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일생을 함께하는 농부

[유하네 농담農談]

  어른 종아리만큼 자란 무 [출처: 이꽃맘]

겨울을 버텨 뿌리를 키워가는 양파

양파를 심으러 나섭니다. 양파는 초가을에 싹을 심어두면 겨울을 버티고 봄에 뿌리를 키워내는 식물입니다. “간격이 너무 좁은 거 아냐? 내년에 클 양파의 크기를 생각하면서 심어야지” 옆 고랑에서 크고 있는 배추에 물을 주고 있던 유하아빠가 말을 건넵니다. “그런가? 양파가 어른 주먹만큼은 크니 너무 좁게 심은 것 같다.” 심었던 양파 싹을 다시 뽑아 심으려 하자 “우리 실력에 그렇게 크게 키우긴 어려울 테니 그냥 놔둬”라며 유하아빠가 웃습니다. 농부라면 씨를 뿌릴 때부터 이 씨앗이 나중에 어떤 모양으로 클지 고민하고 간격을 맞춰 심어야 하는데 초보 농부인 유하엄마는 가끔 이 사실을 까먹습니다.

“총각무를 이렇게 빡빡하게 놔두면 어떻게 해! 솎아줘야지!” 지나가던 어르신이 한 말씀 하십니다. “난 아직도 솎아주는 걸 잘 못하겠어.” 총각무 앞에서 유하엄마가 중얼중얼 합니다. 씨앗이 작아 줄로 뿌려놓고 나중에 자랄 총각무의 크기를 생각해 필요 없는 부분의 싹은 뽑아줘야 하는데 이걸 잘 못하니 둥글 길쭉 총각무 모양이 안 나오는 겁니다. “에잇, 작으면 작은 대로 먹지 뭐.” 유하네 총각무는 이번에도 작고 제멋대로입니다.

생강 잎을 본적이 있나요

얼마 전 일손을 도와준다고 유하네를 방문한 친구들에게 밭 설명을 해주며 “생강이 어떻게 생긴 줄 알아?”하고 물었습니다. 친구들은 “동글동글 생긴 뿌리잖아” 합니다. “그럼 여기서 생강을 찾아봐” 했더니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밭고랑 중간에서 퀴즈대회가 열립니다. 친구들은 딸기 잎을 보며 “이건가?”, 고구마 잎을 보며 “이건가?” 합니다.

조금 아는 척을 하던 친구가 “생강나무가 있다고 하던데? 나무에서 주렁주렁 열리나?”라고 묻습니다. “생강나무는 봄에 산수유보다 조금 빨리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잎에서 생강 비슷하게 냄새가 나서 이름이 생강나무래. 이구... 완전 바보들이구만.” 한바탕 웃음꽃이 핍니다. 마트에는 잎이나 뿌리를 모두 잘라내고 먹을 부위만 갖다 놓으니 당연히 생강 잎을 본적이 없을 겁니다. “여기 있잖아. 뾰족뾰족 잎을 만져봐. 생강 잎에서도 생강 냄새가 나.” 친구들이 몰려들어 생강 잎을 만진 손을 연신 코에 갖다 대며 “생강이 이렇게 예쁜 잎을 가지고 있구나. 처음 봤어. 이것도 먹는 거야?”라고 묻습니다. “아니. 먹지는 않는 것 같고 고기나 생선 숙성 시킬 때 깔아주는 용도로는 쓰더라고.” 도시 친구들 앞에서 초보 농부 유하엄마도 식물박사 못지않습니다.

  생강을 캡니다 [출처: 이꽃맘]

식물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야 진짜 농부!

유하네는 식물의 일생을 함께 합니다. 초봄에 심는 동글동글한 잎을 가진 땅콩은 꽃을 피운 후 꽃이 땅 속으로 들어가 열매를 맺습니다. 흔히 땅콩은 뿌리 열매라고 생각하지만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땅 속에 열매를 숨긴 땅콩의 생존전략입니다. 고구마는 초여름 고구마에서 나온 순을 잘라 땅 속에 꽂아 놓으면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 중 열매 뿌리가 고구마로 변신합니다. 초봄과 가을에 심는 당근 잎은 한 다발 꺾어 꽃병에 꽂아도 멋질 만큼 예쁩니다. 감자는 한해를 묵힌 열매에서 싹이 나오는 눈 부분을 잘 쪼개 심으면 하지에 새로운 감자를 가득 달고 나옵니다. 감자는 뿌리가 아닌 땅 속 줄기라는 사실. 쪽파는 봄부터 여름까지 자란 쪽파를 뽑아 잘 말려 밑동을 가을에 다시 심어 겨울을 납니다. 봄이 되면 쪽파 밑동 하나가 여러 개로 갈라지며 제일 먼저 밭을 파란 잎으로 채워갑니다. 김장을 위해 한창 키우고 있는 무며 배추를 보면 어찌나 신기한지요. 유하 눈곱보다 작은 씨앗을 뿌려 놨더니 무는 어른 종아리 만해지고 배추는 한 포기가 한 아름만 해졌습니다. “엄마 씨앗이 너무 작아. 이게 어떻게 커다란 무가 된다는 거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씨를 뿌렸던 유하도 커다랗게 자란 무를 보며 “이게 우리가 심었던 그 작은 씨앗에서 나온 거야? 말도 안 돼! 엄마가 큰 무 갖다가 심어 놓은 거 아냐?”하며 웃습니다.

김장을 위해 11월 중순이면 모두 뽑아내겠지만, 뽑아내지 않고 헌 이불 같은 것으로 잘 덮어주면 배추와 무는 뿌리로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굵은 꽃대를 올려 노랗고 하얀 꽃을 피웁니다. 무꽃, 배추꽃이 어찌나 예쁜지 본 사람만 안다니까요. 꽃이 지고 씨앗을 맺으면 그것을 다시 밭에 뿌립니다. 요즘은 판매용 씨앗이 워낙 잘 나오니 씨앗을 받는 농부도 흔치 않습니다. 진짜 농부가 되려고 노력하는 유하네는 최대한 씨앗을 받습니다. 유하아빠는 뚜껑이 넓은 병만 보면 “씨앗통 해야지”하고 모아둡니다. 올해도 조선오이씨, 단호박씨, 아주까리밤콩씨, 작은 수박씨, 검은 팥씨, 해바라기씨, 들깨씨, 사과참외씨 등 각종 씨앗을 모았습니다. 내년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맺을 소중한 마무리입니다.

생의 처음과 끝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

서울에서 온 친구들에게 “늙으면 어떻게 살 거야?”하고 묻습니다. “그러게 모아둔 돈도 없고. 아니 모을 수도 없고 연금은 국민연금밖에 없는데 어찌 사나”하고 한숨을 휴 뱉습니다. 저질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는 한국에서 당장 먹고 살 일도 막막한데 노후를 생각한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파트 하나라도 사놔야 한다니까. 그래야 늙어서 파먹고 살지.”, “자식도 없으니 나중에 찾아올 사람도 없고 늙으면 참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어.” 즐거운 저녁식사 자리에 유하엄마의 질문이 찬물을 끼얹은 꼴입니다. ‘밭에서 자라는 식물도 차근차근 시기에 맞춰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만들어 다음 해를 준비하는데….’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마을 느티나무에서 [출처: 이꽃맘]

“그러니까 답은 시골에서 모여 사는 거라니까!” 귀농 전도사, 시골 살이 예찬론자로 별명이 붙은 유하엄마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농사에는 정년이 없어. 시골에 오면 예순도 청년이라니까. 우리는 이 동네에서 애기야 애기.” “땅만 잘 만들면 먹을 거 다 만들어 낼 수 있지. 주거비용 적게 들지. 도시에서 가졌던 욕심만 조금 버리면 시골 살이가 노후준비라니까. 다들 시골 와서 살 준비해.” “좋은 세상 만들기 전에 지구가 먼저 망하겠다. 시골 와서 땅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고 몸도 살리며 함께 살자.” 유하엄마, 유하아빠가 돌아가며 말을 잇습니다. “시골로 내려오더니 완전 시골사람 다 됐어.”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 일생을 고민하며 살아야지.” 친구들도 말을 보탭니다.

아! 대추밭 한편에서 주인을 찾던 작은 농막이 새 식구를 찾았습니다. 귀농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지만 여의치 않아 동네 도정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집을 빌려주고 연세로 받기로 한 약간의 돈으로 이번 주말에는 동네 분들을 모시고 우리 집 마당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청년의 집들이 겸, 가을 수확철 몸보신도 함께하자는 의미입니다. 유하네는 이렇게 일생을 함께 보낼 이웃을 또 하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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