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여성이 만드는 민주주의, 군부의 자리는 없다

[이슈③] 군부 독재 60년, 여성 차별 심화…“군부와 가부장제 타파해야”

차례

① 한국에서 울려 퍼지는 미얀마 청년들의 목소리
② 세 손가락 들어 올린 미얀마 Z세대
③ 미얀마 여성이 만드는 민주주의, 군부의 자리는 없다
④ 전두환에서 미얀마 군부까지, 독재와 손잡은 기업들
⑤ ‘미얀마가 광주와 닮았으니까’로 퉁치지 말고

[출처: 트위터 @cvdom2021]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시위에서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사람은 20세 여성 미야 테 테 카인(Mya Thwe Thwe Khaing)이다. 그녀는 20세 생일을 이틀 앞둔 2월 9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쿠데타 항의 시위 중 머리에 총을 맞았다.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 유지 장치로 연명하다 결국 10일 뒤 숨을 거뒀다. 2월 21일 치러진 미야 테 테 카인의 장례식엔 수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미야 테 테 카인은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것을 보고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 테 테 카인은 당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총알은 헬멧과 두개골을 관통했다. 그녀의 자매들도 함께 이 시위에 참여했다. 미야 테 테 카인의 언니는 “동생이 겪은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이 군부독재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계속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젊은 여성의 죽음도 거대한 추모 물결을 일으켰다. 3월 3일 미얀마 중부 도시 만달레이에서 시위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18세 마칼신(Ma Kyal Sin)의 이야기다. 마칼신은 시위대의 맨 앞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번 시위는 과거 미얀마의 남성 중심적인 시위와는 달랐다. 젊은 여성들도 맨 앞에 나가 시위를 이끌었고, 방패를 들어 경찰로부터 시민을 보호했다. 다른 시위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죽음을 각오했다. 사망 전 그녀는 만약 죽는다면 혈액과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겠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3월 3일 시위에서 촬영된 마칼신의 생전 마지막 모습은 여러 이미지로 차용돼 쿠데타 반대 시위의 상징이 됐다. 사망 당시 그녀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적힌 ‘Everything will be OK(모두 괜찮아질 거야)’ 문구, 보호 고글을 쓴 채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긴장한 듯 혹은 비장한 듯 짓고 있는 표정, 그녀가 시위에서 외친 “We won't run(우리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등 미얀마 민중들은 마칼신을 기억하며 투쟁 의지를 다졌다. 3월 4일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마칼신의 죽음이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부상하자 군 당국도 재빠른 조치를 취했다. CNN에 따르면 군부는 마칼신이 안장된 만달레이 묘지에 침입해 부검이 필요하다며 시신을 탈취했다. 그리고 빈자리를 시멘트로 메웠다. 미얀마 경찰은 군부 매체를 통해 ‘판사, 지방경찰청장, 법의학자, 사고 목격자의 허락을 받아 (마칼신의 시신을) 발굴했다’라고 밝혔다. 군 당국의 이런 조치는 미얀마인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군부 치하 미얀마 여성들의 삶

3월 11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유엔의 미얀마 특별 보고관인 톰 앤드루스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난 2월 1일 이후 최소 70명이 살해됐고, 이중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였다고 밝혔다. 자칫 목숨을 잃는 위험한 정세이지만 Z세대는 시위 전면에 나섰고, 여성들 또한 여성 지도자를 축출하고 억압해온 군부를 타도하기 위해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군의 영향력을 키우며 가부장적 문화를 사회 곳곳에 이식했다. 미얀마 군부는 집단적 결속을 위해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한편, 여성을 차별하고, 소수민족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자행해왔다.

[출처: 트위터 @Lalee_Boo]

미얀마 여성들이 군부 쿠데타 이후 창의적이고 급진적인 시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군부의 억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군부의 여성 혐오적 미신을 역으로 이용해 쿠데타 반대 시위에 활용하고 있다. 한 예로 여성들은 빨랫줄에 치마를 걸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여자 치마나 속옷 아래로 남성이 지나가면 복과 남성성이 달아난다는, 여성 혐오적 미신을 이용한 것이다. 철 지난 미신이지만 실제로 남성 군인들은 여성 치마 밑을 통과하지 못하고, 치마를 불태운 후에야 지나간다고 한다. 군인이 자국민을 향해 총과 칼을 겨누는 비상식적인 상황은 군대 내에서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미얀마에서 남성성이 손상된다며 여성의 하의를 남성의 옷과 따로 세탁하는 문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의뿐 아니라 노출이 심한 옷도 따로 세탁해야 하는데, 이는 여성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민주화 맛본 Z세대, 차별 피해 유학도

[출처: 트위터 @HsuChiKo1]

한국에서 만난 미얀마의 여성 유학생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보수적 문화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그들은 지난 5년간의 문민정부 시절에도 여성은 여전히 옷차림이나 직업 등에 제약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는 여성의 의상에 대해 ‘수수한 복장을 하고 다니라’는 공식 메시지까지 발표할 정도로 여성을 규율하고 있었다. 정치 엘리트의 아내들로 구성된 ‘국가여성위원회’는 매년 7월 3일 전통 의상 패션쇼, 행사 등을 통해 ‘전통의상’을 입은 ‘착한’ 여성을 미얀마 여성의 올바른 정체성으로 홍보했다.

유학생 A씨는 한국으로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로 ‘캣콜링’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미얀마에선 짧은 치마 같은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을 때 길거리에서 남성들의 플러팅이 심하다고 했다. A씨는 “짧은 치마를 입으면 사람들 시선이 달라진다. 남자나 여자나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다가 성희롱을 당해도 사람들은 ‘노출 있는 옷을 입고 다닌 너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노출이 거의 없는 전통의상을 입고 다닌다. 남자들은 웃통을 까든, 뭘 입든 자유롭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여학생들은 미얀마의 성차별 교육 제도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미얀마의 대학 입시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점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성의 상아탑으로 꼽히는 의대의 합격선은 남녀가 평균 최대 50점가량 차이 날 정도로 여학생에게 불리하다.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려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야 하는 상황은 한국과도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는 ‘여성들이 공부를 더 잘하잖니’라며 타이르듯 말하지만, 그들은 여성이 계속해서 겪는 불이익에 둔감했다. 군부가 만든 차별적인 정책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유학생 B씨는 원래 의사를 꿈꿨지만 아쉽게 의대에서 떨어졌다. B씨가 남학생이었다면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여성이었다. B씨의 부모님은 차선책으로 간호대학교를 권유했지만 거부했다. B씨는 본인보다 낮은 점수를 받고도 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된 남학생들과 병원에서 마주치기 싫어 아예 다른 전공을 택했다. B씨는 “남학생들은 ‘이 정도 하면 되겠다’라는 느낌을 갖지만, 여학생들은 뛰어난 성적을 내고도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여학생 정원을 대폭 줄일 수도 있으니 운까지 따라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군부가 이런 식으로 교육을 통제하는 건 지식인 남성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B씨의 말처럼 군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제도를 왜곡시켜 왔다. 1988년 벌어진 일명 ‘8888항쟁’으로 불리는 반 군부 민중항쟁은 양곤의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투쟁이었다. 대학생, 승려, 시민 등이 폭넓게 궐기했고,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무력을 동원한 군부는 결국 시위를 진압했지만 큰 위협을 느꼈다. 8888항쟁에서 특히 공대 남학생들의 시위가 돋보였는데, 군부는 항쟁 진압 이후 공대의 입학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B씨는 “명문대 중 하나로 높은 점수를 얻어야 공대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 입학 점수가 낮아지며 변별력을 갖고 싶은 학생들은 이전처럼 공대에 진학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B씨는 명문대 중 하나인 해양대 역시 군부가 똑똑한 남성들을 자국에서 멀리 두기 위해 만든 장치라고 말했다. 해양대를 졸업하면 졸업 후 높은 소득의 직장을 얻을 수 있어 남학생들이 선호하는 1순위 대학이 됐다. 하지만 해양대를 졸업하면 줄곧 바다나 해외에 있기 때문에 군부로선 혁명의 리스크를 제거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여성, 군부를 가격하다

교육에서의 차별은 일자리의 차별로 이어진다. 미얀마 여성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해외 취업의 길도 막혀 있다. 한국에도 미얀마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다. 25년 전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온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대표는 “현재 미얀마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이 늘면서 제조업 쪽 일자리가 생기는 중이지만 이전엔 미얀마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미얀마 여성들은 한국 같은 먼 나라보다는 태국, 싱가폴 같은 가까운 나라에서 일하는데 그것도 사실 불법이 많다. 정부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잘 안 보내준다. 여성이 해외까지 나가 취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에도 여성이 일할 만한 좋은 일자리는 많지 않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라 성별 분업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여성은 대체로 비숙련,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시작된 정치·경제 개혁과 2016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 특히 의류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미얀마 여성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노동 조건은 형편없었다. 한화로 하루 4,800원가량인 현재의 최저임금도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 등을 전개해 겨우 올려놓은 성과다. 노동자들의 분노가 쌓여 2019년엔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전투적인 파업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싸우는 노동자들 다수 해고되고, 노동 운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미얀마 군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하자 의류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싸움에 나섰다.

미얀마 의류노동자연맹(Federation of Chair Workers)의 지도자이자 전직 의류노동자였던 도 모 산다르 민트(Daw Moe Sandar Myint)는 “노동자들은 이미 분노하고 있었다. 익숙한 고통의 감정이 되살아났고 우리들은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라며 여성 노동자가 시위에 앞장선 이유를 설명했다.(1)

[출처: 트위터 @HsuChiKo1]

군부 독재 하에서 억압받던 여성 노동자들은 이번 시위의 주도 세력으로 나서고 있다.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매일 행진을 위해 모인다. 파업에 앞장선 교사와 의류, 의료 종사자 노동조합의 다수가 여성이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군대와 가부장제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학생 B씨는 “군부 쿠데타 이후 새로 알게 된 사실들로 미얀마 여성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군부가 그동안 소수민족 여성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들이 확산되고 있다. 전기도, 인터넷도 없는 시골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군부가 미얀마 국민을 짓밟는 것처럼 이미 소수민족을 짓밟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성과 소수민족, 성소수자의 탄압이 연결된 일임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소수민족 출신인데도 이런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게 돼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여성단체들도 미얀마 여성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100개가 넘는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항거와 투쟁의 현장에서 그 무엇도 저지할 수 없는 용기를 지니고 평화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미얀마 여성들에게 뜨거운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라며 “전쟁, 내전, 군부 독재가 초래하는 성폭력과 군사문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들과 소녀들의 안전과 권리보장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일그러진 미얀마의 헌법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과 비전을 담은 헌법에서마저 여성 차별은 두드러진다. 여성을 나약하고 불순한 존재로 인식하는 군부의 성격이 헌법에 그대로 담겼다. 2008년 군부에 의해 개정된 미얀마 헌법은 여성들이 경제,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표명하면서도 여러 조항을 달아 실질적 평등을 제약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 타도와 함께 헌법 재개정 또한 요구하고 있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군부는 국회 의석(상·하원 664석)의 25%를 사전에 할당받고, 내무, 국방, 국경 개발 등 3개 주요 부처의 장관을 맡는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통령의 자격 기준은 군을 포함한 국가 사정에 정통한 사람으로 내세웠는데 군부는 대통령 후보 3인 중 1인을 추천할 권한이 있다. 미얀마 군부의 고위직은 대다수가 남성이어서, 군부가 상당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리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헌법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대통령에 오르는 것을 막는 법으로도 유명하다. ‘직계가족이나 배우자 중 외국인이 있으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아웅산 수치는 헌법 규정에도 없는 국가고문직에 머물고 있다. 

또한 헌법 352조에는 “자격요건이 충족되면 미얀마 연방의 시민을 인종·출생·종교·성별의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공무원의 임무를 부여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단, 남성에게만 적합한 직책에 남성을 임명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서를 달아 여성의 등용을 제한했다. 미얀마 여성운동가들은 미얀마 헌법을 악법으로 규정하며 헌법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법도 문제가 많다. 2015년 통과된 ‘인구조정보건서비스법(The Population Control Healthcare Law)’은 여성의 출산 간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한 번 출산하면 다음 출산까지 3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법안 발의 당시 국제엠네스티한국지부는 “로힝야 사람들이 아이를 둘 이상 갖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 이 법으로 말미암아 정부 주도의 강제피임, 강제낙태, 강제 불임수술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 법은 종교가 다른 이들의 결혼을 제한하고 있어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무슬림 낙태와 출산 통제를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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