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노조파괴에 맞선 변호사들

[이슈③] 유성기업 노동자 10년 투쟁의 승리, 여전히 남은 숙제들

2020년 마지막 날. 10년에 걸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유례없이 기나긴 투쟁 끝에, 노조는 무려 10년 치의 임금 단체협상 잠정합의안을 끌어냈다. 합의안에는 감시카메라 철거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 노조 간 차별 금지와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손해배상 취하, 조합원 트라우마 심리 치유사업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노조파괴 과정에서 사망한 한광호 열사의 장례 관련 합의도 이뤄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버텨, 비로소 10년 전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시작된 투쟁은 두 번의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성기업은 정부와 공권력, 대기업이 공모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접전지였다.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폭력, 징계 및 해고, 감시, 회유, 차별 등의 노조 와해 작업은 정부의 비호와 묵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과 대형 로펌을 동원한 각종 소송전도 이어졌다.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 방해 등의 고소 고발은 노조파괴의 강력한 무기였다.

그리고 이에 맞선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법률적 지원과 연대를 아끼지 않은 변호사들이 있다. 10년간 유성기업지회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새날법률사무소의 김상은, 김차곤 변호사다. 《워커스》가 이들을 만났다.

  새날법률사무소 김차곤(왼쪽), 김상은(오른쪽) 변호사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노조파괴, 여전히 남은 숙제들

10년의 세월 동안, 이들의 나이 앞자리 숫자도 바뀌었다. 사십 대 초반에 뛰어든 유성기업 싸움은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나 시원섭섭할 듯한데, 그것보단 여전히 석연치 않은 의문들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나 보다. 싸움을 끝낸 소감을 물으니, 두 변호사는 담담하게 그간 쌓인 분노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벌써 3~4년 전에 끝났어야 하는 사건입니다. 2017년 초 유시영 회장이 구속됐을 때 사건도 종결됐어야 해요. 나아가 노조파괴 시점부터 경찰과 검찰, 노동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를 했다면 10년 전에 끝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제야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것에 화가 납니다.” (김상은 변호사)


“유성기업 사건은 재벌과 국가권력까지 가담한 전국적 차원의 노조파괴 사건의 일부분이었지요. 이 같은 흐름 안에서 유성기업 노동자와 함께 일정 정도 노조파괴를 막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성기업 배후에서 노조파괴를 지시하고 가담했던 현대자동차와 국가권력의 문제를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김차곤 변호사)


유성기업 노조파괴 배후에는 현대자동차와 청와대, 국정원, 그리고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있었다. 현대차 임직원들은 유성기업, 창조컨설팅과 회의를 열어 노조파괴를 지시했다. 제2 노조 확대를 종용하고, 노조파괴 현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법원 판결로도 확인됐지만, 현대차 관련 임직원 4명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것으로 사건은 무마됐다. 창조컨설팅은 국정원과도 노조파괴 문건을 공유하고, 유성기업 노동자를 비난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창조컨설팅과 현대차 자본, 유성기업이 노조파괴를 공모했다는 사실은 법원 판결로 확인됐습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 결과, 노조파괴 초기에 창조컨설팅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관련 이메일을 보내고, 이명박의 연설문을 작성해 전달했다는 사실도 밝혀졌어요. 그렇다면 당시 이명박 정부가 유성기업 등의 노조파괴에 얼마나 직접 개입했는지 수사가 이뤄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당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어요.” (김상은 변호사)


사실 입법부터 사법제도까지, 법 제도는 노동자에게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법 제·개정에 노동자들의 요구가 담기기 어렵고, 소송 과정에서도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뒤집히기 일쑤다. 유성기업만 해도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선고된 양형 또한 불공정했다. 노동자의 편에 선 변호사들 역시 언제나 법의 불공정함을 느낀다. 김상은 변호사는 “유시영 회장과 현대차 사건에서 검사가 기소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사건 초반에 수사기관이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도 기소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벽이었다”며 “유시영 회장의 경우, 검찰 구형보다 재판부의 양형이 더 높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조차도 재판부가 새로 기소된 내용은 반영하지 않은 채 낮은 형량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용노조 설립 무효’ 사건, 노조파괴 범죄 막을 첫 선례

이번 합의안에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을 비롯해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모든 법률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노조파괴의 일환으로 설립된 어용노조에 대한 ‘노조 설립 무효 사건’이 남아 있다. 이미 1, 2심에서 모두 승소해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이 소송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복수노조를 활용한 노조파괴 범죄를 막는 첫 선례로 기록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조파괴 사업장에서는 회사 주도로 어용노조가 설립돼 민주노조의 힘을 약화해 왔다. 이들은 다수 노조 지위를 차지해 회사와 협상을 했고, 기존의 민주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해 각종 차별에 시달렸다. 회사 주도의 어용노조 설립은 노조파괴의 공통 시나리오지만, 이것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노조 설립이 무효화 된 경우는 없다. 회사 주도의 기업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끌어낸 것은 유성기업 사례가 유일하다. 지난 2016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2017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기업별 노조가 회사 주도로 설립됐고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설립 무효 판정을 내렸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올 상반기 안에는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소송은 아무래도 노조 설립 무효 소송이지요.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크지 않은 사건이었어요. 거의 3년을 끌다가 이기게 됐죠. 2016년 3월 18일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선고가 났기 때문에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과거 발레오만도에서 기업별 노조로의 조직 형태 변경 관련 소송이 있었는데, 1심과 2심에선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뒤집어졌어요. 순천향대학병원에서도 기업별 노조 무효 소송이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노조 설립 무효와 관련해 승소한 사건은 유성기업이 처음입니다.” (김상은 변호사)


2010년 전후에 발생한 기획적 노조파괴는 ‘공격적 직장폐쇄-단체협상 해지-복수노조 설립-손배가압류’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노조파괴를 전담하는 전문 노무법인이 법률을 활용해 기존의 민주노조를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해고와 징계만큼 조합원들을 괴롭힌 것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였다. 지난해 11월 기준, 23개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58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들의 누적 청구금액은 658억1천여만 원에 달한다. 유성기업의 경우 노조파괴 과정에서 총 40억 원의 금액을 노조와 조합원에게 청구했다. 이와 관련해 2013년 1심 재판부는 12억 원을, 2015년 2심 재판부는 10억 원의 손해배상 금액을 인정했다. 지연이자는 연 20%에 달해, 매일 30만 원 이상의 이자를 내야 했다. 현재 이 사건 역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출처: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손해배상이 워낙 큰 금액으로 청구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받는 압박감과 고통도 매우 큽니다. 회사의 손배 청구는 노조의 교섭과 투쟁에서 발목을 잡기도 해요. 손해배상 청구를 어용노조 조직화에 이용하기도 하고요. 유성기업의 경우도 금속노조를 탈퇴하면 손배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압박하고 회유했습니다.” (김차곤 변호사)


수십억 원대의 손배 청구와 징계·해고 등에도 10년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유성기업지회가 끊임없이 현장 투쟁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조합원들이 버텨주지 않고, 현장 투쟁이 전개되지 않으면 법률 투쟁 역시 가능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싸우는 한, 패소 확률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늘 싸우는 조합원들에게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초반에 손해배상 청구로 일반 조합원들이 힘들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 조합원들에게 확실히 이야기했습니다. 손배가압류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사실 유성기업 조합원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유성기업의 경우 상집 간부나 확대간부, 대의원 등의 임원들이 손배 대상이 됐고, 어용노조로 넘어가면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노조파괴 초반이었던 2011년에 어용노조로 넘어간 사람 이외에, 손배가 부담스러워서 노조를 탈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90년대 이후 노조파괴의 양상은 직장폐쇄나 손배가압류 등 공식화된 제도를 활용하는 측면이 커졌습니다. 그러니 노조는 방어적 측면에서 불가피하게 법률적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법률 현장에서 버티고 방어하는 것도 노동자들의 현장 투쟁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법률적으로 방어를 하고 싶어도 현장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현장 투쟁이 있어야 이후 공세적인 투쟁도 가능합니다. 저는 항상 조합원들에게 힘들어도 버티면 반드시 이긴다고 이야기했어요. 조합원이 포기하지 않는 한 유성기업도, 현대차도 이길 수 있다고요.” (김상은 변호사)


10년의 노조파괴에 맞선 변호사들

김상은, 김차곤 두 명의 변호사가 일하는 새날법률사무소는 포털 지도에도 검색되지 않는다. 건물에 그 흔한 간판조차 없으니, 웹 사이트 역시 있을 리가 없다. 어째서 포털에 연락처는커녕 주소조차 공개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둘 다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고 답한다.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자신들이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포털에 등록할 생각을 안 했단다. 최근 변호사 마케팅만 전문으로 하는 광고회사도 생기는 마당에 대단한 의연함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새날법률사무소는 넘쳐나는 노조파괴 사건만으로도 1년 365일이 전쟁 같다.

새날법률사무소는 주로 민주노조 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법률적으로 지원한다. 그야말로 노동·인권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이다. 인권변호사들도 가끔은 생계형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는데, 이들은 오로지 노동사건만 맡는다. 김차곤 변호사는 “최근에서야 유성기업 사건이 많이 줄어 여유가 생긴 것이지, 그동안 노동사건만 하는데도 시간이 없었다”며 “현재 맡은 사건도 100% 노동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동기인 김상은, 김차곤 변호사는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첫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얼굴만 알던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에서 다시 만났고, 2008년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동료가 됐다. 그리고 그해 금속노조 법률원 운영 규정 논란으로 나란히 법률원을 나온 뒤, 의기투합해 새날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처음부터 둘이 굳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민주노조 탄압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맡게 됐다.

그들이 맡은 사업장들은 대부분 극심한 노조파괴가 벌어지는 곳들이다. 이들은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을 시작으로,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건,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 등 그야말로 격렬한 투쟁 현장에서 법률 지원을 했다. 노조파괴 사업장은 회사가 부당 해고와 징계를 비롯해 업무방해, 손해배상 등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기 때문에 한 사업장에서만 수백 건의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7년 박근혜 퇴진 투쟁 당시에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법률팀에서도 활동했다. 노동 사건과 더불어 퇴진 투쟁 지원도 해야 했던 2017년은 새날법률사무소가 가장 바빴던 시기였다.

그리고 2011년 시작된 유성기업 노조파괴는 변호사로서 가장 많은 날을 쏟아부은 사건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서인지, 10년의 싸움을 마무리하는 이들의 소회는 담담하다. 담담하지 않으면 10년을 버티지 못했을 테다. 이번 유성기업 노사 합의로 전쟁 같던 일상이 조금 차분해지면, 변호사로서 민주노조 운동에 결합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을 해나갈 예정이다. 물론 이제 야근도 좀 줄이고, 처음으로 한 달씩 휴가도 떠날 계획이다.

“일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입니다. 여러 제도적인 문제를 포함해 언론의 영향도 매우 크겠지요.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간이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차곤 변호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정말 열심히 싸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회사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 과정과 투쟁을 겪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노조파괴에서 노동조합을 지켜내는 싸움, 노동자의 자리를 지켜내는 싸움들이 사회적인 힘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노동자의 힘이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상은 변호사)

태그

양심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김용직

    두 분이 없었다면 어찌 헤쳐 나올 수 있었을까요?? 투쟁계획을 논의할 때마다 "불법 합법을 논의하면 할 수 있는게 없다. 일단 투쟁하고 난 이후 따져라. 우리가 함께 하겠다" 그 약속 10년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우리 동지들...

  • 문경락

    독일에서는 시위(투쟁)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배워야 합니다......늘 건강하시길....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