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김계월, 최명자…‘싸우는 여성노동자’의 현실 토크

김진숙 ‘희망뚜벅이’,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7일 청와대 도착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호포역에서 출발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7일 서울 청와대에 도착한다.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가 첫 발을 내딛은 이 행진은 한 달 넘는 여정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약자들의 행진으로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전국의 해고사업장 노동자들은 김진숙과 연대했고, 김진숙은 그들과 함께 행진하며 비슷한 고통을 함께 나눴다. 그리고 지난 4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여성노동자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해고노동자, 그리고 최명자 엘지트윈타워분회 해고노동자다.

[출처: 신유아]

가장 통쾌한 투쟁,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이들 세 명의 여성노동자는 지난 4일, 희망의 버스 사법탄압에 맞서는 ‘돌려차기’ 기획팀이 주최한 라이브 방송에 출연에 그들의 삶과 해고, 그리고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싸우듯이>라는 제목의 라이브 방송에서 세 명의 여성노동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현실 토크’를 이어갔다. 지난 1월 26일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하는 라이브 <내가 싸우듯이>에 이은 두 번째 라이브 방송이었다.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는 1986년 노조 대의원대회 참석 후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해고됐다. 그런 그가 해고 35년 만인 지난해 12월 30일, 복직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서울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이 계약만료 통보서를 받았다. 이들은 약 보름 전부터 고용승계 등을 촉구하며 건물 로비에서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5월 10일에는 아시아나항공 수화물 분류 및 기내 청소를 담당하는 아시아나케이오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지난해 12월 8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부당해고를 다시 한 번 인정했지만, 회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9개월째 노동자들을 거리에 방치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해고 이후 투쟁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 그리고 가장 통쾌했던 순간 등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삶에 공감했다.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는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을 때 가장 통쾌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10일 해고된 후, 2개월간 천막농성을 진행하며 세 번의 강제철거를 당했다. 그리곤 습한 여름날을 트럭에서 지내야 했다”며 “그러다 7월 13일 인천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고, 12시간 동안 집중문화제가 이어지던 때였다. 오후 8시에 부당해고 판정 문자를 받았는데, 이 거대한 회사를 이겼다고 생각하니 기쁘면서 굉장히 통쾌했다”고 전했다.

최명자 LG트윈타워 해고자는 노조를 만들고 회사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 후부터 통쾌한 사건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토요일에 무임금 노동을 시켰다. 3개월에 한 번 씩 식당 두 곳에서 바닥 왁스 작업을 했는데 그것도 무임금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하고 나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라며 “1년 동안 회사는 무성의한 교섭을 이어갔고, 12월 31일자로 해고했다. 그래서 12월 16일부터 로비에 자리를 깔고 파업과 노숙을 시작했는데, 거기서 ‘구광모’를 외쳤다. ‘구광모가 나와서 해결하라’며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 가장 통쾌했다. 지금도 계속 외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도 1987년 노동조합이 첫 파업에 나섰을 때를 가장 통쾌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는 “해고된 후 1년은 두드려 맞기만 했다. 회사 및 어용 관리자 150명과 경찰 버스 몇 대가 와서 아침저녁으로 밟혔다”며 “그러다 1987년 노동조합이 첫 파업을 하자, 그 기세등등하던 관리자들이 배를 타고 도망가더라. 처갓집에도 숨고, 병원에도 거짓말로 입원하고. 그것을 조합원들이 특공대를 조직해서 잡아 왔다. 간부들에게 사과를 받고 민주노총을 처음 세운 그 조합원들의 역동성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한 힘”이라고 밝혔다.

[출처: 신유아]

그렇다면 해고 이후 투쟁을 이어가면서 이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는 ‘투쟁발언’을 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는 김 씨는 “(투쟁하다보니) 문화제 등에서 현장 발언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나는 라이브에 너무 약하다”며 “어느 날은 라이브(발언)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런데 머릿속이 새카매졌다. 그날만큼은 핸드폰에 써 놓은 것을 읽는 것이 아닌 라이브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써 온 글을 읽게 됐다”고 설명했다.

LG트윈타워 최명자 해고자는 같이 싸우는 동료들이 하나 둘 투쟁 현장을 떠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위로금을 줄 테니 권고사직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몇 백만 원의 위로금을 받고 몇 사람이 나갔고, 그래도 사람들이 남아 있으니 회사에서는 상담을 하며 회유했다. 거기에 솔깃해 또 몇 명이 나갔다”며 “그럴 때마다 슬프고 힘이 빠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조합원들을 흔들었다. 하지만 파업 후에는 30명의 조합원이 똘똘 뭉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최 씨는 조합원들이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버티게 해주는 것은 ‘연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자들이 연대해 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마음을 아는 자들, 없는 자들이 연대한다. 그런 분들의 연대가 우리가 싸울 수 있도록 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숙 해고자 역시 “다른 사람들은 해고돼서 싸우는 것을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36년을 어떻게 싸우느냐”면서 “86년도에 빨갱이, 간첩, 김일성 막내딸이라며 해고가 됐다. 그 시절에는 옆에 오는 것만으로도 같은 빨갱이가 됐다. 그럼에도 아무 사심 없이 지지해주고 함께 해주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더라. 그런 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며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알게 됐다. 그 힘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한편 김진숙과 해고노동자,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연대하는 ‘희망뚜벅이 행진’이 오늘(7일) 청와대를 향한다. ‘리멤버 희망버스 기획단’은 이날 오전 11시 흑석역을 출발해 오후 1시 한진중공업에서 사측을 규탄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한 뒤, 2시 30분 광화문을 거쳐 오후 3시 청와대 농성장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청와대에는 지난해 22일부터 김진숙 복직과 해고 금지를 요구하는 48일차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행진에는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케이오, LG트윈타워, 아사히글라스, 서진이앤지 해고노동자들도 함께 할 예정이다.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하는 라이브 <내가 싸우듯이> (링크)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하는 라이브 <우리가 싸우듯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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