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5법 뒤집은 미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통과 내막

[1단 기사로 본 세상] 3억 달러 쏟은 더러운 전쟁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11월 3일 미국 대선이 끝나자 한국 언론은 일주일 넘게 선거결과를 놓고 벌어진 공방에 집중했다. 매일경제신문이 11월 6일자 14면에 ‘韓서 막힌 승차공유, 미국선 法 바꿔 기사회생’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미 대선과 함께 치러진 캘리포니아 주 주민투표에서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자영업자)로 분류하는 주민발의안이 통과됐다. 이번 투표 결과 올 초부터 캘리포니아 주에서 실시해온 어셉블리5(AB5) 법은 무력화됐다. AB5 법은 플랫폼 기반 노동자를 개인사업자(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보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제한 등 각종 노동법상 혜택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우버와 리프트는 AB5 법에 반발해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투표에서 이긴 우버와 리프트, 음식배달 플랫폼 도어대시 등은 환호했다. 이를 두고 매일경제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복지보다 일자리를 택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매일경제 11월6일 14면(위)과 11월7일 사설

‘우버 기사는 자영업자’라는 플랫폼기업 홍보

매경은 다음 날인 11월 7일에도 ‘우버 기사를 자영업자라고 판단한 美캘리포니아 주민투표’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매경은 미국에선 우버 기사를 자영업자로 판단했는데 한국에선 올 3월 타다금지법이 통과돼 우버 같은 승차공유 플랫폼은 원청봉쇄된 상태라고 안타까워 하며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배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보험 확대 등을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 규제로는 디지털 경제에 대비할 수 없다”고 문재인 정부의 무늬만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11월 11일 B2면에 ‘우버의 고향 캘리포니아, 우버 기사는 직원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우버는 주민발의안 찬성 투표를 독려하면서 ‘규제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로 “(플랫폼 종사자) 대다수가 유연하게 추가 일감과 소득을 얻기 원한다”고 선전했다.

  중앙일보 11월11일 B2면(위)과 조선일보 11월21일 31면.

조선일보도 11월 21일 ‘똑똑한 시민이 불편한가’라는 데스크칼럼에서 캘리포니아 주민투표 결과를 소개했다. 조선일보 칼럼은 미국에선 똑똑한 시민들이 주민투표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이끌어냈는데, 한국에선 서울시가 시민과 제대로 소통도 하지 않고 광화문 일대에 800억 원짜리 공사를 밀어붙이고, 정부와 여당은 10조 원짜리 동남권 신공항을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캘리포니아 주민투표 결과를 문재인 정부 비판에 활용했다.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주민투표 통과를 위해 벌인 더러운 홍보전쟁을 조금이라도 알면 이렇게 막무가내 식 기사를 쓸 순 없다.

대선 광고보다 더 많은 돈 쏟은 홍보전쟁

다행히 한국 언론 중에도 11월3일 미국 대선 전에 우버의 더러운 홍보 전쟁을 폭로하는 기사를 쓴 곳이 있다.

  세계일보 10월28일 14면

세계일보가 미 대선 6일전인 10월 28일에 ‘우버, 정규직 전환 저지 광고에 수천억 투입 빈축’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세계일보는 ‘우버와 리프트 등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운전기사의 정규직 전환을 막는 주민발의안 찬성을 유도하는 광고를 대통령 선거 캠페인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 빈축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주민발의안 찬성 측이 지난 9월 페이스북 광고에만 41억원 넘게 썼다고 보도했다.

우버의 홍보전쟁은 미 대선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우버와 리프트는 발의안 통과 홍보를 위해 모금된 2100억 원의 대부분을 기부했다. 투표를 하는 캘리포니아에선 우버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무조건 “운전자들이 계속 돈을 벌게 해주자”는 문구와 함께 발의안 정보를 담은 링크가 뜨도록 했다. 우버는 주민투표가 부결돼 AB5 법을 준수하면서 사업하면 우버 요금이 25~111% 인상될 것이라고 주민을 협박했다. 세계일보의 2단짜리 이 작은 기사를 보면 주민투표는 절대로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부결 사설도 돈 앞에선 무력

한국일보는 10월 24일 16면 전면을 털어 ‘트럼프 운명 결정되는 날, 우버의 운명도 투표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사에서 우버와 리프트는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투표 사상 최대 비용의 홍보 및 로비자금을 집행했다. 플랫폼 기업이 이번 투표에 쏟은 자금만 무려 3300억 원에 달한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새크라멘토비 등 유력 신문이 사설에서 우버 기사들의 더 나은 고용조건을 위해 주민투표 발의안 부결을 피력했지만 돈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해서 주민투표는 58.3% 찬성으로 겨우 통과됐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가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신문도 아닌데 부결을 지지하는 사설을 썼다.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질주하는 플랫폼 기업의 횡포에 최소한의 대응책을 마련해 노동자들의 고용과 건강을 지키자는 뜻이었다. 이 더러운 전쟁에서 이긴 플랫폼 기업에 환호하는 한국 언론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일보 10월24일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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