는 “하루하루가 자책과 고통 속에 힘이 든다. 그 화마가 치던 날 그래도 형이라고 이리저리 뛸 때 나를 따라다니던 너를 기억하면 정말 미치도록 가슴이 아프고 괴롭기만 하다”라며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있을 때까지 어린 조카들과 제수씨를 위해서라도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유가족 A씨도 이번 참사로 처남과 그의 처남까지 잃었다. A씨의 처남댁이 남편과 남동생을 둘 다 잃었다는 이야기다. A씨는 “지난 한달 간 언론 보도도 잠잠해지고, 수사 결과 발표도 늦어지는 것을 보며 이대로 잊혀지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A씨는 “한집에서 두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정말 처참한 상황이다. 코로나까지 덮쳐 집집마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산재 처리가 빨리 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익스프레스 본사 앞으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나갔다. 오후 2시 본사 앞에 모인 유가족들은 한익스프레스에 원청의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유가족 대표는 직접 한익스프레스 측을 만나 입장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