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원 더 달라고 한 죄가 이렇게 가혹합니까?

[르포] 시급 6천 원 요구하다 해고돼 7년째 투쟁하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투쟁 일수를 기록하는 청소못한 날 달력 [출처: 연정]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있던 자리 들어가야죠

6월 16일 오후,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 앞. 스티로폼 위에 그늘막과 비닐로 얼기설기 지은 허름한 움막 한 채가 있다. 고용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7년 째 투쟁하고 있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몸을 숙여 움막에 들어가자 울산과학대지부(지부장 김순자,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울산지역연대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짧게는 7년 길게는 14년 이상 울산과학대에서 청소 노동을 하다 해고된 이들이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어 보이던 농성장은 들어가니 생각보다 아늑했다. 조합원들은 밖에서 주워온 서랍장과 수납장에 그릇과 냄비 등 농성 물품을 차곡차곡 담아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걸려있는 ‘울산과학대 농성장 명물’ 청소 못한 날 달력도 보인다. 이날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임금 790원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지 만 6년, 청소 못한 지 2193일이 되는 날이다.

“처음에 우리가 저거 쓸 때만 해도 저걸 자꾸 쓰면 더 길어진다고 그랬었어요. 그러면서도 쓰게 된 거지. 790원 올려달라는 건데, 곧 해결이 안 되겠나. 소박한 생각이었지.”

“하루하루 이래 간다는 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오늘 하다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있던 그 자리에 들어가야죠. 들어가 하루를 하고 나오더라도 떳떳하게 들어갔다 나오고 싶습니다.”

매달 청소 못한 날 달력을 작성하는 길영석 조합원은 힘들고 고돼도 8명이 똘똘 뭉쳐 서로 의지하면서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한다.

“뜨신데 오지마소. 젊은 사람들 덥다할 거다.”

30도에 달하는 초여름 날씨에 조합원들은 오전 11시 기자회견에 이어 오후에 있을 집회와 행진에 대비해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잠시 아픈 몸을 ‘지지고’ 있었다.

“다들 몸이 안 좋아요. 버텨 낼라고 이를 악물고 하고 있어요.”

60대에 투쟁을 시작한 울산과학대 노동자들의 현재 평균 연령은 68세로, 70세를 넘긴 이가 절반이다. 조합원 한 명은 농성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있다.

울산과학대는 2015년 기존 업체 계약해지 과정에서 2007년 고용승계 합의를 어기고 울산과학대지부 조합원 8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문제 해결은 않은 채 4차례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다. 청소노동자들의 농성과 관련해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도 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청소노동자 각각에게 강제이행금 8200만원을 부과하고 660만원에 달하는 통장을 압류했다. 학교는 정문에 있는 화장실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해 급할 때는 노상방뇨를 하며 버텨왔다. 물은 인근 공원에서 떠다 이용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수도를 잠가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고 했다. 생계는 자식들 도움과 국민연금, 노령연금 등으로 근근이 유지하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이 청소노동자들은 모두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살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 투쟁 하겠다고 한다. 어떤 동기가 이 투쟁의 원천이 되고 있을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장 먼저 한 밥 투쟁

“몇 천 원도 아니고 몇 만 원도 아니고 달랑 790원 올려달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3일이면 안 끝나겠나. 일주일이면 안 끝나겠나. 우리는 큰 뜻을 품고 행복한 마음으로 박스 깔고 본관 로비에 앉았어요. 그건 안 되겠나 싶어갖고 그랬는데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죠.” (오순남 조합원)

2000년 울산과학대 개관하던 해에 용역업체 소속으로 입사해 일해 온 오순남 씨는 2007년과 2015년 두 차례 해고를 당했다. 울산과학대 곳곳에 순남 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 입사했을 때, 신설학교다 보니 일이 많았다. 청소는 물론이고, 돌멩이와 흙, 모래 등 각종 짐을 지고 나르는 일도 해야 했다. 용역업체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매일 한 시간 씩 초과 근무를 시키고, 토요일 일요일 당직 근무를 시키면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일은 고되고 받아야 할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아 청소노동자의 이직률이 심했다. 심지어 용역업체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밥도 주지 않았다. 휴게 공간도 없어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1층 계단 밑에 박스를 깔고 앉아 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가 찌개라도 데워 먹으려고 하면 냄새 난다고 못하게 했어요. 지하주차장에 가서 코드 꼽아서 데워 갖고 오면 오다가 다 식어버리는 거야.”

2006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장 먼저 한 투쟁이 밥 달라는 투쟁이었다. ‘밥 투쟁’이 승리해 학생식당에서 당당하게 밥을 먹게 되었을 때 순남 씨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초과근무에 대해서도 정당한 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관리자들의 갑질과 부당한 지시에 ‘바른말’을 했던 순남 씨는 ‘모가지가 달랑달랑’ 했었다며,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나 이제 살았구나’였다고 했다.

학교 측은 청소노동자들의 기세에 밀려 마지못해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지만, 청소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조합원들을 차별하며 호시탐탐 노조를 와해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2007년 2월, 울산대학교는 노조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을 업체 계약해지 방법으로 해고했다. 76일 간의 농성 끝에 해고되었던 청소노동자 전원이 울산과학대 이수동 학장이 서명한 고용합의(울산과학대학은 동부캠퍼스 내에 근무하는 울산연대노조 조합원의 고용승계를 담보한다)로 원직복직 한다. 오순남 씨도 그때 해고되었다가 복직했다.

  6월 16일 일산해수욕장에서 투쟁 6년 집회를 마치고 울산과학대로 행진하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등 참가자들 [출처: 연정]

노조 안하면 손해, 23명 중에 20명 노조 가입

“(해고된 노동자들)모여 있고 깃발 꽂혀가 있고. 가까이 가면 우리 두드려 맞는다 하더라고. 머리도 뜯기고 하니까 옆에 가지 말라고 교육을 시키대.” (조향선 조합원)

“대타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죄가 없는데, 왜 그리 밉둔둥.” (오순남 조합원)

조향선 씨는 2007년 3월 울산과학대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 향선 씨는 당시 조합원들이 해고되면서 채용된 이른바 ‘대체인력’이었다. 본관, 헬스장, 체육관 등 시키는 대로 가서 일을 했다. 장갑을 끼고 일해도 양잿물 같은 독한 약물 때문에 손에 허물이 벗어져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 락스를 부어놓고 청소하다가 질식할 뻔한 적도 있다. 특히, 계단 신주(노란 선) 닦는 일은 옛날 놋그릇 닦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절대로 못 이길 거라고 했던 투쟁이 승리하고 해고되었던 노동자들이 물적·심리적 피해보상을 다 받고 기세등등하게 복직을 했다. 그 힘으로 상여금 100%와 적게나마 근속수당을 쟁취해내는 성과도 이루어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따낸 것은 없다. 청소노동자들은 울산과학대와 당시 국회의원이자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을 하고 있던 정몽준 씨를 상대로 한 투쟁을 전개했다.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던 비조합원들의 처우가 조합원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장이 술렁였다. ‘노조 안하면 손해’라는 생각에 한 명 두 명 비조합원들이 노조 가입을 하기 시작했고, 청소노동자 23명 중에 20명이 울산과학대지부 조합원이 되었다. 90%에 가까운 조직률이다. 그 중 개인 사정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가입을 했던 조향선 씨는 가장 마지막까지 투쟁하는 조합원이 되었다.

청소 노동자라고 최저임금만 주면 된다는 법 없다

2014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그동안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가보지 못했던 길을 선택한다. 20년 동안 최저임금을 자신의 임금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청소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2014년 최저임금이 5,210원이었어요. 한 달에 108만 원이 됩니다. 우리 청소노동자들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들이 많은데, 108만 원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 거라. 청소 노동자라고 최저임금만 주면 된다는 법 없다. 최저임금은 목구녕에 풀질할 정도밖에 안되거든요. 문화생활은 아예 꿈도 못 끕니다. 왜 우리 청소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틀에 묶어놓고 이중 삼중 고통을 주느냐? 이걸 개선해야 된다.” (김순자 울산과학대 지부장)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60만원을 받을 때도 당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하던 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월 250만 원에 상여금 1000%를 받고 있었다. 울산과학대지부는 최저임금 1만원 요구에서 시작해 사람이 최소한 생활할 수 있는 생활임금 7,910원을 요구했다. 상여금 100% 인상도 요구했다. 7,910원은 2014년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하는 제조부분 보통인부 노임)로, 2011년 정부가 발표한 ‘노임단가는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마저도 조합원 논의를 통해 6천원 양보안을 만들어 제시했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섭을 몇 번 하고 마지막으로 금요일까지 답을 달라 말했는데 금요일에도 답이 없어서 그 다음 월요일 날 자리를 깔았죠. 애초에 학교에서는 노동조합 자체를 깰라고 마음 먹었던 거지. 지금까지 해온걸 보면. 우리를 일하게 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거 같아요. 탄압도 무슨 대기업에서 탄압하는 식으로 했어요. 할매 할배가 뭔 힘이 있다고. 지금 이 농성장도 5번째 지어졌거든요. 날짜 봐가며 그카는지 꼭 춥고 비 올 때만 그래요. 법원 집달관인가 등치 좋고 깡패 비슷한 젊은 사람 20명 정도가 뜯으러 오면 우리는 힘도 못 써요.” (조향선 조합원)

그해 서울지역 10여 개 대학 청소노동자 시급이 임단협을 통해 6200원에 합의된 점을 고려할 때, 울산과학대 측이 노조파괴를 위해 고의적으로 교섭 결렬과 파업을 유도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투쟁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조합원 20명 중에 12명은 학교 측의 회유로 노조를 탈퇴 하고 현장에 복귀한다. 학교 측은 2015년에 기다렸다는 듯이 업체 계약해지를 통해 남은 조합원 8명을 해고했다.

누구 하나 죽어도 뒤도 안돌아볼 학생들이에요

“학교라는 곳이 이렇게 탄압할 줄 몰랐어요. 교수라는 사람들 까지 거짓말 하고 학생들 시켜가 증인 세우고. 그런 게 너무 억울해요. 법원도 똑같더라고요.” (조향선 조합원)

2014년 10월, 울산과학대는 ‘그린캠퍼스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교수·학생을 동원해 교내 청소 노동자 투쟁과 관련된 소원 리본과 현수막을 제거했다. 향선 씨가 “교수님 띠지마세요” 라고 세 번째 말하자 소원 리본을 떼던 체육학과 교수 한 명이 갑자기 바닥에 넘어졌다. 평소 일할 때 마주치면 인사도 주고받던 사람이었다. 학교 측은 합성 사진을 만들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학생 4명을 증인으로 세워 향선 씨가 그 교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법원은 학교 측 편을 들어주어 결국 향선 씨는 70만원 벌금을 내야했다. 거짓 증언을 했던 학생 중 한 명은 농성장에 찾아와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다.

지난 6년 간 많은 사람이 울산과학대 투쟁에 연대를 했지만, 그중에 울산과학대 교수·교직원·학생은 없었다. 총학생회를 포함한 울산과학대 학생들이 무관심을 넘어 청소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던 일은 조합원들에게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14년도 싸울 때는 한두 명 왔다가 다 졸업해가 가버리고 없어요. 까불면 학점 안 주고 취직 안 시켜준다 이리 하니까 꼼짝 못하는 거지. 배우는 학생들이 부모 같은 사람 자기 할머니 같은 사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즈그가 공부하는 정문 앞에 있는데, 어떻게 이래 관심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을까? 이 사회가 나 무서워요. 만약 가다가 누구 하나 죽어도요. 뒤도 안돌아볼 학생들이에요. 나 무서워요 진짜.” (김순자 지부장)

고용합의서대로만 이행해달라는 것뿐이에요.

“우리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울산과학대 2년 년도에 개관하면서 학생들 교직원들 똥 싸고 오줌 싸고 가래 뱉고 생리대까지 다 치워준 우리 청소 노동자들을 해고시켜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2014년 최저임금이 5210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6천원을 달라고 투쟁한 죄밖에 없습니다. 그 죄가 이렇게 가혹해야 되는 겁니까?”

오후 5시 일산해수욕장에서 투쟁 6년 집회를 하고 행진 하던 중에 김순자 지부장이 시민들을 향해 절규한다. 3백 여 명의 행진대오가 울산과학대로 들어간다. 맨 앞에 선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이 쓰레기통을 밀고 반드시 돌아가야 할 끝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터로 들어간다. 초저녁 선선한 바람과 노을이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살다보이 생각도 못한 일이 생긴다지요. 노후에 참... 이리 길게 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누명쓰고 벌금 맞고 내가 빨간 줄 그이고 이런 건 그렇지만, 노동조합을 해보니까 그래도 이게 인간답게 사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하루 종일 있을라 카면 시간도 안가고 확 뛰나고 싶은 그런 때도 가끔은 있어요. 여기 있는 8명이 다 같은 마음이다 보이 그래도 버티고 있어요. 형제보다 더 형제 같은 우리 조합원들 건강하게 이 투쟁 시원하게 마쳤으면 좋겠다. 속 시원하게 깔끔하게 이기고 들어가 일 조금이라도 하다가 퇴직했으면 좋겠다. 전국에서 도와주고 이리 하는데 너무 걱정을 오래 시킨 게 제일 미안해요. 그런 분들 봐서라도 꼭 투쟁 이기야 됩니다. 우짜면 이기겠능교? 힘은 없고 여 깔고 앉아 세월 보내는기 밖에. 전국적으로 마음도 받고 돈도 받고 마 우리가 어째 섣부른 마음을 먹겠어요. 그 사람들한테 보답하는 길은 우리가 깔끔하게 이기는 거예요.“ (조향선 조합원)

“우린 2007년 고용 합의서대로만 이행해달라는 것뿐이에요. 우리가 양보하고 좌시고 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연대동지들이 돈도 갖다 주고 쌀도 갖다 주고 몸도 와가지고 투쟁해주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보고 돈 받고 대충 끝내라고 우리한테 그렇게 해 준 거 아닙니다. 우리보고 옳게 노동조합 활동을 해달라는 거지. 우리가 들어가서 일을 한들 얼마나 하겠어요. 그렇지만, 이 투쟁이 안 끝나면 여기서 죽을랍니다. 너무 억울해서 죽을 때까지 할 거에요. 내 일생에서 이 나이 먹도록 딱 두 가지를 참 잘 했구나. 하나는 노동조합 한 거예요. 우리 동지들 마음 고생 많이 했는데, 너무 오래 가니까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미안해요. 여까지 같이 해줘서 고맙고, 끝까지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렇습니다. 오늘 굉장히 행복한 날이라요. 우리가 기자회견 하면서 처음으로 50~60명이 왔어요. 현수막도 스무 개나 들어왔어요. 기자 분들이나 오시는 분들마다 우리 과학대 상황을 알려줄 진지한 분들만 오시고. 올해는 뭔가 되지 않겠나.” (오순남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