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가 광주와 닮았으니까’로 퉁치지 말고

[미디어택] 역시, 언론이 문제인 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 5·18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한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한국은 5월 항쟁을 아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나뉜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왜 5·18을 모르나. 엄연히 고등교육 역사책에 실려 있는 사건인데…. 물론, 현대사는 교과서 뒷부분에 배치돼 있고, 시험 범위가 아니라서 정확히 ‘배웠다’라는 기억은 없지만 말이다. 그날 교과서에 쓰인 그 문구들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5·18에 대해 듣게 됐다. 무자비한 ‘국가폭력’과 수많은 광주시민의 희생, 그를 발판으로 뿌리를 내린 민주주의. 그 뒤 광주 망월동을 찾았다.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됐다. 선배가 했던 그 말의 의미를.

5·18 광주민중항쟁이 벌어진 지 어느덧 4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5·18은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운전사〉 등을 비롯한 TV 프로그램 및 기사들을 통해 꾸준히 재조명됐다. 그런 이유로 5·18을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개념 없다”는 얘기는 듣는다.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하거나, ‘북한군 개입설’ 역시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광주의 모습과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이 닮았다는 평가들이 많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자들의 고립…언로의 차단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2월 1일. 곧바로 군부 세력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군부 세력은 총을 앞세워 제압했다.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높아질수록 군부 세력의 폭력은 더욱 강화됐다. 미얀마에서 유혈사태라는 참극이 벌어진 과정은 이랬다.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주말이 지나면 ‘피의 일요일’이라는 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온다. 재한미얀마청년연대는 확인된 사망자만 196명이라고 밝혔다(4월 4일 기준, 미얀마 시민단체 정치수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미얀마 사망자 수는 564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 수는 하루가 멀다고 늘어나고 있다.

미얀마 군부 세력이 쿠데타와 함께 ‘언론통제’에 나선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군부 세력은 보도지침을 어기고 ‘쿠데타’라는 시각으로 보도한 〈미얀마나우〉와 〈7데이뉴스〉, 〈버마의민주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DVB), 〈미자마〉, 〈키트티트미디어〉 등 5개 매체를 강제로 폐쇄 조치했다. 미얀마의 독립 매체로 시위상황을 보도하고 있던 〈이라와디〉는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사회불안을 부추긴 혐의로 군부로부터 고소당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단어들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최소 37명의 언론인이 체포됐다고도 한다. 테인 저 〈AP통신〉 기자 등 외신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군부 세력은 인터넷 또한 부분적으로 차단하며 시민들의 소통을 막고 있다. 이렇듯 미얀마는 철저한 통제 속에 있다.

반면, 군부 세력은 국영언론을 통해 쿠데타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MRTV〉는 “2021년 2월 1일 국가 비상사태를 발표한 이후 몇몇 대도시에서는 많은 혼란과 평화롭지 못한 시위가 있었습니다. 시위하는 시민들은 이에 반항하여 경찰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로 인해 경찰 4명이 다치고 보안 차량에도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없이 법을 준수하며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라고 선전 중이다. 국영신문들 또한 경찰들의 부상 소식을 중심으로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다.

미얀마의 ‘언론통제’, 정말 광주를 닮았다…그러나

이 같은 미얀마의 언론통제 상황을 보자니 정말 광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 5월, 광주는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언론은 “타지역 불순 인물 및 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약탈 행위 등을 통해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된 것입니다”라던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말을 그대로 보도했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방송사가 시위대의 타깃이 된 이유는 거기에 있다. 광주시민들은 공수부대의 폭력에는 침묵하고 정부의 발표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던 방송사에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광주MBC 건물은 전소됐고 광주KBS의 TV주조정실은 불에 탔다. 이렇듯 한국 언론들이 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을 때 전 세계에 ‘광주민중항쟁’을 알린 이들은 외신기자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독일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샛길을 통해 광주에 잠입, 자신의 카메라에 국가폭력의 실상을 담았다. “군대가 시위대에 행한 잔인함은 우리가 직접 목격한 중상자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라던 그 영상들은 현재까지도 5·18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미얀마 군부 세력의 언론통제는 2021년에는 소용이 없다. 미얀마의 실상은 SNS를 통해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미얀마 군대가 운영하는 채널들은 역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서 차단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 언론 역시 어느 때보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지난 2일 “1980년 5월 한국 언론인들의 무기력과 공백을 다른 나라 기자들의 목숨을 건 치열한 취재·보도가 대신했듯, 미얀마의 민주주의 항쟁에 대한 적극적으로 취재 및 보도를 통해 빚을 갚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고무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 언론이 문제인 건가

다만, 그와 함께 한국 사회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왜 미얀마에 대해서만?”이라는 질문이다. 단순히 ‘미얀마가 광주와 닮았으니까’로만 결론지어선 안 된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온도 차는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 제주 예멘 난민들에 대한 언론과 우리들의 태도는 어떠했나.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며, 이런 질문들을 하고 있을 때 ‘분쟁지역 전문’ 김영미 PD가 SNS에 올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정부가 국내 체류 중인 미얀마인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특별 체류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는 발표를 국민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세금 낭비라는 얘기도 나오지 않는 게 신기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미얀마 시위대 지원을 위한 모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더 숨넘어가는 예멘이나 시리아 사람들 체류 연장한다고 하면 난리가 났을 텐데…”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영미 PD는 “미얀마 속보가 우리 언론에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된 현지 상황을 우리 국민들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역시 정보가 많으면 우리 국민들이 공감을 하고 처지를 이해하니까 입장이 달라지는구나. 결국 언론인들의 문제였던 거야?”라고 자문했다. 같은 질문을 던진 그 글이 반가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몸담은 이곳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 또한 같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언론이 문제였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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