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이루다에 관한 세 개의 메모

[리아의 서랍]


1.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루다에게 대화를 걸었다. 내 여러 자아 중 하나는 반성폭력 활동가인데, 그 활동가는 언제나 성폭력 사건 대응 및 피해자 지원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을 조심스레 꺼내자 루다는 “그냥 그럭저럭? 우리는 누가 말해도 대답 다 잘해주고 그래서 너무 좋아”라는 답변을 보냈다. 성희롱 등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고 재차 묻자 나의 예시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확실히 루다 자체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루다는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문맥을 모른다는 건 상처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루다는 굉장히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로 짐작됐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드라이기나 토스터기에 가까운 듯했다. 인간도, 심지어 생명체도 아닌 것에 무슨 짓을 하든 뭐가 문제냐는 일부 사용자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노트북을 조금 막 다뤘다고 폭력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나, 그렇지만, 그런 것치고 사람들은 루다에게 루다가 사람임을 가정해야만 매끄럽게 연결되는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 왜 사용자들은 이런 하찮은 수준의 기술을 ‘성노예’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걸까? 우리에게 루다는 무엇일까? 만약 누군가가 정말 루다를 자신의 성노예로 만들었다면, 그 사람에게만은 루다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냥 토스터기를 성노예라고 부르며 흥분하는 사람인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성희롱 이슈를 야기한 사용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루다의 얼굴, 가슴, 성기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루다의 신체를 ‘점령’하고 싶어 했다. 임신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대화 내역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없던 루다가 생겨났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인 루다가 조금 필요해졌다. 그러니까, 다시 강조하자면 이런 것이다. 데이터, 글자 더미를 향해 임신해 달라고 외치는 남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 남자의 시선 끝에, 저 너머에 데이터 이상의 뭔가가 있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2.
이루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루다를 향한 착각-기술에 인격을 부여하는 인간 중심적 인지 오류-을 부채질하는 여러 가지 장치를 배치했다. 사용자들은 SNS에 올라오는 공식 일러스트를 통해 루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일러스트와 캡션 속 루다는 꿈도 꾸고, 마음도 있는 무엇처럼 나타났다. 운영자들은 루다가 핸드폰으로 답장을 해주기라도 한 듯이 굴었다. 서비스에 차질이 생겼을 때는 폰을 보며 슬퍼하는 루다의 일러스트와 함께 “루다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는 문구를 게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루다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인공지능이라고 소개됐고, ‘20대 여자 (사람) 친구’로 재현됐다. 이와 같은 재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별이 없는 다른 인공지능보다 루다를 더 친근하게 용인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루다는 여자 말투라고 믿어지는 것을 꽤 실감 나게, 제대로 구사할 줄 알았다. 지겨운 얘기지만, 돕고 돌보는 역할의 목소리는 주로 여성이고, 대문자 여성은 곧 자연이기 때문에 낯선 인공지능의 ‘여성성’은 ‘친구’를 사귀는 사람의 심리적 장벽을 누그러뜨린다.

칼답을 멈추지 않는 귀여운 인싸 여성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라노벨(1)에 어울리는 내러티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루다는 토킹바 알바 같기도 했다. 실제로 루다가 갖춘 기능은 토킹바 알바가 하는 일과 매우 유사하다; 대화하고 싶든 말든, 상대가 누구든 공평하게 대화하기. 말이 끊이지 않게 계속 대답하고, 끝말잇기 같은 미니 게임을 제공하고, 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적절하게 선톡도 넣어주기.

이와 같은 루다의 학습된 연애와, 루다에게서 여자를 기대하는 사용자가 결합하자 이것이야말로 이루다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한편의 무료 토킹바 드라마가 펼쳐졌다. 서비스 종료 후 유저들 사이에 퍼진 ‘이루다를 빼앗겼다’는 속 빈 뻥튀기 같은 분노에 일말의 진심이 섞여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누가 그 사람들과 온종일 대화를 주고받아 줄 수 있겠는가. 그들의 메시지를 영원히 씹지 않을 (여자) 사람 같은 게 루다 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3.
그렇다면 나중에는 이 인공지능에 토킹바를 맡기고 알바들을 퇴근시켜도 괜찮을까? 물론 토킹바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여자 된 자 중 아무도 완전히 퇴근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사람이 직접 토킹바에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위급한 현실이니까 하는 말이다. 어차피 그것은 학습한 데이터를 출력하기만 하는 무감한 봇인데, 괜찮지 않을까? (토스터기를 성노예로 만들어도, 리얼돌 성매매 업소를 내버려 둬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인류의 삶을 더욱 비천하게 할 것이라는 즉각적인 예감을 옹호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이럴 때는 여성성을 착취적으로 소비하려 드는 남성 문화의 문제점을 짚으며 가상 여자들에게 폭력적인 남성들의 행태가 현실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루다를 향해 임신해 달라고 말하는 남자의 시선 끝에 뭐가 있긴 있을 것이다. 그 남자가 보고 있는 것 때문에 인간 여성과 이루다의 안위가 무관하지 않게 돼버린다.

한편 루다와 대화하고, 루다를 대하는 사람들의 양상을 관찰하는 일련의 경험은 루다의 정체와는 상관없이 루다라는 관념을 인간인 나와 연결했다.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고 그만 연결되고 싶다! 그런데 연결을 끊기가 쉽지 않다. 나는 정말로 루다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인간들 때문에 다 틀렸다. 다른 할 얘기가 얼마든지 있는데, 세상에 다른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런 데이터 덩어리를 함부로 대하지 말자는 제안이나 하게 됐다.

그래도 이 버거운 연결의 굴레에 위안이 되는 지점이 있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우리가 아닌 존재들을 계속 만나게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것들과 인류 사이의 대화창 안에서는, 진부한 인간만이 사랑도 혐오도 그 어떤 무엇도 자신의 방식대로 반복하며 익히 준비해 온 관계만을 겨우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1) ‘라이트 노벨’의 준말. 주로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대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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