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강요받는 한국의 선택은?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국제적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중 경쟁과 갈등을 두고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에서 유래한 것이다.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올 때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중 간에도 상호 충돌이 불가피해서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중국위협론’에 바탕을 둔 미국의 주류적 관점을 대표하며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우려가 될 것인지 기우에 그칠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데 30여 년 전부터 제기된 ‘중국위협론’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점점 더 증폭되고 있어서 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 미 행정부가 주변 국가들에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도 중국과 미국 중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지난번 사드 배치의 경험을 통해서 어느 쪽 편을 들어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루의 위험성에 놓이게 된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문재인 정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경제 분야에서는 미중 경제권의 디커플링(decoupling)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이 초래할 경제적 파장이다. 둘째, 군사 안보적 충돌의 위험성이다. 셋째, 미국 행정부의 권력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치열한 미중 갈등과 미국의 압박

중국위협론의 핵심은 단순하다. 미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제도와 방식을 도입해 많은 혜택을 누렸다. 미국은 그 혜택의 상당 부분이 자국 덕분이었는데, 중국 내부는 ‘중국 특색’이라는 편리한 잣대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위협론을 해소하고자 강약을 조절하면서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의 미중 갈등은 신냉전이라 불릴 정도로 첨예하다. 정치적으로는 군사 안보를 포함하는 국력의 대결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중국식 자본주의의 대결이다. 사회적으로는 가치관의 대결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이다. 기술적으로는 과학기술 패권의 대결이다. 한마디로 전 부문을 포괄하는 전 방위적 대결이다.

지난 9월 15일부터 미국의 ‘화웨이 금지 조치’가 발효됐다. 이로써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 기업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로 반도체 부품을 새로 사지 못하게 됐다. 화웨이를 대상으로 한 미국 정부의 제재는 2019년 5월 시작된 이후 계속 수위가 높아졌다. 이러한 화웨이 제재는 세계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실제 목적은 화웨이가 미국 및 그 동맹국에서 벌이는 통신기지 사업, 특히 5G로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 제조 2025’의 실행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이는 미중 갈등이 단순한 무역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5G는 화웨이에 양날의 칼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인프라의 패권을 노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이를 견제하는 세력으로부터 강렬한 반발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2014년 미국의 정부 기관은 화웨이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급기야 2018년에는 FBI, CIA 등의 미국 비밀 정보국 간부들이 화웨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용을 삼가야 한다는 발언을 잇달아 냈다. 그리고 이번에 금지 조치가 발효된 것이다.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아주 중요한 대 중국 전략보고서가 나왔다. 백악관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도전 1순위로 경제를 꼽았다.

이 보고서는 특히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개도국들을 압박하며 미국의 이익을 저해하고, 중국 공산당 이념을 앞세워 우방국 간 공동체 의식을 해제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또한 화웨이와 ZTE 등의 5G 정보통신 관련 회사를 거론하며 미국 내 사이버 보안법 제정을 통해 불공정 방식으로 차세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세계 안보 위협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내세운 대안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이다. EPN의 내용과 원리는 사실상 미중 디커플링을 통한 ‘신뢰하는 파트너’들과의 반중 경제동맹으로 이해된다. EPN의 일차적 대상으로는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이스라엘, 대만, 한국, 베트남 등이 거론된다. 요컨대, EPN은 미국기업들에 탈중국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으로의 회귀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그들의 인력과 생산시설을 좀 더 미국에 우호적인 EPN 참여국들로 이전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아직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9월 16일에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맺고 있는 양자 협력이 다자화 될수록 좋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훌륭한 기준’으로 내세웠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판 나토’ 구상을 거론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인도·태평양 안보네트워크의 핵심에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협력(이하, 쿼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쿼드를 확대하여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 3국이 포함된 새로운 대중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쿼드 플러스’다.

현재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나토 형(type)의 대중봉쇄전략 구상에 한국의 참여를 강요하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쿼드 플러스’가 7개국 간 회담이며,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방역 관련 소다자회의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정책적 변화가 심한 정권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딜레마

미국의 강력한 조치와 태도로 인해 중국은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중국의 개혁 개방 자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달러 체제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과 동시에 대미 취약성도 커지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달러로 다시 미국의 채권을 구매하고, 미국 경제와 동조화됨에 따라 ‘달러 함정’에 빠지고 대미 취약성도 커진 것이다. 또한 중국은 저렴하고 대체 가능한 소비재를 미국에 수출하고, 대체 불가능한 지식 상품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다.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중국 기업, 나아가 중국에 큰 타격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취약성, 즉 기술과 지식, 상품에 대한 의존, 이른바 ‘달러 중독’, 높은 무역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은 ‘일대일로, 위안화의 국제화, 기술 굴기’를 추진한 셈이다.

중국이 현재의 대미 수출 지향형 경제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한 취약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중국 사회의 핵심 엘리트 계층이라 할 수 있는 도시지역 관료와 공산당 자본가들이 이런 대미 경제구조의 핵심 수혜자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미중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작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금융기업들도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국제금융 중심지가 아시아로 이전하고 있는 데 대한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내부 규제 조치도 완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은 경상수지 흑자가 하락세에서 적자로 이어지고 있어서 외국자본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이 중국 내 규제가 풀리고 있다. 미국 금융기업들의 위험부담이 생각 이상으로 작을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미중 갈등이 중국엔 국제금융 중심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최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9월 15일 미국의 13개 동맹국 성인 1만3273명을 전화 조사한 결과 한국과 일본만 미국을 세계 경제의 리더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을 제외한 11개 모든 동맹국(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리더라고 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다자무역을 수호하겠다는 중국과 보호무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무역 질서를 꾸리려는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 차이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 미 대통령은 6명의 지도자 중에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물론 이러한 조사 결과가 차기 미 대선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만은 확실히 트럼프의 재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트럼프의 재선을 원하는 것 같지 같다. 이제 미국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국제사회에서 미 대통령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는 않다. 또한 힘으로 굴복시키려고 하거나 협상을 강요하던 시대는 끝났다.

트럼프의 재선이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나 한반도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거의 사라졌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측면에서 트럼프의 향후 행보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의 행태는 거의 도박에 가까웠다.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은 원칙에 충실한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정강정책이 동맹국 중시의 회복을 예고하고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일방적 철수나 감축 논의, 과도한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등은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다자무역체제를 복원하고 미국상품수출(Buy American)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으므로 동맹국들과의 과거와 같은 무역마찰이 재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협약 및 기구에 복귀함으로써 세계적 지도력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바이든의 원칙은 철저한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다. 그의 당선이 한반도 문제에 도움이 되려면 정책의 원칙과 기조에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세계 전략이나 한반도 문제의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 평화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훼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딜레마에 빠진 문재인 정부에는 어떠한 선택이 필요할까.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갈등 상황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외교 전략으로 구사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미국의 압박에 대해 즉각적인 응답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미중 갈등에 연루된 국가가 수십 개에 달한다. 이들 국가와 상호 연대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주의를 발현시킬 때이다.


[참조]
다나카 미치아키, 정승욱 옮김, 『미중 플랫폼 전쟁 GAFA vs BATH - AI시대 메가테크 기업, 최후 승자는?』(세종서적, 2019).
박홍서, 『미중 카르텔』(2020, 후마니타스).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0/09/15/us-image-plummets-internationally-as-most-say-country-has-handled-coronavirus-ba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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