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KT노조 파괴 문건, 추가로 드러나

국정원, KT노조위원장 민주노조 후보 동향 파악후 견제 나서…두달 간 열 차례

[출처: 미디어충청]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2008년 KT노조위원장 선거와 2009년 민주노총 탈퇴 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한 문건이 추가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민주파 후보 진영을 감시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했고, 이들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일명 ‘온건파’라 분류한 후보자들의 단일화를 유도했으며, 선거 후에는 민주노총 탈퇴 선언을 지지하는 노조의 성명을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이 문건은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국정원에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해 새롭게 받아낸 문서로, 국정원은 전후방으로 KT노조선거와 이후 집행부에 개입해 민주노총 탈퇴라는 목적을 이뤘다. 자료의 내용은 검찰 수사로 이미 밝혀진 것이지만, 실제 문서가 드러나며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8년 10월부터 그해 12월 3일 치러진 ‘제 10대 KT노조 위원장 선거’ 관련 동향을 파악해 사측 후보에 이를 제공하는 한편, 해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사측에 지원을 구하며 적극적으로 선거 개입에 나섰다. 청와대가 KT 노조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후보별 성향과 선거운동 실태 등의 보고를 지시하자 20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국정원은 네 차례 관련 동향을 종합보고하기도 했다.

특히 국정원은 KT노조위원장 선거에서 강성 후보자로 분류된 조태욱 집행위원장을 타겟팅해 유의해서 지켜봤다. 조 집행위원장은 당시 KT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투쟁의지를 밝힌 후보로, 그가 소속된 그룹인 ‘KT민주동지회’(민동회)는 국정원의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었다. 조태욱 집행위원장에 대한 동향 파악은 12월 9일 결선투표 전까지 10월 22일, 10월 30일, 11월 4일, 11월 7일, 11월 13일, 11월 17일, 11월 20, 11월 21일, 12월 1일, 12월 8일 까지 열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10월 30일 국정원은 <조태욱 KT노조위원장 출마예상자 동향> 보고서에서 “극좌파의 ‘민동회’(전국회원 180명) 후보인 조태욱은 20% 내외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용불안이 대두된 KT 플라자 1,500명을 대상으로 악의적인 여론몰이를 지속”하고 있다고 쓰며 “1,500명이 10명씩만 포섭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동조세력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이 문서에서 KT노조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뜻 또한 밝히고 있다. 국정원은 IMF 이후 인력감축, 완전 민영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2001년 이후 KT노조는 회사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주성을 잃었다고 판단하면서, “KT 노조 선거는 회사에서 선호하는 위원장 후보가 결정될 경우 인물에 관계없이 당선이 가능하며 내부 정서상 ‘민동회’ 출신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부응하는 인물이 위원장 후보로 결정될 수 있도록 지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판단은 당시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실 정책보좌관이 작성한 문건 등을 토대로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전 정책보좌관은 KT노조 7대 위원장(2000년~2002년)을 역임한 인물로, 2007년에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하다가 2008년 고용노동부 장관실 정책보좌관으로 스카웃됐다. 그는 KT 노사관계 선진화(민주노총 탈퇴) 실천방안’ 등의 문건을 작성하는 등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탈퇴와 국민노총 설립 등을 이끌었고, 국정원으로부터 1억 5,700만 원을 받아 지난해 국정원 정치공작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국정원, KT노조위원장 후보단일화에 직접 나서

국정원은 2008년 11월 13일 작성된 에서 위원장 후보들을 꼽아본 뒤, 조태욱 집행위원장을 ‘강성’ 후보로 분류했다. 국정원은 “강성의 민주동지회 측은 조태욱(서부본부 소속)을 위원장 후보로 확정”했다라며 “조태욱은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휴가를 내고 전국 지사 순회에 나서는 등 세몰이에 돌입”했다고 적었다. 이어 “온건성향 출마 입지자들간 단일화 시도가 실패함에 따라 후보 난립에 따른 혼전이 예상”된다고도 우려했다.

국정원은 위원장 선거 이틀 전인 12월 1일까지 조태욱 집행위원장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는다. 국정원은 자체 분석 결과 조 집행위원장의 득표는 20% 내외에 그칠 것이라 전망하면서 “조태욱 후보의 ‘밑바닥 훑기’와 표몰이가 성공할 경우 결선투표 소지도 있으나, (…) 결선투표까지 가더라도 이변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적었다. 다만 “위원장 선거시 조태욱 후보가 선전할 경우 12월 5일 하부조직 선거에서도 강성파들의 약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어 2010년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노-노 갈등 및 사측의 노무관리상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라고 약간의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예측을 깨고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1차 선거에서 42.75%의 득표율로 12월 9일로 예정된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는데 국정원은 이를 분석하는 보고서(2008.12.8. 작성)에서 “XXX(다른 결선 후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상당수 조합원들이 강성 후보를 지지한 점을 의식해 그간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지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민주노총 탈퇴 및 맹비 납부 중단 등 노사관계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급격한 노선변경에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날 작성된 ‘KT노조 위원장 선거 판세 분석 및 전망’ 보고서에선 국정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온건파 새 집행부에 대한 지침이 마련됐다. 국정원은 “당원(국정원 자신)에서는 (…) 새 집행부의 활동 방향이 합리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사전 지도하며 (…) 노무관리가 경영상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시켜 노무관리에 만전(인사노무라인 교체 및 보강 등)을 기하도록 주문하고 (…) ‘민동회’ 측 세력을 견제·위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토록 독려하는 한편 (…)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KT노조가 노동계 지형을 변화시키고 노사관계 선진화 선도 사업장이 될 수 있도록 민주노총 탈퇴 등 노동운동 노선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음”이라며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전략을 구축한다.


선거가 끝난 뒤 12월 11일 작성된 ‘온건후보 KT노조 위원장 당선 위한 당원 지원활동 실태’엔 선거 과정에서 국정원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요약돼 있다. 문서에 따르면 “당원에서는 KT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온건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강성후보 선거 전략을 파악해 정보 제공하는 등 측면 지원”을 했다며 “3명의 후보가 난립함으로써 온건후보의 당선이 불투명해질 것으로 예상해 온건 후보 핵심 인사들을 연쇄 접촉, 진영간 만남을 주선하며 후보 단일화를 유도했다”라고 적었다. 단일화가 어려워지자 “8년간 유지해온 협력적 노사관계 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진 사퇴할 것을 설득”하기도 했다. 또 단일화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측 후보 당선 지원을 위해 “‘민동회’ 측 후보 선거 전략 및 선거운동 동향을 파악해 후보진영에 제공하고 (…) 당선에 필요한 사측의 지원 요망 사항을 파악해 사측 노무라인에 전달, 사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유도했다”고 썼다.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이번 추가 자료에 대해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 정보기관이 단위 사업장 노조 선거까지 개입해 노동 3권을 유린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KT 노무라인을 마음대로 움직였다는 것도 확인됐다”라며 “2009년, 2014년 KT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이때 노조와 사측이 밀실합의를 했다. 국정원은 KT를 지렛대 삼아 노동개악의 앞잡이로 활용했기 때문에 KT구조조정에도 관여했을 것이라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더 필요하다”라고 했다.

또 “국정원이 KT노조 파괴에 왜 사활을 걸었는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라며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KT노조가 민주노조라고 불렸던 시절에는 KT에서 국정원이 도감청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 조합원들이 용납하지 않은 것인데, 그때부터 KT엔 절대 민주노조가 들어서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정부 차원에서 깊이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사측 후보 앉히고, 본격적 민주노총 탈퇴 지시

위원장 선거 이후엔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고삐를 더욱 당긴다. 2009년 3월 27일 문건에서 “5월 중 민주노총을 탈퇴토록 독려하는 한편” “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행할 수 있도록 강경세력 견제 등 현장 노무관리를 한층 강화토록”한다고 했다.

KT노조가 민주노총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해 민주노총 탈퇴를 가결한 2009년 7월 17일 직전에도 탈퇴 지지를 유도하는 성명 등을 발표하도록 조종했다. 조합원 투표가 있는 7월이 다가오자 국정원은 탈퇴 찬성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탈퇴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KT노조의 민주노총의 탈퇴는 ‘정부차원’에서 추진되고 보호된 일이었는데 2009년 7월 7일 작성된 ‘KT노조 민노총 탈퇴 추진 일정 및 조치 필요사항’에서 국정원은 “반집행부 및 민노총의 탈퇴 방해·위해 활동을 차단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차원에서 KT본사 및 주요 지사에 대한 시설 보호”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민동회가 KT노조 조합원들에게 “민노총 탈퇴와 동시에 KT노조는 해체될 것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자 이에 대응해 KT 전 노조 간부에게 민주노총 탈퇴 지지 성명을 발표하도록 유도하는데 성명 내용은 모두 국정원이 기획했다.

공소시효 끝…노조 파괴 관련자들, 처벌 없어

한편, 국정원의 KT노조 파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거나, 다른 혐의로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2009년 1월 취임한 이석채 전 KT회장은 취임 후 조태욱 집행위원장을 업무 방해, 건조물 침입죄 등 5개 혐의를 씌워 고소하고 사택을 지급하지 않은 채 경남 사천의 삼천포지사로 발령내는 등 조 집행위원장을 적극적으로 괴롭혔다. 조 집행위원장도 이 전 회장을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맞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정원의 노조파괴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땐 KT 차원의 부당노동행위 공소시효가 끝난 뒤였다.

‘KT 노사관계 선진화(민주노총 탈퇴) 실천방안’ 등의 문건을 작성한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실 정책보좌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사회봉사 160시간 명령)을 선고받은 데 그쳤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해 항소심 판결에서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국고 손실’이었다.

가장 꼭대기에서 노조 파괴를 지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노조파괴 혐의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과 청와대가 수백 건의 문건을 공유하며 민주노총 와해 작업에 나섰고, 2009년에서 2011년동안 21개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KT노조 파괴의 일환으로 해고당한 이들의 삶 역시 아직까지 복구되지 않고 있다.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1989년 KT에 입사해 2010년 징계해고돼 복직하지 못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국정원이 KT노조 민주노총 탈퇴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고됐다’며 국정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했고,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여에 걸쳐 국정원으로부터 19개 문건을 받게 됐다. 조 집행위원장은 청구한 자료는 훨씬 더 많았지만 국정원은 자료가 없다거나, 청구 대상이 포괄적이고 막연하다는 이유로 부분적인 자료를 보내왔다.

조 집행위원장은 “국가가 나서든, KT가 나서든, 자신들의 불법행위로 부당하게 노동자가 해고된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원상회복 조치 해야 한다”라며 “최근 세번째 정보공개청구를 또 요구했다.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들을 보면 비정규직 운동, 청년 조직까지 다 개입하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막은 것이 확인된다. 이 내용들이 전면적으로 공개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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