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이 걷는 천 리의 행진, 김진숙의 희망뚜벅이

[이슈②]


결국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의 정년 내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다시 차가운 길 위에 섰다. 부산 호포역에서 청와대까지, 천 리 길을 걷겠다고 했다. 2년 만에 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은 직후였고, 항암치료도 시작될 터였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30일, 부산 호포역 앞에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미조직부장, 차해도 전 한진중공업 지회장 등 3명이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겨울의 길 위에서, 그들은 정년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다른 발걸음이 모여들었다. 해고되고 쫓겨난 노동자와 삶의 터전을 공권력에 침범당한 주민들, 그리고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 행진했다. 세 명이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은 어느새 서른 명으로, 그리고 예순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위로하고, 서로 연대하며 걸었다. 지난 1월 14일, 《워커스》는 구미에서 35년 만에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려 하는 한진중공업 조선소 해고자 김진숙, 그리고 그와 함께 걷고 있는 ‘희망뚜벅이’들을 만났다.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행진 대열 맨 앞에서 힘차게 걷는다. 속도를 낮춰달라는 주문에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가도, 다시 제 속도를 낸다. 김진숙 지도위원 혼자서 걸었으면 진즉에 청와대에 도착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한파가 조금 누그러졌다지만 그래도 한겨울인데, 행진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에 땀이 맺힌다. 김 지도가 행진에 나선 지 일주일 만에 부산에는 44년 만의 한파가 찾아왔다. 강추위 속에 행진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법한데, 김 지도는 행진 첫날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강한 바람이 불었던 12월 30일, 세 명이 무작정 천 리 길 행진에 나선 날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한진중공업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복직을 거부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 등은 엇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회사가 김 지도의 ‘재채용’과 8천만 원의 ‘위로금’ 지급안을 제시했으나,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11년부터 김 지도의 임금을 계산하면 5억4천만 원에 이른다고도 했다. 언제나 그랬듯, 회사와 보수 언론은 노동자의 요구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며 금전적 문제로 협소화했다. 이런저런 보도들로 불편함이 쌓였을 법한데, 김진숙 지도위원은 꽤 담담했다. 회사의 여론화 작업도, 보수 언론의 보도 방식도 달라진 것이 없어서일 테다.

“그들은 돈으로만 이 투쟁을 보도하려고 해요. 투쟁하는 노동자의 명예를 어떻게든 훼손시키려는 의도로요. 정작 저는 (회사 안을) 전달받은 바가 없어요. 그런데 나한테 먼저 (회사 안을) 제안했어도 거부했을 겁니다. 회사가 제시하는 것은 ‘복직’이 아닌 ‘재입사’잖아요. 재입사라는 것은, 곧 해고와 복직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보상금 8천만 원도 임원들이 모금해서 주겠다는 것이에요. 액수의 문제를 떠나, 그것은 적선이잖아요. 그렇게는 8억 원도 안 받습니다. 돈으로 해결될 일이었으면 이미 86년도에 해결했죠. 그 후에도 사측은 꾸준히 돈으로 회유하려 했고요. 2008년에도 일하지 않고 월 200만 원씩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 것은 일고의 가치도, 의미도 없는 돈입니다. 그들의 본질이 그래요. 이번에도 한진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 거죠.”


김진숙 지도위원은 2020년, 정년을 맞은 그해에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에게 정년이 무슨 의미일까. 김 지도 역시 복직 없이 정년은 없다고 말한다. “저의 시계는 아직 공장에서 쫓겨난 86년도에 머물러 있어요. 앞으로 35년의 세월이 남아 있는 거죠. 35년 안에는 복직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3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투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대의 복직’을 위한 투쟁이라고 이야기한다. 치유, 회복되지 않는 왜곡된 역사는 현재까지 남아 노동자들의 삶을 과거에 머무르도록 한다. 20세기의 국가폭력과 민주노조 탄압의 역사는 21세기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되살아나고, 그렇게 또 다른 김진숙들이 생겨난다. 빛바랜 과거에 또 다른 현재의 삶들이 쌓인다. 그래서 그의 복직 투쟁은 노동자를 향한 국가폭력과 민주노조 탄압의 역사를 치유하고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국가와 자본이 과오를 인정하고, 이를 원상회복 시키며, 다시는 노동자가 죽거나 부당하게 해고되지 않도록 현재를 바로 세우는 일. 그의 투쟁이 단순히 김진숙 개인의 복직 투쟁일 수 없는 이유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많아요. 동일방직, 원풍모방, YH, 콘트롤데이타 등등. 이분들은 정말 나한테도 대선배님들이지요. 70년대 해고된 분 중에 복직하신 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80년대 부산에서 투쟁했던 삼화고무, 지양고무 노동자들. 그들 중에서도 복직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시절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복직되지 못한 거예요. 그런 노동자들은 이미 공장이 사라져버렸지요. 복직을 요구할 만한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겁니다. 다행히 한진중공업은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잖아요. 70~80년대 해고된 모든 노동자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절 노동운동을 변호했던 변호사가 대통령이 됐잖아요. 이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주체가 문재인 대통령이죠. 그런 의미에서 시대의 복직이라 표현한 것이고, 그래서 청와대까지 걷고 있는 겁니다.”


한진중공업, 또다시 드리워진 고용 위기 망령

바뀌지 않는 과거는 또 있다. 정리해고의 광풍이 몰아치던 한진중공업에 또다시 고용 위기라는 망령이 드리워졌다. 지난해 12월, 한진중공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동부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곧바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일었다. 해당 컨소시엄은 조선업과 관련 없는 사모펀드로, 3년의 고용유지 의무기간 이후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고 부동산 투기 개발에 나설 것이 명백하다는 비판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투자금 회수에만 골몰하며 또다시 노동자를 정리해고로 내몰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산업은행에서 관리하고,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요. 그런데 매각의 방식은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설과 똑같습니다. 자기들끼리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지요. 노동자의 의사는 단 한마디도 반영되지 않습니다. 매각이 투명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요. 노동자들은 이후 자신들의 생존권조차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장을 만들고 지켜왔던 노동자가 정작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입니까. 문재인 정권에서도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구태의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어요. 최근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쌍용차에 무쟁의 선언과 단체협약을 3년 단위로 계약할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제 복직 문제에서는 ‘노사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이런 모순적인 사람이 국책은행장이라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대규모 정리해고 시도로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한진중공업 역시 대표적 노조파괴 사업장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회사는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을 동원해 민주노조 와해를 시도했다. 한진중공업은 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2011년과 회사에 기업노조가 설립된 2012년에 총 10억3400만 원을 창조컨설팅에 입금했다. 이후 노조파괴 범죄가 사회적 논란이 됐음에도, 한진중공업에서는 책임자 처벌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 전 지회장은 “지난해에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다수 노조가 됐다. 그러자 회사는 조합원 범위에도 없는 기술 사무직이나 연구직 직원을 기업노조에 집단 가입시켰다. 결국 기업노조가 또다시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갖게 됐다”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노사관계는 여전히 2011년에 머물러 있다”고 전했다.

‘약자들의 연대’가 된 희망뚜벅이

부산 호포역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4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매일 조금씩 걸어 나간다.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여정이다.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더 많은 김진숙들이 모여든다.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사람들이 만나 긴 행진 대열을 이룬다. 김 지도위원은 이를 ‘약자들의 연대’라고 했다.

“이렇게 걸으면서 매일 몇 번씩 울컥울컥해요.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과는 처음부터 같이 걸었어요. 매일 함께 걸어요. 구미에 들어와서는 아사히글라스 해고 동지들도 함께 걷고 있고요. 자신의 투쟁이 아닌데 이렇게 헌신적으로 결합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정말 고맙지요. 어제는 소성리 할머니들을 뵀는데, 눈물부터 흘리시더라고요. 그야말로 길에서 이어지는 약자들의 연대와 위로지요.”



행렬 앞줄에는 ‘대우버스 355명 부당해고 철회’라고 적힌 파란색 몸자보를 입은 네 명의 노동자가 걷고 있다. 지난해 8월 정리해고된 울산 대우버스 노동자들이다. 강병기 금속노조 대우버스지회 대의원은 새해 첫날부터 희망뚜벅이 행진에 함께 했다. 그리고 청와대까지의 길고 긴 여정에도 함께 할 참이다. 반년 넘게 텅 빈 공장에서 농성하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김진숙의 해고는 남의 일이 아니다. 생존권을 빼앗긴 노동자들에게 사람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회사가 지난해 3월 30일, 느닷없이 공장 폐쇄를 통보했습니다.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됐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댔어요. 회장은 회사를 인수할 때부터 정규직이 없는 회사를 원했어요. 아니면 공장을 없애겠다는 생각이었죠.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공장 문을 닫은 겁니다.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회사는 지난 8월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355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회사는 해고 회피 노력도 하지 않았고, 노조와 협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어요. 노조는 회사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지노위는 지난 12월 4일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지노위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장 폐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현재 조합원들은 가동이 멈춘 공장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 1차 협력업체인 한국게이츠 역시 코로나19를 빌미로 공장 문을 닫았다. 희망뚜벅이 행진에서 만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6개월 넘게 일방적인 공장 폐업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채붕석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지회장은 금속노조 역사상 흑자 폐업을 한 곳은 한국게이츠가 거의 유일하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게이츠는 20년간 1,041억의 순이익을 기록한 대구지역 우량기업이었다. 폐업 직전 해에는 45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심지어 외국계 회사인 한국게이츠는 대구 달서공장 입주 당시 취득세 및 재산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다. 현재 회사는 생산 공장은 일방적으로 폐업한 반면, 판매 법인은 그대로 유지하며 중국에서 완제품을 역수입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지자체는 외투 자본을 유치하면서 갖은 특혜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투기자본이 나갈 때는 제도적으로 규제가 하나도 없어요. 한국게이츠 같은 흑자 폐업조차 규제하지 않으면, 적자 공장들이 폐업해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저희 같은 사람들이 더 늘어나겠지요. 현재 조합원들은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회사가 노조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공장에 들어갈 때마다 30만 원씩 벌금을 내야 합니다. 화장실도 갈 수 없어요. 회사는 노동조합과 전혀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희망뚜벅이가 대구를 거쳐 구미로 이동하는 동안, 차헌호 지회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행진에 합류했다.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외국인 투자 기업 아사히글라스 역시 2006년 지자체로부터 토지 무상 임대와 각종 세제 혜택을 받으며 한국에 진출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고용하는 등의 비용 절감으로 연평균 1조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 2015년 문자 한 통으로 178명의 노동자를 대량해고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올해로 7년째 투쟁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집회 과정에서 도로에 래커 칠을 했다며 5천2백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7년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며 178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17억8천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했고요. 하지만 회사는 지금까지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2019년 민사소송 1심에서도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어요. 애초에 검찰은 불법파견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현재 형사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재판이 3년째 접어들었는데, 올해 5~6월에는 1심 선고가 나올 것 같아요. 노동부, 검찰, 법원이 모두 노동자들의 손을 들었는데도 회사는 시간을 끌고 있는 겁니다.”


서울 청와대 앞, 2월 7일을 기다리는 단식과 절 투쟁

희망뚜벅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청와대 앞에선 김 지도의 복직을 염원하는 절을 올린다. 김 지도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 농성은 벌써 해를 넘겼다. 현재 청와대 사랑채 앞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염원하는 단식 투쟁과 절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송경동 시인과 서영섭 신부,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수석부지부장 등은 오늘(26일)로써 36일째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2월 7일, 천 리 길의 행진을 마치고 청와대에 도착할 희망뚜벅이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부디 서로 무탈하게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지난해 12월 22일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한 정홍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위원장은 단식 20여 일 만에 체중이 12kg 넘게 줄었다. 이미 오랜 단식으로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지만, 영하 25도의 한파에도 비닐 한 장 칠 수가 없다. 올해 59세인 그는, 자신이 정년을 맞이하기 전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것은 스무 살 때부터 30년간 노동운동가로 살아왔던 그에게 마지막 숙제 같은 것이었다.

“2003년 김주익, 곽재규 두 열사가 나온 뒤 회사와 합의하는 과정에서 제가 교섭 간사를 맡았습니다. 그때 회사에서는 노조가 요구한 100가지 중 99개는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딱 한 가지 김진숙 복직만 안 된다고 했어요. 그때 전경련, 경총 등 재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김진숙의 복직을 반대했습니다. 자본은 결코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진숙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공권력 또한 여기에 발을 맞췄고요. 당시 제가 김 지도에게 전화해서 교섭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그때 김 지도가 얼마나 참혹했겠습니까. 마지막 통화에서, 김 지도는 ‘그렇게 사안이 종료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눈물을 머금고 한 말이었을까요.

그 후에도 매년 임단협 교섭에서 김진숙 복직 안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교섭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매년 뒷전이 됐어요. 지난 18년 동안 김진숙 복직을 전면에 내걸고 투쟁한 적이 없습니다. 2003년 제 나이가 마흔, 불혹의 나이였죠. 그때 제가 오류를 범했던 것이 아닐까, 왜 누구 하나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까, 18년간 부채감과 후회가 따라다녔습니다. 지난해 5월 투쟁을 시작하면서 이 오랜 숙제를 풀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지도의 해고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앞두고 민주노조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벌인 국가폭력이었다. 당시 김 지도는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등의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세 번의 징역과 5년의 수배 생활을 겪었으며, 해고를 당했다. 때문에 노동·시민사회는 이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 수석은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직접적으로 김 지도의 복직을 가로막고 있다”라며 “산업은행장의 임명 권한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심지어 산업은행은 한진중공업을 투기자본에 매각하려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12월 23일 청와대 앞에서 시작한 절 투쟁도 결국 해를 넘겼다. 김 지도의 복직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릴레이 3천 배 투쟁은, 6천 배로, 1만 배로 자꾸만 늘어난다.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청와대 앞에 찾아와 매일 절을 올린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걸음마다 그들의 염원이 스며들기를 기도한다. 김진숙의 오랜 친구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도 청와대 앞에서 매일 절을 올린다. 암 투병 중인 친구가 천 리 길 걷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박문진 지도위원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 지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가슴을 졸이던 차였다.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저는 김진숙의 스타일을 잘 압니다. 분명히 연말이 되면 투쟁을 할 텐데, 어떤 투쟁을 할까 걱정이 됐어요. 혹시 초강도의 투쟁을 결정할까 봐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걷는다고 했을 때, 오히려 반가웠어요. 지금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겠지요. 그리고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동지들이랑 함께 걷는 거니까.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거니까. 그야말로 혁명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처음 절 투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음이 못내 착잡했다고 했다. 2019년 겨울, 박문진 지도위원이 영남대의료원 노조탄압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6개월 넘게 고공농성을 진행할 때, 암 투병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부산에서부터 2백 50리를 걸어 그에게로 왔다. 김 지도의 행진은 장기화하던 고공농성의 또 다른 전기가 됐고, 한 달여 뒤에

박 지도위원은 땅을 밟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큰 힘을 줘야 할 차례인데, 절 투쟁으로 큰 힘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매일 청와대를 찾는 시민들과 함께 절을 하며, 그는 더 많은 마음이 차곡차곡 모이는 것을 경험한다. 수많은 마음이 모여, 김진숙이 걷는 길에 든든한 용기와 힘이 되길, 그리고 그 힘으로 노동자들이 걷는 길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염원한다.

“사실 2월 7일 이후가 겁이 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청와대에 도착해서까지 문제 해결이 안 됐을 때, 또 무엇인가를 할 테니까요. 앞으로 좀 더 많은 걸음이 모이면 좋겠습니다. 노조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전국에서 행진을 조직해 여러 갈래의 걸음들이 청와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요. 경부선과 호남선을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이 걸음이 횃불이 됐으면 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투쟁을 김진숙 한 사람을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부정당하는 것과 같아요. 노동운동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좀 더 적극적인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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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문재인 정권은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산업은행에서 관리하고,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요. 그런데 매각의 방식은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설과 똑같습니다. 자기들끼리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지요. 노동자의 의사는 단 한마디도 반영되지 않습니다. 매각이 투명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요. 노동자들은 이후 자신들의 생존권조차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장을 만들고 지켜왔던 노동자가 정작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입니까. 문재인 정권에서도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구태의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어요. 최근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쌍용차에 무쟁의 선언과 단체협약을 3년 단위로 계약할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제 복직 문제에서는 ‘노사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이런 모순적인 사람이 국책은행장이라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