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이상한 ‘분업’구조, 누가 만들었나

[1단 기사로 본 세상] 사장이 아닌 정규직이 뽑아 쓰는 방송사 프리랜서들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2013년 9월 소설가 최인호의 부고가 들려왔을 때도 내게 최인호는 작가였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나그네’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이 소설로 나와 영화로, 드라마로 꽃을 피웠다. 요즘 같으면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소설가로 나뉘겠지만 50년 전엔 그런 경계는 불분명했고 그냥 ‘작가’로 퉁쳤다.

2016년 4월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한 방송 작가 신봉승씨가 별세했을 때도 그는 ‘작가’였다. 사람들은 신봉승 작가를 ‘방송 작가’로 불렀지만, 정작 그는 60년대 초 현대문학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한 문학평론가였고, 영화 ‘돌아온 산하’(1962)의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시나리오 작가를 먼저 했다. 그러나 신 작가는 무엇보다도 1983년부터 1990년까지 MBC에서 빛을 본 ‘조선왕조 500년’ 연작 드라마로 꽃을 피웠다. 드라마 대본 집필 전에 사료를 꼼꼼히 살폈던 그는 역사가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2017년 10월 별세한 작가 임충도 생전에 “사극 작가는 재미보다 어떤 시대정신을 그려야 할까, 고뇌해야 한다”고 했다. ‘장희빈’ ‘몽실언니’ ‘야망’ ‘홍국영’ 등 주옥같은 드라마를 썼던 임 작가는 1964년 영화 ‘종이배의 연정’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전설의 고향’을 150여 편이나 쓰면서 한국형 판타지 드라마 장르를 열었다. 그의 드라마 집필을 곁에서 보고 자란 아들 임호가 사극을 누비는 배우가 됐으니 그는 과연 역사 드라마의 거장이라 할만하다.

지난해 9월 별세한 이희우 작가도 드라마 ‘딸부잣집’과 ‘덕이’를 집필했지만 1959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하지만 이 작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분야는 TV 드라마 작가였다. 이 작가는 1989년 ‘달빛가족’(KBS), 1991년 ‘까치며느리’(MBC), 1994년 ‘딸부잣집’(KBS) 등 주로 가족드라마로 사랑 받았다.

[출처: 조선일보 2020년 6월26일 25면]

지난 25일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집필한 양근승 작가가 별세했다. 양 작가는 1962년 KBS 드라마 ‘나비의 숨소리’로 데뷔해 ‘TV 손자병법’ ‘어머니’ 등 200편 넘는 드라마를 썼다. 대표작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는 1990년부터 2007년 종영까지 852화를 혼자 집필했다. 그간 PD는 8번 바뀌었지만 대본은 양씨 혼자 썼다.

양씨는 농촌 드라마에 깊이를 더하려고 거주지를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옮겨 직접 텃밭을 가꾸면서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과 수확 시기 등을 일일이 확인해가며 대본을 썼다.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고 싶어서다. 양평의 동네 주민들과 얘기하면서 소재를 발굴하곤 했다. 그런 노력으로 양 작가는 1998년 농업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최인호, 신봉승, 임충, 이희우, 양근승 작가는 모두 드라마 대본을 썼고, 모두가 남자다. 적어도 1998년 IMF 이전엔 남녀 모두가 방송작가로 활약했다. 당시엔 PD와 작가가 동등했다. 서로를 인정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분업했다.

그런데 요즘 방송 ‘작가’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반대로 PD는 남성이 압도적이다. 누가, 무엇이 방송작가를 여성에게 전담시켰을까.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성별로 나뉘는 직업군이 또 있을까. 이런 성 역할 고정이 굳어진 20년 동안 PD가 하던 일 대부분이 여성 작가에게 넘어왔다. 정규직 PD와 그가 채용하는 여성 작가라는 조합이 만들어 내는 이 부조리극의 끝은 어딜까.

[출처: 경향신문 2016년 4월20일 23면과 2017년 10월30일 21면]

비단 드라마만이 아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에서 지시하는 남성 정규직과 지시받는 여성 비정규직 구조가 고착화됐다. 고통 받은 비정규직의 실태를 고발하는 시사 프로그램 작가가 정작 비정규직보다 못한 프리랜서인 이 야만의 방송 구조를 뒤집지 않으면 방송의 미래는 없다. 누가 멀쩡한 대학 나와 커피 심부름에, 식사 주문을 도맡아 하면서 섭외전화에, 프리뷰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려 하겠는가. 새로운 막내 방송작가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자연스레 작가 지망생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 작가를 약탈해 부를 축적해온 방송사도 요즘은 살림이 어렵다. 혹자는 tvN 같은 거대재벌의 돈 앞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돈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양질의 대본을, 양질의 취재물을 만들어 낼 좋은 작가 지망생이 노예처럼 일하는 방송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돈이 없다면 쓸데없는 갑질이라도 멈추고 분업 체계라도 손질해 보시라. 청주방송에서 14년간 일하면서도 프리랜서의 굴레를 벗지 못한 고 이재학 PD를 기리는 1박2일 문화제가 열리는 밤이다. 방송사 비정규직들의 눈물처럼 쉼 없이 비가 내린다.

[출처: 경향신문 2019년 9월5일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