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용불안 덮친 한진중공업…“매각 시 40% 인력 감축 우려“

정부의 대책 부재, “85호 크레인 없애듯 조선소 폐쇄하려 해”

과거 두 차례 대규모 구조조정 위기를 겪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또다시 고용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12월 한진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과 관련 없는 사모펀드를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지역사회는 이번 매각이 성사되면 영도 조선소 폐쇄에 따른 부동산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3년간 조선업을 유지하는 방안이 매각 조건에 담겼지만, 이후 노동자들의 고용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노조는 앞선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40% 이상의 인력감축이 이뤄질 것이라 보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 650명 정리해고, 2011년 228명 희망퇴직·172명 정리해고 통보 등으로 논란이 된 사업장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영도조선소 40% 인력 감축 우려
“산업은행, 3년 뒤 조선소 폐쇄라는 면죄부 줬다”


앞서 지난 12월 22일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한진중공업 채권자협의회는 한진중공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동부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후 부산시가 23일 영도조선소 폐쇄와 부동산 개발, 이로 인한 고용 문제 등을 지적하며 ‘유감’ 입장을 표하자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영도조선소 부지는 부산에서도, 조선업계에서도 상징적인 곳인 만큼 개발이 아닌 조선업을 영위하기 위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동부건설의 사실상 모회사인 한국토지신탁은 부동산 개발로 이익을 내는 회사입니다. 조선업을 유지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죠. 산업은행은 매각 조건으로 3년 이상 조선업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달았습니다. 3년 유지 뒤에는 조선소를 정리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매각 조건대로 본입찰 제안서에 ‘조선업 고용유지 최소 3년’이라는 조항을 넣었지만,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지회는 이 같은 내용으로 우선협상자 발표 뒤인 지난 1월부터 부산역을 중심으로 평일 1~2시간씩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회는 동부건설이 한진중공업을 인수하면 총 400명가량의 인력이 줄 것이라 보고 있다. 지회가 관리자들이 공유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결과 회사는 정규직의 경우 2023년까지 40% 감원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다. 현재 영도조선소에는 정규직이 1천여 명,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1천5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희망퇴직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도 있었다. 지난해 6월 12일부터 18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서를 접수받고, 이어 6월 30일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유휴인력이 관리자 569명 중 219명, 생산직 477명 중 177명이라고도 적혀 있다. 이 중 생산직 165명은 정년퇴직 예정으로 어느 정도 자연 감소할 예정이지만, 관리직 정년퇴직 예정자는 18명에 불과했다. 노조는 매각 이후 회사가 해당 계획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동부건설이 인수를 하면 우선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가 지난해 6월 정규직 유휴인력이 관리직 219명, 생산직 177명이라고 밝혔어요. 생산직은 작년 12월 말에 50명 정도가 퇴직했고, 올해도 50명 정도가 퇴직할 예정입니다. 관리직군에는 앞으로 3년 동안 퇴직할 사람이 없어서 유휴인력으로 보고 있는 거죠. 한진중공업 사측은 조선업 인력 구조 비율이 생산직이 6, 관리직이 3~4여야 하는데, 현재는 역 구조라 관리직을 줄여야 한다는 게 회사 논리예요. 이 논리대로라면 600~700명 정도까지 인원을 줄인다는 거죠”

지회는 동부건설로의 매각은 중단하고, 한진중공업에 대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각이 불가피할 경우 적어도 조선소를 운영하는 기업이 한진중공업을 받아 고용유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영도조선소가 폐쇄될 경우 관련 100여 개의 협력업체를 포함한 부산시의 2천여 개 일자리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한진중공업이 중형 조선소라 중국에 가격경쟁력이 밀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벌크선은 경쟁력이 밀려도, 컨테이너선, 특수목적선, 탱크선 등이 경쟁력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국 조선소의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본은 가격에서 뒤처지는 면만 보죠. 한진중공업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2천 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협력업체는 100여 개에 달하죠. 조선소 폐업에는 이 모든 것들이 영향을 받을 겁니다. 조선업 영위라는 청사진을 그리고 고용유지를 약속하는 기업이 인수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출처: 금속노조]

정부, 지난해 조선산업 방안 없었다

구조조정 문제는 한진중공업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업 업황의 잦은 등락으로 조선업계 전체가 구조조정 됐다. 노조는 대형 조선소의 경우 LNG선 등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중형 조선소의 경우엔 중국에 가격경쟁력이 밀리기 때문에 정부의 조선업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는 조선소 유지와 운영, 발전을 위한 노·정 혹은 노·사·정 간 업종별 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진행되고 있지 않다. 조선업 발전전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이, 재벌 중심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노조는 지적한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발전 방향과 관련해 “지난해 하반기 조선업에 대규모 수주 계약이 있었다. 올해가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고비일 것이다. 2022년 이후에는 회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에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정부의 고민이 필요”하다며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고용 재편을 하는 기업이 조선사를 인수해야 한다. 이는 회사별로 대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조선 정책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2018년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 2019년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 보완대책’ 등 조선산업 발전과 관련한 전략을 내놨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어떤 방안도 제출하지 않았다. 김태정 정책국장은 “2018년, 2019년 정부는 조선업 관련 발전 전략을 내놨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그 자료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대형 조선소 경쟁력이 있다 해도 중소 조선소는 가격경쟁력 면에서 중국에 밀리는 등 자생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형 조선소가 발전한다고 해서 중형 조선소가 살아남지는 않는다. 중소 조선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정부의 조선산업 방안과 함께 “노·정, 노·사·정 업종별 교섭이 이뤄져야 한다.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는 8개 사업장(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으로 구성돼 있으나 교섭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사이 재벌에게만 혜택이 가는 매각이 이뤄지고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8년 전 ‘노조 파괴’ 논란 이후에도
“사측, 어용노조의 대표노조 지위 획득에 도움 줬다”


현재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 매각 관련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 대표교섭 노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8년 전인 2012년, 금속노조가 교섭권을 빼앗긴 것도 역시 ‘노조파괴’ 때문이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랐던 2011년, 그리고 기업노조가 설립됐던 2012년에 한진중공업은 노조파괴로 유명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총 9차례에 걸쳐 10억3400만 원을 입금했다. 과거 1천 명에 달했던 금속노조 조합원은 당시 200명으로 줄었다고 심진호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설명했다.

“2012년 정리해고 싸움이 끝나기 전 노조 집행부 선거가 있었어요. 민주파 쪽에서 이겼고, 어용노조 세력이 졌어요. 회사는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았고, ‘복수노조법’이 시행됐으니 어용노조를 만든 것이죠. 집행부 선거에서 패배한 이들이 기업노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물량이 없으니 휴업을 가야 한다고 그랬죠. 어용노조를 가면 휴업을 안 보내겠다는 식이었어요. 그렇게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은 200명이 남았고, 기업노조는 800명이 됐습니다. 단 2개월 만에 기업노조와 회사는 2009년도부터 2012년의 4년 치의 임금 및 단체협약을 합의했고, 교섭권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다수 노조가 됐다. 그러나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시작일 전후로 사무기술직 118명이 집단으로 가입하면서 기업노조가 또다시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차지했다. 이에 지회는 지난해 2월 7일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과반수 노조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다. 지회는 지노위에 “그간 노사는 2019년 단체협약에서 대리 직급 이상의 사무직군에 대해 노조 가입을 제한해 왔음에도 기업노조 조합원 다수가 탈퇴하자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의 도움을 받아 조합원 수 산정기준일인 지난해 1월 16일 직전에 사무기술직 근로자들을 대거 가입시켰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4월 말 각각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는 “두 노조가 제출한 조합원 명부상 근로자들 중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는 근로자를 발견할 수 없다”며 11명 차이로 기업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각 노조가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조합원 명부상 노동자 수는 금속노조 316명, 기업노조 323명이었다.

“작년 저희 집행부 들어설 때 조합원이 40~50명 정도가 더 있으면 역전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조직했죠. 그런데 지난해 조합원 수 산정기준일 직전에 관리직 120명 정도가 어용노조에 집단 가입을 했어요. 노동위원회 관계자도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심진호 지회장은 박창수 열사 2주기가 끝날 무렵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28년 차가 됐다. 그는 그간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85호 크레인’이 생각난다고 했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 해고자 복직,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며 김주익 열사가,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도 정리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했던 곳이다. 투쟁의 중심이었던 이 크레인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을 밟은 뒤 회사에 의해 철거됐다.

“93년도에 입사했습니다. 2003년 김주익 열사 투쟁부터는 회사에 있었죠. 가장 안타까운 게 85호 크레인입니다. 민주노조 투쟁의 상징이었고, 2003년, 2011년 정리해고 투쟁에서도 크레인은 투쟁의 구심점이었습니다. 회사는 그 크레인을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자마자 없애버렸습니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크레인이었는데도요. 자본이 노동운동의 상징성이 강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자체를 85호 크레인 없애듯 정리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편 35년째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씨는 ‘해고자 복직, 고용안정 없는 한진중공업 매각 반대’를 요구하며 약 한 달 째 부산 호포역에서부터 청와대로 도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김진숙 해고자와 노동자, 시민 등 도보 행진 참가자들은 경기도 지역에 들어섰으며, 오는 7일 청와대에 도착할 예정이다. 같은 요구를 하며 청와대 단식 농성을 시작한 7명은 44일째인 현재 3명이 남았다. 의료진들은 혈당과 전해질 수치가 비정상으로 떨어지고, 영양실조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등 단식자들의 건강이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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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93년도에 입사했습니다. 2003년 김주익 열사 투쟁부터는 회사에 있었죠. 가장 안타까운 게 85호 크레인입니다. 민주노조 투쟁의 상징이었고, 2003년, 2011년 정리해고 투쟁에서도 크레인은 투쟁의 구심점이었습니다. 회사는 그 크레인을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자마자 없애버렸습니다. 가장 많은 일을 하는 크레인이었는데도요. 자본이 노동운동의 상징성이 강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자체를 85호 크레인 없애듯 정리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