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집단감염 부른 노동환경과 고용구조 개선해야”

쿠팡 노동자 증언 토대로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나와

대규모 집단 감염을 야기한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한 인권실태조사 보고서가 공개됐다. 일용직부터 3개월 계약직, 9개월 계약직, 1년 계약직, 무기계약직 등으로 쪼개진 쿠팡의 비정규직 구조는 내부를 위계화하고 경쟁을 부쳐 노동 강도를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고강도 노동조건에서 형식적인 방역 수칙 또한 무용지물이 됐다고 증언했다. 쿠팡이 기업의 성장에만 몰두한 결과, 노동자의 안전과 공공의 안전이 심각한 침해를 받게 됐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17개 단체가 참여한 쿠팡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이하 조사단)은 28일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통해 ‘쿠팡 집단감염,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온라인 보고회’를 열고 ‘쿠팡은 어떻게 무권리의 위험현장이 되었나-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쿠팡 노동자 인권실태 조사는 지난 7월 22일부터 9월 5일까지 24명의 노동자를 심층 면접조사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쿠팡 물류노동자들의 고강도 노동은 ‘UPH(Unit Per Hour/시간 당 생산량)’로 확인된다. 쿠팡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UPH 목표를 알렸고, 하위 성적을 기록한 저성과자들은 개별 면담을 하고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의 성과 관리를 지속했다. 사실관계확인서가 누적되면 자동으로 퇴출당했기에 노동자들은 이 평균 UPH를 맞추기 위해 경쟁을 하는 구조였다.

그 결과 부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사측의 지시에 따라 초 단위로 움직이고 이동해야 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물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횟수도 철저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도 존재했다. 화장실은 매 층에 남녀 화장실 각각 2개 칸이 전부였고, 특히 여성화장실은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시간 등에 길게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작업 중 화장실을 가려면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가야 했다.

[출처: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출처: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조사 참여 노동자 A씨는 “단 1분 1초라도 쉬면 PC에 작업속도가 나오기 때문에 관리자가 뛰어온다. ‘여기 놀러 왔냐, 지금 뭐하는 거냐’고 하면서 사람들이 있는 데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준다. 할 게 없으면 부자재라도 가서 채우라고 한다. 1분 1초도 쉴 수 없고 앉을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 B씨도 “쿠팡의 (UPH)기준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3월 초에는 100만 유지해도 아무 말이 없었지만, 이제는 100은 기본이고 더 하라고 한다. 목표치가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같은 속도로 하면 빨리 걸으라고 재촉한다”라고 밝혔다.

[출처: 쿠팡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조사단에 따르면 쿠팡은 절대 다수의 비정규직 구조 속에서 비정규직 내부를 일용직, 3개월 계약직, 9개월 계약직, 1년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으로 분할하고, 이를 마치 ‘승진’처럼 내부 성과 체계를 마련했다. 일용직의 경우 매일 매일의 재계약은 근태, UPH 성과 등을 통해 관리하고, 이를 통해 3개월 재계약 여부를 판단한다.

조사단은 “쿠팡은 물류센터 비정규직 내부를 분할하고 위계화하여 고용장치와 성과 장치를 결합한 내부 경쟁과 통제 체제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반복되는 계약해지의 불안과 재계약의 희망을 강화하면서 노동의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라며 “강도 높은 전신노동을 수행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마스크는 1시간이 채 안 되어 땀에 젖어 있었으며, 매우 형식적인 방역이 중첩돼 최초 확진자가 근무한 12일에, 가까운 위치에서 작업했던 노동자들에게 전파됐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근무하며 2층 전체가 감염된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성장에만 골몰, 변명과 책임 회피에 급급해

조사단은 지난 6월 쿠팡 목천센터 구내식당에서 조리보조원으로 일하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30대 노동자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했다. 이 사건은 과로 가능성, 청소 약품의 과다사용과 혼합사용, 안전교육 미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정확한 현장 조사를 실시하지 못하는 등 진상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쿠팡은 고인을 직접 고용했던 협력업체 동원홈푸드, 인력파견업체인 아람인테크에 책임을 미루고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도급인 역시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 및 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

조사단은 “(쿠팡은) 역학조사 등을 위해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계약해지를 해서 추가적인 조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라며 “파견노동자는 안전사고가 나면 위탁 계약을 중단하거나 원청사용주가 위탁업체에 책임을 넘기기 쉬워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라고 밝혔다.

쿠팡은 코로나 대규모 감염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적절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가족까지 감염돼 위중한 상태에 빠진 노동자가 쿠팡에 후속 조치를 문의하자 “코로나는 국가 재난 상황이고, 보건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모든 방역이 적시에 이뤄졌고 회사도 처음 겪는 일이라 회사 잘못은 없다”라고 답변한 것은 쿠팡의 인식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조사단은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하는 노동자는 작업대에서 바로바로 퇴출해도 코로나 고용위기로 인해 노동인력이 넘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이윤의 축적에 주력했다”라며 “미국에서 유학하고 심지어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까지 선진 경영을 습득해 온 김범석 쿠팡 회장의 경영방식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화된 후진 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또 절대 다수의 일용직과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구조에 주목했다. 이들은 “쿠팡은 노동자들의 숙련을 통한 효율성 대신 자신들이 수집한 데이터에 따른 효율성을 신뢰한다. 쿠팡은 안정된 직장에서의 일의 효능보다는 내부의 성과 관리체계를 통해 통제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라며 “불안정 노동자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어 노동자의 통제와 착취구조를 데이터화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집단 감염 불러온 고용구조, 반드시 개선해야

조사단은 쿠팡에 ▲피해 노동자에 대한 사과 ▲집단 감염을 불러온 노동환경과 고용구조 개선 ▲문제제기와 해결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해고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설 것 등을 요구했다. 조사단은 “피해에 대한 사과와 근본적인 문제해결,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보상과 지원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동자를 기업-일터의 평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일터에서의 평등과 민주적 관계에 기반한 의사소통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질타했다.

국가의 책임 역시 강조됐다. 조사단은 “쿠팡이 코로나19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 쌍수들고 환영하던 영역이 기실 노동당국의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를 마음껏 활보하고 다니게 만든 것의 효과이기도 하다”라며 “일상적인 정부의 규제나 감독이 이뤄졌더라면 쿠팡이 방역지침을 수용하는 태도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노동자의 코로나19 감염위험에 대한 작업중지권을 비롯한 노동권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권리행사에 대해 부당한 대우나 해고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