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나크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영토 병합

[INTERNATIONAL3]

*나크바: 대재앙이란 뜻의 아랍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팔레스타인 선주민 인종청소를 일컬음.

이스라엘이 최소 12%에서 최대 30%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겠다고 한다. 병합의 범위와 방식은 미국과 논의 중이며 이에 따른 병합 안을 7월 1일에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전쟁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를 통해 국가를 건설한 1948년 이후, 규모면에서 최대의 영토병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군사점령한 뒤 1980년에 동예루살렘을, 1981년에는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병합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나머지 땅은 계속 군사점령한 채, 강제 추방 및 토지 몰수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땅을 조금씩-국제적 공분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병합해 왔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은 새로울 것 없는,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고 ‘유대 민족’만의 단일 국가를 세우겠다는 오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이 먼저 나서 영토 병합을 제안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2018과 2019년에 연이어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이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승인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말에는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의 대부분을 이스라엘 영토로 할당하며 ‘중동평화안’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영토 병합을 하기도 전에,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것이 “역사적 기회”라며 바로 병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자 독일과 같은 이스라엘의 오랜 지지국들마저 당황해했다. 국제사회의 강대국들이 정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라는 ‘2국가 안’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원한 군사점령의 약속, 트럼프의 “세기의 딜”

트럼프 대통령은 교착상태에 있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면서, 임기 중에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중동이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아무 식견도, 경험도 없지만 이스라엘 위정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자신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중동 평화’의 청사진을 내놓을 담당자로 앉혔다(쿠슈너는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자신이 중동 문제를 다룬 “25권의 책을 읽었다”며 전문성을 과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사진을 발표하겠다면서도 이를 여러 차례 미뤄왔다. 부패 스캔들로 핀치에 몰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선을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네타냐후 총리를 전폭 지지한다면, 이것이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네타냐후는 당시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국 지난해 6월 말 바레인에서 청사진의 경제 분야가 공개됐고, 올 1월 말에는 정치 분야가 발표됐다. 연이은 연립 정부 구성의 실패로 작년 이후 세 번째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것이었다. 청사진의 공식 명칭은 ‘번영을 향한 평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이다.

트럼프 스스로 “세기의 딜”이라 자찬하는 이 ‘번영’의 내용이란, 팔레스타인에 돈을 풀어서 경제적 곤궁을 달래줄 테니 대량의 땅과 주권을 이스라엘에 넘기라는 것이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물론, 요르단과 맞닿은 요르단 계곡조차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다. 이는 줄곧 이스라엘이 ‘안보’를 구실로 주장해 왔던 것과 일치한다.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불법 정착촌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유대인 전용 도로로 갈라지고 조각나 있다. 국제사회가 약속했던 수도는 ‘동예루살렘’이었지만, 트럼프는 동예루살렘 외곽의 작은 마을 ‘아부 디스’를 수도로 배정했다. ‘국가’라고 말은 하지만, 무장할 권리를 박탈하고 제공권, 국경 통제권을 모두 이스라엘에 부여했다. 대신 팔레스타인에는 향후 10년간 차관 등을 포함해 5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에 대한 지원까지 포함한 것으로,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할당된 액수는 278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 돈은 미국이 향후 10년간 이스라엘에 군사원조 명목으로 지원할 380억 달러의 73%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올해 5월 22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미국 역사상 최대 군사원조가 될 해당 지원 법안을 조용히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통과됐고,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임기 마지막에 사인했던 내용이라 상원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 대선 주자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규탄하면서도, 영토 병합 중단을 군사원조의 조건으로 걸자는 제안은 명백히 거절한 바 있다.

역대 미국 정부와 보수적인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 국가를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2국가 안’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은 이 최소한의 합의조차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난민이 돌아올 수도 없고 군대를 가질 수도 없는 ‘국가’에서, 영구적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통제 속에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청사진에서 4년의 유예기간을 제시했다. 4년간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을 추가 건설하지 않고, 미국은 이 청사진으로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는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트럼프 임기 중에 미국이 할당해 준 땅의 일부라도 병합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그래서 주요 불법 정착촌만 우선 합병하고 단계적으로 추가 합병하는 등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제2여당 청백동맹당은 미국의 원안대로,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협상’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당장의 병합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경화하는 이스라엘 사회: 극우들의 민주주의

잠깐 올해 이스라엘 총선 결과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강력한 지원사격에도 네타냐후는 또다시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앞서 연정 구성의 기회가 있었던 ‘청백동맹당’의 ‘베니 간츠’ 역시 연정 구성에 실패한 상태였다. 대립하던 두 당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구실로 ‘비상 내각’을 함께 구성하는 극적인 합의를 타결했다. ‘교대 총리’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도입했다. 18개월간 네타냐후가 총리를 하는 기간엔 간츠가 교대 총리직을, 남은 18개월간 간츠가 총리를 하는 동안엔 네타냐후가 교대 총리직을 역임하기로 한 것이다. 군 참모총장 출신 간츠를 필두로 이스라엘 정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신생 청백동맹당은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과 얼마나 다를까? 우선 청백동맹당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요르단 계곡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일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점령지 철수란, 영토병합을 마무리한 후의 철수일 뿐이다. 그들은 올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요르단 계곡의 불법 병합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자, 이는 자신의 주장인데 네타냐후가 훔쳤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안지구 불법 영토 병합을 둘러싼 이스라엘 내 프레임은 ‘일방적’으로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 vs 팔레스타인과의 ‘협상’ 속에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로 짜여 있다. 어느 쪽이든 영토 병합 자체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영토 병합의 정의 자체가 ‘일방성’과 ‘강제성’을 포함한 것이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공론장에서 영토 병합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파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현재의 영토 병합 반대자들의 목소리란, 헤브론을 이스라엘로 할당하지 않았고 나아가 서안지구 나머지 70%의 땅도 모두 이스라엘 영토라는 주장들이다. 즉 미래에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법 정착민과 극우의 주장일 뿐이지만, 이것이 마치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입장이라도 되는 양 토론되고 있다. 그들만의 ‘민주주의’는 더없이 노골화됐다. 서구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그간의 전략, 즉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민주 국가고, 자유와 인권 등 서구의 모든 가치를 공유하며,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방어적 조치를 취할 뿐이라는 기존의 ‘이성적인 우파’의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랫동안 우경화해 왔고, 결국 우익과 극우의 각축장이 됐다.1)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시온주의 식민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을 찍어 재갈을 물린다. 한편에선 군사점령을 문제 삼지만 않는다면 반유대주의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 유럽의 극단적 반유대주의 극우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강제 징병 대상으로 취급하던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2) 네타냐후는 심지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생각까진 없었고, 팔레스타인 무프티의 제안에 따랐을 뿐이라는 망발을 한 전력도 있다. 미국에서, 특히 젊은 유대인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주류로 부상해 왔는데, 이스라엘의 선택적 반유대주의는 이를 설명해주는 이유 중 하나다.

오슬로 패러다임의 종식

국내 정치가 노골적으로 극우 편향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만이 아닌 서구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네타냐후는 영토 병합 계획에 대한 서구 사회의 경악에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쿠드 당 의원들이 6월 21일, 미국 안이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를 승인하는 것이라며 반발하자 네타냐후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문서를 회람했다. 즉, 유대와 사마리아3)에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칠 것이며, 45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정착민을 쫓아내는 것은 “인종 청소”라며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확인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토 병합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강제로 획득하는 것인데 서안지구에 대한 유효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영토 병합이 아니”라며 영토 병합에 대한 서구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특히 이번 영토 병합이 서구 사회가 제시한 2국가 안을 위태롭게 하기는커녕 팔레스타인에도 좋다고까지 주장했다. 앞서 주미 이스라엘 대사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이번 영토 병합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을 깨주고 진정한 2국가 안에 동의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세기의 딜"이 제시하는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지하 터널을 통해 연결하고, 엉뚱하게 네게브 사막에 산업지대를 설치하라고 한다. [출처: 백악관]

이런 이스라엘의 노력에도 서구 사회가 이번 영토 병합에 침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UN의 인권 전문가 47명은 6월 16일 UN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점령한 영토의 병합은 UN헌장과 제네바 협약의 심각한 위반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가 전쟁이나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금지하는 근본 규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때 서구 사회가 취한 태도와의 일관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구사회는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을 학살할 때마다 이를 규탄만 할 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특히 유럽 사회는 이스라엘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등치시키며, 아무리 국제법을 위반해도 그저 달래고 보상해줘야 할 대상으로 대해왔다. ‘제발 서안지구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그만 지으라’던 서구 사회의 요청은 ‘제발 서안지구를 병합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로 후퇴했다. 여전히 서구사회는 오슬로 ‘평화’ 협정에서 약속했던 2국가 안을 고수하고 있다. 정작 2국가 안은 이스라엘이 원하지 않아 태생부터 파산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2국가 안에서 얘기하는 이스라엘이란 유대인만의 국가를 의미한다. 2국가 안은 이스라엘에 인종청소당하고 추방당한 채 인접 국가의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700만 난민의 귀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또 이스라엘 내에서 공식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팔레스타인계 시민권자의 지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애초부터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으로 2국가 안으로 대변되는 오슬로 패러다임이 종식되는 것 아니냐고 한탄하는 논평자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정립된 보편적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원칙의 붕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탄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UN의 각종 기구에서 수없이 결의한 대로 각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무기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작년 이스라엘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 정부는 타결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UN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이스라엘이 ‘67년 이후 점령한 지역에 대해서는 특혜관세 등 동 FTA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이며,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땅을 병합하는 것은 더욱더 반대하는 것이 일관된 태도다. 그를 위해 아직 서명 전인 FTA의 무효화라는 카드로 이스라엘을 강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1월 3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의 ‘노력을 평가’한다며 UN 결의안에 따른 2국가 안을 지지하던 입장에서 오히려 후퇴했음을 암시한 바 있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게 압박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일 테다.

<각주>
1) 뎡야핑, 이스라엘 총선, 강화되는 인종주의와 헤브론, 《워커스》 53호(링크)
2) 뎡야핑, 이스라엘의 방패가 된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 《워커스》 44호(링크)
3)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부르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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