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에서 주목해야 할 것들

[인터뷰]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법여성학 박사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에 의한 일련의 성범죄는 가해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자행한 이른바 ‘권력형 성폭력’이었다.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이분법적 물음 속에서 곧잘 ‘진보’ 인사로 분류되곤 했다. 그들은 미투를 지지했고, 여성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정비했으며, 여권 신장이 응당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지지자는 성폭력 사건을 애써 부정하거나 정치적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의심과 비난 속에서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떠안았다.

법망에 잡히지 않는 착취적 관계에 내몰린 피해자들은 피해 입증의 어려움을 겪는다. 더군다나 최근 박원순 시장 사건의 경우 피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사망하면서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고 종결할 예정이다. 과연 우리는 잇따른 위계와 위력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 그리고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까. 《워커스》가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자 법여성학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업무상 위력 간음, 피해자 저항 힘들고 피해 기간 길어”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윤지연 기자]

‘권력형 성폭력’은 현재 우리나라 사법 체계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나.

업무상 위력 간음 사건은 신고도 많지 않고, 기소도 쉽지 않아 미투 전에는 판례가 많지 않았다. 안희정 사건 등으로 최근에야 쟁점이 됐다. 반면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사건은 업무상 위력 추행으로 넓게 인정됐다. 이때의 ‘위력’은 피해자의 저항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된다. 업무상 보호 감독 관계면 업무상 위력 추행으로 인정된다.

업무상 보호 감독 관계에서의 위력에 의한 추행, 간음 규정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형사법만의 특이한 규정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70년대부터 ‘성희롱’ 개념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간음으로 분류되는 행위를 성폭력이 아닌 ‘직장 내 차별’로 가져갔다. 때문에 미국은 성희롱을 판단할 때 상대방의 의도나, 어떻게 힘을 행사했는지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피해자-가해자의 관계를 권력관계로 볼 수 있는지, 문제적 행위가 피해자의 노동권을 침해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본다.

업무상 위력 간음에서의 쟁점은 뭔가.

현재 업무상 위계 혹은 위력에 의한 간음을 따질 때의 어려움은, 이런 관계에선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저항이 힘들다는 점이다. 또 업무상 위력 간음의 사례를 보면 피해 기간이 길다. 피해 초반에는 강압적인 상황이 있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강압적으로 이뤄진다기보다 피해 반복이 지속된다. 실제로 피해자는 스스로 포기하거나, 상황을 비껴가기 위한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간음을 입증하기 어렵다. 그동안 신고가 많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평택대 총장 사건)(1), 안희정 사건)(1) 등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전환점의 계기가 됐다. 그래도 미묘한 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 법률적으로 다투는 일이 생길 것이다.

법적 다툼이 예상되는 ‘미묘한 지점’을 설명한다면.

형사법 체계에서는 가해자의 고의가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 안희정 사건의 경우, 안희정 본인이 위력을 행사해 상대방을 성적으로 이끈 상황을 인식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었다. 위력 간음·추행에서 고의가 인정되기 어려운 것은,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호의를 쉽게 전제하고 성폭력 상황에서 다른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형법에선 의도가 없다는 것으로 빠져나갈 여지가 매우 높다. 이에 반해 성희롱, 직장 갑질 등은 가해자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 외에 직접 증거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어떤 어려움을 겪나. 성폭력 사건 대부분이 피해자 진술 외에는 직접 증거가 없다. 피해자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진술의 신뢰와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 증거를 제시한다. 피해 사건 전후의 상황, 주고 받은 문자 등 자료를 많이 모을수록 탄탄해진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수해야 할 상황도 생긴다. 각종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권이 있는 사람을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야 하고, 더 넓게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박원순 시장 사건,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사건으로 다뤄져야”

박원순 시장 사건의 경우 고인이 사망하며 법적 다툼은 할 수 없게 됐다.

많은 분들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사건은 더 이상 형사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시가 주도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으로 다뤄야 할 사건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차별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가해자의 의도나 가해자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직장에 없어도, 직장에서는 피해자를 위해 이 사건을 규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 우선은 서울시가 해결 주체로 나서야 겠지만 차별 문제라고 봤을 땐, 국가인권위원회로 갈 수 있다.

서울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 공무원들이 직장 내 성차별을 크게 느끼고 있다.

여성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문화가 팽배할 때, 혹은 여성이 소수거나 낮은 지위에 몰려있을 때 성적인 피해도 많이 생긴다. 한국의 노동구조에서 성차별적 관행은 뿌리 깊다. 차별이 성희롱으로, 갑질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도 이어진다. 그동안은 성에 대한 인식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성희롱 문제로 다루어 왔지만, 최근에는 인권 침해 등으로 다룰 수 있는 카테고리들이 생기고 있다. 형사적 대응과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 등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문제다.

안희정 사건에서도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문제가 존재했나.

김지은 씨의 업무 자체가 차별적인 노동이었다. 당시 피해자 쪽에서 강조했던 것은 김지은 씨의 불안정한 지위였다.(3) 수행비서, 정무직 비서로 여성이 채용된 건 김지은 씨가 처음이었는데 개인의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조건이었고, 사생활과 업무 구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24시간 대기 상황이었다.(4) 공무원 신분이긴 해도 지사가 임명한 사람이어서, 지사가 잘리면 같이 잘리는 구조다. 지사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비서들의 경우 제대로 된 해고 통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참혹한 업무였다.


‘비서’라는 직종의 업무 성격은 어떻게 차별적인가.

비서는 상사의 사생활을 포함해 온갖 잡무를 수발한다. 상사가 고위직일수록 더 많은 것들을 보필한다. 이런 관계에서 업무 성격은 굉장히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업무는 소위 ‘여성적인 일’에 집중돼 있다. 상사의 온갖 사적인 영역,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노는 것까지 챙겨야 한다. 즉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처리해온 돌봄 노동의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한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돼, 제대로 된 노동으로서 평가받지 못한다. 감정노동 역시 저평가돼 있다.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은 여성적인 일과 남성적인 일을 구분하고, 여성의 일을 비전문적인 일로 취급하며 나타난다.

업무 처리도 사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무가 공적이지 않은 것이 문제다.(5) 이와 함께 비서직의 특징인 고용의 불안정성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 비서직의 경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고, 연령대가 낮은 여성들이 많다.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가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치나.

2017년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연구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노동조합이나 여직원회 같은 조직이 있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대처가 조금 더 원활했다는 답변이 훨씬 높았다. 어떤 매뉴얼이나 제도보다, 피해자들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조직이 내부에 있다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권력형 성폭력의 공론화, 미투 운동에 따른 사회 변화 과정”

관련한 정부 대책 쏟아지는데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역으로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미투 운동에 따른 사회 변화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인권 변호사, 저명한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으로 이름을 떨쳐온 인물이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지금 시기라서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2차 가해도 변화 양상이 있을까.

박원순 사건에서 놀랐던 것은 여론이 반반이었다는 점이다. 김지은 씨 사건만 해도 악의적 댓글이 많았고, 댓글 조작단까지 있었다. 이번 사건은 미투 운동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2차 가해는 피할 수 없다. 한국의 특성상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2차 피해를 해결하려면 본인이 나서야 한다. 2차 가해를 제어하는 방법은 피해자의 고소 고발 말고는 방법이 없다. 용기를 낸 피해자가 끝까지 힘내서 싸울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에선 가해자가 사망하며 피해자의 고통이 더욱 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사망했고, 이에 대해 안쓰러움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추모가 현재 상황과 맥락에서 피해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비난이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고자를 존중하고, 2차 가해 예방을 위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관 차원에서는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엄중히 다루고 있다는 사회적 시그널을 주면서 예방을 철저히 해야 한다. 박 전 시장이 자살한 가장 큰 이유 역시, 본인이 계속 그런 시그널을 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 문제에 목소리를 내오던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당혹감을 느꼈다.

뿌리 깊은 성차별 구조 속에선 늘 긴장감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사람들조차 비슷한 문제를 저지를 수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성차별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박 전 시장에게 실망스러운 것은, 이 사건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누구도 나는 절대 아니라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난받을 수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 정말 문제를 인지했다면, 나 역시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잘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성범죄 가해자가 해결과 반성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사례가 있을까.

들은 바로는 운동사회에는 복귀를 꿈꾸며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현재는 복귀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는데 그 프레임은 바뀔 필요가 있다. 비단 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어떤 잘못을 하면 고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늘 아웃되기만 하면 조직은 바뀔 수 없다. ‘무관용 원칙’ 또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은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장본인이기에 스스로를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결하는 것을 ‘끝장내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에게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고 본다.

각주

(1) 평택대학교 교직원 A씨가 20여년간 총장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2016년 말 총장을 고소한 사건. 공소시효 때문에 2013년부터 2016년 11월 사이의 혐의에 대해서만 따질 수 있었고, 1심 재판부는 총장에 대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징역 8개월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총장은 1심 재판에 불복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도 2018년 12월 같은 선고를 내렸다.

(2)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 씨가 7개월간 지속된 안 전지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한 사건. 1심 재판부는 ‘위력이 존재하나 행사하지는 않았다’라는 판단과 함께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및 추행 등으로 안 전 지사에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고 같은 해 9월 대법원 역시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3) 김지은 씨는 2017년 7월부터 안희정의 수행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정무비서로 보직이 이동됐다. 김지은 씨는 《김지은입니다》에서 “전임 수행비서는 운전비서로 시작해 지사를 8년 가까이 모셨지만 해고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고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전임자에게는 부양해야 할 두 명의 자녀와 아내가 있었지만 생계를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별정직 공무원의 임면 권한은 절대적으로 기관의 장인 도지사에게 있다는 걸 실감하며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4) 김지은 씨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고 554일간의 법적 투쟁 과정을 기록한 《김지은입니다》에 상세히 나온다. “나는 많게는 주 140시간을 일했고, 통상 주 130여 시간을 일했다. 기본 근무시간(평일 9시~18시) 외 초과근무가 월 80시간을 넘었고, 100시간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5) “퇴근 후에도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했다. 공적 업무 외에 사적으로 지시받는 업무도 많다 보니 어느 순간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 지사의 가족과 관련된 업무도 휴일 구분 없이 수시로 있었다. 휴가 때나 명절에 아들과 요트를 타러 가거나 가족끼리 놀러 가는 일정의 숙소, 식당, 체험 활동 등을 알아보고 예약해야 했고, 지사의 친구 가족이나 지인들이 묵을 장소도 알아봐야 했다. 사모나 지사가 친구들 모임에서 술을 마셔 운전을 못 하면 한밤중에 불려 나가 대리운전을 했다. 맥주, 담배 같은 개인 기호품도 수행비서가 대신 사서 숙소나 집무실로 가져댜주어야 했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봄알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