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공무원, 간호사 공무원이 더 많아져야 해요”

[이슈④] 공공의대 나오면 정말 돌팔이 의사 될까, 의료무식자는 궁금하다

왠지 흰 가운을 입은 그분들 앞에만 앉으면 얌전한 어린애가 된 듯싶었다. 다소곳이 앉아 아 하라면 아 하고, 어 하라면 어했던 곳에 앉아 계시던 그분들. 그래도 책상 너머 독수리 타법이 간혹 눈에 띄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단상에 머리를 박아대던 의사 대표라는 분이 머리띠까지 질끈 매고 ‘총파업’을 외쳤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 계획을 그저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경기를 일으켰다. 의사파업은 전공의 파업으로 시작해 개원의와 의과대학생 동맹휴업으로 퍼지며 삽시간에 전국이 난리가 났다. 게다가 각종 가짜뉴스도 판을 쳤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워커스》는 전문가들에게 직접 물었다.


의사파업을 본 심정은? 그리고 왜 반대했나요?

두 가지 감정이 오가더고요. 하나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는 시점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파업했다는 점이 참담했어요. 한편으로는 동네병원 도산률이 계속 증가해왔던 터라 의사들의 불만이 파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도 명분 없는 파업이었죠.

그래서 파업에 참가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 지역 의사들은 70-80%나 참여했다고 하더라고요. 의사-환자 사이에는 진료 관계가 중요한데 이번 파업으로 그것이 파괴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요. 지금은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앞으로는 의사들이 고립될 것도 같고요.

안종호(내과 개원의)

한국 사회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괴리감이나 충격도 컸죠. 정부가 4일 만에 항복했는데, 처음 벌어진 일이에요. 정부에 반대했을 때 이렇게 빠른 속도로 타결이 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위력은 노동자 민중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만큼 슬픈 일이었죠.

정형준(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데 의협은 이것이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우기고 있잖아요. 대체 어느 쪽이 맞을까요?

의사집단은 증가율이 많다, 접근성이 좋다, 의료 기관이 적어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해요. 하나하나만 보면 타당성이 없지 않지만, 모두 잘못된 주장이에요. 증가율은 기본적으로 산수가 안 된 것이에요. 가짜 뉴스죠. 애초 의사 수가 적어 분모가 적기 때문에 증가율이 높다고 하는 것이에요. 한국 의사 수는 10만 명당 7.3명인데, OECD 평균도 안 돼요. 접근성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잉진료로 그 조건 자체가 망가져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 그 결과는 달라지죠. 한국에선 의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50명을 진료해요. 진료 시간이 몇 분 만에 끝나버리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처럼 이 시간을 10분, 20분씩 늘리면 진료 받을 곳이 부족해져요. 의료 기관이 없어서 의사 수가 많다는 것도 단견이에요. 의사 인력을 양성하려면 최소 12∼13년이 걸리거든요. 군 복무를 포함하면 더 길어지죠.

절대적인 의사 수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의료는 자본과 노동 사이 재생산 체제의 일부거든요. 그래서 의료 인력이 많으면 민중에게 좋은 일이죠. 그런데 비용(교육, 시설 등)이 들어가니까 어느 수준의 질을 담보할 것인가를 먼저 얘기해야 해요. 쿠바와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죠. 의사 수를 늘려 보편적인 건강권 향상을 추구하는 것은 쿠바식 모델이고, 한국은 기술의학 측면에선 다양한 것을 공급해 좋은 면이 있지만, 의사 수는 부족하고 격차가 크죠.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의사 수를 어느 정도 보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이번에 의사 집단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이고 근거는 거의 없어요. 유일하게 의사수요 창출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장화돼 있는 환경에서 의사 수를 늘리면 수요도 늘어난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에요. 이를 의료에 적용하면, 의료가 과잉공급되면 병 같지 않은 병을 창출한다는 식으로 시민이나 소비자 단체가 비판적으로 주장할 수는 있는데, 이를 의료 공급자가 얘기할 것은 아니죠. 의사집단이 이를 주장하게 되면, 시장화된 토대에서 자신의 처우를 향상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시각이 되거든요.

정형준(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의대를 나오면 돌팔이 의사가 된다는데요?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를 택할 것이냐는 카드 뉴스도 냈고요.

전혀 사실무근이죠. 서울대 의대도 무상은 아니지만 국공립대인걸요. 최근 논란이 된 서남대 의대도 비리투성이인 사립재단이 운영했기 때문에 폐교된 거죠. 부정적인 이미지 메이킹이예요. 공공에 대한 적대감, 우승열패 신화에서 나온 거죠. 내부 서열도 매기고요. 한국 의사집단이 해외와는 다르게 자영업자 마인드가 많은데, 숫자 늘어나는 게 싫고, 공공이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선발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조국 사태 때 공정 논란이 재연됐죠. 하지만 프레임 자체가 기득권의 공정이란 게 문제인 거죠. 이를 인터넷카페나 보수언론이 동조하며 논란이 확대됐고요.

또 선발을 추천제로 한다며 가짜뉴스가 퍼져 문제가 됐었잖아요?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추천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기득권층 관점이죠. 결국 성적순으로만 뽑아야 한다는 얘긴데,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선발하는 데는 사회적 헌신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죠. 경쟁 과다 국면에서 시험으로 대표되는 능력주의 모델이 표준화된 것은 슬픈 일이에요. 논란이 된 카드 뉴스가 공식적인 의료집단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들이 얼마나 사회 일반과 분리된 기득권이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요. 두고두고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고 봐요.

정형준(보건의료단체연합)

의사파업 때문에 정부가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지역 격차를 고려하면 틀린 말만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의사수급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동네의원은 부족하지 않아요. 문제는 전문의와 중소병원이죠. 개업의는 자영업이고, 중소병원은 누군가 설립해야 하는데, 공공이 설립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지역 의사 수가 적은 이유로는 공급이 부족해서냐, 월급이 낮아서냐, 아니면 일할 만한 환경이 안 되는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의사도 지방보다는 서울을 선호하고요. 복합적으로 작용해요. 그러면 정부가 안을 발표하면서 현상을 진단하고 중소병원급 인력 수급이 왜 부족한가 그리고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한국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진료가 필요한지에 대해 추계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가는 것이죠. 그 역할을 국가가 책임 있게 맡고 배정해야 하는데 단지 인력을 늘려서 지역별로 10년 의무 복무를 하도록 한다고 기계적으로 말한 것이에요. 의사 인력 기획 과정을 전담하는 공적인 조직이 있어야 해요.

박형근(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가 수가가 높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선호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사회가 그런데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기피 지역이나 과에서 일하려는 의사들이 있죠. 의료 수가라는 것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과 똑같아요. 의사의 진료 시간이 짧고 노동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수가가 전반적으로 낮은 문제도 있지만 (상품처럼) 생산 프로세스를 빨리 돌려야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수가는 시장의 논리에요. 하지만 의료는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죠. 수가 이상의 다른 방식이 필요해요. 공익적으로 접근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고 국민도 그 책임을 나눠야 하고요.

박형근(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쿠바 의사들을 ‘하얀 가운의 노예들’이라고 부르는 언론도 있었죠?

거짓말이에요. 가짜죠. 출처도 불충분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거예요. 사회주의 의료를 깎아내리기 위해 그런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해외에 파견 나간 의사들로부터 쿠파 의사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쿠바 의료시스템을 좋아해요. 쿠바는 예방의료 중심으로 의료서비스가 구축돼 있고, 가정의료, 1차 의료시스템이 잘 짜여 있죠. 환경이나 사회의학적인 근거에 기초해서 의료 서비스를 시행해요. 보건의료 본연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모델이에요. 또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건강 제도가 설계돼 있고요. 의사 교육이 무료고, 100% 국유화 시스템이죠. 의료 시술이 낙후하고, 대기 기간이 길고, 경제 봉쇄로 의약품 공급도 잘 안 되는 문제가 있긴 하죠. 그런데도 영아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아요. 이 의료 수준을 유지하는 건 대단한 일이죠.

안종호(내과 개원의)

최대집 의협 회장 같은 사람은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정부라고 하는데요?

문재인 정부가 일부 의료권을 높이는 정책을 하긴 했죠.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인데, 거기까지예요. 나머지는 의료산업화 정책이죠. 한국형 뉴딜정책이라고 하면서 의료 테크놀로지에 엄청나게 투자하기도 했죠. 그런 거 봤을 때는 사회주의 정책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의료민영화를 시행하고 있어요.

우파는 일부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광광대죠. 이번에도 정부의 조치가 문제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의사 수를 확대하면 자신의 이해에 반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라고 비판한 것이에요. 생존권 파업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파업이었다고 봐요.

안종호(내과 개원의)

그런데 정부가 진짜 공공의료를 확충할 마음은 있었던 걸까요? 내년 예산안을 보면 공공의료 확충 예산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는데요. 애초 문재인 정부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기대가 있으셨을까요?

문재인 정부는 보장성 확대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지역 격차 해소나 공공병원 투자에는 소홀했죠.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원래 기대도 별로 안 했고요. 공공의료라는 건 정치인에게 표가 안 되기 때문이에요.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데 생색내기가 쉽지 않죠. 의사 인력 문제를 건드렸다가 이 사달이 났는데, 이해관계가 복잡해요. 예를 들어,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8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짓겠다고 하면 그 지역 개업의가 뭐라고 하겠어요. 지역 정치인,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다 충돌하죠. 공공의료 제대로 한다는 것은 정권을 내놓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박형근(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정부와 의협이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시 논의하기로 하기로 합의했잖아요? 뭔가 논의가 제대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적이 우수한 학생 다수가 의과대를 지망하는 경우가 세계적으로는 많이 없어요. 우리는 의대, 약대, 수의대 등 라이센스가 있는 학과를 선호하죠.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이 기괴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에요. 교육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야 하는 소양이 아니라 점수 내는 게 중요하잖아요. 계속 승리해야 하는 삶이 중요하고, 이러한 삶을 위해선 나의 승리뿐 아니라 남의 패배도 중요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이 풍토부터 바꾸는 게 참 중요해요.

대안을 생각해보면, 우선 공공의료기관부터 확대해야 해요. 기관 수를 늘리면 의료 인력 확대도 적은 수준으로라도 가능하죠. 공공의료 기관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이 국면을 타개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인력 기준을 강화해야 해요. 한국은 민간 자본이 운영하다 보니까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거든요. 지금은 시장 주도식으로 인력에는 투자를 안 하고, 검사나 검진은 공장 시스템으로 돌리고 있죠. 마지막으로 공적 구조에서 고용한 의사가 많아야 해요. 공무원 의사, 공무원 간호사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죠. 유럽이나 캐나다의 의대는 모두 무상교육이죠. 의사들이 공공마인드를 가지고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으로 사회적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계속 산업화하는 그 방향으로 가면 답이 없어요.

정형준(보건의료단체연합)

의료 인력의 공공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야 해요. 의사 자신이 자기 노동과정에 대해 먼저 안을 내놓아야 하고요. 예전엔 의사 집단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통제받지 않고 자기가 결정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현재는 전혀 다르죠. 이 때문에 이번에는 의사집단이 의사 인력의 공공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해 안을 내야 한다고 봐요. 국가는 양성과정에 돈을 써야 하고 관리해야 하고요. 잘 안되리라 생각은 하지만요.

박형근(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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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대안을 생각해보면, 우선 공공의료기관부터 확대해야 해요. 기관 수를 늘리면 의료 인력 확대도 적은 수준으로라도 가능하죠. 공공의료 기관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이 국면을 타개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인력 기준을 강화해야 해요. 한국은 민간 자본이 운영하다 보니까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거든요. 지금은 시장 주도식으로 인력에는 투자를 안 하고, 검사나 검진은 공장 시스템으로 돌리고 있죠. 마지막으로 공적 구조에서 고용한 의사가 많아야 해요. 공무원 의사, 공무원 간호사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죠. 유럽이나 캐나다의 의대는 모두 무상교육이죠. 의사들이 공공마인드를 가지고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으로 사회적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계속 산업화하는 그 방향으로 가면 답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