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권리’를 잠식하는 것은 감염병 아닌 정부 정책

[기고②] 반월시화공단 코로나19에 따른 일자리 영향 실태조사를 마치고

위기의 편차

“어렵지요.”
더 보탤 것도 덜 것도 없이 남들 어려운 만큼 어렵고, 우리 회사도 다르지 않고, 나도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오히려 일이 많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변화가 없다고 답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업종이다.

반대로 벌써 다 잘리고 사람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비록 조사 인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용형태가 계약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전의 월담 조사에서보다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출처: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의 실태조사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모두에게 같지 않았다. 같은 공단이라 해도 업종에 따라 그 위기는 시기 차이를 두고, 다른 강도로 각각에게 전해 오고 있었다. 위기의 편차만큼 그 구체적인 표현들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위기가 당장의 해고와 같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지라도, 반복되는 휴업과 임금축소 등으로 점차 조여오는 것은 분명했다. 대부분의 공단 사업장들은 크든 적든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실제로 반월시화공단의 가동률은 올해 4월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고, 매달 많게는 몇백 명씩 노동자들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해고는 작은 사업장이 밀집된 공단의 특성상 분산돼 일어나기 때문에 해고규모의 방대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노동조합도 거의 없는 공단지역. 우리는 실태조사에서도 이미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 가장 큰 피해에 노출된 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2020년 1~6월, 반월시화공단 가동률 및 고용현황

위기가 일상인 공단

사실 공단의 고용불안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대자본의 하청, 부품사,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 곳. 어찌 보면 고용불안은 공단 노동자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위로부터의 위기는 아래로 전가되고, 그 방어막이 돼 온 곳이 공단이다. 물량에 따라 수시로 일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공단의 조건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졌고, 비정규직 고용형태로 인한 고용불안뿐 아니라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작은 사업장의 위기가 상존한다.

그간에도 반월시화공단의 가동률은 제조업의 위축과 함께 지속적으로 감소세에 있었다. 정부는 리쇼어링을 말하지만 낮은 인건비로 이윤을 유지하는 것에 익숙한 기업들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제조업 위기 타개를 위해 스마트공단화를 말하지만, 그 속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허상과 대자본의 장악력 확대 외에, 작은 사업장을 살리고 노동자의 일상을 지키는 정책은 없다.

  반월시화공단 가동률(2008.6~2012.6)

게다가 노동조합 조직률이 극히 낮은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은 기업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려 왔다. “어렵지요”라는 심상한 반응이 포함하는 것은 이런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맞닿아 있다. 지금은 일자리가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작은 기업,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안의 바닥에는 내가 일하는 회사 자체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공단지역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조차도 노동자들을 향해 있지 않다.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노동자들의 선택이 될 수 없다. 신청 여부는 기업의 선택이다. 설사 기업이 지원금을 받았든 아니든, 개별의 노동자들은 유급휴업이 아닌 연차휴가를 소모하게 되고, 기존 임금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 심지어 무급휴업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그와 별개로 발생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 신청 여부를 노동자들이 알 수 없고, 그저 기업주의 처분에 의존하게 되는 까닭이다.

기업중심의 정책, 사라지는 권리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는 계속 사라지고 있다. 정부는 방역에 집중하면서도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고, 감염병의 위기가 사회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는 것에 주력한다. 그러나 그 노력 가운데 노동자의 삶의 위기를 방어해야 한다는 인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기업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로 받아들이지만 노동자의 일상이 위협당하는 삶의 위기는 고려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의 임금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법정 최저임금이다. 2021년 최저임금 결정에서 제대로 된 최저임금 인상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상 최저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작은 사업장이 어렵다는 이유는 다단계 하청 구조라는 근본적 문제에 손대지 못한 채 손 쉽게 노동자의 임금 인상분을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접근했다. 최저임금 수준에 닿아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그렇게 코로나19 상황에서 당연한 듯, 위축되었다.

법정 노동시간을 무너트리는 정부의 정책 역시 계속 펼쳐지고 있다.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를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주장됐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올해 1월 업무량이 급증하는 경우 등에 이르기까지 그 사유를 확대하더니, 최근에는 1년에 90일 한도로 사용할 수 있던 것을 하반기에 다시 90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한계를 넘어선 장시간 노동이 닥쳤고, 그것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음에 대한 위안이 돼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는 2021년 7월 1일부터 시행이 예정되었지만, 계속해서 적용 유예가 시도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상의 어려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등은 노동자의 권리를 유보하는 핑계가 되고, 그렇게 기업의 위기는 위로부터 아래로, 공단지역에 밀집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로 전가된다.

이전과 같지 않도록

노동자들은 정부를 향해 지금의 정책이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으로 향해야 함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기업의 지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는 직접 지원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기업에 지원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노동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기업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질 권리가 있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방향을 제시할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단결하고, 발언하고, 싸울 권리가 있다. ‘권리’로 명명되어야 할 것들이 사라진 곳, 그 권리의 상실을 정당화 하는 감염병의 위기. 노동자 민중의 삶에 닥칠 진짜 위기는 그 뒤에 온다. 노동자의 삶이 무너진 뒤에는 기업도 사회도,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되기는 힘들다.

실태조사에 나섰을 때, 코로나19 이후 일자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고용불안은 어떤지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이전이랑 똑같아요” 였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말. 그런데 사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새로운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방역조치를 한다면 분명 일하는 방식에서, 노동시간의 편재에서, 작업장 환경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똑같다는 말에서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여겨지는 공단의 한 면을 엿본 듯 한 느낌이다. 실태조사 이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 월담>이 향하는 지점은 ‘월담’의 이름처럼, 그 담장을 넘어 권리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에 있을 것이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블로그 : https://goover20000.tistory.com/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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