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사라진다

[유하네 농담農談]

  꽃보다 배추 [출처: 이꽃맘]

온 마을 잔치 ‘김장’

배추가 참 잘 자랐습니다. 싹을 다 녹여버릴 만큼 어마어마했던 장마를 뚫고,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던 가을 가뭄도 이겨내고 배추가 참 잘 자랐습니다. 유하 눈곱보다 작았던 씨앗 하나가 온 식구들이 나눠 먹고도 남을 만큼의 배추로, 어른 다리만큼 굵은 무로 자랐습니다. 하루하루 자라는 배추와 무를 보면서 우리 식구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유하세하가 일 년 동안 맛나게 먹을 김치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다른 지역보다 일찍 겨울이 찾아오기에 김장을 서둘렀습니다.

유하네가 늦봄 캐서 말려놓은 마늘에, 가을 즈음 잎이 노래질 때까지 알을 채운 생강, 여름내 따서 말리고 빻아놓은 고춧가루로 양념을 만들고 밭을 가득 채운 배추, 무, 갓, 쪽파를 뽑아 김장을 준비했습니다. 김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드디어 유하네 스스로 만들어 냈습니다. 소금에 절이기 위해 반으로 갈라놓은 배추는 어느 꽃보다 예뻤습니다. 유하파파가 채칼로 쓱쓱 썰어놓은 무채에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어 비비니 맛깔스러운 김칫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얼른 고기를 삶아 유하세하와 둘러앉았습니다. “옆집에도 조금 갖다 드릴까?” 접시에 수육과 김칫소를 조금 담아 옆집에도 나눠드립니다. 접시를 받아든 옆집 아저씨는 “안줏거리 생겼네”하고 웃습니다. “맨날 김장했으면 좋겠다. 히히” 노란 배춧잎에 고기와 김치소를 얹어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유하가 말합니다. “그러게 수육 먹으려고 김장하지” 유하의 웃음에 유하파파도 농담을 던집니다. 다음 날에는 우리 동네 협업 농장에서 김장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소리에 “오늘 또 수육 먹네” 마을 길을 걸어가는 유하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습니다. 또 다음 날에는 옆집 아저씨네가 김장을 하십니다. 유하네가 배추랑 무를 나눠 드렸습니다. “우리 집으로 고기 먹으러 와” 아저씨의 부름에 “사흘 동안 수육을 먹네” 유하가 웃으며 옆집으로 향합니다. 김장하는 내내 마을에서는 잔치가 열린 듯합니다. 유하세하는 “같이 먹으니까 더 재밌네” 합니다. 나눔의 즐거움을 절로 배웁니다.

한 세대만 지나면 사라진다

며칠 후 원주 남쪽에서 작은 민박집을 운영하는 선배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에서 친구가 김장을 한번 하고 싶다는데 우리가 잘 모르잖아. 와서 재능기부 좀 하시오” 합니다. 비싸진 채솟값에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많이 생긴다고 하는데 원주까지 와서 김치를 배우겠다니 장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맛있는 거 많이 넣으면 맛있어요” 서울에서 온 친구에게 시어머니에게서부터 내려온 비법을 알려줍니다. “배추에 김칫소를 넣은 다음 배추 겉에 초록 잎으로 배추 끝을 잘 싸주면 배춧속이 튀어나오지 않고 좋아요. 그리고 김치 통에 넣을 때는 배추 단면이 위로 오게 넣어야 해요. 그래야 김칫소도 잘 유지되고 국물도 배추가 머금을 수 있구요” 다 아는 얘기지만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나눔이 가득한 우리 마을 [출처: 이꽃맘]

“이거 다 영상으로 찍어 놔야 해. 요즘 누가 김치를 만들어 먹어. 공장에서 만들어 나온 김치들이 차고 넘치는데 말이야. 김장 문화도 다 없어질 거야” 옆에서 함께 하던 친구 남편이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주변 친구들도 김치를 직접 담아 먹지 않습니다. 식구 수도 적어지고 다들 일하며 먹고살기 바쁘니 그냥 마트에서 조금씩 사서 먹습니다. 공장에서 일 년 내내 신선한 김치를 만들어 마트에 진열해 놓으니 필요할 때마다 사서 먹으면 그만입니다. 모두 아파트에 사니 배추를 절일 곳도 마땅치 않고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김칫소을 넣기도 힘듭니다. 이러니 김치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 윗세대가 사라지면 김치를 만드는 법도, 가을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김장 문화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요즘 누가 된장을 만들어 먹어?

사라지고 있는 것들은 이것뿐 아닙니다. 누구나 만들어 먹었던 전통장도 이제 집에서 만들지 않습니다. 항아리를 둘 곳도 메주를 띄울 곳도 없으니 된장, 간장, 고추장은 마트에서 사 먹는 게 당연하게 됐죠. 유하네는 각종 장류도 직접 만들어 먹습니다. “된장도 만들어?” 유하네를 찾아왔던 친구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하네 장독대 구경을 합니다. “이건 된장, 이건 간장, 이건 고추장이야”하며 설명해주자 “간장은 또 어떻게 만드는 거래?”합니다.

고라니 때문에 직접 콩 농사를 짓지 못하지만, 주변 마을에서 선배 농부님들이 정성껏 키운 콩을 구해 장을 만듭니다. 초겨울이 되면 커다란 솥단지에 콩을 가득 넣고 장작 물로 6시간 이상 뭉근히 끓여냅니다. 손가락만 대면 뭉그러지는 콩을 절구에 찧어 메주 틀에 넣고 꼭꼭 누르면 네모난 이쁜 메주가 완성됩니다. 누가 못생긴 것들을 메주 같다고 했나요.

메주를 만들 때면 고소한 냄새에 유하세하는 연신 콩을 주워 먹습니다. 밥에 들어간 콩이 싫다고 빼내던 유하도 이날만큼은 “콩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네” 합니다. 지푸라기를 깔고 네모난 메주를 올려 적당한 온도에서 이리저리 뒤집어 주며 띄우면 하얀곰팡이, 노란곰팡이가 가득 핀 메주가 완성됩니다. 정월이 되면 잘 띄워진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 놓으면 이쁜 장 꽃이 핍니다. 60일 정도 지난 후 메주를 건져 잘 삶은 보리와 섞어 뭉개 놓으면 된장 완성! 소금물은 어느새 까만 간장으로 변신합니다.

청국장도 만듭니다. 잘 삶은 콩에 지푸라기를 뭉쳐 꼽고 따듯하게 이불을 덮어 48시간만 지나면 콩들 사이로 거미줄 같은 실이 만들어집니다. 이 콩을 절구에 넣고 고춧가루 조금, 소금 조금 넣고 빻으면 맛난 청국장이 만들어집니다. 김치를 조금 넣고 끓이면 콤콤한 냄새가 일품인 청국장찌개가 되지요. 이렇게 만든 청국장 덩어리들을 들고 유하세하는 온 마을을 돕니다. 앞집 할머니도 한 덩이, 옆집 아저씨네도 한 덩이, 건넛집 대모 할머니께도 한 덩이 드리고 옵니다. 돌아올 때면 유하세하 손에는 과자며, 귤이며 먹을 것이 잔뜩 들려 있습니다. “엄마 먹을 게 더 많이 생겼어”하고 유하가 웃습니다.

나눔도, 함께 한다는 것도 사라진다

김장을 한다는 것은, 장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의 행복, 함께 살고 있다는 연대감과 소속감,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직접 만든다는 성취감, 자존감 등을 이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장이 사라지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유하네는 이런 따듯한 마음들을 지키기 위해, 유하세하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도 이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시골에 삽니다. 유하네 보글보글 청국장이 궁금하시면 유하네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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