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 흑인살해 항의시위와 코로나19 계급투쟁

[사파논평] ‘제국’(The Empire)은 무너졌다. 그리고 미국(The State)의 재발견

미국에서 지난 5월 26일부터 시작된 저항시위를 ‘폭동’이라고 보거나 ‘인종’갈등의 폭발로 바라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이것은 코비드 저항시위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국면에서 인종의 문제와 계급의 문제가 교차하고 중첩해서 벌어지는 시위라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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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백인이 위대해질 나라”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다닌 미국 미네아폴리스 백인경찰이 5월 25일 대낮에 비무장 흑인 시민을 죽였다. 흑인들 중심으로 5월 26일 시작된 시위는 사흘 만에 미국 전역으로 불꽃처럼 번져 5월 31일 현재 11개 주와 25개 시에서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8개 주와 워싱턴에서 주방위군이 동원됐다.
이 일이 벌어진 미네소타주는 흑인 비율이 높다. 미네아폴리스의 ‘쌍둥이 시’이자 미네소타 주도인 세인트 폴의 시장은 흑인이다. 그리고 검찰총장도 흑인이다. 5월 30일 내가 시청하던 CNN TV에는 이들이 라이브 기자회견을 번갈아 하면서 메시지를 던졌다. 정작 미네아폴리스의 민주당 소속 백인 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흑인인 세인트폴 시장, 흑인인 검찰총장이 나와서 흑인을 타겟으로 한 경찰의 폭력에 ‘유감’을 표하면서 ‘법질서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일부가 정당한 문제제기를 ‘폭력’과 ‘무질서’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적절하지 않았다. 경찰이 무참하게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가 도화선인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하지만 언제나 미국의 ‘흑인 폭동’이 그렇듯이 권력의 근처에 있는 흑인들이 나와서 ‘진화’에 나섰다. 참으로 흔한 모습이다.
미국의 ‘인종’시위의 양상은 대부분 이렇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프로파일링’(표적삼기)하여 길거리나 가게 등에서 체포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죽여 버린다. 그 옆에는 대부분 흑인 경찰이 있다. 그리고 흑인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들끓고 자생적인 시위가 벌어지다가 밤이 되면 약탈 방화가 일어난다. 하루 이틀 후에 ‘지역의 명망가’ 흑인들(대체로 목사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나와서 옳은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폭력시위와 선량한 ‘흑인 코뮤니티’를 갈라치기 한다. 시위대는 더욱 폭도화하고 이것들은 결국 사회운동론적으로 말하면 비이성적인 ‘군중(mob)’의 ‘폭동(riot)’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끝나는 것이 ‘흔하디 흔한’ 미국의 흑인시위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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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하고 또한 흑인들의 인종폭동의 경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인종갈등은 단지 인종갈등이 아니라 계급갈등이라는 점이다. 즉 소외된 하층민의 분노의 폭발이고, 그 소외된 하층민들 중에는 대체로 흑인들이 많다. 하지만 흑인들 일부는 지배질서 안에 엘리트로도 편입돼있고, 지역의 ‘유지’ 명망가들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전역의 경찰 중에 흑인들은 어디나 있다. 그리고 경찰의 흑인 살해 시점에도 그 현장에도 흑인 경찰은 있다. 흑인 경찰이 옆에서 방조하거나 거들 때도 있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수도 없이 미국 언론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흑인이 죽고, 흑인들이 백인 경찰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또 흑인들이 나와서 말한다. 흑인시장, 흑인 경찰서장, 흑인 교수, 흑인 언론인 등등.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사건만큼, 전국적으로 흑인들이 언론에 주목받는 자리에 나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온통 어디선가 흑인들이 나와서 발언대에 선다.
그렇다면 이건 과연 ‘인종 갈등’인건가? 흑백 갈등인건가? 백인에 의한 흑인의 살해인건가? 저 흑인들은 무엇이고, 또 이 흑인들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흑인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지배질서 안에 기득권층으로 편입된 흑인들은 ‘백인우월주의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기도 하다 (또한 흑인 자체가 한 ‘인종(race)’이 아니다. 복합적인 다인종군이 미국에선 ‘흑인(the black)’이라는 통칭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흑인의 정의는 백인 피가 100%가 아닌, 그리고 흑인 1%의 피라도 섞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미국 인구조사(General Social Survey)의 인종 분류에서 라틴계는 줄곧 흑인으로 분류됐었다. 라틴계가 흑인으로부터 ‘인종/에스니스티 분류’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미국 인종 분포에서 흑인 인구는 10% 중후반대로 추락하였다. 이것 역시 정치사회적인 배경과 이해 정치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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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이 인종폭동이라면 과연 이것은 지금까지 벌어진 폭동과 아무 차별성이 없는 것일까? 크게 보면 차별성이 없다. 미국의 지배질서와 사회적 불평등이 인종을 경유하면서 구조화된 단면이 이렇게 폭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리 ‘잘난’ 흑인들이 아이비리그를 나오고, 언론인이 되고 전문직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도, 그들은 미국의 지배적인 질서를 해체하거나 그 일각이라도 허물어뜨리는데 도움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가 대통령 재임 시절에 퍼거슨 시에서 흑인 ‘폭동’ 이 일어났다. 똑같이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였다. 하지만 오바마는 결국 “우리 모두 오버컴(극복하리)”를 부르고, “amazing grace”를 흑인 교회 추도식에서 나타나 멋드러지게 한 곡 부르는 것으로, 그의 죽음을 추도하며 보내버렸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여성이나 계급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 일부가 아무리 잘나서 엘리트가 되어도 그것이 과연 젠더 적 질서를 붕괴시킬까 아니면 그 질서의 정당화를 구축해줄까. 노동계급의 일부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고, 원내 정당이 되고 심지어 ‘노동자출신’ 대통령이, 예컨대 노동자 출신이라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이 과연 계급정치일까. 미국의 인종주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4.
그럼에도 이번 미니아폴리스 발 시위 사태가 단지 흔하디흔한 ‘흑인/인종 폭동’일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항의 시위의 성격을 점차 가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중에 80%가 흑인등 유색인종이다. 흑인 등은 보편의료보험 없는 미국 공공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흑인들은 보험을 들지 못한 인구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메디케이드 등 서민용 의료시스템의 혜택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빈약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흑인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그들의 주검은 웅덩이에서 화장이나 매장을 기다리고 있다. 흑인들은 가장 낮은 서비스업종 바닥의 노동시장을 점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근 5천만 명의 해고 사태 가운데 정중앙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과정에서 미국의 불평등이 흑인 등을 중심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가디안>지 5월 31일자 기사에 따르면 미국 인구 중 5400만 명이 식량보조가 없다면 당장 ‘기아’ 선상에 놓이게 된다고 한다. 전국의 도시마다 푸드뱅크 앞에 길게 줄 지어선 행렬은 전대미문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 아동 네 명중 한 명, 즉 1800만 명의 아동이 당장 식량보조가 필요하다는 집계도 있다. 미국은 다른 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한마디로 ‘식량 안전’의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단지 전염병이 아니다. 그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불평등이 더욱 극심하게 나타나고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응축되고 쌓인다. 이번 미니아폴리스 시위는 인종폭동이면서 계급투쟁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시위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시위다. 앞으로 닥칠 ‘사회적인 위기’와 ‘대격변’의 전조일 가능성도 있다.

5.
미국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양당인 붉은 색 공화당과 푸른 색 민주당은 모두 ‘집권능력’과 ‘정당성’면에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 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하였다. 그는 전염병을 통제할 능력도 문제이지만, 전염병을 대하는 오도된 자세와 메시지로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임이 힘들다. 하지만 그 경쟁자인 민주당의 유일 후보 조 바이든은 코로나19가 겁이 나서 자신의 자택 지하 벙크에서 두달 째 박혀서 자취조차 보기 어려웠다. 미국인들은 조 바이든을 조롱하는 SNS 메시지들을 올리고 있다. 다음 정권 대통령 자리에 앉을 두 명의 후보가 다 이 모양이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렌 같은 후보들을 제치고 이런 후보들을 추대한 것이 바로 미국의 선거민주주의다.
이만하면 미국의 위기는 확연하다. 체제의 위기와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 그리고 그것이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지배 엘리트의 막가파식의 행동 가능성 때문에 전 지구 리더십의 위기와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모습이다. 제국(the Empire)은 간데없고, 미국이라는 나라(the state)의 재발견 혹은 재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