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20세기 냉전으로 회귀할까?

[한반도] 남북 관계에서 새로운 남북 ‘관계’로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rapidtravelchai/6160859022]

지난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남 보복 조치 경고를 담은 성명 발표를 시작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측은 정상 간 직통전화를 포함한 남북 통신수단을 폐쇄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그리고 대남전단 살포, 대남확성기 설치,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화력구분대 배치,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재진출, 최전방지역 1호 전투근무체계 격상 등 9·19 군사합의 파기를 전제로 하는 ‘군사행동’을 일부 실행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북한 제재 행정명령’을 1년 연장한다고 밝혔으며, 작전구역에 한반도를 포함하고 있는 미 7함대 항공모함 2척을 전진 배치했다. 또한 한미 당국은 정찰기 8대를 동시에 출격해 대북 감시에 나섰다. 여기에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까지 출간돼 파장을 일으키며 각종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북측의 행위는 그 어느 때 보다 질적으로 다르다. 남북 관계가 21세기 ‘부드러운’ 냉전에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의 냉전 시대로 역행하는 심각한 위기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그 시발점이다. 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9월 개성에 문을 열고 남북인원이 한 건물에 상주하며 24시간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한 첫 사례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커다란 의미를 두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북측이 연락사무소에서 철수나 폐쇄를 경고하면서도 또 원상 복귀가 쉽도록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번 폭파는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매우 강한 경고의 메시지라서 남북 관계의 불확실성이 당분간 길어질 것이며 긴장의 파고 역시 높아질 것이다. 단기간에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비겁한 남한과 미국의 방해 책동

남한 언론들은 북한의 말과 행동이 너무 험해서 예의가 없다는 문제제기만 한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극적이고 너무 성급하다는 진단도 있다. 70여 년 동안 분단된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평화체제를 건설하는 게 쉽지 않다는 훈시도 잊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동일한 인상 비평과 상황 분석만 한다.

사실 이번 한반도 정세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핵심적인 원인은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사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어렵게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발전을 방해하는 미국이 정한 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합의사항은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 독자적으로 중단할 수 있었던 대북 전단 살포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따라 선 북·미 핵협상, 후 남북합의 이행전략으로 선회했다. 남북합의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방안과 중장기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2018년 11월에는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남북교류 협력사업 등을 한미 실무자들이 수시로 조율하자는 취지에서 한미워킹그룹이 설치됐다. 외교부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이 회의 주체로 참석했다. 하지만 한미워킹그룹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남북 교류보다 대북제재 이행방안에만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통일부가 출석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미워킹그룹은 번번이 남북 교류협력을 방해했다. 2019년 1월 북한은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약품 타미플루 20만 명분과 진단시약 5만 명분을 준비했다. 북한 담당자는 판문점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냥 지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1월 17일 한미워킹그룹 회의에 타미플루 지원을 안건으로 올렸다. 미국 실무자가 인도적 지원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단칼에 거절했다. 그 한 마디에 북으로 향하던 화물차는 움직일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분주히 설득했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다고 미국에 명분이 있지도 않았다. 타미플루 자체는 제재 위반이 아니었다. 그런데 타미플루 운송 트럭이 북한에 가는 게 제재 위반이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DMZ통행권은 유엔사에 있었다. 결국 개성에서 2개월간 기다리던 북한 측 실무자는 수령을 거부하고 돌아갔다. 정말 황당하고 한심한 일이었다.

2018년 9월 남북은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무조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결단을 기다리던 북한은 지쳐서 지난해 10월 금강산에 있는 남한 측의 시설철거를 통고했다. 북한은 이때부터 새로운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개성공단 재개, 도로 및 철도 연결, 이산가족 화상 상봉,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그 어떤 남북한 합의사항도 이행하지 않았다. 한미워킹그룹에 대한 대내외적 비판이 집중되는 이유다.

문제는 경제다!

코로나19 사태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5개월 가까이 국경지역을 통제하면서 무역이 끊겼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따르면 지난 3~4월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 거래가 90% 가까이 급감하면서 약값이 폭등하고 옥수수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가정이 늘었을 뿐 아니라 굶는 이들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식량기구(WFP)도 6월 초에 “북한 인구의 40%에 육박하는 1000만 명 이상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올해 북한 주민 약 120만 명을 대상으로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지난 6월 중국이 80만 톤의 식량을 지원했다. 북한에서는 “중국에선 쌀을 보내주는데 남측에서 보내주는 건 삐라뿐”이라는 말과 함께 “한민족이면서 한미워킹그룹을 핑계로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삐라만 보낸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북한이 대북전단과 한미워킹그룹을 집중적으로 성토하는 배경에는 식량 부족 등 북한이 처한 어려운 경제 상황이 깔려있음을 짐작게 한다. 남한에서 정작 와야 할 식량은 오지 않고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삐라만 날아오니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신뢰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북한 주민들은 지난 2년 동안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남한에 속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이에 김정은은 미국과 남한에 속은 것을 되갚아 주기 위해 백두혈통인 여동생을 내세워 북한 주민들에게 강인한 정치적 이미지를 보이며 새로운 정치적 권위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곧 대남관계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당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민생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다.

전망을 예측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트럼프의 독선적이고 즉흥적인 선택과 결정이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여전히 의지는 빈약하다. 북한은 9월 9일 정권수립일이나 10월 10일의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새로운 전략 무기를 선보일 수도 있다. 김정은에게는 원산 갈마지구와 평양 종합병원 완공도 시급한 해결 과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남북 ‘관계’와 북한에 대한 인식이다. 북한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려면 상호 신뢰가 축적돼야 한다. 신뢰는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북 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기 때문에 수평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북 간 신뢰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