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정규직화? ‘슈퍼 갑’이 자회사 노동자 쥐락펴락

모-자회사 비정상적 갑을관계, 자회사 노동자 처우개선 어려워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에 자회사가 우후죽순 들어섰지만, 모-자회사의 비정상적 갑을 관계 때문에 자회사 노동자들이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자회사 노동조건 개선 등을 위해 권고한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설치 역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모회사의 ‘슈퍼 갑질’로 용역업체보다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가 권고한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설치, 25곳 중 5곳 뿐

앞서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인건비 상승 등을 우려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우회적 전환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현재 72개 공공기관에 무려 81개의 자회사가 설립 돼 있다. 그동안 노동계는 정부의 자회사 정규직화 방안이 또 다른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확산시킬 뿐이라며 비판해 왔다. 모회사의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임금과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을 받고, 모회사 눈치 보기로 자회사 노사교섭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는 지난 3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을 발표하고, 모·자회사 노사 공동협의회의 설치 및 운영을 권고했다. 지난 7월에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지표’에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설치·운영’ 항목을 10점(총 130점)으로 배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당 협의회를 설치 또는 운영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쳤다.

공공운수노조는 3일 오전 11시,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노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조가 있는 자회사 25곳 중 협의회가 설치된 곳은 5곳에 불과했다. 그 중 한 곳은 설치는 했지만, 아직 회의조차 개최하지 않았다. 모회사별로 보면 18곳 중,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서부발전(주)를 제외하고는 협의회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동안 노조의 요구에도 협의회 설치를 미뤄오다 정부 평가를 앞두고 졸속으로 협의회 설치를 시도하는 곳도 있다.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은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 권고와 정부 정책에 따라, 자회사 노동자 처우에 관한 공동협의체 구성을 압박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며 “시간만 끌던 마사회와 자회사는 올해 7월 정부의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계획’이 나오고, 8월까지 진행된 내용만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니 그때서야 부라부랴 회의 일정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8월 21일 공동협의체 구성을 위한 준비회의가 진행되는 줄 알고 참석한 자리는 공동협의체 본회의였다. 노사전협의회의 ‘협의체 구성 및 개최 주기, 운영 방식 등을 별도로 정한다’는 기본적인 합의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며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졸속적으로 진행시키려는 모회사의 태도에 항의해 추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모회사가 일방적으로 자회사 노동자 노동조건 결정,
자회사 노동자 노동3권도 침해


모·자회사 노사 공동협의회의는커녕, 모회사가 일방적으로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인천항만공사의 자회사인 인천항보안공사 노동자들은 모회사의 임금 삭감 시도에 맞서 95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임금교섭에서 노조가 2018년과 동일한 임금 지급 방식을 요구했으나 회사가 이를 거부한 까닭이다.

오정진 공공운수노조 인천항보안공사지부장은 “현재 자회사 경비보안직은 4개의 직종이 있고, 모두 임금이 다르다. 모회사 예산담당자가 자회사에서 설명회를 하며, 한 직종의 임금을 깎아 다른 직종에게 주라고 한다.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가장 임금이 낮은 직종의 임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한다”며 “모회사가 노조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를 무시하며, 자회사 노동자 임금을 강제로 깎을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모회사가 자회사에게 공문 한 장으로 교대제 변경을 지시해 임금이 20% 가량 감소하기도 했다”며 “13년차 자회사 노동자로서, 현재의 공공기관 자회사는 용역보다 못한 곳이다. 이를 적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자회사 공동협의회가 설치된 한국철도공사 산하 4곳의 자회사 역시, 협의회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철도노사가 2018년 단체협약을 통해 1년에 1회 이상 ‘원하청 협의체’를 운영하기로 약속했음에도, 지난해 12월 30일에서야 책임 회피형 ‘원하청 협의체 킥오프’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것마저 코레일 사장이 불참하며 형식적인 자리에 그쳤다.

서재유 전국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은 “중요한 것은 자회사의 인사, 자산, 회계, 임금관련 규정의 제·개정을 통제하면서도, 원하청 협의체에서는 ‘임금 및 계약과 관련한 사항’은 다루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무엇을 다룰 수 있나”라며 “또한 실무협의에 나온 코레인 담당자들이 자신들은 권한이 없다는 말만하면서 실무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횟수만 채우려는 ‘원하청 협의회’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자회사에 파업이 발생할 경우 모회사가 대체인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자회사간 계약도 그대로 남아,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있다. 서재유 지부장은 “현재 자회사 노동자들이 쟁의권을 발동할 경우 모회사이자 원청인 코레일은 대체근무자를 파견할 수 있다”며 “결국 노동자들의 쟁의권조차 형해화 할 수 있는 슈퍼 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노조는 기획재정부에 모·자회사 공동교섭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자회사 노동자는 모·자회사 내 하나의 주체로,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라며 “자회사노조의 교섭에 모회사가 참여해야 하며, 모·자회사 공동협의회는 그 과정이다. 모회사(공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모·자회사 공동교섭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하고 시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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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자회사에 파업이 발생할 경우 모회사가 대체인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자회사간 계약도 그대로 남아,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있다. 서재유 지부장은 “현재 자회사 노동자들이 쟁의권을 발동할 경우 모회사이자 원청인 코레일은 대체근무자를 파견할 수 있다”며 “결국 노동자들의 쟁의권조차 형해화 할 수 있는 슈퍼 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