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사건 사실로 인정

여성단체, 서울시·민주당 소속 사건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 요구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 등을 결정했다. 피해자와 함께 사건을 대응했던 여성단체들은 성희롱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사실로 공표돼 안도하면서도, 추후 2차 가해자 등 사건 책임자들의 징계가 뒤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전원위원회실에서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에 대해 심의·의결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경찰에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지 202일째 되는 날이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라며 “이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박 전 시장의 행위가 발생했을 때 당시 이를 피해자로부터 관련 사실을 들었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을 근거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 박 전 시장이 사망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성을 감안해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라며 “그럼에도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했다.

인권위는 더불어 “공적 영역에서 표현되는 모든 성적 언동은 노동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며, 이 경우 구성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라며 “노동현장은 성적언동이 허용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며, 그 유형이나 정도, 당사자 간 동의 여부를 막론하고 공적으로 제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가 서울시 비서실 동료 직원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4월 사건)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아 ‘2차 피해’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권위는 “‘4월 사건’을 최초로 인지한 부서장은 사건 담당 부서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는 등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전 서울시 파견경찰은 피고소인의 요청으로 지인에게 피해자와의 합의 및 중재를 요청했다”라며 “이 같은 서울시의 행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는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공적으로 확인해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있지만,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했던 서울시 직원들의 성희롱 묵인 방조 여부에 대해선 정황을 파악하지 못 했다. 비서실에서 일하며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차별노동에 피해자는 전보를 요청했지만 그 요청은 수년간 반려됐다. 인권위는 이에 “전보와 관련해 피해자가 비서실 근무 초기부터 비서실 업무가 힘들다며 전보 요청을 한 사실 및 상급자들이 잔류를 권유한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박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다만 “객관적 증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지자체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 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발표 후 논평을 내고 “인권위 보고서는 절반짜리 보고서”라며 “책임자에 대한 징계의 내용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박원순 성폭력사건, 4월 사건에 대한 묵인 방조 여부에서 인권위는 그저 공무원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매뉴얼 미비를 탓했지만 오히려 서울은 여타의 지방자치단체 시스템보다 지침이 잘 갖춰져 있다”라며 “서울특별시 성희롱 예방지침 징계조항엔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피해자에게 제10조제1항 각 호의 불이익 조치에 해당하는 추가 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에 대해 행위자에 준하여 징계 할 수 있으며, 제10조제2항(2차 피해 방지, 피해자 근로권 보호 등) 에 따른 적절한 조치 또는 제10조 제4항에 따른 비밀유지 불이행으로 인한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인권위에 바랐던 것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지침에 따라 전·현직 책임자들에 대해 징계를 권고하는 것이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샤워 전 속옷까지 챙겨야 했던 시장 비서들

한편, 성별 고정관념과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운영된 서울시 비서 운용 관행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하게 운용할 가능성이 높아 계속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밝혀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력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공적 업무 외에 사적으로 지시받는 업무가 많다보니 어느 순간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자신의 책에서 밝힌 바 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시장의 일정 관리 및 하루 일과의 모든 것을 살피고 보좌하는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을 대리처방 받거나 복용하도록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영역에 대한 노무까지 수행했다”라며 “서울시는 시장 비서실 데스크 비서에 20~30대 신입 여성 직원을 배치해 왔다. 이는 비서 직무는 젊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고정관념, 즉, 시장실 비서는 ‘서울시의 얼굴’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등 타인을 챙기고 보살피는 돌봄노동·감정노동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다”라고 서술했다.

당 소속 세번째 기초단치단체장 성폭력 사건을 사실로 확인한 더불어민주당은 26일 대변인 브리핑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라며 “피해자와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또한 “2차 피해 없이,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겠다. 국회에서도 성인지 강화와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변호인단, 피해자지원단체는 25일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문에서 민주당의 무책임한 태도를 꼬집었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을 공동 대응한 단체들은 “가해자가 소속되었던 당이자, 집권 여당이고 다수당이고, 법제를 만들고 검토하고 정비하는 입법자로서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라며 “가해자가 속해 있던 정당으로서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사안을 축소, 은폐, 회피하려고 했던 모든 행위자들을 엄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인권위에서 서울시의 행위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규정한만큼, “책임자 징계 등 서울시의 엄중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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