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피해자 측 “사건은폐, 2차 가해 지속한 서울시 못 믿어”

여성단체, 서울시의 진상조사단 불참 밝혀… “인권위 조사가 최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와 법률대리인이 서울시의 진상조사단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시의 조직적 사건 은폐 시도로 피해자가 보호되기보다 오히려 2차 피해가 더욱 커졌기에, 공공기관 성희롱을 조사하는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법률대리인과 여성단체는 다음 주 인권위 진정 조사 준비를 마쳐 진정을 제출할 계획이다.

  유튜브 '여성의 전화' 채널에서 22일 진행된 기자회견 생중계 화면 캡처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의 전화, 그리고 김재련 피해자 법률대리인은 22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진상조사단 참여 요청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참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피해자 지원단체에 네 차례나 진상조사단 참여를 요청하고, 직접 찾아와 답변을 요청한 바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시가 제안한 진상조사단은 조사 대상이 되는 서울시 공무원이 명명백백하게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시장을 정점으로 침묵을 유지하게 했던 위력적 구조 속에서 계속 서울시에서 근무하게 될 직원들은 내부 조사에서 진실된 응답을 하기 어렵다. 외부인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가 직접 주관, 관리하는 조사라면 답변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역대 비서실장들의 피해자 진술 부정 등…서울시 관련 2차 피해 지적돼

이날 기자회견에선 서울시와 관련해 발생한 2차 피해도 지적됐다.

우선 박 전 시장의 역대 비서실장들이 성추행 의혹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던 부분이다. 이미경 소장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역대 비서실장들이 언론에 나서 전혀 몰랐다고 나서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서울시 조사에서 성폭력 발생 구조와 책임이 어느 선 이하로 다뤄지고 마무리될 건지 기관 내부에서 암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또 "박 전 시장이 지난 9일 직원과 주고받은 문제 메시지에서 '문제가 생겼다. 감당하기 어렵다'라고 이야기했다"며 "서울시 직원이 시장에 의한 성폭력을 문제제기했고 이를 심각하게 여겼다는 걸 비서실장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서울시가 지난 15일 진상조사계획을 발표하며 피해자를 ‘피해 호소 직원’으로 명명한 부분 역시 비판했다. 이 소장은 "성폭력 인지 초기 피해자 보호 등의 조치는커녕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가 크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에 의한 성폭력 문제제기 과정과 그 이후에도 시장 중심구조와 체계가 우선되는 현 서울시의 상황을 보건대 서울시 자체 조사보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이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50만 명이 넘게 기관장으로 치러지는 장례를 반대했는데도 대규모의 장례위원이 참석한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고, 이 사실 자체로 피해자가 위축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고인이 성추행으로 피소된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사건에 대한 명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십만 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장례위원이 주도하는 기관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피해자에게 피고소인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킴으로써 피해자를 위축시켰다”라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또 서울시 안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이 은폐, 왜곡, 축소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 사무처장은 “지난 4년간 헌신적으로 일했던 조직과 이 사건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던 20여 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이 사건을 은폐, 왜곡, 축소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라며 피해자 역시 이 일을 가장 고통스러워한다고 전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첫 고소장 경찰 아닌 검찰에 제출하려 했었다’

이날 김재련 변호사는 첫 고소장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 제출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고소장 작성이 완료된 상황에서 피해자와 상의해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 부장님께 연락을 드려 면담을 요청했다. 고소장이 접수되기 전 면담하는 것은 어렵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들었고, 피고소인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면담할 수 있다고 해서 피고소인 누구인지 말했다. 8일 오후 3시에 부장검사와 면담을 하기로 했는데 전날 저녁 연락이 와서 본인 일정 때문에 면담이 어렵다고 했고, 8일 오후 2시에 약속돼 있었던 피해자와 만나 아무래도 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했고, 서울지방경찰청에 연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팀장에게 연락한 시각은 8일 오후 2시 28분 경이었고, 서울지방경찰청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물었다. 담당 팀장이 여성, 아동, 지적 장애인, 고위공직자 사건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해 고위공직자 사건에 대해 고소장 접수할 예정이고 접수 즉시 바로 조사를 진행해 달라 요청했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지원단체와 피해자 법률대리인은 요구 사항 역시 명확히 했다. ▲서울시 관련자들은 수사와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 ▲수사기관은 관련자들을 제대로 수사하고, 책임 있는 자들에게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의거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집행할 것 등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특히 고위공직자 사건에선 피해자의 고소, 진술, 자료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부소장은 “경찰과 청와대는 모두 고소사실 유출을 부인했지만,  경찰청장 후보 청문회를 통해 경찰은 피해자가 고소해 조사를 받는 당일,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이를 보고했다고 밝혔다”라며 “앞으로 고위직에 의한 성폭력을 신고해야 할 피해자들에게는 매우 우려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알게 된 사실을 유출하지 않았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피해자는 사실상 없다. 현재 진행되는 피해자 진술, 자료 제출, 추가 고소도 청와대에 보고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에게 구체적인 보고방식, 보고내용, 보고대상의 안내가 필요하며, 고위공직자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가 보호되고 피고인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싸고 현재 4건의 고소·고발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우선 지난 8일 피해자 측이 고소한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통신매체 이용 음란 등의 혐의가 있다. 피해자 측은 지난 13일 △2차 피해 사건을 추가로 고소하기도 했다. 피해자 측이 아닌 제 3자가 고발한 사건으로는 서울시를 상대로 한 △강제추행 방조 혐의가 있다. 피해자의 사건이 모종의 경로를 통해 피고소인에게 전달된 것 역시 공무상비밀누설죄, 인적사항 공개금지 위반 등으로 고발돼 있는데 이 역시 제3자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