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토리스는 인권”, 금기를 넘는 여성 PD

[3·8 여성의 날 특별기획 인터뷰③] 다큐멘터리 <아이엠 비너스> 제작한 MBC충북 김우림 PD

  <아이엠 비너스> 스틸컷 [출처: MBC충북 UHD 다큐멘터리 <아이엠 비너스>]

“소개합니다. 인체에서 오직 성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기관. 바로 여성의 클리토리스입니다.”

낯설지 않은 이름. 하지만 모습도, 목적도, 발생 과정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생식기관. 수백 년 동안 감춰지고 지워지고 또 불온시 됐던 금기의 영역. 다큐멘터리 <아이엠 비너스>는 금기의 성안에 갇힌 ‘클리토리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의학의 영역에서조차 삭제된 클리토리스를 복원하고,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함께 어둠으로 사라진 비너스를 되살려낸다.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에서 성적 억압을 받아온 여성들에게 반가운 위로와 연대의 인사를 건넨다. 스스로의 성을 억압해 온 것은 결코 당신 탓이 아니라고. 여성의 성은 수동적이지 않으며, 즐겁고 기쁜 것이라고.

‘과연 제작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로 시작된 기획안은 2019년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온전히 완성됐다. 그해 11월 MBC충북에서 첫 방영이 됐고, 이듬해 10월 MBC본사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됐다. 2019년에 한국피디연합회로부터 ‘이달의 PD상’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창의 혁신부문 우수상과 MBC전국계열사 작품경연대회 대상, 그리고 양성평등미디어상 여성가족부 장관상까지 수상했다. 무지의 영토를 떠돌던 수많은 물음표를 ‘우리 모두가 비너스!’라는 감탄사로 되돌려 놓은 <아이엠 비너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MBC충북의 유일한 여성 PD, 82년생 김우림 PD를 만났다.

“클리토리스, 도대체 그게 뭐라고”

“저 스스로가 내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도 배운 여자라고,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서른넷에 아이 둘을 낳고서야 클리토리스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것도 우연한 계기로요. 너무 충격을 받았죠. 나만 몰랐던 건가 궁금해져서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몰랐다는 거예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인 걸까? 해외는 어떨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2017년에 다큐를 기획했어요. 그즈음 해외에서 3D 클리토리스가 제작됐고, 이듬해에 프랑스에서 클리토리스에 대해 교육하는 곳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굉장히 의외였죠. 서구는 성에 개방적이고 여성 인권과 관련해서도 반 발자국쯤은 앞서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클리토리스, 그게 뭐라고.”


  MBC충북 김우림 PD [출처: 윤지연 기자]

클리토리스의 ‘진짜’ 존재. 다큐 속 여성들은 작은 새처럼 생긴 클리토리스 3D 모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연신 감탄한다. “정말 이렇게 생겼어요?”, “너무 예쁘다.” 외음부 위쪽, 새의 부리 같은 머리 아래로 두 다리가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전정구라고 불리는 두 덩어리로 이어지는 온전한 클리토리스의 모습. 쾌락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유일한 기관. 남성의 페니스와 발생학적으로 같은 상동기관이지만, 그것보다 50배 정도 더 민감한 클리토리스. 그것이 발기하면 평소의 두 배인 20센티 손바닥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아는 여성은 얼마나 될까.

클리토리스의 역사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역사다. 김우림 PD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가 어떻게 클리토리스를 훼손하고 지워버렸는지를 추적한다. 클리토리스는 1800년대 해부학에서 그 존재가 드러났고, 1901년 그레이 해부학에서도 클리토리스의 작은 일부를 표기해 놓았다. 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의학에서도, 해부학에서도 사라졌다.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20세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쓸모없는 기관’이라며 클리토리스 탄압에 앞장섰고, 마녀사냥의 지침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을 쓴 하인리히 크라머는 클리토리스를 ‘악마의 젖꼭지’라 불렀다. 여성의 몸은 온전히 기록되지 않았다. 있어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으로 선별됐고 훼손당했다. 클리토리스의 온전한 모습이 밝혀진 것이 세계 최대의 포털사 ‘구글’이 창립한 해인 1998년이라니. 최근이라고 다를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오로지 ‘자궁’만을 가진 것처럼 존재하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여성들이 ‘할례’로 목숨을 잃는다.

“출산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행위로 미화돼요. 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몸에 가져오는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없습니다. 출산 후 잇몸이 무너지고 치질에 걸리고, 난산으로 몸이 망가지고, 모유 수유를 하다가 유구염이나 유선염을 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게다가 몸의 변화를 추스르고 대처할 시간 없이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돌입해야 해요. 불안감을 자극하는 육아 정보들은 익사 당할 정도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없죠. 여성의 몸은 여전히 도구화되고 있어요. 다큐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한 면담자는 출산 이후 자신이 무성적 존재가 된 것 같다며 울었어요. 결혼 전에는 조신한 여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을 부정하죠. 어머니에게 ‘성’이 어디 있어요? 여성은 계속 무성적인 존재로 살아야만 해요.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여성으로서 자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오르가즘은 인권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클리토리스’를 검색하니, ‘청소년에게 부적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경고 문구가 나온다. 모든 여성이 가진 신체의 일부일 뿐인데, 무엇이 부적합하다는 걸까. 다큐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르치는 한국의 성교육 현장을 비판한다. 영국 가디언지가 ‘뻔뻔한 성차별주의’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성교육 표준안을 비판한 것은 고작 3년 전의 일이다. ‘남성은 여성의 성적 매력만으로 강한 성적 충동을 가진다’, ‘여성은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이고, 남성은 경제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 고등학생 성교육 표준안에 버젓이 기재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사와 학생들은 현재의 교육이 스스로의 몸과 성을 차별 없이 알아갈 권리를 박탈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몸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서로 관계 맺는 법 또한 배운 적 없는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왜곡되고 차별적인 성 지식을 접하게 된다.

  <아이엠 비너스> 스틸컷 [출처: MBC충북 UHD 다큐멘터리 <아이엠 비너스>]

“좋은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이 주는 희망과 기대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야말로 가장 개입이 어렵고 갖가지 반대에 부딪히는 의제이죠.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잖아요. 반면 노동법, 통일 교육, 페미니즘 같은 교육을 한다고 하면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해요. 당장 시급한 것은 너무 비장해지지 않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엘렌 스퇴켄 달이 쓴 소녀들을 위한 성교육 책 《질의응답》에는 아주 디테일한 정보들이 나와요. 정치적인 논쟁이나 종교적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죠. 여성의 성은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르가즘은 인권이다’라는 구호를 좋아해요. 하지만 사회는 성의 문제를 인권이나 평등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아요. 개인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라고 치부해버리죠. 저 역시 직장인으로서 누려야 될 생리휴가나 노동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고, 싸울 준비도 돼 있어요. 반성폭력 문제들 역시 직간접적으로 경험치가 있고요. 하지만 성적 욕망과 기쁨 같은 것은 정치적 의제로 생각하지 못해왔어요. 성을 터부시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한 알 권리, 건강에 대한 권리, 성적 자기 결정권 등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와 교육이 선행돼야 합니다.”


한 명 있던 여성 후배 PD가 퇴사하면서 그는 MBC충북의 유일한 여성 PD가 됐다. 그런 만큼 여성과 인권, 노동권과 관련해 더욱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고부갈등이나 여성의 소비 같은 전형적인 정보만 나열하는 아침프로그램 코너를 맡아, 직장 내 성폭력이나 산업재해, 여성의 성, 유아 자위 같은 현실적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최근에는 <아이엠 비너스>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12부작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회사 안에서 프로그램 기획과 관련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여성 동료가 많지 않아 조금 외롭긴 하지만, 다양한 현장과 일상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여전히 고민과 이야기는 넘쳐난다. <아이엠 비너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그의 일과 삶의 큰 활력이다.

김우림 PD가 회사에 입사한 해인 2008년. 최종 면접에서 두 명의 면접관이 그에게 물었다. 만약 내부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한다면 공론화할 것이냐고. 입사 직후 노조 위원장이 그에게 말했다. 사내연애와 성폭력 문제 공론화, 딱 이 두 가지만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 회식 자리에서 모 기관 담당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곧바로 옆에 있는 상관에게 이를 알렸지만 돌아온 것은 ‘PD가 뭐 그런 것으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면박뿐이었다. 그 상관은 회식 자리 내내 김우림 PD를 ‘새끼 피디’라고 불렀다. 성추행 행위뿐 아니라 회사 안에서의 묵인과 방조, 그리고 위계적인 문화 역시 또 다른 가해였다. 다음날 3명의 작가가 같은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듣고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내부 총질 말라’는 등의 2차 가해를 넘고 넘는 싸움을 했다. 그는 MBC충북 최초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PD이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매번 부당함과 마주하지만, 그는 절대 비관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리부트 전과 후가 다르듯, 더 많은 목소리와 싸움이 일어날수록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럴수록 더 희망을 가져야죠. 우리 세대가 만드는 노동조합은 다를 것이고,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희망. 내 주변에 나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 용기를 나누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주눅 들지 않고, 설사 고립감을 느끼더라도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좋은 에너지를 되찾는 것. 그리고 그 에너지를 서로 나누는 것, 그게 지금 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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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한 명 있던 여성 후배 PD가 퇴사하면서 그는 MBC충북의 유일한 여성 PD가 됐다. 그런 만큼 여성과 인권, 노동권과 관련해 더욱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고부갈등이나 여성의 소비 같은 전형적인 정보만 나열하는 아침프로그램 코너를 맡아, 직장 내 성폭력이나 산업재해, 여성의 성, 유아 자위 같은 현실적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최근에는 <아이엠 비너스>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12부작 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회사 안에서 프로그램 기획과 관련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여성 동료가 많지 않아 조금 외롭긴 하지만, 다양한 현장과 일상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여전히 고민과 이야기는 넘쳐난다. <아이엠 비너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외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그의 일과 삶의 큰 활력이다.

  • 김영석

    여성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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